[리뷰] <소공녀>
영화 <소공녀> 포스터. ⓒCGV 아트하우스
<1999, 면회> <족구왕> <범죄의 여왕> 그리고 <소공녀>의 공통점은 무얼까? 한국 독립영화라는 점. 모두 괜찮게 감상했다는 점. 그리고 '광화문 시네마'라는 독립영화 제작사의 작품들이라는 점. 요즘 가장 유명하고 잘 나가는 독립영화 제작사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동창이었던 감독 다섯 명과 프로듀서 한 명이 뭉쳤다고 한다.
마블 영화의 대표적 아이콘인 '쿠키영상'을 광화문 시네마가 제작한 모든 독립영화에서 볼 수 있는데, 홍보가 쉽지 않은 독립영화의 여건 상 효과적인 방법임에 분명해 보인다. 영화 한 편의 홍보 뿐만 아니라 제작사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일조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독립영화 제작사로서 계속 영화를 찍고 있다는 걸 알리는 데도, 스스로 계속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고취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광화문 시네마는 6명의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동창 중 전고운 감독과 김태곤 감독이 공동으로 대표를 맡아 이끌어 가고 있다. 김태곤 감독은 <1999, 면회>를 연출했고, 2년 전 <굿바이 싱글>로 흥행감독 반열에 올라섰다. 전고운 감독은 <소공녀>로 장편 데뷔를 했다.
대한민국의 현시절
영화 <소공녀>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광화문 시네마가 제작한 네 번째 영화이자 최신작 <소공녀>는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을 휘감는 트렌드들을 상당수 결합하여 '힙하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를 보여줌과 동시에, 3~40년 전 힘들기 짝이 없던 시절이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정도의 현시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소(이솜 분)는 하루 45000원을 벌어 혼자 살아가는 3년 차 가사도우미다. 월세 30만 원 짜리 단칸방에서 살면서, 매일 하루도 빠짐 없이 5000원 짜리 밥을 먹고 12000원 짜리 위스키 한 잔을 마시며 2500원 짜리 담배 한 갑을 피운다. 그런데 집주인이 월세를 5만 원 올려버렸다. 그리고 2015년이 되자 담배가 4500원으로 올라버렸다.
매일 같이 가계부를 적는 미소는 2015년 새해 벽두 6000원 적자가 나자 포기해야 할 것을 생각한다. 그녀가 포기한 건 위스키 한 잔도, 담배 한 갑도, 빌빌 거리는 남자친구도 아닌 집이다. 그 즉시 집주인에게 밀린 월세를 청산하고 집을 나선다. 우선 대학교 때 함께 밴드 활동을 하며 즐겼던 크루 5명을 찾아가 당분간 신세를 져보려 한다.
대기업으로 이직하기 위해 점심시간에 셀프 링거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베이스 문영, 30년 동안 중국집을 운영했던 시댁 부모님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형편 없는 음식 솜씨로 욕먹고 사는 키보드 현정, 결혼해서 없는 형편에 무리해서 아파트를 장만하여 20년 동안 돈을 갚아야 하는 이혼 위기남 드럼 대용, 늦은 나이에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며 빈둥대는 보컬 록이, 으리으리한 집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 같지만 남편 비위 맞추기에 급급할 뿐인 기타 정미. 그리고 웹툰 작가 지망생이자 현재 백수로 재직 중인 남자친구 한솔까지.
2018년 트렌드와 인간 군상
영화 <소공녀>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영화는 'N포'를 기본으로 하는 트렌드들과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결합시켰다. 특히 주인공 미소는, '미소 서식 환경, 즉 미생물·곤충 등의 서식에 적합한 곳'이라는 뜻의 영화 제목의 영문명 microhabitat과 '미생물·곤충'을 뜻하는 이름으로 유추해보고 더불어 하루 일당 45000원과 하루 위스키 한 잔, 담배 한 갑, 남자친구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말을 생각해볼 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전형을 보여준다.
혹자는 그녀가 바라는 행복의 기준이 터무니 없거나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위스키 한 잔과 담배 한 갑과 남자친구를 포기하지 않고 집을 포기했으냐는 것이다. 그리고 왜 일을 더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쯤에선 소확행 트렌드의 '유행적 부분'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더불어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가성비가 아닌 가심비, 즉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의 한 행태라고 할 수 있는 트렌드라고 치부할 수 없게, 해선 안 되게 된다.
우린 잘 알고 있다. 영화도 우리가 아는 걸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다는 걸 말이다. 2015년작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보여준 열심·악착의 비극은 이제 포기·행복의 미학으로 변했다. 발전이라고 해야 할까, 퇴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회 전체로 보면 퇴행이겠지만, 개인으로 보면 발전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유행이 아닌 '삶의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이 트렌드를 바라봐야 하겠다.
영화는 비단 한 개인의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미소가 집을 포기한 것처럼, 그녀가 찾아가는 친구들마다 모두 한 가지 이상은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친구들은 미소처럼 가심비의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따를 수 없는,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미소를 보고 집이 없어 불쌍하다느니 청년 실업만큼 청년 주거 대책이 시급하다느니 하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이 트렌드는 유행도 아니고 사회정치도 아니다.
'웃픈' 비현재적 부분들
영화 <소공녀>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영화는 몇몇 부분, 아니 여러 부분에서 비현실 아닌 비현재적이다. 21세기 세계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모습인가, 3~40년 전 경제·사회 과도기 대한민국의 모습인가. 경천동지할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바뀐 건 그걸 잘 받아들인 사람들 뿐이라는 게 씁쓸하게 다가온다. 이 세상의 하늘과 땅의 거리는 점점 벌어진다.
이 비현재적인 장면들은 그야말로 '웃프다'. 한껏 찌질함을 풍겨 웃기고, 그 찌질함이 너무나도 진지한 자기신념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슬프다. 특히 광화문 시네마의 네 작품에서 모두 얼굴을 비친 페르소나 안재홍이 분한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의 면면은 웃픈 찌질함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공녀>는 나에게, 우리에게 확고한 자기 신념과 삶의 방식이라는 트렌드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새로운 개념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나의 신념이자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에 어느 누구의 간섭도 듣지 않고 비난도 무시할 수 있지만, 과연 이 문제가 거기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인가. 아무리 사회정치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안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배제시켜 단절되는 것과 존중하되 강제하지 않고 범 공동으로 함께 가는 것과는 천지 차이인 것이다. 기성세대는, 사회는, 정부는, 이 미생물·곤충처럼 작은 이들도 존중하고 또한 함께 가야하는 구성원으로 생각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반면 이들은 어떤가. 이들은 기성세대, 사회, 정부에 반발하고 신념을 지키고 삶의 방식을 영위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만 권리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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