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호모 루덴스 그리고 호모 파베르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가 호모 사피엔스에 견주어서, 특히 유희를 즐기는 인간의 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신조어. 하위징아는 자신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지식, 법률, 전쟁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 유희적 요소를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가운데, 놀이가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J. 호이징하, 김윤수 옮김, 『호모 루덴스』, 까치. 1989.



호모 파베르 Homo faber


공작인, 즉 인간의 인간다움이 도구를 이용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데 있다는 뜻. 


독일의 소설가 막스 프리슈가 1957년에 발표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거기서 주인공 발터 파베르는 공대 출신 엔지니어로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지, 예술이나 문학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에게 옛 연인 한나는 '호모 파베르'('공작인'보다는 '기계 인간'에 가깝다)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작가는 소설에서 그런 그에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발생하게 만드는데, 발터는 나중에 우연히 만난 자기 친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막스 프리슈는 이러한 설정으로 '기계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호모 파베르는 도구를 사용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공작성에 초점을 맞춰 사용된다.

막스 프리쉬, 봉원웅 옮김, 『호모 파버』, 생각의나무, 2003.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옮김, 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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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표지 글


책의 표지에 실어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글. =표사


보통 뒤표지에 실리며, 편집자가 쓰는 경우도 있지만 저자와 친분이 있는 유명인 또는 같은 분야의 전문가가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문의 출판 기사나 잡지 서평에서 따온 인상적인 구절을 싣기도 한다. 문인 작품집에는 그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잘 아는 평론가 또는 선후배 작가가 문학적 향기가 짙은 표지 글을 써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본문을 읽기 전에 작품의 요점을 함축적으로 안내하는 기능을 하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매출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측면도 있다. 대개 찬사 위주로 씌어지기 때문에 이른바 '주례사 비평'의 하나로 간주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표지 글이 흔히 '표사'라고 불리는 데에는 다른 연유도 있다. 북 디자인에서 책의 표지를 구별할 때 관습상 앞표지부터 책날개를 포함해 페이지를 세어 나가므로 뒤표지는 네 번째 페이지가 된다.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이를 따라 뒤표지를 '표 4'라고 부르면서, '표 4에 넣는 말'이라는 의미로 '표사'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즉, '표사'는 '책의 표지에 들어가는 말'이면서, 주로 '표 4'에 들어가기 때문에 '표 4에 들어가는 말'이기도 하다. 


다음은 황석영의 장편 소설 『개밥바라기별』의 뒤표지에 실린 표지 글이다. 


예순이 넘은 거장이 십대의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그를 좋아하게 될 줄도 몰랐다. 참 멋진 소설이다. 미래의 영광, 찬란한 환호를 향해 눈에 보이는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 끊임없이 여정을 꾸리는 준, 나도 조금은 그를 닮은 것 같아 가슴 뛰었다. -타블로(뮤지션)



다음은 제임스 핀 가너가 쓴『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라는 패러디 동화집에 실린 표지 글이다. 


세계의 모든 돼지들에게 축복을! 우리는 이제 누명을 벗고 편안히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최고의 환경보호론자들이다. 우리는 사회의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값싼 주택을 건설한 선구자들이다. 제임스 핀 가너 씨에게 세  번의 힘찬 박수를 보낸다. 

-세 마리 아기 돼지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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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퇴고


작가가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문장을 다듬거나 구성을 고치고 내용에 첨삭을 하는, 글쓰기의 마지막 과.정


작가는 창작을 마친 후 문장 하나하나를 손보고 전체적 흐름을 다시 살핀다. 이러한 전체적인 재검토 과정에서 내용의 일관성, 표현의 정확성, 논리적 정합성 등에 수정을 가한다. 이를 퇴고라 하는데, 퇴고는 최종적으로 글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종 마무리 작업이다. 


퇴고라는 말은 당나라의 시인 가도와 한유 사이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가도는 「이응의 유거에 제함」이라는 시를 다듬는 과정에서 글자 선택을 놓고 고민했다. 즉, "조숙지변수 승퇴월하문(새는 연못가 나무에 자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에서 '문을 민다'의 의미인 '퇴'로 할지 '두드린다'의 의미인 '고'로 할지 갈등했다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당대의 대문장가 한유가 "민다는 퇴보다는 두드린다는 고가 좋다"고 조언한 이후 글쓰기의 마지막 과정에서 글을 다듬는 것을 퇴고라 일컫게 되었다. 


김희보 편저, 『논문과 리포트 쓰기』, 종로서적, 1984. / 이태준, 『문장강화』, 필맥, 2008.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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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카타르시스 catharsis


연극 용어로서 관객이 비극을 통해 대리 만족과 일종의 정화 작용을 거친다는 뜻. =승화, 정화


원래는 고체가 바로 기체로 변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화학적 용어를 비유적 의미로 사용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19세기 이래 카타르시스는 치료 요법으로 기능하기도 하는데,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승화라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성적인 충동의 주체가 스스로 사회적·종교적·도덕적 관습에 순응하는 과정을 지칭할 때를 말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류의 창조적인 문화는 성적인 충동을 탁월하게 승화시킨 결정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 관객에게 주는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카타르시스라는 그리스 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 뜻은 하는 정화, 하나는 배설이다. 정화는 종교상의 의식에서 죄의 더러움을 씻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것에 원래의 뜻을 두고 감정의 불순한 부분을 씻어 낸다는 뜻이다. 배설은 의학상의 배설에 원래의 뜻을 두고 비극적 흥분을 통해 관객의 심리에 쌓이는 정서를 배출해 감정의 중압에서 벗어나 쾌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관객에게 동정심과 공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정서 순화의 작용을 하고, 또 인간은 이를 매개로 원인과 결과  간의 필연적인 인과 관계를 깨닫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브레히트와 같은 서사극의 주창자들은 이런 카타르시스가 궁극적으로 '거짓 화해'라고 비판하면서, 그런 정서적 몰입보다는 오히려 관객에게 연극에 일정하게 '거리 두기'를 권고한다.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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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추리 소설 推理小說


먼저 사건의 결과를 보여 주고, 그 원인과 과정을 주인공이 논리력과 인과 관계의 정합성을 통해 추적하는 서사 구조를 가진 소설. 


독자의 흥미를 위해 곳곳에 사건의 실마리를 배치하는 경우가 많으며, 낱낱의 사건처럼 보이던 것이 하나의 인과 관계로 해명되면서 지적 쾌감을 얻게 해주는 경우도 많다. 흥미 위주의 대중 소설이라는 일반적 통념에도 범죄 소설이나 탐정 소설과 같이 독자적 규범을 만들어 내며 장르 문학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추리 소설은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에서 시작되었다. 「황금벌레」, 「검은 고양이」, 「도난당한 편지」 등은 특히 단편 소설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그의 대표적인 추리 소설들이다. 이후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독립된 소설 장르로 정착되었다. 영국의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1976년 85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쥐덫』,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 강의 죽음』, 『ABC 살인 사건』,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등 장편 66권, 단편집 20권을 발표하여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한국의 경우, 김내성이 『마인』, 『백가면』, 『태풍』 등을 발표하며 싹을 틔웠고, 현재는 김성종 등 몇몇 작가가 나름대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대중문학연구회 엮음, 『추리소설이란 무엇인가?』, 국학자료원, 1997. / 김창식, 『대중문학을 넘어서』, 청동거울, 2000.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도서출판 아시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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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장편 소설 長篇小說 novel


일반적으로 길이가 길고 구성이 복잡한 소설을 가리키는 용어. 


장편 소설의 길이는 중·당편 소설과 상대적으로 비교한 수치이기 때문에 길이의 정확한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대개 관습적인 기준에 따라 판별한다. 이를테면 장편 소설은 단행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을 하한선으로 잡고 있는데, 우리 출판계의 관례상 단행본의 경우 200자 원고지 700~800매는 필요하므로 이를 장편 소설의 한 기준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장편 소설이 더 길어서 단행본으로 몇 권에 이르면 대하소설이라고 한다. 장편 소설에 해당하는 서양의 용어는 'novel'인데, 한국에서 'novel'은 중·단편 및 장편 소설을 포괄하는 명칭으로 사용된다. 서양에서는 단편 소설을 'short story'라고 부르며, 장편 소설과 분명하게 구별한다. 


장편 소설은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규모가 방대하고 구성이 복잡하다. 또한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고, 시간적·공간적 변화와 함께 성격도 변화하는 입체적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다음은 서구 문학이나 중국, 일본 문학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세계 각국 주요 작가들의 장편 소설들로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것들의 일부 목록이다. 


이집트 : 나기브 마푸즈, 『우리 동네 사람들』/살와 바크르, 『황금 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 나딘 고디머, 『보호주의자』/자케스 음다, 『행복한 마돈나』

나이지리아 : 치누아 아체베,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지다』, 『신의 화살』/윌레 소잉카, 『아케의 추억』

케냐 : 응구기 와 시옹오, 『민중의 지도자』

말리 : 아마두 함파테 바, 『들판의 아이』

콩고 : 알랭 마방쿠,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인도 : 쿠시완트 싱, 『파키스탄행 열차』/비스므 사하니, 『암흑』

터키 : 오르한 파무크, 『눈』

필리핀 :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 『에르미따』

베트남 : 반레,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바오닌, 『전쟁의 슬픔』/응웬옥뜨, 『끝없는 벌판』

콜롬비아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 년 동안의 고독』

칠레 : 이사벨 아엔데, 『영혼의 집』

팔레스타인 : 사하르 칼리파, 『가시선인장』


조남현, 『소설원론』, 고려원, 1992. / 김천혜, 『소설 구조의 이론』, 문학과지성사, 1990.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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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연애 소설 愛小說


남녀 사이의 애정시가 주된 뼈대를 이루는 소설. 


고전 문학에서는 '염정 소설'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소설에는 남성 인물과 여성 인물 사이의 연애담이 다양하게 나오기 때문에 연애 소설을 일정한 장르로 보지 않는 논자도 있다. 그러나 역사상 특정한 시대와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특정한 연애관에 바탕을 두고 쓴 소설을 두루 일컫는다고 볼 수도 있다. 


중세의 로망에 뿌리를 둔 서구 연애 소설은 대부분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열렬한 구애를 기본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점점 시대가 바뀌면서 연애담은 소설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그 결과 남녀 사이의 애정담은 통속 소설의 소재로 부도덕하고 추한 모습으로 반영되기도 했다. 스탕달의 『적과 흑』,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메리메의 『카르멘』, 뒤마의 『춘희』,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하디의 『테스』, 호손의 『주홍 글씨』,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등은 연애가 주요 소재로 다루어지지만, 문학사적으로도 작품성을 넉넉히 인정받는 소설들이다. 


한국의 고전 소설로 연애 소설 계열에 드는 작품으로는 『운영전』, 『춘향전』이 대표적이다. 근대 소설로는 이광수의 『무정』, 『사랑』, 박계주의 『순애보』, 김내성의 『청춘극장』, 정비석의 『자유부인』,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이문열의 『레테의 연가』, 박완서의 『그 남자 네 집』 등을 꼽을 수 있다. 


근래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른바 하이틴 소설이라 하여 순전히 흥미 위주로 남녀 간의 연애 이야기를 다루는 통속 소설들도 무수히 창작되고 있다.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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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4·19 세대' 四一九世代


4·19혁명의 의식을 자양분으로 삼아 이전 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하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 한국 문학의 한 세대.


대표적인 소설가로는 김승옥, 서정인, 이청준, 박태순, 홍성원 등이 있으며, 시인으로는 황동규, 이성부, 정현종, 오규원 등, 평론가로는 백낙청, 염무웅, 김현, 김윤식, 임헌영, 홍기삼, 구중서, 조동일, 김치수, 김주연, 김병익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미국식 교육을 본뜬 교과서를 통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습득하였고, 4·19혁명을 거치면서 그러한 가치를 내면화할 수 있었다. 또한 한글 구사에 어려움을 겪은 이전 세대와 달리 해방 이후 처음으로 한글로 생각하고 말하기 시작한 세대로서 자부심을 공유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들 가운데 특히 이전 세대와의 단절을 강조했던 이는 김현이다. 가령 「한국비평의 가능성」에서 그는 자신들을 "65년대 비평가"로 분류하며 새로움을 강조한다. 이러한 태도가 일반적인 용어로 굳어지면서 '4·19세대'로 정착되었다. 이렇듯 세대 의식에 입각한 동류의식을 강조하던 시도는 흔히 『문학과지성』계열로 분류되는 비평가들에게서 두드러진다. 4·19세대는 크게 보면 '우상의 거부'와 '새로운 가치의 창조'라는 측면에서 공통분모를 드러낸다. 


김승옥의 대표작 「서울, 1964년 겨울」과 「무진기행」은 특히 이전 세대와 달리 엄숙주의를 거부하고 글쓰기의 중심을 자의식에 놓는 4·19세대의 창작관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하고 그가 내게 물었던 것이다. 

"사랑하구 말구요." 나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져서 대답했다. 

(중략)

"오르내린다는 건...... 호흡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죠?"

"물론입니다. 시체의 아랫배는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요. 하여튼...... 나는 그 아침의 만원 버스칸 속에서 보는 젊은 여자 아랫배의 조용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맑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움직임을 지독하게 사랑합니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부분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 '나'와 '안'이라는 25세 동갑 내기의 이러한 대화는 현실에 대해 문을 닫아건 채 자의식만을 큰 의미 없이 드러내는 새로운 세대의 의식을 잘 드러내 보여 준다. 어쨌든 4·19세대는 4·19혁명의 성과와 한계를 전유하는 방식에 따라 점차 『창작과비평』,『상황』,『문학과지성』그룹으로 분화해 나갔다. 이들 세대가 처음 발행한 매체는『비평작업』이며, '서울대 문단'을 중심으로 하였던 『문학과지성』의 전사(前史)로 기록되는 동인지로는『산문시대』,『사계』,『68문학』을 꼽을 수 있다.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도서출판 아시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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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베스트셀러' best seller


비교적 짧은 기간에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한 물건, 특히 책을 가리키는 말. <->스테디셀러


미국의 문예 비평지 『북맨』이 '베스트셀링 북스'라는 목록을 만들어 게재한 것이 시초이다. 베스트셀러는 일회성을 주요한 속성으로 한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독자의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스테디셀러(steady seller)'와는 다르다. 스테디셀러가 시대를 관통하여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반면, 베스트셀러는 그만큼 당대 사회의 요구와 분위기를 밀접하게 반영한다. 


한국 문학에서 베스트셀러라는 용어는 해방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문학의 대중성과 예술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있는 대중 문학들이 문학 작품이라기 보다는 이익을 창출해 내는 상품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전후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독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준 195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이 작품은 전쟁이 야기한 가치관의 붕괴를 상류 사회의 속물적 모습과 대담하고 선정적인 묘사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동시대의 보편적 삶의 모습을 직시하는 날카로운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0년대 베스트셀러는 현실 비판 의식과 상업주의의 만남을 통해 그 어느 시기보다도 활발하게 독자들에게 다가갔다. 또한 대중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이 문단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았다는 점은 대중성과 미학성이 극단적으로 분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시기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는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다. 이 작품은 이후 조선작의『영자의 전성시대』, 조해일의『겨울 여자』등 유사한 주제나 소재의 작품들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들에서는 '타락/순수'의 앙면적 이미지를 지닌 여성 인물을 통해 유신 독재라는 암울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방황하는 남성들을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이러한 통속적인 구조 속에 산업화로 인해 소외받는 하층민들의 삶을 포개어 놓음으로써 사회적·정치적 실천의 영역과도 일정하게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1990년대 한국 출판계를 뜨겁게 달군 베스트셀러는 이은성의『동의보감』이다. 이념의 붕괴에 따른 정치적 허무주의와 세기말적 현상의 틈을 파고든 '역사 인물 소설'은 이후 이재운의 『소설 토정비결』,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등으로 이어지면서 오랫동안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와는 다른 방향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를 유발함으로써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으로 이인화의『영원한 제국』과 김진명의『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있다. 이와 더불어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지극한 가족애를 그린 작품들이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김정현의『아버지』, 조창인의『가시고기』등이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이다. 1990년대에는 또한 신경숙의『깊은 슬픔』, 공지영의『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등이 대표적 베스트셀러였다. 도종환의『접시꽃 당신』, 서정윤의『홀로서기』, 최영미의『서른, 잔치는 끝났다』등도 시집으로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바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장기간 올라 있는 대중 소설들은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기획 상품'의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베스트셀러는 자본의 논리와 결탁한 상업주의의 산물로 간주되어 문학 논의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황석영의『바리데기』, 박완서의『아주 오래된 농담』, 조정래의『아리랑』, 박경리의『토지』등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들도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의 경제를 오가며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아시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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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무협 소설' 武俠小說


무사나 검객들의 이야기를 그린 대중 소설의 한 분야. =무협지


무협 소설이 그리는 '무협'의 세계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협'이라는 말 자체도 1904년 『소설총화』에서 처음 쓰였다. 그러나 무협과 비슷한 사회 현상은 실제로 존재했고, 무협 소설은 그것을 연원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전형준은 춘추 시대의 유협 - 한의 호협 - 당의 민간협으로 이어지던 순수 무사 계층으로서의 '협'이 송대 이후에는 세속화되어 무림, 녹림(산도적), 비밀 결사 등으로 존재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협'은 "절개와 의리를 승승하며 개인의 존엄을 중시하고 간악함을 제거 하기 위해 노력하는 무덕이 높은 자"를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무사들은 고대 중국의 강호라는 가상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의협을 행한다. 무협 소설은 대체로 유교적 입장에서 협 사상을 받아들인 것이 사상적 바탕이라고 하겠다. 


장편 혹은 대하소설의 분량으로 씌어지는 무협 소설은 당나라 때의 전기나 청나라 때의 협의 소설 등이 효시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삼국연의』『수호전』『삼협오의』등을 이어받아 창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양의 판타지 소설과 마찬가지로 무협 소설도 20세기 대중 문학의 한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무협 소설이라는 명칭을 쓴 최초의 소설은 1915년에 나왔다. 20세기 이후의 중국 현대 무협 소설은 1949년을 기점으로 신파와 구파로 나뉜다. 1949년은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한 해이다. 환주루주, 왕도려를 위시한 북파오대가가 구파를 대표하고, 김용, 양우생 등 홍콩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들과 와룡생, 고룡 등 타이완 계열 작가들이 신파를 대표한다.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1980년대 이후 다시 성행하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무협 소설은 1961년 김광주가 번안한 『정협지』로 알려져 있다. 무협 소설은 대개 중국 무협 소설의 번역물을 의미했는데, 1980년대 이후 금강, 용대운, 좌백 등의 국내 작가들이 무협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번역물과 구별하기 위해 이들 소설을 '창작 무협'이라고 부른다. 전형준은 한국의 창작 무협들에 대해 종래의 무협 소설관을 붕괴시키거나 해체시키는 텍스트로서의 의미를 강조해, '신무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신무협은 특이하게도 디지털 매체의 발달(컴퓨터 통신 등)과 더불어 융성하기 시작했다. 


무협 소설을 무협지라고도 하는데, 이 명칭에는 예술적 수준이 본격적인 소설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무협 소설의 매력은 광활한 중원 대륙을 배경으로 펼치는 초인적인 무공, 흥미진진한 모험, 남녀 간의 로맨스, 해피 엔드 등에서 나타난다. 무협 소설의 구성은 중세 유럽의 기사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틀 속에서 약간의 변주를 하는 정도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김현은 1969년 와룡생류의 이야기가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는 현대의 중산층에게 도피와 대리 만족을 주는 허위의식의 진앙지라고 비판했다. 반면 전형준은 무협 소설의 당대적 대중성을 오히려 당대 중산층이 지닌 자신감과 욕망의 표출이라고 보았다. 아울러 한국의 '신무협'에 대해서는 문학사적 가치까지 일정하게 부여하고 있다. 


정현중,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아시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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