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이펫의 이중생활>



메이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위협하는 은근한 강자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기대작 <마이펫의 이중생활>. 그동안 보여줬던 그들만의 특징을 잘 살려 흥행 신화를 이어갈까?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 포스터 ⓒUPI코리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하면 단연 디즈니가 생각날 테고, 픽사와 드림웍스가 이어질 거다. 그밖에 생각나는 건 두세 개의 유명 시리즈를 내놓은 블루스카이나 메이져 제작사에 속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정도다. 여기에서 알아둬야 할 건, 디즈니와 픽사가 '월트 디즈니 컴퍼니'로 한 식구가 되었고 드림웍스와 블루스카이가 '20세기 폭스'로 한 식구가 되었다는 거다. 크게 보면, 디즈니와 20세기 폭스의 대결인 것이다. 


양대산맥으로 굳어지다시피 한 판에 2010년 애니메이션 하나가 혜성같이 등장한다. 이름 하야 <슈퍼배드>. 1억 달러는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 기존 애니메이션들과는 다르게 약 7000만 불의 저렴한(?) 제작비가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5억 달러가 넘는 성공을 거둔다. 같은 해 개봉한 드림웍스의 명작 <드래곤 길들이기>를 제친 성적이었다.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는 일약 메이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위협하는 다크호스가 된다. 


이후 2010년과 2011년에는 잠시 숨고르기(그렇지만 망했다는 건 아니다)를 하고 2013년 <슈퍼배드 2>와 2015년 <미니언즈>로 역대급 흥행 역사를 이룩한다. 단 5작품으로 3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거다. 사실 이 회사는 20세기 폭스 애니메이션 회장이 퇴사해 독립한 후 유니버셜 아래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여하튼 후속작에 귀추가 주목된 건 당연한 일이겠다. 


역시나 극강의 재미, 시간이 지나면?


후속작에서도 그 특징은 계속될 것인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와 극강의 캐릭터들이 선사하는 재미를 말이다. 하지만 전편인 <미니언즈>가 어마어마한 재미를 선사한 반면 생각할 거리와 여운, 하다못해 교훈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좀 찜찜하다. 픽사 애니메이션으로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객의 수준을 채워줄 수 있을까? 


바로 그 후속작인 <마이펫의 이중생활>은 시대를 관통하는 소재인 만큼 생각할 거리와 여운, 교훈 등을 전해줄 요소는 충분해 보였다. 거기에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남겨진 반려동물들은 어떻게 지낼까, 아마 주인한테 보여주는 모습과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소재가 상당히 잘 어울릴 거라 보였다. 결과는 어떨까. 



아무 생각 없이 웃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제작사의 신작이라 그런지, 여전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다만, 영화 자체가 기억에 남지 않는 듯.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일루미네이션의 작품들은 창립 후 점점 캐릭터를 극도로 밀어붙여 재미를 추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아무 생각 없이 웃게 만든다. 그것이 수익을 창출하는 법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작품 자체는 더 잊히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일루미네이션의 작품이라곤 <슈퍼배드> 정도다. 그렇다면, <마이펫의 이중생활>은? 재미와 흥행을 떠나서 시간이 지나면 잊힐 듯하다. 


귀여운 캐릭터와 시대를 관통하는 소재, 과연?


시작부터 정신 없이 몰아치는 캐릭터들의 향연. 너무너무 귀엽고 앙증맞아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개, 고양이, 새, 토끼, 돼지, 도마뱀, 악어, 뱀... 그러나 영화는 점점 마이펫의 '이중생활'에 맞춰진다. 초반의 아기자기함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점점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사랑받으며 평화롭게 지내는 개 맥스네에 유기견이었던 듀크가 들어온다. 그들의 파란만장한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변함 없는 나날을 지내는 개 맥스, 어느 날 듀크라는 커다란 유기견 출신 개가 집으로 온다. 질투를 해보아도 주인은 알지 못한다. 친구 펫들에게 조언을 들은 맥스, 집을 어지르면 유기견 출신인 만큼 듀크가 그런 것처럼 보여질 테니 힘의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듀크도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법, 맥스를 골려주려고 뒷골목 쓰레기통에 쳐박는다. 


그곳은 길고양이 천국이었다. 길고양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목줄을 빼앗기고는, 급기야 유기견 보호소에서 나온 이들에게 잡혀가고 마는데. 그들을 구해주는 지하세계 조직원들. 인간에게 버림 받고 인간을 없애려는 게 목표인 그들에게 맥스와 듀크는 잘 받아들여질까? 그렇다고 도망치면 유기견 보호소에서 가만히 둘까? 그들은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는 기본적으로 귀엽기 짝이 없는 캐릭터를 장착해 흥미와 관심을 끄는 소재로 관객을 끌어 모을 듯하다. 동시에 버려진 동물들을 출현시켜 사회 문제를 부각시킬 준비를 마쳤다. 재미와 감동, 교훈과 생각, 여운까지 보따리로 보여줄 수 있어 보인다. 이보다 완벽한 구성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유기견이었던 듀크를 데려온 설정, 또다시 버려질까봐 두려워하는 듀크, 유기견 보호소에서의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듀크, 버려진 동물들이 인간을 해치우기 위해 지하에서 조직을 만든다는 설정 등은 단순히 교훈을 넘어 커다란 사회문제를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다. 


떠나지 않는 웃음, 재미로만 승부를 봐도 좋다



그저 귀엽고 귀여웠으며 귀여웠다. 여타 요즘 애니메이션과는 조금 다른 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계속 이런 류로 밀고 나가 확고한 특징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냥 즐거운!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의 한 장면 ⓒUPI코리아



2시간 가까이 정신 못 차리고 본 것 같다. 요즘 애니메이션 답지 않게 울음은 전혀 나오지 않았지만,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박장대소를 유발하지도 않았으니 시종 일관 편안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이개그나 블랙유머도 전혀 없었다.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만큼, 그저 귀엽고 귀여웠으며 귀여웠다. 그거면 되지 않나?


참 애매하다. 그거면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가, '내 수준이 있지' 하며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어 진다. 그렇지만, 보는 내내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기분 좋았던 적이 언제였나 생각하니 슬그머니 물러설 수밖에 없다. 근래 본 모든 콘텐츠 중에서 가장 걱정 없이 즐길 수 있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거다. 


물론 기존의 여타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해보면 아쉬운 부분이 없을 수 없다. 충분히 줄 수 있었을 사유나 교훈, 여운을 일부러 없앴나 싶을 만큼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방면을 이미 픽사가 공고히 다져 놓았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강한 개그나 유머도 아니니, 그건 드림웍스가 확고히 다져 놓았기 때문일까. 설립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봐줘야 하는 건가. 아직 그들만의 뚜렷한 색을 찾기 힘들었다. 


디즈니가 오랫 동안 다져 왔던 '꿈과 희망'이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에 깊이 박혀 있음을 부정하진 못할 거다. 나 또한 애니메이션이라면 자고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일루미네이션이 그 틀을 깨고 '재미'로만 승부를 보는 거라면 충분히 응원할 요량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 가능성을 엿본 것 같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건이 있었음에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걸 더욱 더 밀어붙였으니까. 차기작을 기다리며, 어떤 길을 걸어갈지 지켜보겠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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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말은 잘하는데 글은 잘 못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장소와 청중이 그들을 열띠게해서, 그 열기가 없을 때 정신 속에서 그들이 발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거기서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2. 자연을 가리고 위장하는 것. 더 이상 왕, 교황, 주교가 아니라-위엄 있는 군주 등. 파리가 아니라-왕국의 수도 파리를 파리라 불러야 할 곳이 있고, 왕국의 수도라 불러야 할 곳이 있다. 


3. 어떤 글 가운데 반복된 말이 있어 이것을 수정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수정하면 글을 해치게 될 정도로 그 반복이 적절하게 보일 때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바로 그렇게 하라는 표시이므로, 그리고 이것은 반복이 이 경우에 는 결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맹목적인 우리의 욕망의 산물이다. 일반적인 규칙 따위는 없으니까 말이다. 


4. 다음과 같은 인사는 나를 거북하게 만들었다. "폐를 끼쳤습니다, 혹시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요? 시간이 오래걸릴까 두렵군요." 결국 강요하거나 화나게 만든다. 


5. 균형. 이것은 한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속에 있다. 다르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고, 또 인간의 용모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기에 높이와 깊이에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넓이에 있어서만 균형이 요청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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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웅변은 사고가 그려내는 그림이다. 그래서 그린 다음에 다시 덧붙이는 사람들은 초상화 대신 보통의 그림을 그리고 만다. 


2. 한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어떤 정념이나 결과를 묘사할 때 사람들은 듣고 있는 이야기의 진실-실은 자기 안에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진실을 자신 속에서 발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느끼게 해준 사람을 자연 사랑하게 마련이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가 베푼 이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게 하고, 우리가 그와 공유하는 이해의 공감대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그에 대한 사랑으로 기울게 한다. 


3. 웅변. 즐거움과 현실성이 다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진실에서 취해진 것이어야 한다. 


4. 대화와 담론에 있어서 이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무엇이 불만이십니까?"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5. 계속되는 웅변은 지루하다. 영주나 왕들도 때로는 오락을 즐긴다. 그들은 항상 왕좌에 앉아 있지는 않는다. 그곳에서 권태를 느끼기도 한다. 위대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것에서 떠나 있을 필요가 있다. 지속되는 것은 그 무엇이든 불쾌감을 준다. 우리 몸을 덥히기 위해서는 추위도 기분 좋다. 

자연은 점진적으로 움직인다. 자연은 갔다가 돌아오고, 다시 더 멀리 갔다가 그 두 배만큼 돌아오며, 또다시 더 멀리 나아간다. 바다의 밀물도 이런 식으로 움직이고 태양도 이렇게 운행하는 것 같다. 


6. 각자가 지닌 지배적인 정열이 무엇인지를 알면 확실히 그의 환심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제각기 행복에 대한 생각 속에서 그 자신의 행복과는 어긋나는 변덕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참으로 당황하게 만드는 기이한 사실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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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망원경은 옛날의 철학자들에게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그 얼마나 많은 실체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는가! 그들은 수많은 별을 얘기하는 성서를 공공연히 비웃으면서, "우리가 알기에 별은 1,022개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지상에는 풀이 있고 우리는 이것들을 본다-달에서는 이것들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풀에는 잔털이 있고 잔털에는 별레들이 있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오오, 오만한 자들이여!-혼합물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부분은 그렇지 않다.-오오, 오만한 자들이여! 이것이 바로 미묘한 점이다.-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말은 해야 하지만 그들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2. 덕을 어느 쪽이든 극단으로까지 추구하려고 하면, 갖가지 악덕이 작은 무한 쪽으로 알 수 없는 과정을 따라 무의식중에 스며들고, 또한 큰 무한 쪽에도 수많은 악덕이 떼지어 나타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악덕 한가운데에서 헤매고 덕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은 완전한 것까지도 공격한다. 


3. 인간의 존엄은 죄없는 상태에서는 피조물을 이용하고 지배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피조물로부터 분리되고 또 그것들에 예속되는 데 있다. 


4. 의미. 같은 의미도 이것을 설명하는 말에 따라 달라진다. 의미는 말에 존엄성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말로부터 존엄성을 받는다. 그 예를 찾아야 한다...


5. 자연은 서로 모방한다. 좋은 땅에 던져진 한 알의 씨는 열매를 맺는다. 좋은 정신 속에 뿌려진 원리는 원리를 맺는다. 수는 공간을 모방한다. 실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들인데. 

만물은 같은 지배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도된다. 뿌리와 가지와 열매 그리고 원리와 귀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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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즐거움과 아름다움의 어떤 모형이 있는데, 그것은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한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본성과, 우리를 기쁘게 하는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관련성으로 성립된다. 

이 모형에 따라 만들어진 모든 것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집, 노래, 연설, 시, 산문, 여인, 새, 강, 나무, 방, 옷 등등. 이 모형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은 모든 것은 좋은 감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이 좋은 모형에 따라 만들어진 집과 노래는, 각기 그 자신의 양식에 의한 것이지만 이 유일한 원형을 닮은 점에서 그 사이에 완전한 연관성이 있는 것과 같이, 나쁜 원형에 따라 만들어진 사물들 사이에도 완전한 연관성이 있다. 나쁜 모형이 하나뿐이라는 것은 아니다, 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가령 빗나간 시는 그 어떤 그릇된 모형에 따라 만들어졌건 간에 이 모형대로 옷을 차려입은 여인과 빼닮았다. 


2. 시적 아름다움. 시적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같이 기하학적 아름다움 또는 의학적 아름다움을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하학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증명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의학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치료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가 목적으로 삼은 즐거움이 무엇으로 성립되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모방해야 할 그 자연스러운 모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모르기에 사람들은 묘한 표현들을 지어냈다. <황금 세기, 현대의 경이, 숙명적인> 등등. 그리고 이 특유한 말들을 시적 아름다움이라 부른다. 


3. 몽테뉴. 몽테뉴의 좋은 점은 단지 어렵게 터득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나쁜 점은-그의 품행은 제외하고-순식간에 고쳐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너무 수다를 떨고 자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고 그에게 경고해 주었더라면. 


4. 사람이 고통에 굴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쾌락에 굴하는 것이 수치다. 이것은 고통이 밖으로부터 우리에게 가해지기 때문도 아니고 또 우리 자신이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도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의로 고통을 추구하고 또 고통에 굴복하고도 이런 비굴함을 갖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성이 고통의 압력에 굴하는 것은 영광이 되고, 쾌락의 굴레에 굴하는 것은 수치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이러하다-고통이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유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그것을 택하고 그것에 지배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일에 있어 주인이고, 바로 그렇기에 인간은 고통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쾌락에 있어서는 인간이 그것에 굴복한다. 지배와 통제력만이 명예를 가져오고 굴종만이 수치를 가져온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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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인간의 헛됨을 완전히 알고 싶은 사람은 사랑의 원인과 결과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그 원인은 이른바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고 그 결과는 끔찍하다.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하찮은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온 땅과 왕들과 군대와 전세계를 뒤흔든다. 

클레오파트라의 코, 만약 좀더 낮았더라면 지상의 모든 표면은 달라졌을 것이다. 


2. 인간의 가장 저속함은 영예의 추구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그의 우월성의 표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지상의 그 어떤 것을 소유하고 어떤 건강과 기본적인 안락을 누린다 해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면 만족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의 이성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으므로 지상에서 그 어떤 이점을 가졌다 해도 인간의 이성 가운데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가장 훌륭한 자리이며 어떤 것도 그를 이 욕망에서 돌아서게 할 수 없다. 이 욕망은 인간의 마음의 가장 말살하기 힘든 특성이다. 

인간을 극도로 경멸하고 짐승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역시 칭찬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며 결국 그들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스스로 모순에 빠진다. 무엇보다도 더 강한 그들의 본성은 이성이 그들의 저속성을 납득시키는 것보다 더 강하게 인간의 위대성을 납득시킨다. 


3. 학문을 지나치게 깊이 연구한 사람들을 반박할 것. 데카르트. 


4. 영예. 짐승들은 서로 칭찬하지 않는다. 말은 자기 짝을 칭찬하지 않는다. 말이 달릴 때 그들 사이에 경쟁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마구간에서 가장 둔하고 흉한 모양의 말이라고 해서 다른 말에게 귀리를 양보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의 특성은 그 자체로써 충족된다. 


5.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어서 병사도 상것도 요리사도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찬양해 줄 사람들을 원한다. 심지어 철학자도 찬양자를 갖기 원한다. 이것을 반박해서 글쓰는 사람들도 훌륭히 썼다는 영예를 얻고 싶어한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렇게 쓰는 나도 아마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을 읽을 사람들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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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철학자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으로부터 신에게로 가라고 외치는 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자기를 아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2. 철학자들. 우리는 우리를 밖으로 몰아내는 사물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본능은 우리의 행복을 밖에서 찾아야 한다고 느끼게 한다. 우리의 정념은 이것을 자극할 만한 대상이 나타나지 않을 때에도 밖으로 우리를 몰아낸다. 외부의 사물들은 그 자체로써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가 그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를 불러낸다. 그러니 철학자들이 <당신 안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서 당신의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라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사람들은 이들을 믿지 않는다. 이들을 믿는 자는 가장 공허하고 가장 어리석다. 


3. 철학자들은 인간의 두 상태에 적합한 마음가짐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들은 순전한 위대의 감정을 고취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상태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본성에서가 아니라 참회에서 생겨나는 비속의 감정이고, 그것은 그 안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대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또 필요한 것은 사람의 공로에서가 아니라 은총에서 생겨나는 위대의 감정이고, 비속의 감정을 통과한 다음이어야 한다. 


4. 본능, 이성. 우리는 증명할 능력이 없다. 어떤 독단론도 이 무능력을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진리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 어떤 회의론도 이 관념을 물리칠 수 없다. 


5. [나는 살아오면서 오랫동안 하나의 정의가 있다고 믿어왔다. 이 점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신이 우리에게 계시하고자 원하는 데 따라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 점에 내 잘못이 있었다. 나는 우리의 정의가 본질적으로 정의이고 또 내가 정의를 판단할 충분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하였고 그래서 마침내는 나 자신을 그리고 타인들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모든 나라와 사람들이 쉽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진정한 정의에 대한 판단을 여러 번 수정한 다음 우리의 본성이 부단한 변화일 뿐임을 깨달았다. 그 후로 나는 변하지 않았다. 만약 변한다면 나는 내 의견을 확증하게 될 것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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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아이들은 그들의 친구가 존경받는 것을 보고 놀란다. 


2. 몸의 양식은 조금씩 조금씩. 양식은 풍족해도 양분은 없다. 


3.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것에 자연적 필연성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가령, 내일도 해가 뜬다 등등을. 그러나 자연은 종종 우리를 속이고 고유한 규칙들을 따르지 않는다. 


4. 당신은 남들이 잘 보아주었으면 하는가. 그런 말은 하지 마라.


5. 그는 10년 전에 사랑하던 사람을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여자도 예전같지 않고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젊었었고 그녀도 젊었었다. 그녀는 지금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가 그때 그대로의 모습이라면 아마도 그는 계속 사랑할 텐데 말이다. 


6. 강은 흘러가는 길이고, 이 길은 사람들을 가고 싶은 곳으로 싣고 간다. 


7. 어떤 일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모를 때 사람들의 마음을 고정시키는 어떤 공통된 오류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가령, 달을 계절의 변화, 병의 경과 등의 원인으로 삼는 경우와 같이. 왜냐하면 인간의 커다란 병폐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한 호기심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은 이 쓸데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히는 것만큼 그렇게 인간에게 나쁜 것은 아니다. 


8. 에픽테토스, 몽테뉴, 살로몽 드 튈티 등의 글쓰기 방식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으로, 가장 잘 이해되고 기억 속에 더 오래 남으며 가장 많이 인용된다. 이 방식은 삶 속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비롯된 생각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달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따위의 세상에 흔한 공통된 오류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면 사람들은 필시, 살로몽 드 튈티는 어떤 것이 진리인지 모를 때 하나의 공통된 오류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운운하였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다른 쪽의 생각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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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아이들은 그들의 친구가 존경받는 것을 보고 놀란다. 


2. 몸의 양식은 조금씩 조금씩, 양식은 풍족해도 양분은 없다. 


3.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것에 자연적 필연성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가령, 내일도 해가 뜬다 등등을. 그러나 자연은 종종 우리를 속이고 고유한 규칙들을 따르지 않는다. 


4. 당신은 남들이 잘 보아주었으면 하는가. 그런 말은 하지 마라. 


5. 그는 10년 전에 사랑하던 사람을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여자도 예전 같지 않고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젊었었고 그녀도 젊었었다. 그녀는 지금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가 그때 그대로의 모습이라면 아마도 그는 계속 사랑할 텐데 말이다. 


6. 강은 흘러가는 길이고, 이 길은 사람들을 가고 싶은 곳으로 싣고 간다. 


7. 어떤 일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모를 때 사람들의 마음을 고정시키는 어떤 공통된 오류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가령, 달을 계절의 변화, 병의 경과 등의 원인으로 삼는 경우와 같이. 왜냐하면 인간의 커다란 병폐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한 호기심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은 이 쓸데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히는 것 만큼 그렇게 인간에게 나쁜 것은 아니다. 


8. 에픽테토스, 몽테뉴, 살로몽 드 튈티 등의 글쓰는 방식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으로, 가장 잘 이해되고 기억 속에 더 오래 남으며 가장 많이 인용된다. 이 방식은 삶 속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비롯된 생각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달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따위의 세상에 흔한 공통된 오류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면 사람들은 필시, 살로몽 드 튈티는 어떤 것이 진리인지 모를 때 하나의 공통된 오류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운운하였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다른 쪽의 생각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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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이 편과 저 편에 대해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한 편에 대해서는 사랑에서 태어난 동정을, 다른 편에 대해서는 경멸에서 태어난 동정을 가져야 한다. 그들을 경멸하지 않으려면 정녕 그들이 경멸하는 종교 안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결코 멋이 아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할 말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을 경멸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양식이 없기 때문이다. 신이 그들을 감동시켜야 한다.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아카데미스트(회의론자들)이고 에코리에(모방자들)이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악한 인간 유형이다. 


2. 회의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회의 안에서 추구하는 것은 필수적인 의무다. 따라서 회의하면서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과 불의를 동시에 겸하고 있다. 만약 이런 처지에서도 즐겁고 오만한 자가 있다면 나는 이렇게 해괴한 인간을 무슨 말로 형용해야 할지 모른다. 


한 곳에서 기적들이 이루어지고 한 민족에게 신의 섭리가 나타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은 너무나도 변질된 나머지 마음속에서 이것을 기쁨으로 삼기까지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기쁨으로 말할 일인가. 이것은 마땅히 비통하게 말 할 일이다. 


3. 여기 이렇게 머리를 치켜들고 만족과 자랑으로 삼을 주제가 있다. 그러나 즐거워하자. 두려움도 불안도 없이 살자. 그리고 어차피 불확실하다면 그냥 죽음을 기다리자. 우리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그때 가보면 알 일이다. 나는 그 결말을 볼 수가 없다. 


소위 멋진 태도는 친절한 마음을 갖지 않게 되고, 착한 연민은 타인에 대해 친절을 베풀게 된다. 


죽어가는 사람이 육체의 쇠약과 죽음의 고통 속에서 전능하고 영원한 신과 맞선다면 이것이 과연 용기인가. 


내가 그런 상태에 있을 때 누군가가 나의 어리석음을 동정하고 내 뜻을 어겨서라도 거기서 나를 건져주는 호의를 베푼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


이것을 괴로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는다면 이것은 정신의 극도의 결함과 의지의 극도의 사악함을 나타낸다. 


4. 어떤 해결책도 없이 비참만을 기다린다면 무슨 기쁨의 이유가 있겠는가! 어떤 위안자도 바랄 수 없는 절망 속에 무슨 위안이 있겠는가!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편협한 신앙심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진 방식에 의해서이다. 신앙심과 초연함의 열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인간적인 원리 그리고 이기심과 자애심의 움직임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또 인생의 모든 불행 끝에 시시각각 우리를 위협하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머잖아 가공할 필연 속에 우리를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을 만큼 절실한 일이기 때문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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