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철학자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으로부터 신에게로 가라고 외치는 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자기를 아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2. 철학자들. 우리는 우리를 밖으로 몰아내는 사물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본능은 우리의 행복을 밖에서 찾아야 한다고 느끼게 한다. 우리의 정념은 이것을 자극할 만한 대상이 나타나지 않을 때에도 밖으로 우리를 몰아낸다. 외부의 사물들은 그 자체로써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가 그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를 불러낸다. 그러니 철학자들이 <당신 안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서 당신의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라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사람들은 이들을 믿지 않는다. 이들을 믿는 자는 가장 공허하고 가장 어리석다.
3. 철학자들은 인간의 두 상태에 적합한 마음가짐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들은 순전한 위대의 감정을 고취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상태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본성에서가 아니라 참회에서 생겨나는 비속의 감정이고, 그것은 그 안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대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또 필요한 것은 사람의 공로에서가 아니라 은총에서 생겨나는 위대의 감정이고, 비속의 감정을 통과한 다음이어야 한다.
4. 본능, 이성. 우리는 증명할 능력이 없다. 어떤 독단론도 이 무능력을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진리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 어떤 회의론도 이 관념을 물리칠 수 없다.
5. [나는 살아오면서 오랫동안 하나의 정의가 있다고 믿어왔다. 이 점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신이 우리에게 계시하고자 원하는 데 따라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 점에 내 잘못이 있었다. 나는 우리의 정의가 본질적으로 정의이고 또 내가 정의를 판단할 충분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하였고 그래서 마침내는 나 자신을 그리고 타인들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모든 나라와 사람들이 쉽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진정한 정의에 대한 판단을 여러 번 수정한 다음 우리의 본성이 부단한 변화일 뿐임을 깨달았다. 그 후로 나는 변하지 않았다. 만약 변한다면 나는 내 의견을 확증하게 될 것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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