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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팡세 다시읽기

파스칼의 <팡세>를 통한 자유로운 사유(思惟)의 장-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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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웅변은 사고가 그려내는 그림이다. 그래서 그린 다음에 다시 덧붙이는 사람들은 초상화 대신 보통의 그림을 그리고 만다. 


2. 한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어떤 정념이나 결과를 묘사할 때 사람들은 듣고 있는 이야기의 진실-실은 자기 안에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진실을 자신 속에서 발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느끼게 해준 사람을 자연 사랑하게 마련이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가 베푼 이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게 하고, 우리가 그와 공유하는 이해의 공감대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그에 대한 사랑으로 기울게 한다. 


3. 웅변. 즐거움과 현실성이 다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진실에서 취해진 것이어야 한다. 


4. 대화와 담론에 있어서 이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무엇이 불만이십니까?"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5. 계속되는 웅변은 지루하다. 영주나 왕들도 때로는 오락을 즐긴다. 그들은 항상 왕좌에 앉아 있지는 않는다. 그곳에서 권태를 느끼기도 한다. 위대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것에서 떠나 있을 필요가 있다. 지속되는 것은 그 무엇이든 불쾌감을 준다. 우리 몸을 덥히기 위해서는 추위도 기분 좋다. 

자연은 점진적으로 움직인다. 자연은 갔다가 돌아오고, 다시 더 멀리 갔다가 그 두 배만큼 돌아오며, 또다시 더 멀리 나아간다. 바다의 밀물도 이런 식으로 움직이고 태양도 이렇게 운행하는 것 같다. 


6. 각자가 지닌 지배적인 정열이 무엇인지를 알면 확실히 그의 환심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제각기 행복에 대한 생각 속에서 그 자신의 행복과는 어긋나는 변덕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참으로 당황하게 만드는 기이한 사실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파스칼의 <팡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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