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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도 좋지만 작품 자체를 보자 <처음 가는 루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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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처음 가는 루브르>


<처음 가는 루브르> 표지 ⓒ아트북스



루브르 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이며 한 해 8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박물관으로, 3만 5천 여점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간다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너무 넓거니와 사람도 많고 작품도 많아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다. <모나리자>나 <밀로의 비너스> 정도 보고 오면 다행이겠다. 


알고 보면 전혀 다행이라 할 만 하지 않다. 아무리 위의 두 작품의 위상이 다른 어떤 작품을 뛰어 넘는다지만,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에 걸맞는 수는 아니지 않나. 두자리수는 넘고 봐야 한다. 그래서 가게 되면 뭘 보면 좋을지 한번 찾아 봤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통해 루브르 박물관의 35,383점을 손쉽게 감상할 수 있다. 주간조회순으로 나열도 가능하니 대략은 알 수 있겠다. 구글에서도 대표작을 간략히 소개해준다. 


뭘 봐야 할지 알 수 없다. 더 헷갈릴 뿐이다. 이번엔 책을 찾아 봤다. '루브르'가 들어간 책만 760권이다. 힘이 빠진다. '루브르에서 꼭 봐야 할 작품' 식의 기획으로 출간된 책들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최소 100여 작품 이상을 추려놓았다. 유럽의 프랑스를 오직 루브르만 보러 간다고 하면 100여 점 이상 감상하는 게 가능하겠다. 현실은 열 작품 정도이다. 그 정도면 작품에 관련된 이야기까지 소상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 한 점으로 보는 개인과 나라의 역사와 운명


<처음 가는 루브르>(아트북스)가 구미를 채워준다. 루브르에 전시된 17 작품을 내세웠다. 이것만 봐도 후회할 일은 없다고 할 만한 작품들이란다. 물론 지명도가 높은 작품, 저명한 화가의 작품, 역사나 문화를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이 주를 이룬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좋다. 대부분의 작품을 모르니까, 누군가 합당한 이유로 취사 선택해주면 그에 따르면 그만인 거다. 


이 17 작품에는 <모나리자>도 있는데, 있는지 없는지 모를 불가사의한 미소와 스푸마토 기법,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 궁극의 미... 아마 대충이라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해 '모나리자'밖에 보이지 않는 이 작품을 제외하고 다양한 이야기들로 나를 사로잡은 작품들을 만나 보자. 작가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가 특히 재밌다. 주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작품 해석은 외려 사족이다. 미술 교과서를 찾아보면 되겠다. 


<모나리자>를 제외한다면 단연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다. 세로 6.2미터, 가로 9.8미터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이 작품은, 다비드의 솜씨다. 크기를 압도하는 퍼포먼스가 그림에 담겨 있다. 교황을 불러들였고 제관을 직접 머리에 올렸을 뿐더러 왕비에게도 직접 관을 전달한 '황제'의 대관식이다. 이 파격적인 대관식을 나폴레옹은 역사적 대사건이라도 되는 듯 보이길 원했고 다비드는 훌륭하게 그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우리는 나폴레옹의 운명을 알고 있다. 나폴레옹은 황제의 자리에 불과 10년 정도밖에 있지 못했다. 그 후 6년간 유배 생활을 한다. 이 작품에 함께 한 이들의 면면도 화려한데, 왕비 조세핀은 나폴레옹과 이혼한 후에도 연금 덕에 화려한 생활을 계속한다. 다비드의 운명도 나폴레옹과 함께 끝을 맺는다. 무엇보다 나폴레옹의 최측근 탈레랑, 그는 나폴레옹을 버린 뒤 프랑스 정치의 중추를 맡았다. 그림 한 점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개인과 나라의 역사와 운명,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루벤스와 렘브란트, 두 거장의 상반된 인생


루브르에는 바로크 시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그림도 많다. 루벤스와 렘브란트다. 서양 미술사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 두 화가의 삶은 그러나 너무 달랐다. 신의 편애가 이토록 심할 수 있을까? 렘브란트보다 훨씬 불행한 삶을 산 천재들을 많이 봐왔지만, 루벤스처럼 완벽한 삶을 살고 사후에도 완벽한 평가를 받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렘브란트의 인생은 그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빛과 어둠의 대비가 선명하다. 중산층으로 태어나 천재적인 그림 솜씨로 최고의 위치에 오른다. 하지만 아내 사스키아가 죽고 그림도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고 경기 악화로 자산 운용에 실패하지만 여전히 낭비벽이 심했으며 여자 문제까지 겹친다. 결국 빛쟁이가 되어 모든 걸 팔고 빈민가의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데, 그곳에서 '영혼의 그림'들을 그린다. 그렇게 혼을 담아 그림을 그리다가 고독한 생을 마감한다. 


루벤스는 어떨까? 그는 행운과 건강, 재능과 외모까지 모든 것을 갖췄다고 한다. 완벽한 생이다. 또한 그가 죽은 후 지금까지 수백 년간 인기가 사그라든 적이 없다. '왕의 화가' '화가의 왕'이라는 칭호가 괜히 붙는 게 아니다. 그는 천재적인 재능에 원만한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꿈은 현실로 다가 왔다. 기업가로서도 대성공을 거두어 대형 공방을 운영해 수천 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조용히 살고 싶어 했지만, 정녕 죽을 때까지 번영이 끊이지 않았다. 


서양회화와 크리스트교의 관계는 참으로 깊다. 어느 미술관을 가나 성서화를 만날 수 있다. 루브르에도 역시 무수히 많은 성서화가 있는 바, 저자는 책을 통해 여러 작품을 소개한다. 17작품 중에 자그마치 6작품으로, 렘브란트의 <밧세바>, 티치아노의 <그리스도의 매장>, 작가 미상 <파리 고등법원의 그리스도 책형>, 앙게랑 카드통의 <빌뇌브레자비뇽의 피에타>, 카라바조의 <성모의 죽음>, 라파엘로의 <아름다운 정원사 성모마리아>. 넓은 의미에서 신과 관련된 작품으로 따지면 10작품에 이른다. 루브르 3만 5천 여 작품에서 고르고 고른 것 중 절반 이상이다. 


'루브르'가 아닌 작품 자체를 보자


평생 루브르에 가보지 못하거나 안 갈 수도 있다. 분명 이 책은 제목처럼 루브르를 처음 가보는 관람객을 위해 쓰였으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랴 말할 수도 있겠다. 그건 기우다. '루브르'를 붙인 건 그곳에 그만큼 훌륭한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종의 채널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가는 대영 (박물관)' '처음 가는 바티칸 (박물관)' '처음 가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도 무방하다. 다만, '프랑스'나 '파리'가 아닌 '루브르'가 가지는 상징성이 크기도 하겠다. 훌륭한 작품 소개를 우선한 것이리라. 


미술 작품, 그중에서도 회화 작품 하나에는 수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훌륭한 작품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하겠다. 훌륭한 작품이라 칭하려면 수많은 것들이 담겨져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함도 맞겠다. 단순히 유명한 작품이 아니다. 여기 17작품들은 모두 다 잘 알려져 있는 건 아니다. 한 마디로 인기가 많은 작품만 소개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다. 영화로 말하자면, 눈과 뇌를 화려하게 채색하고는 잊히고 마는 게 아니라 장면 장면이 기억에 남고 여운 또한 오래 남는 작품이라고 할까. 


세월이 흐르면 시대가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흐름이 바뀐다.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가장 민감할 거다. 르네상스를 완성한 라파엘로, 그는 400년 가까이 모범이 되었다가 인상파에 의해 부정된다. 이제는 거의 밀려났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그도 언젠가는 회귀할 것이다. 생각과 흐름이 바뀌었을 뿐, 보는 눈이 다르진 않을 테니까. 그들이 부정하고자 했던 건 라파엘로가 아니고, 라파엘로를 빌미로 하는 기득권층이었을 거다. 


우리도 시각을 달리 가져야 한다. 달을 봐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 되는 거다. 작품을 보는 눈을 기르자. '루브르'의 틀에 갇히지 말고, 작품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 보자. 이 책이 비록 루브르 관람의 시작을 모토로 삼았지만, 명화를 보는 법의 시작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어느 정도는 달을 보게끔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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