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도서

파괴된 초대형 생태계의 복원 과정의 기록 <생명의 기억>

반응형



[서평] <생명의 기억>


<생명의 기억> 표지 ⓒ반니



아프리카 남동쪽에 위치한 제법 큰 나라 '모잠비크'. 그곳에 한때 수십만 마리의 동물들이 서식하며 세계 최고의 생태계를 구축했던 고롱고사 국립공원이 있다. 많은 이들이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자연'이라는 추상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아마도 그곳이었을 테다. 


고롱고사 국립공원은 1976년부터 1992년까지 장장 16년에 걸친 모잠비크 내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다. 내전에 참여하거나 내전으로 피해를 본 사람 할 것 없이 모조리 그곳으로 가서 동물들을 잡아 먹었다. 잡아 먹으려고 포동포동하게 잘 키운 식용 소, 돼지, 닭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인간이 자연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짓이었다. 


인간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공원을 인간이 다시 되살리려 한다. 모잠비크 정부의 지원 아래 환경론자 그레고리 C. 카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 의해 2004년에 그 신호탄을 쏘았고 지금까지 10년 이상 계속 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 중 한 명이자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탄 대학자 에드워드 윌슨도 그 작업에 동참했고, 그 일련의 과정 그리고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생명의 기억>(반니)이 그것이다. 


신의 천지창조와 맞먹는 차원의 일을 하다 


파괴된 공원이 다시 원래로 돌아가는 과정은 그 어떤 작업과도 차원이 다른 일이다. 감히 비교를 하자면, 신이 세상을 창조하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작정 온갖 동식물을 가져다 놓으면 되는 게 아니다. 조화로운 생태계를 이룰 수 있게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는 임무가 남아 있다. 그건 단순히 물리적으로 계산해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한다. 자연을 파괴하는 건 한순간이지만 복원하는 건 억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고롱고사는 대형 동물들이 먹이로 전락해 한순간에 사라짐에 따라 폐허가 되었었기에, 복원 사업은 대형 동물의 회복을 최우선적으로 하며 관광객을 위한 시설의 복원과 확충에 힘을 기울였다. 대형 동물 학살은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데, 다행히 작은 동물들은 거의 온전히 살아 남았다. 덕분에 차원이 다른 생태계 복원 사업이 10년이 되기도 전에 회복세에 들어설 수 있었다. 


나라를 정비하고 가장 심혈을 기울여 공원 복원에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 입장에서는 공원이 가장 큰 수입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찾는 가장 큰 이유가 다름 아닌 '자연' 아니겠는가. 그로 인한 관광 사업이 가장 큰 수입원일 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걸 내팽개치고 복원 사업에 뛰어든 이들은 왜일까. 저자는 말한다. 자연을 살리는 게 곧 인간을 살리는 길이라고. 파괴된 자연을 복구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과 노력과 시간이 들기에 가만히 놔두면 당장은 괜찮겠지만, 훗날 비교도 되지 않을 피해를 보게 될 거라는 뜻이겠다. 그는 지구상의 두 평행세계, 인류와 자연을 유지시킴으로써 인간인 우리와 우리를 제외한 다른 생명들의 생존과 지속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보다 더 직접적이고 반박 못할 이유가 어디 있나. 


세계의 진정한 주인 '자연', 자연의 진정한 주인 '작은 동물들'


저자는 한편 고롱고사의 복원과 회복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오래된 주장이자 이론을 펼쳐나간다. 그곳에 사는 동물들에게서 진화생물학의 기본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악어와 하마의 공존은 크기가 중요하다는 진화생물학의 기본 원리를 보여준다. 포식자를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크기로 압도하는 것인데, 이 둘은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큰 몸집을 자랑하기에 그 누구도 어찌하지 못한다. 그렇게 진화해왔고 또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어찌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둘은 또한 생태학의 원리인 안정적 물질 순환도 설명할 수 있다. 고롱고사의 순환은 하마에서 식물, 어류, 악어, 새로 이어지는데, 마지막에 다시 하마로 돌아오는 단계이다. 이 순환은 대형 동물 하마가 사라짐으로써 파괴될 줄 알았지만, 다섯 단계가 네 단계로 줄어들었을 뿐 계속되었다. 자연은 힘이 세다는 걸 보여준 단적인 예다. 눈에 보이는 큰 것들의 생태계는 파괴되었을지 모르지만, 눈에 보이지 않지만 크나큰 세계는 꿋꿋하게 이어나갔다. 


다름 아닌 그 세계가 이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다. 대형 동물들이 참살 당해 폐허가 된 것처럼 보이는 고롱고사를 진짜로 파괴되지 않게끔 지켜왔던 이들의 세계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그 세계를 너무 모르고 관심이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건 사실이다. 세계의 진정한 주인인 '자연', 자연의 진정한 주인인 '작은 동물들'. 우린 고롱고사가 아닌 고롱고사를 고롱고사이게 한 이들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자연의 소중함을 안다, 그러나...


작은 이들의 세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눈에 보이지 않거니와 어찌 그리 작은 이들이 그런 세계를 만들어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일 것이다. 그러며 혐오감과 두려움을 자극하기 일쑤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유가 일맥상통한다.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개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어지간해서는 힘들 거다. 


그래서 저자 에드워드 윌슨처럼 어지간한 사람들이 추앙을 받는다. 우리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어렴풋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같은 느낌만 받는 그것들에게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롱고사 국립공원이라는 세계 최고의 생태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작은 이들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는 사람이다. 


누구도 자연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너무도 광활하고 너무도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세계가 우리의 노력으로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쉽게 생각할 뿐이다. 어리석고 어리석다. 


그런 와중에 맞이한 파괴된 초대형 생태계의 복원 과정의 기록은 참신하게 다가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인간의 힘으로 그 세계를 쉽게 파괴할 수 있구나, 우리의 노력으로 그 세계를 바꿀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인간이 어리석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그리도 힘들게 복원하려는 세계를 애초에 왜 파괴했는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