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소설 읽기] <깃발>



홍희담의 <깃발> ⓒ아시아


5월이 되면 설렌다. 근로자의날부터 시작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석가탄신일까지 유독 기념일이 많기도 하거니와, 1년 중 가장 결혼을 많이 한다는 달인 만큼 가장 완벽한 환경을 뽐내는 달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포근해지게 하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푸른 5월을 피로 물들인 사건이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때는 1980년 5월, 장소는 광주다. 1979년 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당하며 18년 간의 긴 군부독재가 끝나고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물론 12.12 쿠데타로 신군부가 정권을 잡는 모양새였지만, 전국에서 휘몰아치는 민주화 시위를 저지할 순 없어 보였다. 민주화는 대세였다. 


서울의 봄은 짧았다. 아니 애초에 서울의 봄은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전두환, 노태우를 위시한 신군부 세력은 12.12 쿠데타로 이미 계엄령을 선포하며 정국을 얼어붙게 하였다. 이에 1980년 5월 13일 전국 대학생 10만 여명이 서울역에 모여 계엄령 철폐를 주장했다. 5월 15일 절정에 이른 시위는 돌연 해산되고 만다. 신군부는 5월 17일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일시에 민주화 세력에 대한 탄압을 실시한다.


비상계엄군은 학생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대학교를 휴교 시키는 등의 조치도 취해졌는데, 광주에 위치한 전남대도 휴교령이 내려졌다. 전남대 학생들은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 들어가려다 계엄군에게 저지 당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다친다. 이에 학생들은 '계엄 철폐' '휴교령 철회' 등의 구호를 시작으로 광주 시내로 진출한다. 역시 계엄군에 의해 저지를 당하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부상을 당하고 연행을 당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피의 일요일' 


홍희담의 소설 <깃발>은 광주의 1980년 5월 18일 그때를 '피의 일요일'이라 명명한다. 공수특전단들은 머리고 가슴이고 닥치는 대로 곤봉을 휘둘렀다. 군중들은 순식간에 피를 토하고 쓰려졌다. 일어서려는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이 대검을 쑤셨다. 길바닥에는 비명과 흐느낌이 요란했다. 


공장에서 일하며 야학을 다니는 순분은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하고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며칠을 보낸다. 그 사이에도 광주의 중심대로에서는 계엄군과 '시민'들 간의 공방전은 계속되었고, 서로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시위가 시작된 지 4일 째는 5월 21일, 계엄군은 무차별 집단 발포를 실시한다. 생각지 못한 발포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다. 시위의 불길이 사그라져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강력한 무기 앞에 맨몸의 시위는 너무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시민군은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외려 그 무차별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 근처 예비군 무기고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해 무장을 하고 대치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을 비롯한 광주 시내를 장악한다. 


계엄군은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시민군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진다. "무기를 반납하는 건 배신과 같은 거라는" 강경파, "무기는 또 피를 흘리게 할 것이다"라는 온건파. 대립의 결과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게 되고 계엄군에 맞설 준비를 한다. 그들은 이 끝이 어떻게 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절대 이기지 못할 싸움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뜻을 이어나가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던 것일까?


하층민이야말로 역사의 주체이다


소설은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시선으로 그 열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사건의 일말만 그대로 보여주었다면 별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노동자와 지식인을 대표하는 이들을 통해 그 안에서 벌어진 또 다른 대립을 보여주며, 5.18의 또 다른 면모를 환기 시킨다. 


이들의 대립은 앞서 말한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인 전남대학교 출신 윤강일은 "어차피 지는 싸움이다. 훗날을 도모해야 해."라며 광주를 떠난다. 반면 손분, 형자 등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은 그 '어차피 지는 싸움'을 위해 끝까지 남아 싸운다. 그들은 다만 서로가 서로를 위할 뿐이었다. 


"도청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을 잘 기억해둬. 어떤 사람이 항쟁에 가담했고 투쟁했고 죽었는가를 꼭 기억해야 돼. 그러면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 어떤 사람들이 역사를 쓰는지." (본문 중에서)


작가는 하층민들이야말로 역사를 쓰는 주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운동이 끝난 후에도 도망갔던 윤강일을 도와주는 순분 일행의 모습을 통해, 노동자들이야말로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야말로 사회를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이 지점에서 단순 '고발 소설'을 넘어 '노동 소설'로 까지 그 영향력을 넓혔다. 


사실 이 작품은 상당히 거친 면모가 있다. 문학적으로만 본다면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하기가 애매하다. 르포르타주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비롯한 5.18 관련 문학을 문학적으로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한데, 시간이 지나 그 사건이 퇴색하면 자연스레 관련 문학도 퇴색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 사건이, 그 사람들이, 그 정신이,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 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시아 출판사에서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함께 앞으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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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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