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소설 읽기] <어둠의 혼>



<어둠의 혼> 표지 ⓒ아시아



남북 분단은 한국 근현대사를 규정하는 가장 큰 줄기이다. 해방의 기쁨을 제대로 맞이하기도 전에 찾아 왔기 때문에, 오히려 해방보다 더 크고 깊게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것이다. 그 이면에는 단연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다. 남한과 북한, 미국과 소련(중국), 우익과 좌익,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에서 비롯된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이 한반도에서 폭발했다. 


대폭발의 결과는 분단이었고 미국과 소련 정권은 분단된 남북을 손아귀에 쥐고 완전 고착화를 실행에 옮기려 했으며 남한과 북한 정권은 그 대치 상태를 이용해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러고는 문제의 핵심을 '분단'에서 다른 것으로 옮기려 했다. 이런 상황을 지식인, 소설가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느니, 곧 '분단 소설'의 탄생이다. 


분단 소설이라 하면 굉장히 고루하고 진부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 초점이 분단을 그리는 '소설'에 있든 소설에서의 '분단'에 있든 지금에 와서는 그러지 않다고 말 할 수 없겠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선 현실이 여전히 분단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감히 말하지만, 남북 분단이 한국 근현대사를 규정하는 가장 큰 줄기인 만큼, 분단 소설 또한 한국 근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큰 줄기라고 생각한다. 


10대 안팎에 겪은 이데올로기의 아픔


분단 소설은 분단과 전쟁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세대와 직접적이지만 간접적에 가깝게 체험한 세대, 그리고 간접적으로 체험한 세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김원일 소설가의 <어둠의 혼>은 두 번째에 해당한다. 즉, 소설가 본인이 분단을 직접 체험하긴 했지만 체험할 당시의 나이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할 10대 안팎의 나이 말이다. 


소설은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일 년 전인 1949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갑해의 시점으로 보자면, 좌익 운동에 가담했던 아버지가 체포되어 총살 당한 모습을 직접 목격하게 되기까지의 하루를 그렸다. 갑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게 슬플 뿐 당장 해결해야 할 지독한 배고픔에 괴롭다. 그는 아버지가 왜 좌익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알지 못하고 궁금하지도 않다. 현실이 괴로울 뿐이다. 


분단 소설이라 하면 으레 분단을 직시하고 안타까워하며 그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할 것이다. 노동 소설이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것처럼, 농촌 소설이 무너져 가는 농촌과 화려해지기만 하는 도시를 대비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이 소설 <어둠의 혼>은 아이의 시선을, 아이의 상황을 따라 '모르쇠'로 일관한다. 다만 현 시대에 대한 부당함을 드러낸다. 이는 이데올로기니 전쟁이니 하는 것들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까지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는 시대를 고발하는 것이다. 


이 소설이 가지는 기막힌 문학적 균형


그렇다면 아버지가 갑해에게 했던 말은 무엇인가? 빨갱이고 좌익이고 알지 못하지만 그 일을 한 아버지가 죽어야만 한다면,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모두에게 행복과 평등을 가져다주는 길'은 무엇이냐 말이다.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인 세상이다. 작가가 본 해방 직후의 세상 또한 갑해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두려움. 


소설의 마지막, 갑해는 두려움과 함께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살아가는 데 용기를 가져야 하고 어떤 어려움과 슬픔도 이겨내야 한다는 내용의 깨달음. 이 급작스러운 희망에의 역설은 무엇인가. 이 희망이야말로 이 소설이 가지는 기막힌 문학적 균형이며, 이 소설만이 던질 수 있는 메시지이다. 


이는 '아이의 시선'이라는 한 뿌리에서 시작한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무의 상태이기에 쉽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또 자기 무력감이나 자신을 망치는 신념에 휘둘리지 않고 앞으로 나가며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반전에 가까운 배치이다. 절망에서 갑자기 쏟아 오른 희망에의 메시지. 하지만 무의 상태이기에 절망에서 희망을 쉽게 낚아 올릴 수 있다. 


아이의 시선은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의도이기도 했던 것 같다. 소설이 쓰인 1970년대는 서슬 퍼런 독재 시대였다. 직접적으로 분단을 이데올로기를 전쟁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러하기에 어른도 아닌 아이의 시선을 통해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게 아닐까. 그 탁월한 선택은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 당시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아시아 출판사에서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함께 앞으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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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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