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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말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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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에밀리: 범죄의 유혹>

 

넷플릭스 영화 <에밀리: 범죄의 유혹> 포스터.

 

에밀리 보네토는 파트타임으로 음식 배달 일을 하고 있다. 풀타임 일을 구하려고 하지만 가중폭행 및 음주운전 전과 때문에 여의치 않다. 그럼에도 7만 달러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니 어떻게든 제대로 된 일을 해야 한다. 미대 동기 친구가 자기 회사를 소개해 준다고 했지만 잘 될 것 같지 않다. 그런 와중에 파트너로 같이 일하는 자비에르 산토스가 시간 바꿔 줘서 고맙다고 허위 구매 일 하나를 소개해 준다.

별생각 없이 가 본 곳, 다짜고짜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카드 정보를 훔친 신용 카드와 함께 주더니 마트에 가서 2000달러짜리 TV를 하나 구입해 오라고 한다. 그 자리에서 200달러를 현금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불법적인 일, 일을 시작하기 전에 탐탁지 않으면 떠나라고 했지만 에밀리는 떠나지 않았고 TV를 사 와 돈을 받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일을 하는 에밀리, 급기야 두 번째 일을 맡는다.

두 번째 일은 조금 위험할 수 있다. 건물 비밀문으로 들어가 한도 없는 블랙카드로 중고 자동차를 구입해 8분 안에 나와야 한다. 은행에서 상점에 확인하는 데 8분이 걸린다나. 에밀리는 주인한테 걸려 한 대 맞고 겨우 도망친다. 이번엔 2000달러를 현금으로 받는다. 다친 에밀리를 신용 카드 사기 총책 유세프가 봐준다. 에밀리는 하던 일을 계속하는 와중에 유세프와 가까워지며 그쪽 일에 관심을 갖는다. 이후 본격적으로 불법 일을 시작하고 승승장구하지만 현금을 노린 도둑에게 털리고 마는대… 에밀리의 앞날은?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들

 

미국의 주요 미대 학비는 천문학적이다. 일 년에 평균적으로 5000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 웬만한 집안이라면 학자금 대출을 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영화 <에밀리: 범죄의 유혹>에서 주인공 에밀리는 미대 출신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막대한 학자금 대출로 인생이 힘들다. 하루빨리 제대로 된 일을 구해 돈을 갚아야 하지만 과거 가중폭행 전과 때문에 쉽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술 때문인 것 같다.

나도 대학 졸업 후 10년이 훌쩍 흘러 학자금 대출을 다 깊을 수 있었다. 비록 부모님이 전부 마련해 주셨지만, 그만큼 대학교 학비가 무시무시하다. 뭘 배웠나 싶지만 학위가 평생 남아 있으니 충분히 제 값을 했다. 극 중에서 에밀리가 다닌 미대의 경우 음대와 더불어 예체능의 꽃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최고의 재능에 피나는 노력이 덧붙인 이들이 수없이 많은 만큼 그중에서 두각을 나타내긴 힘들었을 것이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도태되기 쉬운 데가 예체능계다. 돈은 돈대로 내지만.

에밀리는 막대한 빚과 함께 압도적이진 않은 그림 실력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일상의 기술로 사회에 나왔을 것이다. 전공을 살리는 일은 그녀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들이 순차적으로 가져갔을 테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한 일이었을 테다. 과거의 전과가 발목을 잡고 학자금 대출 원금은커녕 이자를 갚기도 힘들다. 악순환이 계속된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내몰리는 건 순식간이다.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에밀리: 범죄의 유혹>은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하고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아닌 상태로 OTT에서 볼 수 있기에 수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외관이지만, 정작 들여다보면 주인공 에밀리의 행각이 심장 쫄깃하게 하는 한편 안타깝기 이를 데 없기도 하다. 에밀리로 분한 오브리 플라자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바, 극단 무대와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섭렵했기에 믿고 즐길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에밀리가 처한 상황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선진국을 제외한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젊은이든 공감할 만하다. 나라에서 교육의 기회를 주고 또 도와준답시고 학자금 대출을 쉽게 받게 했지만, 어차피 갚아야 할 건 나라가 아니라 대출을 받은 당사자가 아닌가. 나라는 책임져 주지 않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도 없지만 젊은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하여 에밀리가 범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조금씩 그리고 대범하게 빠져드는 순간의 선택들이 공감하며 받아들이지 못할 망정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그녀는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봤지만 그때마다 막혔고, 처음엔 호기심으로 다음엔 두 눈 질끈 감고 돈맛을 알고 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불법을 저질렀다. 불법이 어느새 범죄가 되었고 말이다.

 

균형 잡힌 영화

 

"나였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면초가에 가까운 상황이자 뾰족한 수가 없으면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상황. 자신의 처한 현실을 어떻게 대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라면 인내의 시간을 계속 늘려갔을 것 같다.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살아보니 인생이 생각보다 엄청 길다. 와신상담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최악의 경우 불법적인 일은 하더라도 본격적인 범죄의 길을 걷는 건 어렵다.

에밀리가 벌벌 떨면서 불법적인 일을 시작하는 영화의 전반부가 현실적이라면, 에밀리가 돈맛을 본 후 본격적으로 범죄의 길로 들어서 돈을 긁어모으며 위기에 봉착하기도 하는 영화의 후반부는 영화적이다. 하여 앞부분이 스릴러적인 요소가 높다면 뒷부분은 오락적인 요소가 높다. 영화가 상당히 균형 잡혀 있다는 반증인 바, 감상하는 데 모난 부분이 딱히 없었다.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지루하지도 않다.

돈이 뭔지, 돈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으며 하고 싶은 걸 했지만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인생을 갉아먹고 있다. 돈이 인생을 단단히 꼬이게 했고 돈이 인생을 집어삼켰으며 돈이 인생을 통째로 바꿔 버렸다. 돈을 벌어먹고 살려고 열심히 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이렇게 살고 있다. 다시 한 번 돈이 뭔지,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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