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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100m 10초에 네 인생이 달렸어" <스프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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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스프린터>

 

영화 <스프린터> 포스터. ⓒ스튜디오 에이드

 

100m 달리기 한국신기록을 두 번이나 갈아치운 바 있는 현수는 또래들이 거의 은퇴해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데 반해, 무소속으로 혼자 국가대표 발탁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 당당히 출전하지만, 10살 이상 차이 나는 젊은 피들에게 이기는 게 쉽지 않다. 예전엔 다 씹어먹었는데, 이제 진짜 그만 해야 하는 걸까?

타고난 재능으로 고3까지 고교 랭킹 1위를 지키고 있지만, 특별한 노력도 하지 않아 만년 유망주 타이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준서. 준서가 다니는 숭실고의 육상부 코치 지완은 육상부 폐지 조건으로 정규직 전환을 제안받고 고민에 빠진다. 그때 준서가 지완에게 다가오는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볼 테니 코치해 달라고 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1위의 실력자 정호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압박에 시달린다. 급기야 해서는 안 되는, 불법 약물 투입으로 몸을 펌핑시킨다. 당연히 후배들을 압도하는 건 물론 국가대표 선발전도 문제없을 것 같다. 그런데 코치 형욱에게 걸리고 만다. 형욱은 당연히 그를 심하게 질책하고 안중에서 치워 버리려 하는데, 정호가 제안해 온다. 자기가 국대가 되면 그를 전담 코치로 승격시키겠다고.

 

100m 달리기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이들

 

영화 <스프린터>는 2021년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화제를 뿌린 바 있다. 당시 화제작들이 대부분 이듬해에 개봉했던 것과 다르게 이 작품은 <컨버세이션> <흐르다> 등과 함께 2년 여가 흘러 개봉할 수 있었다. 물론 독립영화가 제작 후 개봉하기까지 어려움(주로 경제적인)이 많겠지만, <스프린터>의 경우 좀 다른 어려움(주연 배우 리스크)이 있었다.

영화는 100m 달리기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3명의 스프린터 이야기를 따로 또 같이 전한다. 과거 1등이지만 은퇴를 앞둔 30대 현수, 고교 랭킹 1위지만 열정이 없는 10대 준서, 현재 1등이지만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20대 정호. 과거, 현재, 미래의 1등이 주인공이니, 다양한 1등의 이야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100m 달리기 세계신기록은 우사인 볼트가 2009년에 달성한 9초 58이다. 한국신기록은 김국영이 2017년에 달성한 10초 07이다. 참고로 현재 세계선수권에 진출하기 위해선 10초 05를 끊어야 한다. 중국과 일본 선수들이 9초대를 기록한 바 있으니 한국의 100m 달리기는 세계는커녕 아시아를 넘기도 힘든 실정이다. 그럼에도 한국 최고를 가려야 함은 물론이다.

 

인생의 주요한 '선택'들에 관한 이야기

 

현수의 이야기는 인생의 전환점에서 고민하고 있을 4050세대에 메시지를 전한다. 단거리 육상 선수에게 황혼기를 넘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나이라고 취급받을 30대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달리고 싶은 현수,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답이 정해져 있는 듯 새로운 답을 찾는 게 맞는 듯 고민하게 한다. 과거 1등을 했든 꼴등을 했든 누구나에게 들이닥칠 시기의 이야기다.

준서의 이야기 역시 인생의 전환점에서 고민하고 있을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데, 대상은 인생의 큰 방향을 정할 10대다. 아직 인생이 뭔지는커녕 나는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는 10대이지만, 결국 ‘선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해야 하기에 어떤 식으로든 방황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준서는 큰 방향을 정하고 방황을 했지만 다시 한 번 열정에 기댈 수 있으니 괜찮다고 해야 할까?

정호의 이야기는 자신을 향한 믿음과 타인으로부터 오는 압박 사이에서 흔들리고 꺾이고 부러지기도 하는 20대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세상에 대해 알 만한 건 아는 것 같은데 막상 내가 받혀 주지 못하고, 내가 충만하다고 생각하면 막상 세상이 배신하는 것 같다. 10대 때의 방황은 애들 장난 같은데, 보다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치가 떨린다. 이제 내 삶은 온전히 내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에겐 각각 누가 있었을까

 

현수에겐 아내 지연이 있다. 지연 또한 100m 달리기 선수 출신으로 은퇴 후 헬스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현수를 물심양면 챙기고 조력하면서도 자신만의 삶을 충실히 올곧이 살아내고 있다. 이보다 든든할 수 없는, 운동선수에게 꼭 필요한 멘토이면서도 살아가며 없어서는 안 될 조력자다. 나아가 서로가 각자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서로 같이 고민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동반자의 관계다.

준서에겐 코치 지완이 있다. 지완은 국가대표까지 지내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한 인재지만, 지금은 준서(육상부)의 미래와 자신의 안위(정규직 전환)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신세다. 그런 만큼 지완은 준서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최후의 열정을 짜내려는 준서를 매몰차게 모른 채 할 수 없다.

정호에겐 딱히 누군가가 없다. 조력자도 없고 멘토도 없다. 코치 형욱은 정호를 그저 일터의 동료로 대하며 욕망에 충실하니, 정호의 안위와 미래를 진정으로 생각해 줄 입장이 아니다. 지극히 소시민적인 보통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른이자 멘토로서 정호를 챙겨 주지 않는다. 정호도 형욱을 이용해 먹으려 하고 형욱 또한 정호를 이용해 먹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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