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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90년대 로맨스 느낌 물씬 풍기는 골때리는 사랑 <낭만적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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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낭만적 공장>

 

영화 <낭만적 공장> 포스터. ⓒ영화사 오원

 

골키퍼 출신으로 보도방과 건설 현장을 전전하다가 어느 공장의 경비로 취직한 심복서, 취직하기 전에 우연히 보고 얘기도 나눈 김복희와 공장에서 재회한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고 했던가, 그들은 조금씩 거리를 좁혀간다. 아니 복서가 일방적으로 복희를 쫓아다니는 모양새다. 복희도 그런 복서가 마냥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복서는 심장이 아픈데, 골키퍼로 경기를 뛰다가 상대방의 강력한 발차기에 가슴을 정통으로 맞고 심장이 망가져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았다. 축구 선수 생명이 끝난 건 물론 심장이 아픈 그를 쓰려는 데는 없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흘러들어온 곳이 공장이다. 그는 경비 선배의 한마디에 운전면허시험을 준비하며 또 다른 꿈을 꾼다.

복희는 마음이 아픈데, 경비 반장 황씨와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마지못해 이어가고 있다. 황반장은 허구한 날 싸움질에 도박질에 바람질에 술까지 퍼마시고 다니면서 복희를 어떻게든 곁에 두려 한다. 복희는 도망도 가봤지만 잡혀 왔다. 죽지 못해 살고 도망가지 못해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복서가 다가온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골때리는 사랑

 

조은성 감독이 오정세, 조은지 배우가 참여했던 2015년 작 <선샤인 러브> 이후 8년 만에 <낭만적 공장>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다큐멘터리를 몇 편 찍었는데, 그중 한 편이 인천 중구를 중심으로 도시 재생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고, 인천이 주요 배경인 <낭만적 공장>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낭만적 공장>은 한국어 제목부터 묘하다. 총천연색 '낭만'과 회색 '공장'이 붙어 있으니 전혀 어울릴 것 같지만, 그래서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극 중 복서와 복희의 조합 같다. 그런가 하면, 영제 'punch-drunk love'가 인상적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와 같은 제목이기도 한데 '정신 못 차리게 좋아하는'이라는 뜻이 두 작품을 사이좋게 관통한다.

극 중 복서의 사랑은 속된 말로 '골때린다'.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을 찾기 힘들다. 첫눈에 반해, 우연이 겹쳐, 무작정 들이대다가, 유부녀인 걸 알고서도, 남편이 인간말종 같은 놈이란 걸 안 뒤에 더 다가가려 한다.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사랑의 방향이자 방식이다. 그럼에도 그의 사랑을 애틋하게 바라보게 되고 응원하게 되는 건 이 영화가 힘이 있다는 반증이겠다.

 

90년대 로맨스 느낌

 

<낭만적 공장>은 1990년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로맨스 영화다. 다른 게 있다면, 당시 로맨스에선 놈팡이에 성격도 안 좋은 남자가 불쌍한 여자를 구원하는 이야기였던 반면 이 영화에선 남자가 더 젊어 보이거니와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인다. 불쌍한 여자인 건 동일하지만 구원이 아닌 사랑에 초점이 맞춰 있다.

지금 영화계에선 잘 나오지 않는 두 별볼일 없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1990년대에 자주 만들어졌던 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1997년 IMF를 전후로 몸과 마음이 크게 휘청거릴 때 사랑으로 위로받고 구원받은 이들의 이야기가 와닿지 않았을까. 영화 속 인물이 저 멀리 있지 않고 마치 나인 듯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판타지적인 측면이 다분하다.

지금 다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건 의미가 있다. 25년 전에 버금갈 만큼 몸과 마음이 힘들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러니 공장에서 애절하게 불륜을 저지르지만, 그게 오히려 불쌍한 한 사람을 위로하고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모양새다. 비록 작은 영화이지만, 손색없는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이 얼굴을 비췄기에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익숙하고 편안한 기시감

 

한편 <낭만적 공장>은 기시감이 다분한 통속극이다. 생각나는 영화들이 많으니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누구보다 연출과 각본을 도맡은 감독 본인이 잘 알고 있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인천과 충남 영화위원회에서 2년에 걸쳐 지원받아 제작했을 정도로 작은 영화이거니와 감독 본인의 경험을 한껏 살렸다고 하니 말이다.

감상하는 데 기시감이 방해가 되진 않았다. 차라리 익숙하니까 편안했다. 마냥 진지하지 않고 코미디 아닌 코미디로 분위기를 적절하게 환기시켜 준 게 눈에 띈다. 다만, 분위기는 잡았으되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로맨스 영화에선 감정선이 가장 중요한데, 이 영화는 감정선을 다루는 데 소홀했다. 그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전체적으로 재밌었다. 극초반을 지나고 나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했다. 두 베테랑, 심복서 역의 심희섭 배우와 김복희 역의 전혜진 배우가 영화의 알파와 오메가였다. 거기에 낙봉 역의 박수영 배우가 찰진 톤의 연기로 복서와 복희 둘만의 세상을 영화 안으로 끌어와 관객과 이어 줬다.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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