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일전에 <1960년을 묻다>(천년의 상상)라는 책을 보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1960년대의 '전설' 혹은 '망령'이 여전히 남아 있는 이 시대에, 1960년대의 산물을 완전히 리메이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당시를 철저히 해부한 책이었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체계의 가능성이 거의 소진되고 있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그렇게 처절한 문제의식을 갖고 해체된 구시대의 산물은 새시대를 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었다.
위 책의 저자 천정환 교수와 권보드래 교수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자신들의 전공분야에 심기 위해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푸른역사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2011년 11월 말부터 1년이 넘게 행해진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강좌이다. 천정환 교수는 프로젝트 기획자 중의 한 명으로, 권보드래 교수는 강좌의 강사 중 한명으로 참여했다.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강좌는 "'문학사'를 욕망하지 않는 시대에 '문학사'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곤혹스러움의 정체는 가감 없이 토로되고 신랄하게 분석될 필요가 있다."라는 강좌 시즌 1의 발문을 시작으로, 시즌 5까지 25강이 계속되었다.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 푸른역사
그리고 그 중 9강을 추리고 묶어서 책으로 내었다. 강좌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푸른역사)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여기서 '문학사'는 한국 현대문학을 가르키며, '문학사 이후'는 이미 종언된 근대 문학의 망령에 사로잡혀 현대 문학사가 쓰여지지 않은 시대를 가르킨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강좌를 통해 그 이후의 문학사에 대해 논한다.
제대로된 문학사를 기술하지 못한 시대에 대한 비판, 정해진 것 없는 현재의 문학사를 재구성한다는 희열, 무너진 폐허 위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막연함과 두려움들이 뒤섞여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미 기존 문화의 해체와 재구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독자적으로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행해왔던 학자가 포진해 있기에 기대를 해본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당 3명의 강사가 진행했던 3개의 강의가 자리하고 있다. 1부에서는 권보드래 교수와 천정환 교수 콤비가 1번과 2번 타자로 나와, 문학사에 대헌 문제의식을 꺼리낌없이 내보이며 기존의 통념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책의 부제인 '한국 현대문학사의 해체와 재구성'에 맞는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문학사를 '어떻게' 해체하고 재구성할지에 앞서, '왜' 해체해야 하고 재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리이다.
이후 세 번째로 나온 소영현 교수는 하루키나 톨스토이는 한국문학인가 또는 팬픽이나 판타지는 문학사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와 같은 도발적이고 획기적인 질문을 던지며 앞선 강사들의 기존 통념 흔들기에 동참하고 있다. 이로써 독자는 1부를 통해 '문학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다.
2부와 3부는 1부에서 던진 문제의식 하에 어떻게 문학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할 지를 다룬다. 단, 2부가 새로운 틀을 갖고 어느 특정 시대를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라면, 3부는 주로 영화, 가요, 드라마 등의 대중 문화와 소설과의 관계를 다룬다. 재해석의 범위와 소설과 다른 주체 간의 콜라보레이션의 범위가 차원을 달리한다.
염상섭의 프레임으로 식민지시대의 소설을 들여다보고, 1960년대만의 특별한 이야기(4.19와 5.16등)를 당시 문학과 대치대조시키며, 공동체 밖에 있는 일종의 소외된 이야기를 끌어오는 등의 문학사를 새로운 시각과 틀로 보고 다루려는 시도를 한다.
또한 통념적으로 기존의 문학사 범주에 들지 않았던 또는 못했던 것들을 비교하며 다루기도 한다. 문학사와 영화사를 수평으로 놓고 이야기 해본다던가, 나아가 대중가요나 드라마, 연극까지 문학사 범주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마지막으로 바로 지금 대중소설의 정점에 있는 '팩션(픽션+팩트)' 역사소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문학사의 새로운, 색다른, 획이적인, 도발적인, 상념을 깨는 시도들이다.
문화 주체에 대한 재해석은 모든 문화 방면에서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기존의 문화 재해석 작업은 주로 기존 주류와의 단절 내지 계승을 밑바탕에 깔고 진행해 왔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겠다. 서양 클래식계에는 사조가 존재한다.
바로크, 로코코, 고전주의,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자연주의... 이런 식으로 누구는 어디에 속하고 누구는 어디에 속하고, 각각 시기와 특징이 명확하다. 연대별, 사조별, 특징별, 계파별 등으로 단절되어 확고히 나뉘어져 있었던 문화사. 서양 문학사는 물론이고 한국 문학사도 이와 같은 사조를 가지고 있고, 지금도 그 사조를 구분하는 방법을 고스란히 계승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가 낳은 체계는 망령이 되었다. 최소한 거의 사멸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망령이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하직하고 세상에 없는 박정희와 노무현이 여전히 사람들 입에 제일 많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을 보내주어야 할 때가 된 지 오래 되었는 데도 말이다.
일례로 2000년대 후반에 나온 <한국현대문학사>라는 제목의 책을 보면, 몇 년을 주기로 계속해서 수정 또는 증보되어 재판되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윤식의 <한국현대문학사>는 최초 1989년에 나와 최근 2008년까지 계속해서 재판되었다. 자그만치 20년이란 세월동안 새로운 현대문학 통사를 서술하지 않은 것이다. '제대로'된 기술은 둘째치고,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여전히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열렬히 외우고 재해석하고 사랑하는 게 결코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힘이 이제는 다 해가고 있다는 것, 최소한 조만간이든 언젠가이든 그 힘이 다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래도 지금까지는 '전설'로 남아 있다. 죽은 사람임에도 차마 '망령'이라고 칭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전설적 행보와 그가 남긴 전설이 여전히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들려오지 않는가? 애플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의 전설도 언젠가는 망령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해체되고 재해석·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전설이 사멸하기 전에 위의 작업을 거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문학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양한 시선, 획기적인 접근법, 도발적인 질문, 변방의 소리 등이 모두 모여 틈을 메운다면 전설은 망령이 아닌 전설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거기에 어떠한 절대적인 기호가 투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같은 발언 또한 '절대'라는 단어의 그늘 아래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오마이뉴스" 2013.7.25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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