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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불태우라는 저자, 이해가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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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의 <오염된 국어사전>

"조선시대 어느 장군은 국위선양을 위해 멸사봉공의 자세로 오랑캐와 맞서 싸웠다. 동장군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북부의 날씨 때문에 아연실색했지만, 수수방관할 수는 없었을 터. 분연히 일어서 이 전투를 승리함으로써, 명나라와 조선을 잇는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오랑캐의 엽기적인 전략으로 소득 없이 석패하고 말았다. 그 대미를 장식한 건, 조선 장군의 머리였다."


문장을 하나 지어보았다. 전체적으로는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적어도 단어들은 일상에서 많이들 쓰이기에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문장에서 최소 8개가 본래 일본말에서 유래한 단어라는 사실을 아시는가?


하나하나 집어보면 다음과 같다. '국위선양', '멸사봉공', '동장군', '가교', '엽기적인', '소득', '석패', '대미' 평소에 많이 쓰일 뿐더러, 신문이나 책, 인터넷에서 최소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봤을 듯한 단어들이다.


더욱 놀라운 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런 사실들이 언급되어 있지 않거나 무원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같은 곳에서 유례된 단어인데 어느 단어는 언급이 되어 있고 어느 단어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또는 유례에 대한 설명이 잘못 되어 있기도 하다.


국어사전을 강도 높게 비판하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의 저서 <오염된 국어사전>(인물과사상사)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한 내용들이다. 저자는 일본 속의 한국 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면서 우리말 속에 숨어 있는 일본 말 찌꺼기를 다룬 <사쿠라 훈민정음>(인물과사상사)을 펴내기도 하였는데, 이 책은 그 2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며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국어사전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한편 저자는 작년 2012년 3월과 11월, 12월에 4편('잉꼬부부', '국민의례·국위선양', '동장군', '멸사봉공'에 관한)의 국어사전 비판 글을 <오마이뉴스>에 올린 적이 있다. 당시 강도 높은 비판과 꼼꼼한 리서치로 많은 사람에게 읽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사쿠라 훈민정음>의 제2탄 작업으로 국립국어원의 일본말 어원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들어 <표준국어사전을 불태워라>를 곧 펴낼 예정"이라고 하였는데, 강도 높은 제목은 순화해서 출간된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잘못된 외국어 표기나 비표준어 등을) 순화하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그 순화의 무원칙을 꼬집는 이 책의 의도에 맞춰 제목을 바꾼 듯한 느낌도 든다. 불태워버리는 건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지만 오염된 것을 자정하는 거야 충분히 할 수도 있고 말이다.


국어사전을 불태워버리자는 저자의 말... 이해가 간다


하지만 책을 보고 있노라면, 저자가 국어사전을 불태워버리자고 한 것이 십분 이해가 간다. 몇몇 단어는 일본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쓰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답답했다.


예를 들어 '가교 역할'은 정말 많이 쓰고 너무나 익숙해진 단어라서, 저자 말마 따라 '다리 구실'로 바꿔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말에서 유례된 것이 명백함에도 한자로 되어 있는 '가교 역할'이 더 유식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순신 장군의 '멸사봉공'이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듣고 봐와서, 다른 어떤 단어를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단어가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 쓰인 단어라는 걸 알면서도, '배사향공(背私嚮公)'이나 '지봉공(只奉公)'으로 바꿔 쓰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어사전에서는 이런 일본말 찌꺼기들의 출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출처가 아닌, 단어 자체의 뜻만 풀이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 좋은 뜻만을 취해, 여기저기에 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자는 국어사전에 이런 단어들이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걸 알기에 불태워버리자는 강도 높은 비판을 한 것이리라.


일본말 찌꺼기라도 안 쓸 수는 없으니, 유례를 알고 쓰자


책에는 저자 또는 다른 질문자가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에 질문한 것에 국립국어원이 답변한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대다수의 답변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사실과 다른 틀린 답변을 보내오기 일쑤이다.


어릴 때 어른들께 모르는 걸 여쭤보면, 사전(단어사전, 백과사전 등)을 찾아보라고 전부 나와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분명 그 말씀에는, 사전에는 뜻과 겉과 속의 의미, 역사 등을 포함한 통합적인 지식이 들어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깨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의 능력이 거기까지 닿아 있지 않다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관리를 함에 있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나아가 제대로 된 수정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이 책은 국어사전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견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본말의 찌꺼기를 아예 쓰지 말자고 하고 있지는 않다. 저자의 바람은 유례를 정확히 알고 쓰자는 것이다. 수많은 외래어와 신조어들이 유입되고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아예 안 쓸 수는 없으니 중심을 잡은 채 유례를 알고 쓰자는 것이다.


다만 책에서 소개한 몇몇 단어들은 민족 자존심을 해치는 말로, 이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대로 쓸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 책 <오염된 국어사전>과 더불어 전작 <사쿠라 훈민정음>을 독파한다면, 제대로 된 우리말 하기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이 기사에서, 일본말에서 파생되고 변형된 '일본말 찌꺼기'가 있는지 확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벌써부터 달라진 글쓰기와 말하기 태도를 보이는 필자를 스스로 대견스럽게, 그리고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오염된 지 모른 채 그동안 해왔던 대로 앞으로도 해가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꼭 변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국어사전도 예외는 아니다. 



"오마이뉴스" 2013.8.1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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