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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업의 부속품이 되기 위해 대학에 다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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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대학에 저항하라>... 시장으로 변해버린 대학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 김예슬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중

지난 2010년 3월 10일, 당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예슬 양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하였다. 이후 엄청난 파문이 일었고, 찬반 논란이 일었다. 하나의 현상이었다. 대자보는 각 대학교로 릴레이하듯 번져나갔고, 서울대학교에서도 일명 '제2의 김예슬'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바뀐건 아무것도 없었다. 김예슬 씨가 언급했던 것처럼, 대학은 여전히 '자격증 장사 브로커'이고 정부는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 격이다. 대학생? 대학생은 더욱 완벽한 기업의 '부속품'이 되기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대학(교)이란 무엇인가?

대학이란 무엇일까? '인격를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교육 기관이다'.(교육학 용어사전) 그렇다면 근대 대학의 효시를 이루었던 주요 국가의 대학들이 지향하는 바를 살펴보자. 

독일에서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곳임이 강조되었고, 영국에서는 신사도의 함양과 지도자의 양성 등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한편 영국과 독일 대학에서 영향을 받은 미국의 대학은 학문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학풍이 성행하였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지향점은 바뀐 듯하다. 훌륭한 기업에 알맞은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공장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대학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과 불만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 

'반값등록금' 문제 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 때 논쟁의 초점을 단지 등록금 수준이나 세세한 기금 방식에 맞춰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한국의 대학이 어떤 곳이 되기를 원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고용자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경쟁적으로 공급하는 곳이 될 것인지, 기업 연구의 부속품이 될 것인지, 사회적으로 가장 혜택 받은 학생들이 최종 교육을 받는 곳이 될 것인지, 아니면 학생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독립적이고 비판적이며 현실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만들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 본문 중에서

<대학에 저항하라> ⓒ 시드페이퍼

<대학에 저항하라>(시드페이퍼)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현재 대학가 최고의 쟁점은 '반값등록금'이다. 그리고 대학보조금 삭감, 인문학 위기 등이 있겠다. 신자유주의의 고질적인 문제가 터져 세계적인 경제 공황이 있은 후, 전세계적으로 대학 등록금 관련 운동이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5월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를 하며 사회적 파장을 나았고, 지금까지도 사회 주요 쟁점으로 남아있다. 이는 대학생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생 자녀가 생길 노동자들, '학비' 명목의 빚을 지고 사회에 나간 노동자들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겠다. 

하지만 대학(대학생 포함)에서 해야 할일은 반값등록금 실현에만 있지 않다. 책의 저자들은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가 학생들의 꿈과 삶을 위해 어떤 공간인지에 대해 정확한 답을 내려야 하고, 직업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삶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대학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이 본래 지향하는 바인 인격 도야, 학문 연구, 진리 탐구를 통해 개인, 국가 나아가 인류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 길을 잃은 지금의 대학생들은 대학과 국가에 행동적으로 저항 함과 동시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주도적으로 대학의 역할을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존재가치 증명해야 할 때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했다. 이는 세계 경제 대국인 독일(약40%)에 2배에 이르는 수치이다. 더 좋은 기업으로 가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는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대학의 존재가치가 한없이 추락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에 대학교의 운영 자금이 주로 개인(대학생 등록금)에서 나오기 때문에, 대학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가 흔들릴 수 있다. 최근 들어 부쩍 서울의 각 대학들에 대기업들의 투자가 잇달아, 대학의 연구가 기업의 부속품이 될 위기를 맞고 있기도 한 상황이다. 

고등교육의 목적에 질문을 제기하고 대학이 민주적 가치의 척도이자 보호자로써 공적 삶에 완전히 참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 실제로, 고등교육은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공적 공간(지식, 가치, 학습을 통해 공적 가치와 비판적 희망과 실제적 민주주의를 배양하려는 교육의 약속을 엿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아이디어가 더 이상 자유롭게 유통되지 못하고, 지배적 미디어가 관리하는 아이디어로 대체되며, 중요한 아이디어들이 점점 더 진부하거나 반동적인 것으로 폄하되는 사회에서 고등교육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본문 중에서

고등고육 기관의 대표 '대학'. 그 어느 때보다도 대학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의 존재가치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기업으로 가는 교두보 역할에도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그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돌아가야 할 때가 멀지 않아 보인다. '직업학교'에서 '큰학문'을 배우는 교육의 공적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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