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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올해엔 왜 'Leading Book'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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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태계에는 리더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즉 그들이 생태계 전체 파이를 키우는 데 중점을 두느냐 또는 독점을 주무기로 생태계 파괴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참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대체로 좋은 예를 찾긴 힘들지만, 좋은 예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출판계에도 당연히 리더가 존재한다. 대형 출판사와 대형 저자가 리더라고 생각하기 쉽고 또 리더인 경우가 많으며 그들이 리더가 되면 출판계 전체의 파이가 커지리라 기대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진정한 시대의 리딩 북(Leading Book)을 탄생시키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리딩 북은 자본과 인기와 명성이 아닌 시대가 탄생시키는 경우가 많다. 시대는 대중이 만들고, 대중은 언론을 따르며, 언론은 출판이 속한 범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했을 때 리딩 북은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출판계 자체가 탄생시켰다고 할 수도 있겠다. 


리딩 북의 존재


나날이 망해가고(?) 있다는 출판계에서 리더, 즉 리딩 북은 존재는 절대적이다. 아니, 존재해야만 하고 절대적이어야만 한다. 다른 나라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출판계가 워낙 소규모이기에 허리가 되어주고 허리를 받혀주는 중간 역할의 책들이 없다. 리딩 북이 없으면 출판계 자체가 휘청거리는 것이다. 


2010년대 들어서만 보아도 해마다 몇몇 리딩 북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출판계 내에서의 현상을 넘어 문화계를 좌지우지하는 신드롬을 낳았다. 2010년엔 <엄마를 부탁해> <1Q84> <덕혜옹주> 등도 있었지만 <정의란 무엇인가>가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버드대학교 명강의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새삼스레 정의를 다시금 묻고 있지만 실상 당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묻고 있어 파급력이 대단했다. 


2011년엔 <정의란 무엇인가>와 <엄마를 부탁해>가 여전히 인기를 끄는 가운데,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이른바 '청춘 신드롬'을 불러왔다. 역대급으로 아픈 청춘을 위로하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역대 베스터셀러 중 하나이다. 이듬해에도 비슷한 느낌의 에세이,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김난도 교수의 비슷한 책이 인기를 끌었다. 스님의 출판계 진출도 두드러졌다. 


2013년쯤 되면 질적으론 암흑기, 양적으론 전성기가 아닌가 싶다. 이전해의 베스트셀러 1위가 여전히 1위를 차지했고 다양한 나라의 소설들이 인기를 끌었다. 2014년에는 이전해의 소설 인기가 이어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수위를 차지했다. 이후 북유럽 소설들이 쏟아졌고 많은 인기를 끌었다. 문화계 신드롬까지는 아니지만 출판계, 그중에서도 소설 쪽 파이를 확대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2015년부터는 해마다 독점 아닌 다두체제가 시작된다. <미움받을 용기>를 필두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과 <비밀의 정원>이 뒤따랐다. 이중에 <비밀의 정원>은 컬러링북을 선도했다. 2016년에는 맨부커상을 탄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필두로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과 <사피엔스>가 이끌었다. 다양성이 이전과 확연히 다른 게 느껴진다. 


2017년에는 <언어의 온도> <82년생 김지영> 정도가 보인다. <82년생 김지영>은 분명 신드롬에 버금가는 인기를 구사했지만, 책 자체의 힘이라기보다 사회적 이슈에 의한 힘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 같다. 그리고 2012년 출간 후 단 한 번도 당해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포진되지 않은 적이 없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눈에 띈다. 그런데 2018년은?


독보적 베스트셀러 없는 2018년


2018년에는 독보적은커녕 다두체제에 버금가는 베스트셀러도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2018년은 아직 두 달이나 남아 있거니와, 2018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언어의 온도>와 <82년생 김지영>이 이런저런 이슈들로 여전히, 그러나 어중간하게 수위를 차지했을 뿐 출판계 현상을 넘어선 신드롬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형 저자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 <언어의 온도>에 이어 독립 출판의 상징이 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추억의 친구를 소환해 회자된 <곰돌이 푸> 시리즈, 그리고 방탄소년단이 뮤비를 통해 종종 터뜨린 구간 정도가 소소하게(?) 눈에 띈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다, 전혀. 


이 상황, 이 사태를 보고 혹자는 출판계가 보다 탄탄해졌다고 말할지 모른다. 대형 출판사와 대형 저자를 위협하는 언더독의 반격이 빛을 보고 있다고, 그동안 해마다 되풀이된 몇몇 베스트셀러의 독점이 비로소 끝났다고,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고, 다양성 자체가 주류가 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읽을 거리와 볼 거리가 훨씬 많아졌다고 느끼게 되었다고 말이다. 


틀린 말이 절대 아니다. 출판계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 보다 다양한 책, 출판사, 저자가 빛을 보아야 한다. 난립이 아닌 정립, 난잡이 아닌 정렬이 되어 모든 이들에게 확대된 파이의 조각들이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듯하다. 아직 그만큼 파이가 커지지 않았다. 정립되지 않았고 난립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리딩 북의 부재가 의미하는 것들


2018년, 리딩 북의 부재는 출판계의 유례없을 위기의 시작일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SNS, 그 자체의 생태계도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텍스트 매체에서 텍스트와 포토의 혼합 매체인 페이스북을 지나 포토의 인스타그램마저 지나는 추세다. 보고 듣는 영상 매체인 유튜브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미 오래전 위기에 봉착한 출판계는 시류에 완전히 반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딩 북의 부재가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역으로, 다양성을 담보하기 위해 리딩 북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는가? 그래서 범출판계가 시도하는 게 책 자체의 힘을 기르는 게 아닌, 책을 이용한 기획들이다. 굿즈와 리커버는 당연하고, 영상 매체의 대표인 영화, 드라마와 끈을 닿고자 각본집이 쏟아지고 있다. 


리딩 북을 머리라고 했을 때, 머리의 부재는 곧 팔과 허리와 다리의 기회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체 역량이 부족할 뿐더러 그들을 끌어줄 생태계 역량은 없다시피하다. 그건 리딩 북의 재부재(在不在)와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리딩 북이 부재하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식이라면,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진정한 의미의 리딩 북은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출판계의 역량이 곧 리딩 북의 진정한 의미 즉, 그 자체로 출판계 현상을 넘어 문화계 신드롬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담보한다면 말이다. 


내부 역량 발전이란 다른 게 아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절대 시행되지 않을 것 같은 충고이자 바람들. 상상도 할 수 없는 출판계의 낡고 낡은 구태를 서서히라도 청산하고, 확실함을 담보하는 후발 전략이 아닌 불확실성이 난무하지만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선발 전략을 대형 출판사와 서점과 저자가 나서서 해야 한다. 일회성이자 눈앞만 보는 선택이 아닌, 독보적이고 오래가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부디, 부디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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