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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어른을 위한 소년만화, 그 완벽한 모범 <강철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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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강철의 연금술사>


<강철의 연금술사> 세트 표지들 ⓒ학산문화사



어릴 때 족히 수천 권을 봤을 일본 만화들, 20대가 되고 30대가 되니 남는 건 별로 없다. 스마트폰 출시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게 된 만화도 그 피해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도 만화 편력도 그와 함께 변해가는 중일 테고.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서재를 차지하고 있는 만화책들이 있다. 어김없이 매해 다시 본다. 


웹툰책을 제외하고 순수 만화책은 손에 꼽는다.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20세기 소년>, 그리고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가 그것이다. <슬램덩크> 정도 들여놔야 하는데, 솔직히 이제는 예전만큼 재미있지가 않다. <슬램덩크>를 위시해 일명 '소년 만화'들이 이젠 시시하달까?


일본 만화계의 수장 '소년 점프'는 1980년대부터 익히 말 한만 만화들을 쏟아냈는데, 1990년대에 이르러 <드래곤볼> <슬램덩크> <유유백서>도 압도적 평정을 한다.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2000년대에 이르러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도 도약한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소년 점프'의 두 번째 최전성기 한 가운데에 나왔다. 


배틀물이 최강세인 일본 만화계에서 <강철연>은 일명 '원나블'의 상업적 인기에 미치진 못했지만, '어른들의 소년 만화'를 완벽하게 구현해내어 완결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받고 있다. 연재 당시에도 '상업적' 인기가 아닌 순수 단행본 판매만 비추어볼 땐 <원피스>에 이은 2000년대 최강자 중 하나였다.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


연금술의 나라 아메스트리스, 에드워드 엘릭과 동생 알폰스 엘릭은 죽은 엄마를 되살리기 위해 연금술로 인체연성을 시도한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 그 자체. 엄마라고 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연성되었다가 바로 죽어버렸고, 에드는 왼쪽 다리를 알은 몸 전체를 잃고 만다. 에드는 오른쪽 팔을 희생하여 겨우 알의 영혼을 갑옷에 정착시킨다. 


에드와 알은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 '현자의 돌'을 찾는 여정을 떠난다. 그것은 연금술의 기본 법칙인 등가교환을 무시하고 대가 없는 연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전설의 돌이다. 불로불사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여지없이 이 나라, 아니 이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다. 


일반 사람이라면 근처에도 다다를 수 없을 것 같기에, 그들은 군부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다. 국가 연금술사가 된 것이다. '강철의 연금술사' 에드워드 엘릭과 동생 알폰스 엘릭은 현자의 돌을 찾아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소년만화답게 진지한 와중에 '빵' 터지는 유머를 잃지 않으며 판타지 세계는 아니지만 판타지적인 요소가 짙게 스며들어 있다. 전체적으로 배틀 액션이 기본으로 물고 물리는 캐릭터들의 향연이 이채롭다. 한편 '어른'의 소년만화답게 낯간지럽지 않은 진지 키워드와 주제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반전(反戰), 종교, 민족, 과학, 신, 도덕, 장애, 여성, 신념 등... 묵직한 개념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극을 이끌어간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훌륭한 조화


<강철연>은 역대급 인기 만화답게 많은 콘텐츠로 재탄생되었다. 만화(책)으로 시작해 애니메이션 2번, 극장판 2번, 실사 영화와 소설과 게임까지. 그러면서 중점적으로 내세우는 주제와 캐릭터들이 조금씩 바뀌었는데, 바뀌지 않는 건 시작부터 끝까지 탄탄하기 이를 데 없는 스토리이다. 


매주 연재되면서 앙케이드 조사를 통해 등수를 매기는 일본의 만화 시스템 덕분에 더 재미있고 또 독자의 입맛에 맞춰진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뒤로 갈수록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경향이 심하다. 많은 인기 만화들이 그렇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반면 이 만화는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세팅되어 있거니와 끝까지 휘둘리지 않고 고수한 듯 스토리가 이어진다. 아마도 메이저 잡지에서가 아니라 중소 규모의 잡지에서 연재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극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 큰 주체는 에드와 알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들이다. 그 어떤 만화 아니 콘텐츠에서도 마찬가지일 터, 하지만 이 만화에서 에드와 알의 여정 비중은 갈수록 줄어든다. 상당한 강수이자 모험인데, 결론적으로는 대성공,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자기 맡은 바 임무(?)를 훌륭히 소화해낸 것이다. 


임무란 다름 아닌 신념을 바탕으로 한 이상, 협력과 적대와 독주를 하면서도 누구 하나 신념을 잃지 않는다. 신념들이 대립하지만 궁극적이고 모두를 위한 곳으로 모이기도 한다. 가장 중심적인 주제이기도 한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를 몸소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만화는 두 주인공뿐 아니라 많은 주조연 캐릭터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고 또 가지게 된다. 거기에 어떤 동정이나 자학 또는 자격지심이 없다. 한없이 슬퍼하면서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여성 캐릭터들의 강함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에드와 알의 스승인 이즈미 커티스, 아메스트리스 최북부를 지키는 브릭스 요새 사령관 올리비에 밀라 암스트롱, 불꽃의 연금술사 로이 머스탱의 부관 리자 호크아이를 비롯 동쪽의 싱에서 온 란팡과 메이 창 등 육체적·정신적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을 정도의 강함을 자랑한다. 작품의 핵심에 가까운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강철연>만의 특장점, 진지 키워드


이 '소년만화'만의 특장점이기도 한 진지 키워드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의 대결은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고 보기에도 편안하다. 하지만 콘텐츠 자체로만 이야기될 뿐 콘텐츠에서 파생되는 건 없다시피 할 것이다. 반면 선과 악의 모호한 구도는 만들어 내기도 어렵거니와 즐기기도 편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을 보여주는 진정 위대한 콘텐츠로 오래도록 살아남을 게 분명하다. <강철연>은 후자의, 그런 콘텐츠다. 각자의 신념이 중요하고 우선이며 선과 악은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아메스트리스는 킹 브래드레이의 철권 통치 아래에 있는 군부독재국가이다. 사방에 적이 있거니와 수많은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왔다. 그중에서도 '이슈발 내전'은 가장 큰 내전이었거니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의 핵심에 군(軍)이 있는데, 고증이 철저한 군대 체계와 전쟁 상태, 전투 기술 그럼에도 어둡기 짝이 없거니와 비극적으로 그려지는 전쟁이 그것이다. 즉, 전쟁 관련 장면이 나오면 나올수록 반전이 기술되어지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이슈발 내전의 이유는 종교와 민족이다. 아메스트리스와 명백히 종교와 민족이 다른 것이다. 이슈발인은 유일신을 믿는 반면, 연금술의 나라 아메스트리스는 과학이 우선이다. 합리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의 눈에 종교는 가장 합리적이지 않은 개념일 테지만, 그들을 없애버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진리인지는 절대 확신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만화는 거기에 이어 과학의 도덕성에까지 들어간다. 


만화가 도달한 곳은, 에드와 알이 도달한 곳은, 수많은 캐릭터들이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등가교환'에서 출발해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만화는 연금술로 등가되는 과학의 갈 길을 생각하고 있는 듯도 하다. 과학의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진지한 고민. 만화는 에드와 엘이 도달한 법칙, 일명 '등가교환을 부정하는 새로운 법칙'으로 대신한다. '10을 받으면 자기의 1을 더 얹어서 11로 만들어 다음 사람에게 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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