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해봤나?" 현대그룹을 만든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명한 말이다. 기업의 제1의 가치를 '도전'으로 치는 그의 정신이 집약되어 있는 한 마디라 하겠다. 그 한 마디가 지금의 현대를 만들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 그의 또 다른 명언들을 보탠다. 현대만이 아니라 가히 지금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만든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만이 해낸다." 누구라도 들으면 힘이 나며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리고 기필코 해내고야 말 것 같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말이다. 


그런데, 이 명언은 너무 간 것 같다. 도전과 열정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보고 한 말인 것 같다. 너무나도 좋은 의미의 '도전'과 '열정'을 무식하리만치 한 데 모아놨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라.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 나가야 한다." 이 말이 지금도 통용된다는 건, 우린 여전히 전후 1960년대를 살고 있는 것이리라. 


'열정 만수르' '열정의 대명사' 유노윤호




최근 여러 의미로 '열정'이 이슈다. 의욕적으로 일에 매진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인 '번아웃 신드롬'이 전국민을 강타하며, 출판계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바람과 생각을 글로 옮긴 책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는 에세이의 강세와 맞물려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동방신기 멤버 유노윤호가 '열정 만수르' '열정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사건(?)이 있었다. 3월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기상하자마자 바로 춤연습에 돌입하는 모습을 보였고, 10월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해 "열정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 "사람의 몸에 가장 안 좋은 해충은 바로 '대충'이라는 벌레다"라는 명언을 내놓았다. 


이후 '나는 유노윤호다'라는 유행어가 한동안 SNS뿐만 아니라 대형포털 검색어 상위권을 장식했다. 번아웃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지만 쓰러질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자조 섞인 주문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지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유노윤호는, 그 예전 산업화 시대 때 그야말로 온몸을 바쳐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갔던 사람들의 정신적 우상 정주영과 다름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사람들을 옥죄는 열정이라는 괴물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외치는 에세이




요즘 출판계는 에세이가 대세다. 과거 정말 오랫동안 자기계발이 대세였던 적이 있는데, 직장인들이 필수로 봐야 했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자기계발이야말로 회사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탄탄한 진로를 확립해주는 방법, 그 길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성공, 다름 아닌 자기계발 책들이 가르쳐주었다. 


이젠, 아니 적어도 지금은 아닌 것 같다. 그런 길이 성공의 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과연 성공이 무엇인지 성공을 왜 해야 하는지 궁극적으로 묻는 시기에 와 있는 것이다. 제목만 봐도 느껴지는 반(反)열정의 스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등의 책이 함께 한다. 


작년에는 사표를 내는 과정과 백수로 지내는 모습을 담은 에세이가 유행을 했었다. 사실 에세이라는 게 '쉼'을 매개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는 것이 목표인데, 지금의 시대 상황 또는 시대 정신과 잘 맞아들어가는 것이리라. 넓은 의미에서 이 또한 자기계발의 일환이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방향이 정반대일 뿐이다. 


재작년 말 전국민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촛불혁명', 당시 박근혜 정부의 온갖 개인적·사회적 문제를 두고볼 수 없었던 국민이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하여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비리를 척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경제 위기를 전면에 내세운 채 돌이킬 수 없는 정치 위기를 몸소 양산해내고 있던 '벌레'를 '퇴치'했다고 하면 너무한 말일까. 


결과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긍정적 결과를 도출해냈지만, 국가와 사회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을 국민이 직접 나서서 할 수밖에 비극인 것 사실이기에 국가 전체가 번아웃에 걸렸을 테다. 큰 일을 치른 후 일상으로 돌아오면 너무나도 힘든 게 자명한 만큼, 이 사회와 개인들은 그야말로 '살' 방법을 찾고 있다. 사회의 미묘하고 세세한 부분들을 캐치하는 걸 잘하는 출판계, 그 대세의 변화는 소소한 일면일 뿐이다. 


적절한 균형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균형'이 아닐까. 인간을 이루는 한 개인뿐만 아니라, 이 공동체도 이 사회도 이 국가도 마찬가지다. 겪어본 결과 '열정'은 과하면 절대 안 될 테지만, 없어서도 절대 안 된다. 누구나 최소한의 열정은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최소한의 열정에 비례해 나머지를 채울 건 무엇인가. 말그대로 '대충하는 것' '열심히 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거기에 함정이 있다고 본다. '과도한' 모든 것엔 '과도한' 반대급부가 생기기 마련인데, 참으로 오래된 과도한 열정 괴물이 부른 참사나 다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답이 될 수 없다. 


'가늘고 길게' 사는 것보다 '짧고 굵게' 사는 게 각광 받아 왔고 여전히 일면에선 각광 받고 있다. 이 '잛고 굵게'에 과도한 열정이 '잘 살아보자'는 말과 함께 그 자체로 자리를 잡고 있을 텐데, 그 반대급부이기도 하지만 적절한 균형에 맞춰 말하고 싶다. '가늘고 길게' 살자고.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프레임이 아닌, 누가 만든 기준인지 모를 '잘' 살 필요는 없다는 프레임에 맞추자는 이야기다. 


일단은 '그냥' 살아보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난 그냥 살고 있다. 그냥에는, 열심히 할 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꾸준히 할 때도 대충할 때도 속해 있다. 어느 한 방면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어느 한 방면을 '하는' 것이다. 영원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어떻게 영원히 열심히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가겠는가. 가늘고 길게, 지치지 않고 살아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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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장미의 이름> 리커버 표지 ⓒ열린책들



지난 9월, 온라인 서점 알라딘 베스트셀러 1위에 뜬금없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꽤 오랫동안 이름을 올렸다. 오래지 않아 '품절'이 뜨더니 곧 '예약판매'로 바뀐 적도 있다. 아마도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이 '사태'를 생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충분한 물량를 준비하지 못한 또는 않은 상황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 


그렇게 된 연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자그마치 국내 굴지의 출판사 중 하나인 열린책들이 창립되던 해인 1986년 초판이 나온 후 30년 넘게 굴지의 소설로 널리 읽혀왔던 <장미의 이름>을 리커버 특별판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제까지 수없이 만들어진 리커버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서양 고서(古書)' 느낌의 리커버. 


그야말로 움베르토 에코 팬과 <장미의 이름> 팬의 구미는 물론 왠만한 애서가 및 장서가의 구미를 당겨 수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소장용'으로 도무지 구매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황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이 리커버 특별판의 폭발적인 판매 덕분에 지난 2016년 열린책들 30주년에 맞춰 나왔던 '대표 작가 12인 세트' 중 <장미의 이름>이 품절되어버렸다. 같은 책이지만 리커버 특별판은 25000원인 반면, 이 책은 10000원이다. 전자가 너무 비싸다가 생각해, 같은 책을 찾다가 후자를 고른 것이리라. 나도 그러한 이유로 두 책 중에서 고민하다가 후자를 사려 했는데 품절이 되어버렸고, 전자는 사지 않기로 했다. 


출판계의 오래된 수순, 재출간 내지 개정판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표지 ⓒ마음산책



리커버가 대세이자 유행으로 자리잡기 전 출판계에는 오래된 수순이 있다. 교재나 성경은 주기적으로 행하고 일반 단행본 책은 계약 기간이 종료되어 절판된 경우 행하는 재출간 내지 개정판 출간이다. 이럴 때 표지를 새롭게 입히는 리커버는 기본이고 내용까지 책의 모든 걸 손 본다. 어떤 경우 다른 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아쉽게 빛을 보지 못했지만 언제든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책이나 동서양의 유명한 고서들을 주로 다룬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창비)나, 80년대 북한 소설 <벗> <60년 후>(아시아)처럼 출간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지하 베스트셀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책을 재출간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아는 인기 곡들이 리메이크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우리가 아닌 베스트셀러들이 재출간 또는 개정판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지난 2005년 마음산책에서 복간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출판사 서평 즉 보도자료를 통해 비교적 상세히 복간 경위를 설명한다. 일전에 1996년 까치에서 출간되었는데 좋은 작품성에도 불구 아쉽게 절판되었고, 이후 꾸준한 입소문 끝에 출판사의 의지를 더해 복간할 수 있었다고. 


지난 2015년에는 재일작가 김석범의 <화산도>가 완역판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최대 문제작 중에 하나라고 할 만한 이 대하소설은 1980년대 전반부를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으나 당연히 제대로 된 게 아니었다. 이 소설의 30여 년만의 완역본 출간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빼돌렸던 문화재를 온전히 되찾은 것과 같다. 


노르웨이의 숲 사태


<노르웨이의 숲> 한정판 표지와 단행본 표지 ⓒ민음사



그렇다. 역사가 돌고 도는 것처럼 책은 돌고 돈다. 좋은 책은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다시 살아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의 재출간, 특히 개정판의 경우 그 느낌이 달라졌다. 지난 2016년과 2017년에 있었던 일명 '노르웨이의 숲 사태'를 예로 들어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후 오랫동안 문학사상사 판본의 <상실의 시대>가 대표적이었는데 2013년 민음사가 판권을 사들여 '세계문학전집'의 일환으로 출간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2016년 말에 국내 소개 30주년이라하여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놓는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하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을 들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문제는 이듬해 여름에 내놓은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노르웨이의 숲> 단행본 출간. 세계문학전집 판본에 이어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놓은 것도 모자라 일반 단행본으로 또다시 출간한 것이다. 그런데 생김새가 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얇은 비닐 커버만 벗기고 판형과 사양을 약간 수정한 정도. 아이러니하게도 리미티드 에디션보다 더 괜찮다는 평이 많았다. 그야말로 '상술'의 결정판, 엄청난 욕을 먹었다. 


아마도 2016년 내놓은 한정판이 다 팔리고 절판시킬 수밖에 없어 아까웠나 보다. 하지만 그런 '짓'은 독자들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닌가. 출판사 입장에서는 욕을 먹더라도 살 사람은 사고 손해는 절대 보지 않는다는 판단이 확실히 섰을 테다. 그런데 그때를 전후해 출판계 전체가 그런 류의 초단순한 '리커버'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확실히 '장사'가 된다는 판단이 섰다!


출판계 대세, 리커버


<고양이> 표지들(순서대로 교보문고, 인터파크, Yes24, 알라딘) ⓒ열린책들



'리커버 특별판', 지금은 모든 온라인 서점에서 '단독유일판'과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앞세워 홍보하는 수단 중 하나이지만 역사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불과 2년여가 조금 넘은 정도. 2016년 전반기에 교보문고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다양하게 스페셜 에디션이 출간되어 왔지만 이렇게 '리커버'라는 이름을 달고 표지만 바꿔 내는 경우는 단언컨대 없었을 것이다. 


리커버의 타겟은 단연 젊은독자층이다. 인스타그램 인기의 파격적인 수직 상승과 맞물렸을 것이다. 최소화된 텍스트를 앞세웠던 트위터를 지나, 텍스트와 포토의 적절한 조합을 앞세웠던 페이스북까지 지나, 텍스트를 최소화하고 포토를 전면적으로 앞세운 인스타그램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울러 보이는 것이 앞도적으로 중요한 유튜브도. 


출판계는 이에 발맞췄다. 대형 서점과 대형 출판사가 함께 오래된 베스트셀러를 표지만 바꿔 다시 내놓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영화계에서 크게 유행해 여전히 성행 중인 '재개봉'과 궤를 같이 하는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결이 완연히 다른 것이다. 재개봉은 솔직히 영화계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절대적인 흥행 수치를 보아도 미미한 수순, 그저 여러 트렌드 중에 하나일 뿐이다. 


반면, 출판계의 리커버는 흥행 수치에서부터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시행된 첫 해인 2016년부터 이미 당해년도 출판 트렌드를 선도했다. 이후에는 리커버하는 방법이 훨씬 다양해졌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급 베스트셀러도 리커버 대열에 합류했고, 호프 자런의 <랩 걸>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처럼 서점 한 곳이 아닌 주요 서점 모두에 각기 다른 리커버로 선보이는 경우도 있다. 


리커버, 굿즈의 일환?


'메트로북' 표지들 ⓒ민음사



그야말로 파상공세, 신간보다 리커버가 더 많이 눈에 띌 때도 있다. 책을 '읽기' 위해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책을 '구경하기' 위해 책을 사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굿즈'를 갖기 위해 책을 샀던 것에 비해선 나아진 건가? 하지만 내가 보기에 리커버는 굿즈의 연장선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출판계에서는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따라오는 게 수순이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이 정도면 과잉공급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우리가 리커버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최초의 호기심이 기대와 만족을 지나 사랑으로까지 왔다. 모르긴 몰라도 출판계는 걱정이 태산일 거다. 굿즈의 일환으로 리커버 이후 어떤 걸 내놓을 것인가. 


교보문고가 역시 앞서나가는 걸까. 그리고 역시 민음사일까. 이들은 함께 고전 명작에 교통카드 기능을 탑재한 '메트로북'을 출간했다. 앞표지에는 작가의 얼굴에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얹혔고, 뒷표지에는 교통카드가 내장되어 있다. 리커버를 능가하는 '굿즈 책'의 실현이다. 이뿐이랴? 민음사는 지난 7월 '워터프루프북'을 내놓은 바 있다. 여름철을 겨냥해, 물에 젖지 않고 건조 후에도 변형 없는 종이로 만든 방수 책이었다. 


리커버는 비단 리커버로만 바라볼 수 없다. 그렇게 바라보아서도 안 된다. 굿즈의 일환이자 연장선상의 개념으로 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출판계 전체가 이를 이용하는 것도 모자라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한편으로 씁쓸하다. 우리가 리커버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이 상황이 말이다. '책 읽기'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의 '책 사기'에 회의감이 든다. 출판계는 옳은 길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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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여기 위대한 배우가 있다. 아니, 위대하진 않더라도 유명한 배우가 있다. 배우가 유명해지려면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해야 하겠지만, 잘생기고 예쁘기도 해야겠고 자기PR도 잘해야 한다. 이왕이면 좋은 학력이나 독특한 이력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 빠진,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다. '안목'이다. 작품을 고르는 안목 말이다. 


누구나 이름 한 번쯤을 들어봤을 만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최소한 하나 이상의 좋은 작품에 출연했다. (여기서 '좋은' 작품을, 작품성이나 흥행성에서 하나만이라도 높은 점수를 받은 작품이라 칭하겠다.) 그래서 작품을 신중히 골라 얼굴을 많이 비추지 않되 항상 좋은 작품들에 출연하는 배우는 오히려 더 익숙하다. 


소위 대단한 배우들도, 그중에서도 안목이 뛰어난 배우들도, 작품 선정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소에 딱히 안목이 뛰어나고 느끼지 않는 배우들도 '도대체 왜 이런 영화에 나와 이런 배역을 연기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한번 추려보았다. '유명 배우들의 굴욕 배역'이다. 흑역사라고나 할까. 


로버트 드 니로, 안소니 홉킨스, 알 파치노 등은 분명 '위대한' 배우들이다. 그들의 필모에는 전설 아닌 레전드 영화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터무니 없는 영화와 배역들 또한 즐비하다 못해 넘쳐 흐른다. 이런 경우, 한 작품 '삐끗'한 게 아니다. 이런 연유로 이밖에 여러 위대하고 유명하고 대단한 배우들이 이 기획에서 빠졌다. 또한 한국과 동양의 배우들도 이번 기획에서 빠졌다는 걸 미리 말씀드린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따로 모아보도록 하겠다. 



<캣우먼> '캣우먼' 역의 할리 베리


<캣우먼>의 할리 베리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말고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가 더 기억에 남는다. 아주 어린 시절 TV로 봤던 배트맨 영화는 충격 그 자체였다. 몇몇 장면들은 에일리언 시리즈만큼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특이한 건 배트맨보다 조커, 펭귄, 캣우먼 등의 모습이 훨씬 더 선명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완벽한 악당일 수 없었고 그 어린 시절에도 어딘가 연민이 갔다. 


배트맨 시리즈는 이후 조엘 슈마허가 맡아 3, 4 모두 희대의 망작이 되었다. 그리고 <배트맨 2>에서 가장 강렬한 여운을 남긴 캣우먼이 10여 년만에 단독으로 제작되었다. 캣우먼 역은 엑스맨 시리즈에서 스톰 역을 맡아 섹시한 히어로에 일가견 있는 모습을 보였고 <몬스터 볼>로 미국 아카데미와 베를린에서 상을 타며 연기력까지 인정 받은 할리 베리가 맡았다. 가히 완벽한 배역인 듯했다. 


흑인 여배우 최초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할리 베리는 당연히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데 각본과 연출이 영화의 전부이다시피 한 캣우먼을 살리지 못했다. 영화는 할리 베리를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으로 데려가 그녀로 하여금 최악의 여우주연상을 타게 만든다. 할리 베리는 이례적으로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 참여하여 "이 쓰레기 같은 영화에 나를 캐스팅 해줘서 진짜 고마워요!"라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우리에게 익숙한 캣우먼은 <배트맨 2>의 미셸 파이퍼, 영웅과 악당을 오가고 광기와 슬픔을 동시에 품은 채 순수하게 캐릭터적인 섹시함을 풍겼다. 하지만 할리 베리의 캣우먼은 오직 섹시만을 강조한 채 밋밋하기 짝이 없는 로맨스와 액션을 영화의 절반씩이나 보여준다. '우리'의 캣우먼은 어디가고 '그들'만의 캣우먼이 왔는가. 덕분에 원더우먼보다 훨씬 더 매력적일 수 있었던 캣우먼은 사라지고 원더우먼이 10년이 훌쩍 넘은 시간만에 다시 찾아올 때까지 여성 히어로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린 랜턴> '그린 랜턴(할 조던)' 역의 라이언 레이놀즈


<그린 랜턴>의 라이언 레이놀즈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현존 최고의 히어로물을 양산하고 있는 마블 코믹스에는 흑역사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반면, DC 코믹스에는 <캣우먼>을 비롯한 수많은 흑역사가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흑역사를 양산 중이다. 그중에서도 큭 족적(?)을 남긴 영화가 있으니 2011년작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이다. 이 작품은 히어로물 전체에, DC 코믹스와 워너브라더스에게, 그리고 지금은 <데드풀>의 데드풀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라이언 레이놀즈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본래 그린 랜턴은 DC 코믹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 중 하나로, 마블의 어벤저스와 같은 DC의 저스티스리그 원년 멤버이자 중심축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과 비평 대참패로 영화 <저스티스 리그>의 중심축은커녕 주요 멤버로 등장하지도 못했다. 그저 회상 신에서 잠깐 등장했을 뿐이다. DC와 워너는 2020년 <그린 랜턴 군단>이라는 이름으로 <그린 랜턴> 리부트를 진행 중이라 한다. 


<그린 랜턴>은 제작 당시 마블의 <아이언맨>을 꿈꿨다. 슈퍼맨과 배트맨 이후 차세대 스타가 없었던 DC가 모든 걸 쏟아부은 작품!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자 캐릭터였기 때문인데, 결과는 처참했다. 전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거대한 스케일은 그린 랜턴 군단의 하찮음이 집어삼켰고, 심각하게 빛을 잃은 유치함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민망함을 불러일으켰다. 


단연 그 중심에는, 처참한 실패의 중심에는 그린 랜턴이 있어야 하고 있었을 테지만, 캐릭터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 영화가 캐릭터를 활용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게 맞는 듯하다. 


<캣우먼>도 그렇고 <그린 랜턴>도 그렇고 주연을 맡은 할리 베리와 라이언 레이놀즈는 당시로서는 충분히 그 배역을 맡을 이유와 열망이 있었다. 유명 제작사와 거대 배급사에서 대놓고 미는 작품이자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비평 면에서는 몰라도 흥행 면에서는 망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지 않았겠는가?


<그레이트 월> '윌리엄' 역의 멧 데이먼


<그레이트 월>의 멧 데이먼 ⓒUPI코리아



1980년대 후반 스크린에 데뷔해 10년 후 <굿 윌 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와 함께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며 찬사를 받는 것도 모자라 미국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각본상까지 수상하며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멧 데이먼. 비록 중퇴이지만 하버드대학 출신의 그, 이후 행보는 그야말로 탄탄대로. 


<그림 형제>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연기면 연기 액션이면 액션 모두 수월했고 <굿 윌 헌팅>을 통해 보여준 각본 실력은 물론 제작과 기획 그리고 감독까지 섭렵했다. 그야말로 믿고 볼 수 있는 배우 멧 데이먼인 것이다. 그러던 그가 불과 최근 황당한 영화의 황당한 배역을 맡은 적이 있다. 감독이나 함께 출연한 배우의 면면을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구원하진 못한다. 


자그마치 장이머우 감독의 <그레이트 월>이 그 작품인데, 함께 한 배우로 자그마치 윌렘 데포, 유덕화 등이 있다. 중국판 국뽕의 완결판, 중국판 <디 워>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영화에 멧 데이먼은 왜 출연했을까. 그는 이전과 달리 2010년대 들어 <엘리시움> <인터스텔라> <마션> 등의 블록버스터에 출연했다. 그 정점에 <그레이트 월>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스케일 면에서는 충분히 장대함을 자랑하고 또 '판타지' 장르로서는 <그림 형제> 이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영화를 보면, 무지막지한 물량공세에 따른 사라진 각본의 약점은 차치하고 윌리엄이 도대체 왜 나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의 존재는 그레이트 월, 즉 만리장성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윌리엄 역을 멧 데이먼이 맡지 않아도 됐었다는 얘기가 된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라스트 사무라이>를 꿈꿨을 게 분명한데, 결과는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47 로닌>에 버금가고 말았다. 


<그레이트 월> 이후 멧 데이먼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흥행과 비평 양면 모두에서 믿을 만했던 그의 영화가 양쪽 모두에서 '그레이트'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북미에서는 2018년에 한 작품도 내놓지 못했고 2019년 이후의 계획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좋은 작품으로 찾아오길 바라지만, 그의 절친이자 동료 벤 애플렉이 <배트맨 대 슈퍼맨> 이후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아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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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pixbay



저는 책을 읽습니다. 매일매일 읽으려고 하고 일주일에 한 권 이상은 읽으려고 합니다. 주로 이동 시간에, 그러니까 출퇴근 시간에 읽습니다. 수원과 서울을 오가서 시간이 많죠. 집에서,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독서실에서 각 잡고 읽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언젠가부터 그렇게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짬이 나는 대로, 되는 대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책을 만듭니다. 작은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단행본 파트를 도맡아 매일매일 만드는 작업을 하고 매달 평균 2권 이상을 만듭니다. 기획과 편집은 물론 디자인과 홍보까지 관여하고 있어 정신이 없는 편이니 만큼, 내가 책을 제대로 만들고 있는지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편집자의 일, 교정교열에 상대적으로 많은 공력을 들이기 힘들어 스스로 글을 만진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글을 씁니다. 책을 읽는 것 이상으로 영화를 보는데, 읽은 책과 본 영화 그리고 만든 책에 대한 리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오마이뉴스'에 투고합니다. 오마이뉴스에 투고한 지는 6년이 지났으니, 나름 제대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본 게 6년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책을 지금처럼 읽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이고 영화를 지금처럼 보기 시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인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한 지는 7년이 되었고요.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든 이유


나름 글이라는 걸 많이 써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는 리뷰를 말이지요. 800편 넘게 썼는데, 1편 당 평균 A4 1.5장 정도이니 총 A4 1200장 이상 될 것입니다. 원고지로는 A4 1장 당 10매 정도이니 총 원고지 12000매 이상이 되는 것이죠. 단편소설이 A4 10매 내외, 장편소설이 A4 80매 내외일 터이니 단순하게 양으로만 따지면 단편소설 120편 분량, 장편소설 15편 분량입니다. 양으로 따지면 이런 소설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들어 합니다. 꺼려하기도 합니다. 절대적 양에 비해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글에 등급을 매긴다고 했을 때 저는 리뷰를 가장 아래라고 매기기 때문입니다. 거기엔 '창작'이 없고, 대신 소소한 생각과 정보만이 두서 없이 흐르고 후과 없는 비난이 막무가내로 나갈 수 있습니다. 


창작은 나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반면 리뷰는 창작된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오래 고착되어진 글쓰기는 나에게로 오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아니, 영원히 나에게 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건 어쩐지 부끄럽고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두렵습니다. 


글을 쓴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창작에의 욕심과 욕망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요즘엔 리뷰도 아닌 것이 창작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나의 이야기도 아닌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다행이도 재밌습니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게 될지 모르지만, 본연은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웃기지 말라고, 그건 쓰는 사람일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쓰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평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저 옮기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걸 말로 옮기지만 저는 말로 옮기는 게 어렵습니다. 대신 글로 옮길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글보다 말이 더 어렵고 또 두렵지 않을까요.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지만, 글은 고치고 지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말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어려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어 보입니다. 


반면 쓰는 것에는 정반대의 입장에 처합니다. 고치고 지우고를 수십 수백 번 해도 시원찮은가 봅니다. 그 기저에는 말보다 글을 훨씬 더 우위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도 글처럼 남길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글은 남기는 걸 기본 전제로 하며 영원히 눈에 보인 채로 존재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저는 쓰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편입니다. 말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상대적 반목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쓰는 것에 대한 재미 때문입니다. 점점 쓰는 게 재밌습니다.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창구로 이보다 좋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글을 숭배할 생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글은 그저 창구로서 존재할 것입니다. 


그저 쓰고자 합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낡은 문구가 있습니다. 비록 오래되고 낡은 문구이지만, 이 문구가 진실하다면 창작을 하기 위해선 남의 글을 많이 봐야 한다는 것이겠죠. 책을 읽고 만들고 또한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콘텐츠가 된 영화를 보면 이젠 나만의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평론가로 이름 높은 김형수 작가는 '작가수업' 시리즈로 글쓰는 순서(?)를 소개합니다. 우선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를 통해 글을 쓰게 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저는 선생의 말씀을 계속 쓰다 보면, 계속 쓰려고 하다 보면 언젠가 창작의 순간이 온다는 걸로 알아들었습니다. 


이어 선생은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글쓰기를 내보입니다. 온몸으로 밀고 들어가 글쓰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면 이제는 본격적인 글쓰기라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에 천착할 듯합니다. 저는 아직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만끽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열망하고 있고 꾸준히 무언가를 쓰다 보면 그 순간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저는 그저 쓰고자 합니다. 위에서 글에 급이 있다고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쓰는 사람은 그저 계속 쓸 뿐이지요. 인류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남긴 작가도 써야 하고, 누구 하나 읽지 않는 소품도 남기지 못한 작가도 써야 합니다. 저는 우선 그 깨달음부터 확고히 하고자 합니다. 혹시 이 깨달음이야말로 모든 쓰는 사람의 본류이자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진리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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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추리소설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다. 내 생애 유일하게 밤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다 읽어버린 책도 다름 아닌 추리소설이다. 피터 러브시의 <가짜 경감 듀>, 그 유쾌하고 짜릿했던 순간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을 때 종종 추리소설을 찾는다. 


세계 3대 추리소설이니 세계 10대 추리소설이니 따위의 것들을 거의 모두 섭렵했다. 개중엔 크게 추리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중심으로 추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소설, 추리는 곁가지인 대신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이면과 세상의 필연적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소설이 있다. 개인적으로 후자를 더 좋아하고 더 높게 치는 편이다. 


추리소설의 본래적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뭐니뭐니 해도 '추리'가 아닐까. 추리, 즉 사건과 트릭이 얼마나 치밀하고 철저하게 직조되어 있느냐, 독자들로 하여금 얼마나 감탄을 자아내게 할 수 있는가, 독자들의 예측 범위를 얼마나 벗어났는가 등이 중요할 것이다. 엘러리 퀸의 작품들을 보면 가히 그 환상적인 추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추리소설 마니아들은 당연히 이들 소설을 더 높게 친다. 거기에서 어떤 문학적, 인문학적 요소를 끄집어내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저 충실하게 누구도 생각할 수 없으면서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추리를 내보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많다. 


동양 추리소설의 천국이자 최첨단, 일본


히가시노 게이고 ⓒ나무위키



추리소설에서 추리적 재미 아닌 의미를 찾아야 하겠느냐고 불평할 수 있겠지만, 나 같은 독자는 그래야 한다. 추리소설 입문을 늦게 한 독자일 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겠는데, 추리소설계에서 보면 수준이 낮은 독자일 수도 있고 오히려 수준이 높은 독자일 수도 있다. 결론은 추리소설계 전체의 수준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던 건 분명하다. 


동양에서 일본은 추리소설의 천국이자 최첨단이다. 아니, 현재는 전 세계에서조차 북유럽 정도 아니고선 대적할 곳이 없는 최고의 추리소설 나라이다. 그런 일본 추리소설계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한다. 신본격과 신사회파. 본격에서 시작된 일본 추리소설이 사회파를 지나 두 가지 흐름이 따로 또 같이 흐르게 된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로 대표되는 본격은 사건과 트릭을 중심으로 촘촘하고 철저하게 직조된 소설이고,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자 국민작가이기도 한 마츠모토 세이초로 대표되는 사회파는 인간을 중심으로 현실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된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이다. 이후 80~90년대에 사회파에 반하고 본격으로 돌아가자는 신본격과 사회파를 잇는 신사회파가 동시다발로 출현한다. 


그 즈음 출현한 수많은 추리소설가들, 그중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치는 독보적인 듯하다. 특히 옆나라인 우리나라에서 그 위치는 추리소설계, 아니 문학계, 아니 출판계 전체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왠지 생각나는 그 이름 무라카미 하루키가 몇 년에 한 번씩 출현해 출판계 전체를 뒤집어버리려고 하는 것과 다르게 실상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과 다르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 년에도 몇 편씩 출간하면서도 적어도 흥행면에서 실망시키는 법이 한 번도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 ⓒ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를 시작할 때 가장 많이 접하는 소설은 단연 <용의자 X의 헌신>일 것이다. 일본 대중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상 중 최고봉인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데뷔한 지 35년 정도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약 데뷔 20년 정도 시기의 작품으로 모든 면에서 완숙된 면모를 보인다. 


추리소설에 한창 빠져 있던 당시 막 출간되어 수없이 많은 추천을 듣고 읽기 시작했었는데, 자연스레 그의 다른 소설들을 접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기억에, 오프라인 아닌 온라인에서 주로 추천의 말들을 접했는데 대부분 여성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이 겉은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실상 극강의 사랑 방식을 내보이기 때문이었기 때문인데, 언제 보아도 반할 만한 아름다고 슬픈 사랑의 모습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으로 본격 미스터리 대상 소설부문을 수상했을 만큼, 일본 추리소설계 계파에서 신본격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는 소설가이다. 하지만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보다시피 추리를 수단으로 사용할 만큼 추리 자체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선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국내에 출간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포진되어 있거니와 얼마전에는 100만 부를 돌파하기도 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실상 인간 본성의 따뜻함을 내보이는 게 주된 목표인 소설이다.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추리적 재미의 반석 위에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한껏 발휘한 '인간'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낸 소설이라면 독자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무겁거나 사회의미적이지도 너무 가볍거나 사건트릭 위주도 아닌 그 경계에서 자유자재로 줄타기를 하는 소설이 어디 흔한가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


우리나라 추리소설계를 생각해보자. 뭘 알아야 생각도 해볼 텐데 알 수가 없으니 패스하자. 우리나라 문학계를 들여다보자. 여전히 본격문학이 우위에 있다. 대중문학 또는 장르문학은 무시하고 거들떠도 안 본다. 그 소설들의 역량이 떨어지던가 또는 건질 게 없던가 하는 건 차치하고서도 말이다. 들여다보지 않으니 역량을 높일 이유가 없던가, 역량이 떨어지니 들여다볼 필요가 없던가, 여튼 어떤 식으로 문제는 문제다. 


일본은 추리소설계뿐만 아니라 문학계 전체에서도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을 따로 또 같이 챙겨왔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게 아닌가. 본격문학을 대표하는 상인 아쿠타가와상과 대중문학을 대표하는 나오키 상의 동급 위상은 일본 문학계의 축복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는 단편적으론 여성이 좋아할 만한 소재, 추리가 주는 내재적 재미와 추리 아닌 것들이 주는 외재적 의미의 자유자재 줄타기, 무엇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훌륭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 등이 있을 테다. 하지만 기실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 뒤에는 일본 문학계의 실력이 있다. 


본격과 대중을 가리지 않고 재미와 의미를 포용하는 자세 말이다. 분명 이는 오랜 시간 반목과 조율을 그 자체가 분열이나 혼란이 아닌 민주적 다양성의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너른 자장 아래서 계속 반복해온 결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소설가가 탄생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와중에 영리하게 이쪽 저쪽을 오가며 셀프포지셔닝을 하는 소설가 장강명이 있긴 하다. 기자 출신으로 어떻게 하면 사회에 목소리를 내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 굴하지 않는 자신만의 신념을 지닌 채 다작의 기본으로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데뷔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그의 앞으로의 10년이 기대되는 점이다. 제2의 히가시노 게이고, 제2의 장강명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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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인 것 같다.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부르며 한껏 고무된 나를 발견한다. 이전의 소방차나 김완선의 기억은 별로 없다. 이후의 기억이 다시 생생하다.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시작해 듀스, 룰라, 쿨, DJ DOC, R.ef... 1990년대 초중반은 그야말로 전설들의 춘추전국시대가 아닌가. 좋은 시절이었다. 


중학교 2학년의 기억으로 건너간다. 친구가 물어온다. "H.O.T.야 젝키야, S.E.S.야 핑클이야." 난 젝키와 핑클을 골랐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H.O.T.와 S.E.S.는 SM 소속, 젝키와 핑클은 대성 소속이었다. 난 잘 만들어지고 체계적인 느낌보단 보다 현실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그나마 좋아했나 보다. 


1997~8년 당시 중딩에게 가수는 이 네 그룹, BIG 4뿐이었다. 비록 신화나 베이비복스를 비롯해 지금은 전설 아이들이라고 할 만한 그룹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비할 바 아니었다. 하지만 천지를 진동시킬 것 같은 그들의 인기도 오래가진 못했다. 사람들은 실력 있는 아이돌을 원했고, 아이돌은 독립을 원했다. 


2000년이 시작되자 마치 짠 것처럼 BIG 4는 일제히 해체 및 활동 중단을 선언한다. 이후 몇 년 동안 아이돌 그룹은 자취를 감췄다. 대형 솔로 가수와 BIG 4 출신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때가 암흑기라면 암흑기일까, 조만간 시작될 새로운 아이돌 천하의 전주곡일까. 


보이그룹 아이돌의 기억




군대에 있을 때였다. 군대하면 걸그룹일 텐데, 내가 군대에 있을 때(2005~2007) 걸그룹은 전무했다. 대신 그 자리엔 동방신기가 있었다. 난 중2 때처럼 선택을 강요 받았다. 선임이 말했다. "난 최강창민할 건데, 넌 뭐할래." "전 유노윤호하겠습니다." 나는 걸그룹에 열광하는 대신 내가 보이그룹이 되었다.


노래와 춤은 물론, 표정도 따라했다. 당시 비가 <I'm coming>으로 2년 만에 정식 컴백을 해 그 어디에서보다 군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이 역시 군인들이 누군가에게 열광하는 입장이 아닌 스스로가 누군가가 되어 자신을 내보이는 주체화 현상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다. 


제대하고 나서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외롭고 힘든 군대 시절에 동방신기가 큰 힘(?)이 되어준 덕분인지, 난 여전히 걸그룹보다 보이그룹을 선호한다. 그래서 동방신기 이후엔 자연스레 빅뱅-슈퍼주니어-엑소-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지는 로얄 보이그룹 라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이사이 2PM, 샤이니, 비스트, 인피니트 등도 많이 보고 들었다. 


난 노래를 주로 유튜브로 듣는데, 지금도 내 좋아요 동영상엔 보이그룹 노래가 상당하다. 하다 못해 예전의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Missing you> <Sea of Love>를 비롯 동방신기의 <MIROTIC>, 빅뱅의 <FANTASTIC BABY>, 비스트의 <픽션>, 샤이니의 <Ring Ding Dong>, 엑소의 <중독>, 워너원의 <에너지틱>, 방탄소년단의 <FAKE LOVE> 등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보이그룹이라 할 순 없지만 남성그룹이라 할 만한 김경호, M.C THE MAX, 플라워, 에픽하이 등은 최애 그룹이다. 


단순히 군대에 있을 때 동방신기가 큰 힘이 되어준 것만으로 이런 나의 보이그룹과 남성그룹 사랑을 설명할 순 없겠다. 주체화 현상이라는 거시적 분석도. 거기엔 나의 지극히 사적인 '노래(방)' 사랑이 작용한다. 난 내가 직접 불렀을 때 잘 부를 수 있는 노래 또는 잘 부르고 싶은 노래만 듣는다. 남자 가수건 여자 가수건 구분이 없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 가수의 노래를 압도적으로 즐겨들을 수밖에 없을 테다. 


와중에, 가수가 되기 위해 노래를 진지하게 부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노래 부르는 게 좋고 또 이왕이면 음주가무 시간이 되면 일종의 '보여주기' 식으로 부를 만한 노래가 필요하기에 그럴 때 필요한 것들이 아이돌의 노래가 된다. 더욱이 요즘 아이돌 노래들이란 예전같지 않아서 후크가 계속되는 난점이 있는 중에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쉽게 부를 수 없는 고난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불러주어도 불러준 사람의 가치(?)가 하등 하락하지 않는 것이다. 


외롭고 힘든 군대 시절에 동방신기가 큰 힘(?)이 되어준 덕분인지, 난 여전히 걸그룹보다 보이그룹을 선호한다. 그래서 동방신기 이후엔 자연스레 빅뱅-슈퍼주니어-엑소-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지는 로얄 보이그룹 라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심지어 사이사이 2PM, 샤이니, 비스트, 인피니티 등도 많이 보고 들었다. 


<SM 리퍼블릭>과 <EXO 플라네타>의 기억




그런데 삼십대 즈음부터 아이돌을 향한 관심, 아이돌에 대한 정보 취합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엑소부터는 찾아서 듣는 게 아니라 들려서 듣는 쪽으로 자연스레 선회하게 된 것이다. 대신 거짓말처럼 예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류의 음악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돌은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인가...


하는 찰나에 찾아온 게 책이다. 무슨 책인고 하면, '문화 레전드 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된 <SM 리퍼블릭>과 <EXO 플라네타>. 난 이 책들을, 아니 이 시리즈를 맡아 편집하게 되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2015년 1권과 2권을 내고는 YG와 JYP의 수장 및 대표 아티스트를 다루려던 3, 4, 5, 6권은 중단되었다. 


여하튼 나는 아이돌을 향한 관심을 다시금 담금질하고 아이돌의 역사까지 다시 한 번 훑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시리즈 기획과 출간을 편집자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힘든 작업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얼마전 출간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베트남에 판권이 팔리는 기적을 연출해 결국은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아이돌 책은커녕 이런 류의 기획적 요소가 다분한 책을 만든 적이 없었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이수만 회장과 EXO 본인이 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하다 못해 당사자들이 책을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괜찮았을 테지만, 우린 그들 모르게 작업을 진행했다. 이메일, 전화, 공문 등을 통해 접촉했지만 허사였다. 


태생적인 핸디캡을 안고 SM 쪽은 영화 관련자, YG 쪽은 문화 기획자, JYP 쪽은 문예창작학과 출신자가 맡아 집필했다. 동시에 시리즈 전체 디자인을 총괄하는 아트디렉터와 각각 컨셉에 맞는 일러스트 아티스트를 물색했다. 아울러 사전 홍보를 위한 SNS 채널도 개설하고 굿즈 개발을 위해 기획사에서 운영하는 아트샵에도 방문했다. 


찬란한 계획 아래 실행은 지지부진 했다. 원고만 해도 수없이 보고 또 봐도 사실 관계까 틀어진 곳을 수없이 발견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주인공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매일 체크해 최대한 반영시켜야 했다. 일러스트 아티스트와의 협업과 이후 전시라는 컨셉을 위해 그 어느 책보다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찜찜한 구석은 남았다. 


결국 잘 팔리면 이 모든 게 보상된다는 생각 하에 기획사에 무작정 찾아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가 오히려 책을 만들지 말라고 할까봐 일면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 언제 한 번은 JYP 측에 연락이 닿아 원고를 보내드리기도 했지만, 답변을 받진 못했다. 팬클럽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홍보를 해볼까 생각해 가입도 했지만, 책 홍보하는 걸로 받아들여 오히려 역효과가 있을까봐 그러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들이 단 한 가지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시리즈가 1년 이상 끌리다 보니 위에서의 압박, 저자들과 아티스트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당시 책들이 출간될 때까지 족히 몇 개월 동안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래도 덕분에 아이돌에 대해 조금은 더 전문적으로 알게 되긴 했을 듯?


한국 아이돌과 KPOP의 선순환을 위해




우리나라 아이돌은 미국과 일본의 이미지와 기획과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들여오다시피 했다고 알고 있다. 공급과 수요가 정확히 일치하려는 바로 그 시점에 날카로운 직잠과 시장조사에서의 확신을 갖고 프로듀서들이 나섰던 것도 있을 테고, 보다 여유로운 시대로의 이행 시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올 변화의 바람이기도 했을 테다. 


현재 우리나라 아이돌은 KPOP이라는 이름 하에 아시아와 유럽을 넘어 미국까지 휩쓸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는 3년 전 <SM 리퍼블릭>과 <EXO 플라네타>를 만들 당시만 해도 '혜성 같이 떠오르는 무서운 아이돌 신예' 정도로 포지셔닝되어 있었던 '방탄소년단'이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아이돌의 축적된 경험과 시스템이 최대치로 폭발한 현장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동안에도 국내 최고의 아이돌들이 세계 각지에서 해당 국가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었다. 거기엔 항상 '최초'와 '최고'와 '최선'이 붙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전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럼 앞으로 수렴되어야 하는, 수렴될 것이라 예상되는 방향은 어디일까. 


특정 아이돌의 독점적 질주는 당연하다. 그리고 KPOP의 경우, 특정 아이돌의 선전이 KPOP 전체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선순환을 이어가고 있는 걸로 보인다. 덕분에 수많은 친구들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여전히 엄청난 경쟁을 뚫고 아이돌이 되고자 한다. 아이돌 산업의 실태는 잘 모르지만, 확고한 자본과 시스템이 산업 전체로 잘 순환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산업과 비교해보면 더 뚜렷하게 보인다. 


앞날이 창창한 한국 아이돌 KPOP, 다만 한 가지 보다 미래지향적인 바람이 있다면 한국 아이돌=KPOP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고착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점이다. 한국 아이돌계는 기하급수적으로 비대해지고 있는 반면, 한국 가요계는 다양성은 이전보다 잘 시행되고 있지만 전체 파이가 커지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아이돌이 외모, 서비스, 관리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실력까지 다 갖춰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 엄청난 아이돌이 나타나 보다 글로벌한 인기를 얻을 게 분명하다. 반대로 언제 그랬냐는듯 암흑기가 찾아올지 모른다. 지금 우리 KPOP은 정점을 찍었거나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일 텐데, 오로지 위'만'을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아래'도'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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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5년 전쯤, 일명 '글쓰기 열풍'이 불었었다. 그때는 그야말로 '스마트폰 열풍'이 전국, 아니 전 세계를 휩쓸었을 때인데 사람들이 글쓰기처럼 아날로그적인 행동을 하니 신기하면서 한편 이해가 되고 한편 이해가 도무지 안 되었던 기억이 난다. 난 그 모습이 반대급부적 성질의 것이라기보다 필요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같은 말일 수도 있겠다. 


세상은 한없이 스마트해지고 그에 따라 인간도 스마트해진다고 생각들 하지만 편해질 뿐 스마트해지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인간이 진정 스마트해지기 위해선 직접 생각하고 그 생각을 말이나 글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글쓰기야말로 가장 적합한 활동이다. 더불어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글은 다양한 곳에서 쓰인다. 점점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글쓰기 능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필요성. 


이런 글쓰기의 필요성은 일면 책쓰기까지 뻗어나갔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작가를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리기에 충분했다. 참으로 많은 이들이 작가가 되어 책을 냈다. 하지만 이 현상이 엘리트화되지는 못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순 있지만 누구나 이름을 날리진 못한다. 즉, 대부분 일회성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 그들과 계속 가야할 이유는 없다. 자비출판 이미지만 배가되어 하등 좋을 게 없다. 그래서인지 당시 활개를 치던, 글쓰기가 아닌 책쓰기와 작가되기 책을 쏟아내던 이들이 언젠가 단번에 사라졌다. 시대에 편승했던 이들은 시대의 종말과 함께 사라지는 법이다. 


독립출판 시대를 열다




여기, 시대에 편승하는 이들이 아닌 시대를 만드는 이들이 있다.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자비출판은 거의 출판사를 통해 진행되었다. 출판사가 작가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게 아닌,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가 출판사에 돈을 지불하던가 책을 일정 정도 산다는 전제 하에 책을 내는 방식이다. 물론 모든 출판사가 이러진 않았고 대부분의 출판사의 경우 종종 그랬고 몇몇 출판사가 전문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다가 출판사를 끼지 않고 직접 제작해 유통하는 방식이 전자책에서 본격 시행되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지나 누구나 출판사 사장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전자책 시장 자체가 죽어버렸고 어쩔 수 없이 출판사 사장이 되는 건 종이책이어야 하게 되었다. 


자비출판 아닌 독립출판, 사실 우린 누구나 독립출판을 해본 기억이 있다. '문학 소녀' '문학 소년'이 아니더라도 끄적거린 것들을 모아 간단히 제본해 하다 못해 가족들에게라도 보여준 적이 있지 않은가? 독립출판은 그런, 출판사는커녕 중앙도서관을 통해 정식으로 ISBN을 받지도 않은 정식 '책'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중에는 작정하고 작가로서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작가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뒤로 하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말 아닌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사람이 많다. 전자보다 후자가 출판계의 현실에서도 훨씬 많을 것이다. 


이기주 작가와 백세희 작가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는 전자에 속한다. 얼마전 100만 부를 돌파했다는 이 책의 출판사 사장이 이기주이고, 지은이가 이기주이다. 즉, 독립출판이라는 얘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기자 출신의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작가인 그는 이 책의 성공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출간 후 몇 개월 동안 전국의 서점을 순회하며 서점 직원과 잠재적 독자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어필했다고. 


사실, 지금 불고 있는 독립출판 열풍에 이기주 작가는 들어 있지 않다. 그는 독립출판 열풍의 일환이 아닌 해마다 한 권 정도는 신이 선택하는 케이스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에 반해 최근 절대적인 인기의 유시민 <역사의 역사>를 밀어내고 종합 1위에 올라섰다는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현재 독립출판 열풍의 선두주자이자 지난 10년 독립출판계가 낳은 가장 기록적 흥행의 결과물이다. 


그야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텀블벅을 통해 자비로 책을 냈다는 그녀, 많은 인기를 끌자 1인 출판사 사장이 빠르게 컨택했고 정식 출판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1인 출판이 독립출판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 시작은 완벽한 독립출판의 모습을 띄고 있다. 


많은 독자들은 왜 이 책을 선택한 것일까. 수없이 많은 보증된 출판사의 보증된 작가들의 책들이 아니고. 바로 그 점 때문이 아닐까. 5년 전에 불었던 글쓰기 열풍이 작가를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듯이 말이다. 백세희 작가가 쓴 자전적 에세이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뿐 아니라, 백세희 작가가 선택한 독립출판 방식 자체가 신선함과 함께 보편적으로 다가온 게 아닐까. 여기에서 주체는 단연코 '나'이다. 


독립출판 열풍의 핵심




독립출판 축제가 있다고 한다. 2009년에 온라인, 2010년에 오프라인으로 서점을 열고 독립출판물과 아트북을 위주로 판매하는 1세대 독립서점의 상징 '유어마인드'가 주최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가 그것이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하는 이 축제는 최소 1만 명 넘게 찾아오는 인기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그야말로 독립출판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이 축제에 열광하는가. 거기에 독립출판의 현재와 미래가 있고, 독립출판 열풍의 핵심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생각해본다. 독립영화와 비교해보자. 독립영화는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감독, 스텝, 배우가 자체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만들 수 있나? 거의 불가능하다. 장벽이 높다. 그 장벽은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아닌 영상 정도에서 비벼볼 수 있겠다. 


반면 독립출판은 글 좀 쓰고 돈 좀 있으면 된다. 글이야 어떤 식으로든 평생 써 왔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독자를 상정하지 않고 그저 소소하게 주위에 돌리는 식이라면 그 어떤 글이든 가능하다. 출판하는 데 엄청난 돈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해외여행 한두 번 갈 돈이면 될 듯하다. 누구나 작가가 되는 걸 넘어서 누구나 책을 내는 시대인 것이다. 거기엔 이 시대가 낳은 성향이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의 채널 '책'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까지 수많은 SNS 채널을 통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인다. 개중에 소수의 사람들이 조회수, 광고 등의 일차적 수익과 책, 방송 등의 이차적 수익으로 먹고 산다. 대다수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남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걸로 만족한다. 


개방되어질대로 개방되어져 포화 상태에 있는 SNS 채널은 더 이상 이전까지의 메리트를 선사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소회되었던 '책'이라는 아날로그적인 개념이 독립출판이라는 양식과 만나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싶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즉, 그들에게 책은 또 하나의 채널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품질 좋은 채널인 것이다. 


아무리 '누구나'가 앞에 붙지만 여전히 책에는 엘리트적인 면모가 있다. 최소한의 인정을 받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것이다. 이는 채널로서 아주 크나큰 메리트를 지닌다. 출판사 관계자들이나 책 관련 종사자들은 그저 추상적으로 이 열풍을 바라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싶은 이들이 많아졌고(독립출판의 작가), 적게 벌어도 괜찮으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독립출판의 사장)는 정도로. 


나도 출판사 관계자이거니와 책 관련 종사자이기도 한 바, 이 정도의 시각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책은 완전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앞에 '누구나' '나도' '한 번쯤'이 붙는다. 더 이상 책은 출판계와 작가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늦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아니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폐쇄 아닌 개방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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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책을 사지 않는 시대는 아니다. 책에 내재되어 있는 텍스트나 그림, 사진, 도표 등의 지식을 인터넷이 대체하고, 책만이 줄 수 있는 지혜가 점점 그 효용성을 상실하고 있기에 책이 필요없어지는 것이리라. 반면 책이라는 물성은 팬시상품화되어 그 가치를 달리하고 있다. 


인터넷이 책을 죽였지만, 인터넷이야말로 책을 다시 살리는 가장 큰 통로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책을 바라보는, 대하는 태도의 완전한 반전 또는 대대적인 확대가 필요하다. 우린 그동안 책을 통해서 무엇을 얻어왔다. 책 자체는 사실 필요없고 책의 텍스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구텐베르크가 안긴 인쇄혁명이 기나긴 시간 동안 인류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21세기에는 그에 필적한 혁명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그리고 혁명과 혁명의 기간이 빨라졌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혁명도 선택한다. 모든 혁명이 인간의 삶을 바꿔왔지만 이젠 인간이 혁명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없이 느린 책 읽기, 그에 반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권씩 쏟아져 나오는 책, 텍스트는 멀어져가고 책만 남는다. 


책의 텍스트 vs 책의 물성




쓴도쿠, 일본어로 책을 사서 읽지 않고 쌓아두는 일을 말하는데 왠만큼 책 사서 읽는 사람치고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당연히 나도 여기에 속하고, 그 양은 점점 속절없이 많아질 뿐이다.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의 비율을 7대3으로 유지하려 하지만, 결국엔 그 반대가 되고 말 것이다. 


쓴도쿠는 책의 텍스트를 중요시하는 사람보다 책의 물성을 좋아라하는 사람의 전유물일 가능성이 크다. 예전 직장의 대표가 작가를 겸직했는데 당연히 그도 쓴도쿠적 기질이 있었다. 수많은 책들이 있었고 계속해서 수많은 책들을 사들였다. 그런데 그는 항상 "책은 중요하지 않아. 책에 담긴 게 중요한 거지."라고 말했다. 


나와는 상당히 다른 책에 대한 견해였는데,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내 아내는 책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지만 그 어떤 책을 대하든 태도가 참으로 깍듯하다. 책을 읽을 때면 아주 살짝만 펼치는데 넓게 펼치면 책꼴이 우스워진다나. 잘 아는 번역가 선생님 한 분은 정말 엄청난 양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그 모든 책을 하나하나 고급투명비닐로 정성스럽게 싸서 절대적으로 완벽한 보관상태를 유지한다. 


그에 비해 나는 책을 험하게 다루는 편이다. 장서가를 표방하지만 애서가는 아닌 것이다. 여기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이 보인다. 책의 텍스트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장서가나 애서가가 되어야 하는지, 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장서가나 애서가가 되어야 하는지 말이다. 


쓸 데 없는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날이 상승곡선에 있는 책의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나는 책의 물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 또한 책의 물성이 그나마 책이 계속 다루어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구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이다. 


우위에 선 책의 물성




수많은 SNS 채널을 통해 책 사진과 리뷰를 올리며 '힙한' 지식의 최전선을 과시하는 것이다. 배달의민족 김봉진 CEO는 '있어 보이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는 참으로 '없어 보인다고' 하겠지만 그런 이들이 좌초하고 있는 '책 배'를 떠받들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또는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는 책 이용 방법이지만, 전통적인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도 사실일 것이다. 책을 텍스트로 보는 이들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책의 외형에, 즉 디자인에 신경쓰는 나라도 없다. 외국의 책들은 애초에 소장용 양장본과 일회용 페이퍼백이 동시 출간되곤 한다. 디자인에 목숨 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책이 과시용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지 않고 말이다. 


텍스트가 중요한 사람들은 아마도 일반적인 장서가, 애서가보다는 연구자일 것이다. 연구를 위해 텍스트를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모으는 경우 말이다. 그런 그들이 연구의 결과물로 책을 출판하는 것일 텐데, 책이 가지는 전통적인 측면에서 그들이야말로 책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장서가가 되는 경우, 그 책의 물질적 아닌 텍스트적 가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녕 위대한 텍스트들,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을 테고 책이 아닌 형태의 것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진정한 독서가는 무엇인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우린 모두 그러니까 책을 누구보다 좋아한다고 하는 우리 모두는 단순한 애서가가 아닌 텍스트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마도 그건 쉽지 않을 거다. 텍스트를 중요시 하다 보면, 보다 월등한 텍스트의 바다인 인터넷에 시선이 돌아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자의 책상은 점점 비워지고 그 자리를 컴퓨터나 태블릿 PC가 대체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위대한 텍스트들,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텍스트들은, 결국 그 텍스트가 가지는 위대함이 아닌 그 물성이 가지는 위대함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 이상 그 텍스트들은 그들만의 것도,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지도 않게 되기 때문일 것이기에. 자, 그럼 진정한 장서가는, 애서가는, 독서가는 무엇인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현실적으로, 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이들이 책에 내재되어 있는 텍스트의 가치를 알아보아야만 하겠다. 그게 끝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죽어가는 책의 시대에, 책을 살리는 많지 않은 대안 중 하나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다름 아닌 나부터 실행에 옮겨야 할 텐데, 단순히 서평을 쓰며 내 생각을 공유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건 책에 대해서만 말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닌가. 


책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낭독을 하고 더 깊은 생각들을 공유하고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책을 사랑하는 것, 책이 많다는 것, 좋은 책들을 선별하는 것이 다는 아닌 것이다.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만민독서야말로 답이다. 독서가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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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좋아하지만 극장을 잘 가는 편은 아니다. 아니, 영화를 보는 횟수에 비해선 거의 안 가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일주일에 영화를 최소 2편 이상 보지만,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건 일년에 고작 몇 번 되지 않는다. 블록버스터를 즐기지 않고 작은 영화를 즐겨보기에 굳이 극장에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축인 것 같다. 


간혹 극장에 가면 남다르게 설렌다. 누군가에겐 허구헌 날 가는 연인과의 데이트 장소, 누군가에겐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이는 일터, 누군가에겐 심심하면 들락거리는 놀이터인 극장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몇몇 극장에서의 일이, 그것도 꽤나 오래전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많은 기억이 없는 게 이런 식으로 유용하기도 한가 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첫 기억은 중학교 2학년 때 <여고괴담>이다. 찾아보니 1998년 5월 말에 개봉했다고 하는데, 98년에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기억이 정확하다. 학교에서, 우리반 전체가 가서 봤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고, 충격적인 몇몇 장면만 기억난다. 그 유명한 최강희의 점프컷...


왜인지 몰라도 그때 그 기억,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으로 봤던 기억이 그리 좋지는 않다. 지금 나에게 극장은 완벽한 혼자만의 영화 보기가 가능한 공간인데,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다. 중2 친구들이 모였으니 오죽하겠는가. 떠들고 소리지르고 욕하고 액션을 취하고. 


대지극장에서의 <쥬라기 공원 3>




그 이후 기억에 크게 남는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쥬라기 공원 3>이다. <쥬라기 공원 3> '따위' 때문에 기억에 남는 건 아니고, 지금은 없어진 '대지극장'과 가족들끼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 때문이다. 아, 아빠는 없었고 엄마랑 나랑 동생이랑 가서 봤다. 동생은 당시 중3이었다. 


당시가 2001년, 2003년에 없어진 대지극장의 마지막 즈음이었다. 대지극장은 미아삼거리(지금은 '미아사거리역'이 된 '미아삼거리역' 주위를 통칭)의 자랑이자 상징이었다. 지금은 주위에 백화점이 두 개, 종합쇼핑몰이 두 개, 이마트가 한 개 있는 강북의 중심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당시에는 대지극장이 전부였다. 


서대문의 화양극장, 영등포의 명화극장과 더불어 홍콩영화 3대장이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곳에서 홍콩영화를 본 적은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대지극장에 관한 말을 들었고, 수없이 자주 대지극장을 지났으며, 수없이 대지극장을 갈 수 있었지만, 정작 나는 딱 한 번 <쥬라기 공원 3>을 보러 대지극장에 갔었던 것이다. 


동생이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좋아했다. 1, 2탄은 집에서 비디오로 봤었을 텐데, 3탄만은 극장에서 보고 싶다고 했었을 테다. 당시 우리집은 아빠, 엄마가 교대로 보시는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했다. 평일은 고사하고 주말조차 온가족이 외부에 나가서 뭘 해본 기억이 없다. 세 가족이라도 극장 나들이를 한 건 굉장한 것이었다. 


엄마와의 영화 데이트




1965년에 생겼다는 대지극장은 2003년에 없어졌다. CGV가 우리나라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을 1993년 강변에 열고, 롯데시네마가 1999년 일산점에서 시작해 폭발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메가박스가 동양 최대 규모의 코엑스점을 2000년에 오픈했으니 오래 그 자리를 버텼다고 볼 수 있다. 


대지극장이 사라진 곳에는 복합쇼핑몰 트레지오가 생겼다. 그리고 그곳에 CGV가 들어섰다. 2007년의 일이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그곳은 망했다. 북적이던 옛 느낌, 상징과도 같았던 옛 명성이 없어졌다. 물론 영화를 보러 가면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여느 영화관 건물처럼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쥬라기 공원 3>을 보러 간 이후에도 엄마와 두 번을 더 극장에 갔다. 당연하게도 극장은 그곳, 옛 대지극장 자리에 들어선 CGV 미아였다. 두 번 모두 조조로 봤는데, <인셉션>과 <관상>이었다. 엄마도 아주 재밌고 알차게 보았다고 하셨으니, 엄마의 영화보는 눈썰미도 괜찮았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함께 가보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한 번은 서로 갈 길을 갈 수밖에 없었고 한 번은 근처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에 갔다. 그 또한 엄마, 나아가 가족과 처음 가보는 패밀리레스토랑이었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도 없어졌다. 여러 모로 아쉬움 가득 남는 엄마와의 영화 데이트다. 


하고 싶은, 해야 하는 것들


더 늦기 전에 엄마, 아니 가족들과 극장에 가보고 싶다. 아빠는 영화를 즐기지 않는다지만, 영화를 보진 않더라도 극장이란 델 함께 가보고 싶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히 한 번쯤 했어야 하는 수순이 아닌가 싶다. 나도 나지만, 부모님도 부모님이었다. 무심한 걸까, 무심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정말 무섭게 빠르다. 나의 만만했던 미아사거리역이 말이다. 빠르게 바뀌고 있다. CGV 미아도 도태되면 어느새 없어져버릴지 모른다. 그러면 가족들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게 아닌가. 꼭 그곳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지만, 이왕이면 그곳이면 좋겠다 싶다. 그곳에서 오래 산 사람들에게 '대지극장'은 특별하니까. 


무엇이든, 누구든, 사라지기 전에 해야 한다. 해야 하는 것들이 있을 테고,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다. 나에겐 그게 가족들과 함께 옛 대지극장 자리에 있는 CGV 미아로 영화를 보러가는 거다. 소박하다면 한없이 소박하지만, 나에겐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미뤄온 일이고 결코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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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출판사 편집자의 눈으로 본 대형서점의 도서관화


도서관보다 서점을 더 좋아했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살 수 있었으니까. 서점에서 책을 다 읽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처럼 서점에서 책을 읽었다. 도서관보다 서점에 책이 많고, 서점에서는 도서관처럼 반드시 조용해야 할 필요도 없으니까.  


온라인 서점이 생긴 후로는 오프라인 서점으로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가더라도 구입까진 가지 않고 미리보기용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온라인 서점의 파격적인 할인과 적립금, 굿즈 증정 이벤트 등으로 오프라인 서점은 설 자리를 잃었다. 나부터가 그랬다. 책은 '당연히' 온라인에서 구입해야 하는 것이었다. 


2014년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동일하게 10% 이상의 할인이 금지되었다. 이제 다시 오프라인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을까? 아니, 책을 사는 구입률 자체가 폭락했다. 반값에 사던 책이 할인이 되지 않으니 터무니 없이 비싸게 느껴졌다. 싼 맛에 책을 사던 독자들이 떨어져 나갔다. 


온라인 서점은 굿즈와 리커버 등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사정이 더 안 좋은 오프라인 서점은 중고서점 오픈, 독서공간 마련, 서점의 멀티플렉스화 등으로 시장 확대 쪽에 주안점을 두었다. 거의 모든 면에서 논란이 일었다. 리커버는 예전부터 해왔던 '구간 표지 갈이'의 다른 말에 불과했고, 중고서점은 소형 헌책방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2015년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작된 독서공간은 출판사의 반발이 있었다. 


교보문고 대형 테이블 소식


나는 크지 않은, 아니 작디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한다. 마케터나 영업자, 혹은 홍보 담당자를 따로 두지 못하는 형편이기에 오프라인 서점을 관리하지 못한다. 아주 가끔 가장 큰 지점 위주로 방문할 뿐이다. 담당 MD 1인이면 모든 업무가 가능한 온라인 서점과 주로 거래하는 편이다. 비단 우리 출판사뿐만 아닐 것이다. 


오프라인 서점에는 우리 출판사 책이 많이 깔려 있지 않다. 신간 출간으로 지점별로 0~10부 정도를 깔아도 베스트셀러를 만들지 못하면 2주 정도 후에 1부 정도는 벽면에 넣어지고 나머지는 모조리 반품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반품에 매우 민감하다. 한번 출판사 손을 떠난 책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제대로 된 것들을 찾기 힘들다. 어찌저찌해 주문을 줄 때 그 책으로 다시 보낸다고 해도 또다시 돌아올 확률도 높거니와 그렇게까지 만드는 데 드는 품이 너무 많다. 


그 와중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위시한 '대형서점 테이블' 소식이 들려왔다. 이른바 '대형서점의 도서관화'. 대형서점에 걸맞는 대형 테이블을 서점 내에 들여놓고 방문객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근처에 있을 카페에서 마실 것을 들고와서는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착석,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책을 읽는다. 


서점 입장에서는 오프라인 서점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려는 훌륭한 전략이겠다. 서점에 와서 책을 구입하기는커녕 서점에 오지도 않으니 일단 서점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이제는 대형서점에 가면, 서점보다 더 클 것 같은 팬시문구쇼핑몰과 카페가 함께 있다. 예전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전과 비교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제는 그곳에 공간이 생긴 것이다. 


출판사의 입장


출판계에는 서점뿐만 아니라 출판사도 있다. 물론 저자도 있지만 이 문제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다 하겠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대형서점의 도서관화'가 심히 못마땅하다. 비록 오프라인 서점을 온라인 서점보다 훨씬 덜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출판사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다름 아닌 반품 때문이다. 


오프라인 서점과의 계약은 주로 위탁이다. 책을 보내서 진열시켜 놓긴 하되 팔리는 대로 수금되는 형식이다. 한편 그렇게 보내진 책들 중 팔리지 않은 책은 반품으로 돌아온다. 물론 상품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채로. 와중에 테이블에서 자유롭게 책을 보는 정책이 시행되고 나서는 상품가치가 이전보다 더 떨어진 책의 반품 확률이 이전보다 더 높아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오프라인 서점에서의 책 구입 확률이 더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집에서 읽는 사람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대형서점 안에 도서관을 차려놓으면 당연히 이전보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즉, 오프라인 서점으로 사람들을 끌어오되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구입하게 하는 건 오히려 꺼려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이 과도기일지 모른다. 인터넷, 스마트폰 혁명 이후 책을 읽는 사람은커녕 책을 집어드는 사람도 점점 없어지는 상황에서, 그래도 책이 있는 서점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려는 고육지책. (출판사의) 희생 없이는 (출판계의) 발전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대형서점의 도서관화, 그 본질적 문제


'서캉스'라는 게 있단다. '서점+바캉스'의 줄임말인데, 더위가 유독 맹위를 떨친 올 여름 무수히 많은 '-캉스'들이 사람들을 매혹했다. 홈캉스, 몰캉스, 호캉스, 백캉스, 숲캉스... 서점도 여기에 껴 있다니, 책을 좋아하고 출판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신기하거니와 대견(?)하기도 하다. 


소소하다면 소소한 문제들이 생기는가 보다. 자유로운 공간이 생기니, 우리나라 특유의 '자리' 개념이 생겨, 마치 도서관에서 자리를 골라 맡듯이 하는가 보다. 더욱이 이건 오래 점유하지 말라는 권유만 있을 뿐 시간 규제가 없기에 사실상 무제한으로 자리를 점유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어느 때보다 많이 몰라다 보니 그런 점들에서 오는 불편함들이 보이는 것 같다. 


진짜 문제는, 본질적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책 읽을 시간 없는, 즉 저녁과 여가가 없는 사회.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회. 지구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율이 가장 높은 사회. 책을 읽는 게 여러 모로 손해일 수 있는 사회...


출판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데, 그저 '책 좀 읽으세요!' '도대체 사람들은 왜 책을 안 읽지'라고 권유하고 질문하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더군다나 출판사의 절대적 파트너인 서점도 저리 빨리 변해가고 있다. '갑'(서점)이 변하면 '을'(출판사)도 변해야 하는 게 생존법칙이겠다. 출판사도 누군가는 이미 변하고 있고 누군가는 빨리 변해야 한다. 


출판계 전체를 위한 대안


그럼에도, 지금 당장, 저런 추상적인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현실을 논할 때, 작디 작은 출판계가 더욱 작아지고 있는 와중에, 대형서점의 독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변화행태는 출판사 입장에서 납득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누가 봐도 '출판계 살리기'가 아닌 '서점 살리기'의 행태로 비춰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대형 오프라인 서점은 단기적이고 구체적으로, 출판사는 장기적이고 추상적으로 접근하는 게 대안일 듯하다. 현 출판계에서 대형서점이 변화를 이끌고 실행에 옮겼으니, 출판사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변화로 인해 더욱 많아질 반품,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은 구매율, 살려야 한다고 몇 년째 울부짖고 있는 도서관의 무용지물화... 출판계 내에서만 논의되고 논란되고 있는 사안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출판사는 양질 콘텐츠 제작, 콘텐츠 다각화, 자체 채널 확보, 단순 모임 형식의 협회 아닌 실질적 협동 협약의 조합 시작 등의 추상적이고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접근이 선행되지 않는 단기간의 베스트셀러에 목 메는 데 급급하다면 머지 않아 낭떠러지를 만날 것이다. 


서점과 출판사 간의 긴밀한 '이인삼각'이 필요하다. 서로 가감없이 단기와 장기, 구체적인 사안과 추상적인 비전을 주고 받으며 눈앞의 현실을 수정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 중심엔 단연 '책 읽는 사회 만들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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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