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후기] 잊지 못할 2017년 여름휴가, '소야도'


스무 살까지 나에게 여름 휴가는 똑같았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러 찾아뵙기 전에 묘지 관리 및 벌초도 할 겸 강원도로 간다. 아버지 형제분들 가족과 함께, 음력으로 추석인 8월 15일을 전후한 1박 2일 내지 2박 3일의 짧은 기간으로 말이다. 벌초를 하고 근처에 유명한 막국수를 먹고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주문진에 가서 회를 먹는다. 끝. 


그래도 어릴 땐 너무 좋아 일 년을 기다리곤 했다. 또래 친척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고, 북적거리며 먼 곳으로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것도 재밌었다. 더군다나 그때는 방학을 이용해 4박 5일씩 있으면서 물놀이도 하고 산도 타고 여러 곳을 두루두루 다니는 등 제대로 된 휴가를 보냈었다.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좋은 추억들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때 그 어린 아이들이 이제는 다 어른이 되어 서먹서먹해진 건 둘째 치고 예전처럼 마음 놓고 재밌게 놀 수 없게 되었다. 각자의 스케줄 때문에 완전체로 모이지 못하는 부분도 한 몫 하겠다. 한 번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 다음에도 왠지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게 모임 아니겠는가. 


나는 군대를 다녀와서도 참여를 했는데 더 나이가 먹고부터는 함께 하지 못했다.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후엔 휴가다운 휴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하기 전, 지금의 아내인 여자친구와도 제대로 된 휴가를 함께 보내지 못했다. 그 역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인데, 결혼 이후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좋은 시간들을 보냈고 보내고 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련다. 


설렘과 기대, 걱정과 부담의 여름휴가


소야도로 2017년 여름휴가를 떠나는 길. ⓒ이유정



결혼을 하고 나선 여름 휴가를 처가댁과 함께 하게 되었다. 치밀하고 꼼꼼하신 장인 어른(이하 '아버님')의 주도 하에 모든 걸 다 챙겨주시는 헌신적인 장모님(이하 '어머님')께서 아내와 나를 케어해 주신다. 작년에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 당일 코스로 새만금간척지 근처를 다녀왔었다. 끝없이 펼쳐진 방조제를 달리며 정신의 피로를 풀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대망의 2017년 올해는 휴가가 오기 한참 전에 스케줄을 맞추고 어디로 가서 어떤 곳에 짐을 풀고 어떤 일로 하루하루를 보낼지 미리 대략이라도 생각을 해두었다. 물론 장인 어른의 주도 하에 말이다. 나에게 있어, 머리가 다 크고 나서 이런 제대로 된 휴가는 아마도 처음일듯. 설렘과 기대가 한껏 부풀었었다. 


반면 아버님, 어머님과의 휴가도 당연히 처음이니, 걱정과 부담도 한껏 부풀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래도 자주 만나는 편이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아니라 그렇게 큰 걱정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내와 나만의, 또는 나만의 휴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다른 불만 또한 없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설렘과 기대가 7이라면 걱정과 부담, 그리고 다른 불만이 3 정도였을 게다. 한편, 아내는 너무너무 좋아했다. 마음이 편한 것 같았다. 우리끼리 휴가를 가게 된다면 우리가 아닌 아내만 챙겨야할 게 너무 많은데, 처가댁과 함께 가니까 생각해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터무니 없이 적게 되는 게 아닌가. 그녀는 진정한 휴가를 보내게 될 거라고, 무진장 편하고 재미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아내의 말을 믿어 보기로!


'소야도', 그곳은 완벽한 휴가처


완벽한 휴가처 '소야도' ⓒ이유정



우리가 갈 곳은 인천 바다에 떠 있는 '소야도'로 정해졌다. 대부도에서 배 타고 2시간 안팎의 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섬. 이른 아침 적당한 시간에 출발해, 적당한 기다림으로 기대와 설렘을 극대화 하고, 그를 실현해줄 배도 타고는 소야도로 향했다. 너무나도 맑은 날씨와 어울리는 천연의 자연 환경이 우리를 반겼다. 


아내와 난 챙겨야 할 게 너무 없었다. 그저 우리 둘의 옷가지와 몇몇 놀이품들만 챙기면 되었다. 반면, 아버님께서는 모든 경비는 물론 휴가 장소, 숙박 장소, 매일매일의 스케줄, 차 운전까지 도맡아주셨다. 어머님께서는 매일매일 삼시 세끼를 완벽하게 책임져 주셨다. 집에서도 잘 챙겨먹지 않는 삼시 세끼를 그곳에선 4일 동안 꼬박꼬박 챙겨먹었고 모르긴 몰라도 살이 많이 찌지 않았을까 싶다. 


막상 가본 소야도, 그리고 우리가 묵게 된(묵을 수밖에 없는) 곳엔 '아무 것도' 없었다. 아주 작은 섬인 소야도에는 무수한 자연 환경이 있을 뿐 카페나 슈퍼마켓, 식당 같은 이른바 문명인의 필수처가 없었다. 처음엔 '당황&황당', 그리곤 '적응'을 거쳐, 지금에는 사무칠 정도로 그리워지는 '만족'이 이어졌다. 그렇다. 그곳은 완벽한 휴가처였다.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한 때를 선물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우린 매일 똑같은 스케줄을 함께 가졌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는 다시 잠들거나 놀면서 오전 내내 방을 떠나지 않는다. 이윽고 점심까지 챙겨 먹고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해변(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몇 시간 동안 물놀이를 하고는 물이 슬슬 빠지는 때부턴 본격적 조개잡이에 진입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조개를 잡고 복귀해 자다가 저녁을 먹고 고스톱을 친다. 적당히 치다가 일찍 잠을 청한다. 아니, 하루 종일 너무 놀았기에 일찍 잠들 수밖에 없다. 


정녕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놀았던 해변. ⓒ이유정



개인적으로 난 원래 낮잠도 잘 안 자고 일찍 잠자리에 들지도 않으며 하루 종일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불안'을 난 그런 식으로 해소하려 하는 것일 테다. 한시라도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의 연속. 당연히 이번 휴가 때도 노트북과 책과 핸드폰을 가져가 무엇이라도 하고자 했다. 


과정과 결과는 내 예상과 정반대. 난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상 생활을 영위할 때 하곤 했던 또는 해야만 했던 것들 말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의 불안 때문에 해야 했던 것들과 누군가의 부탁 또는 명령에 의해 반드시 해야만 했던 것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가서도 휴가 이전에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과 휴가 이후에 밀려들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아주 잘 아는 아내가 그랬다. 어쩐 일로 이렇게 낮잠을 자느냐고. 왜 아무 일도 하지 않느냐고. 표정이 참 편해보인다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그곳이 너무 너무 좋다고 하셨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해주는 진정한 평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고. 그저 먹고 마시고 놀고 자고. 가만히 있어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돈을 쓰러 휴가를 간다. 그래서 휴가갈 만한 곳에는 역설적으로 문명의 이기들이 그 어느 곳보다 많이 들어차 있다. 많이 생각할 것도 없이 제주도만 보아도 단 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반면 이곳은, 소야도는, 오로지 펜션들만 눈에 간간히 띌 뿐이었다. 그 주인들조차도 생필품은 옆의 큰 섬 덕적도나 멀리 인천에서 가져온다고 했다. 이런 곳이 어디있을까 싶다. 정말 다시 없을 휴가를 만든 장본인이다. 


내년이 기다려진다, 진정 휴가다운 휴가


다시 오고 싶은 그곳, 진정한 휴가가 무엇인지 알려준 그곳. ⓒ이유정



내년 여름 휴가가 벌써 기다려진다. 다들 이 곳을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어해서, 다음에도 이곳 소야도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여름 휴가를 떠날 것 같다. 그때는 노트북 따윈 들고 오지 않을 것 같다. 일상에서, 회사에서 했던 수많은 생각들도 들고 오지 않을 것이다. 


휴가가 아니더라도 아버님, 어머님, 아내와 함께 떠나는 그 어떤 여행이라도 기다려진다. 어딜 가서 무엇을 하든 함께 하는 사람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한가족이라는 걸 떠나서라도 그들은 나에게 가장 재밌고 가장 편하고 가장 좋은 사람들이다. 한가족인 게 너무나 좋다. 언제든 함께 할 수 있으니. 


진정 휴가다운 휴가. 일을 위한 재충전도 중요하지만 그 따위 건 잠시 접어두고, 진정 함께 하고픈 이들과 편안하게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곳에서 보내는 것. 난 이번 기회로 일을 하는 와중에 휴가를 다녀오는 게 아니라, 휴가를 위해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고자 한다. 


혹시 기존의 나처럼 불쌍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서 아무 생각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따로 또 같이 즐길 수 있는 이들과 함께 내려놓는 시간을 가지고 와라. 그리고 그런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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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배우열전] 하정우


개인적으로 '하정우'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된 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청어람



2005년, 일병 정기휴가 때였다. TV를 틀어 우연히 보게 된 게 하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현역 군인이 제대로 된 한국 군대 영화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못해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저 상병과 병장은 미래의 내 모습일 것 같고, 저 일병은 현재 내 모습인 것 같고, 저 이등병은 얼마 전 내 모습인 것 같고...


그때 배우 하정우를 처음으로 보았다. 하정우가 분한 유태정 병장의 군대 생활과 제대 이후를 교차 편집해 보여주며, 그의 중학교 적 친구 이승영이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맛물려 누가 진짜 '용서받지 못한 자'인가를 신랄하고 가슴 아프게 전한다. 하정우의 실생활적 면모에 기반한 연극적·영화적 연기를 두루 감상할 수 있는데, 윤종빈 감독이 중요한 역으로 나와 함께 전설적 캐미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하정우의 스크린 데뷔작은 아니다. 그는 2002년에 드라마와 영화로 데뷔해 이듬해와 그 이듬해에도 역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갔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한 자>가 개봉하기 전에 이미 <잠복근무>라는 당시 메이저급 영화에 조연으로 얼굴을 알리기도 했고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와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 위한 방편처럼 느껴진다. 


열일 하정우


'열일' 하정우의 한창 때 작품이자, '대세' 하정우로의 다리가 되어준 작품 <추격자>의 한 장면. ⓒ쇼박스



그는 1998년부터 데뷔를 하고 나서인 2003년까지 거의 매년 한두 작품씩 연극무대에 섰는데, 그 나이 때 배우들이 많이들 듣는 '발연기' 논란 한 번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김용건'이라는 전국민이 누구나 알 만한 배우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버리고 오로지 자기만의 클래스를 만들고자 한, 멀고 험하지만 알차고 지능적인 경력생활이다. 


하정우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윤종빈이다. 이들은 자그마치 4편을 함께 하는데, 하정우는 단연코 어느 한 감독과 그만큼의 영화를 함께 하지 않았다. '페르소나'라고 할까. 이들은 다름 아닌 대학 선후배 관계다. 둘 다 중앙대학교 출신으로 하정우는 1978년생 연극학과, 윤종빈은 1979년생 영화학과. <용서받지 못한 자>는 윤종빈 감독의 졸업작품인데, 하정우를 비롯 학교 선후배를 총동원해서 찍었다고 한다. 결과는 대성공. 이들은 훗날 일명 '윤종빈 사단'이 되어 많은 영화를 함께 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하정우는 말그대로 '열일' 한다. 하정우 하면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먹방과 열일인데, 열일 수식어는 아마 이때부터 그 싹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2년 동안 그는 자그마치 단역, 조주연 가릴 것 없이 6개 영화에 출연한다. 대부분 비대중적이지만, 모든 면에서 그의 연기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8년이다. '대세' 하정우의 시작이다.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2008년 <추격자>야말로 하정우의 이름값을 수직상승시킨 영화다. 희대의 사이코패스 지영민은 2000년대는 물론 한국영화사에 남을 만한 캐릭터로, 하정우는 '능청스럽게' 연기해버린다. <공공의 적>의 사이코패스 조규환이 준 충격을 완전히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다. 10년이 지났어도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는 그 눈빛과 행동, 그의 나이 불과 31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해, 단역 한 편과 주연 세 편을 합쳐 네 편의 영화에 출현했다. 윤종빈 감독과 함께 한 <비스티 보이즈>처럼 조금 아까운 영화도 있고, <멋진 하루>처럼 멋진 영화도 있다. 


대세 하정우


그야말로 '대세' 하정우의 한 가운데에서 흥행과 비평, 이슈 모두 훌륭했던 작품 <터널>의 한 장면. ⓒ쇼박스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하정우라는 배우의 캐릭터가 완벽하게 굳어진 시점이. 사이코패스조차 능청스럽게 연기해버리는, 그만의 특유한 연기 방식이 말이다. 그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사람의 모습을 띤다. 거기에 어떤 '연기적' 요소를 찾기 힘들다. 여타 연기자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톤 앤 매너가 그에겐 없다. 


반면, 지극히 '연극적' 요소는 항상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내 주위에도 있는데, 연극적인 일반인 말이다. 하정우는 그 연극적 요소들을 깨알같이 잘게 부수어 연기 전반에 촘촘히 박는다. 부자연스러움은 옅어지고 신선함과 재미짐이 떠오르는 광경을 우린 목격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아니 2005년 이후 2016년까지 2014년을 제외하고 하정우는 일 년에 두 편 이상 영화에 출현하지 않은 때가 없다. 그리고 최소 한 편 이상 흥행, 비평, 이슈 등으로 한 해 영화계를 흔들 만한 메이저급 영화에 출현한다. 나열해 보자면 2009년 <국가대표>, 2010년 <황해>, 2011년 <의뢰인>, 2012년 <범죄와의 전쟁>, 2013년 <베를린> <더 테러 라이브>, 2014년 <군도>, 2015년 <암살>, 2016년 <터널> <아가씨>... 누군가는 한 편 출현하기에도 힘들 영화들이다. 그리고 올해에는 엄청난 제작비와 함께 그 만듦새 때문에 엄청난 걱정거리(?)를 안기고 있는 <신과 함께>가 대기 중이다. 


하정우 하면 다가오는 이미지가 '믿음'과 '탄탄' 등일 것이다. 탄탄한 연기에 기반한 믿음가는 영화 또는 캐릭터랄까. 그건 하정우라는 사람한테까지도 충분히 적용될 만하다. 그는 이에 부응하듯 배우라는 타이틀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하고 도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종합예술인 하정우


'아티스트' 하정우로서의 작품들이다. 하정우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인이 아닌가. ⓒ하정우



영화 감독 타이틀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2013년 <롤러코스터>와 2015년 <허삼관>을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했다. <허삼관>에는 주연까지 도맡아 했다. 비록 두 작품 모두 흥행 면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고 비평 면에서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그 도전 자체로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배우 열일로도 충분히 바쁠 텐데, 언제 글을 쓰고 연출까지 했을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는 엄연히 수많은 아트페어와 개인전까지 연 '아티스트'다. 


하정우 열일의 절정기이자 대세 하정우의 시작점인 2008년, 그는 이미 아티스트로의 길을 암중모색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국가대표급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때 2009년, 자원순환 정크아트 공모전에 작품을 기증한다. 그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데, 캐릭터의 이미지와 심리를 연상시키는 그림들이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독백과 세상을 향한 방백을 그림으로 승화시키며, 인간, 배우, 남자로서 스크린에서 하지 못했던 또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리라. 


그야말로 하정우를 '종합예술인'이라고 칭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배우라는 타이틀에 한정짓기에는 하정우라는 사람의 면면이 너무 방대하고 이채롭다. 연극, TV드라마, 영화, 시나리오 작가, 감독. 그리고 에세이 작가, 그림 작가까지. 그 자체로 현대 '종합예술'의 결정판으로 여겨지는 영화의 한 가운데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그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하지만 같은 길을 가는 방면을 개척해 역시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는 그.


이제 좀 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지만, 그의 이름 석 자가 아로새긴 예정작들이 즐비하다. 우린 그저 즐거울 뿐이다. 열일하는 그가 부러우면서 믿음직하고, 한없이 대세인 그가 계속 대세였으면 좋겠으며, 종합예술의 경지에 오른 그가 더 멀리 오래 비상하기 위해 조금은 몸을 추스렸으면 한다. 오래된 팬으로서 갖는 아이러니이지만, 여하튼 그를 여기저기에서 꾸준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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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열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망해 가는' 일본 영화의 버팀목,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긴 역사, 엄청난 제작 편수와 관객수, 질 높은 작품성까지 겸비한 '일본 영화', 하지만 급격한 쇠락의 길로 접어든 지 꽤 되었다고 한다. 작품의 질보다 흥행에 더 초점을 맞춘 결과라 하겠다. 그래도 일본인들의 일본 영화 사랑은 높다. 단, 여기서 말하는 일본 영화는 여전히 일본의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만화 원작 위주다. 일례로, 그나마 일본이 자랑하는 현대 일본 영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특급작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러브라이브> 극장판에 밀려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렇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현대 일본 실사 영화의 마지막 보루 같은 느낌을 준다. 모든 일본 영화인들이 그만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바다 건너서도 느낄 수 있다. 그는 지난 20년 넘게 그 기대를 충족시켜 왔다. 물론 부침이 없지 않았다. 스타일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은근히 욕을 먹기도 했을 테다. 여하튼 그는 일본 영화의 버팀목이다. 


충격적 데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충격적 데뷔작 <환상의 빛>. ⓒ씨네룩스



우린 영화 감독들의 충격적인 데뷔를 많이 접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파이크 존즈의 <존 말코비치 되기>,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창동의 <초록 물고기>,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장이머우의 <붉은 수수밭> 등. 1970~90년대인데,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이후엔 많이 접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이 있다. 1995년작으로, 자그마치 20년이 넘었다. 그는 명문 와세대학 문학부를 나온 문학수재인데, TV 다큐멘터리 연출을 하다가 이 작품으로 장편영화 데뷔를 한다. 그래서인지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였고 다큐멘터리적 작풍이 다분하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그보다 정적인 구도에 따른 미장셴에 집착했던 것 같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케무샤>가 보여주었던 구도가 일면 엿보인다. 거기에 상실과 기억의 소재가 주를 이룬다. 주인공 유미코는 계속되는 상실을 겪지만 그럼에도 살아간다. 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상실 전의 기억들이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그의 국제영화제상 수집은 이미 데뷔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환상의 빛>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영화제 제52회 촬영상을 수상한다. 이후 불과 수 개의 영화에서 족히 수백 개는 될 듯한 상들을 수집한다. 세계 3대 영화제 진출만 보아도, 제5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 <디스턴스>, 제5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 <아무도 모른다>, 제62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진출 <공기인형>, 제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과 경쟁부문 진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제6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바닷마을 다이어리>, 제69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진출 <태풍이 지나가고>. 즉, 그의 필모그래피 절반 이상이다. 


'가족'에 천착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최근까지 계속 이어가고 있는 '가족' 천착의 진정한 시작 <걸어도 걸어도>. ⓒ영화사 진진



그의 영화가 조금 바뀌게 되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일면 이해가 가는 <하나>부터이다. 이 영화는 그의 영화 이력 중 가장 범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사무라이의 복수극을 통해 '가족'을 말하고자 한다. 물론 소소하고 잔잔하게 행복을 이야기한 무난한 이 작품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닌 이가 만들었다면 충분한 호평을 받았을 것이다. 


여하튼 그는 이후 10여 년 동안 가족에 천착한다. <하나> 이후에 나와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대표하는 확실한 가족 영화로 자리매김한 <걸어도 걸어도>를 필두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까지 쭉 이어졌다. 그 사이에 <공기인형> 정도가 튀는데, 아마 가족이 아닌 소재를 새롭게 시작하려다가 실패한 케이스라 하겠다. 


그의 필모 상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이 이 부분이다. 계속되는 천착은 그만의 세계를 확고히 하며 그에 걸맞는 거장의 칭호를 그에게 안겨주는 등 좋은 결과을 낳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을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모두가 아는 시기가 왔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나온 <태풍이 지나가고>가 그 분기점이어야 하고,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기대감이 든다. 


밝은 소소함에 날카롭고 서늘한 게 깃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스타일을 규정하는 '밝은 소소함과 날카롭고 서늘함의 조화와 공존', 그걸 잘 볼 수 있는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티캐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20년 넘게 천착하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이건 아마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을 그만의 것인데, 밝은듯 쓸쓸한듯 유쾌한듯 서늘한듯 한 분위기이다. 대체로 그의 영화 분위기는 밝고 유쾌한 것에 가깝다. 소소하고 잔잔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내재되어 있는 혹은 드러내지 않는 사건사고는 가히 인생을 흔들 만하다. 상대적으로 괜찮은 영화일수록 이 구도가 극에 달하는 것 같다.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의 필모 전반에 걸쳐 있다. 기억에 남는 건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다. <공기인형>은 말할 것도 없겠다. 그 밝은 소소함엔 특별하고 날카롭고 서늘한 것이 있다. 그게 인생이라는 걸까? 그게 인간이 가진 면모들이라는 걸까? 이 기조는 그가 지난 10여 년간 천착하는 '가족'이라는 키워드와는 달리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도 무방할 것 같다. 아니 그러길 바란다. 보편성이 담보되지 않는 특별함이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이 나오면 주저 없이 보고 악착 같이 평할 준비가 되어 있다. 1~2년에 한 편씩 꾸준히 신작을 내고 있는 걸 보면, 내년 안에는 차기작이 나올 것 같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수상 후보에 오르고 무수한 호평이 쏟아질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나도 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바란다. 그의 변화를. 비록 그동안 실패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덕분에 더 나은 길을 걸어올 수 있지 않았나 반추해본다. 자기 혁신적 모습의 일환이라면, 무엇이라도 괜찮다. 기대와 설렘과 불안의 삼중주로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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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난 10월 29일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3'에 이어집니다.

숨가쁘게 달려온 '출간 연재'가 끝났습니다^^ 혹시! 더 원하시는 분이 많다면 더 이어나가보도록 하겠지만, 책을 구입해서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ㅋ 그리고 시리즈가 계속 이어나간다고 하니~ 소장해보심이? 저는 다 구입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출간 연재'를 카카오 채널에서 연재해 왔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블로그와 카카오 채널에 동시 연재 해보았어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해보고 싶네요^^



나는 상자로 돌아가서 무서운 기구를 꺼내고, 개구기도 함께 꺼내서 앞니에 끼우고 말의 입이 크게 벌어질 때까지 톱니바퀴로 개구기를 열었다. 그러자 모든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문제의 원인은 거기에 있었다. 입의 반대쪽에도 첫 번째 것과 똑같은 거대한 가지가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이제 나는 그것을 두 개나 잘라내야 했다.

늙은 수말은 다 알아차린 것처럼 눈을 감다시피 하고 참을성 있게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발가락을 꼬부린 채 작업을 계속했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이빨이 부러지자 하얀 테를 두른 눈이 크게 뜨였지만, 그 눈에는 가볍게 놀란 표정이 떠올랐을 뿐이다. 말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반대쪽 뼈를 잘라내는 동안에도 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개구기가 턱을 억지로 벌려놓고 있었기 때문에 말은 따분해서 하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기구를 치우는 동안 존 노인은 풀밭에서 뼛조각을 집어 들고 흥미롭게 살펴보았다.

“가엾은 녀석. 잘했소, 젊은 선생. 이젠 녀석들도 기분이 훨씬 좋아지겠지.”

돌아오는 길에 건초꾸러미에서 해방된 존 노인은 아까보다 두 배나 빨리 걸을 수 있었고, 쇠스랑을 지팡이처럼 사용하여 맹렬한 속도로 언덕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나는 기구 상자를 몇 분마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기면서 숨을 헐떡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절반쯤 올라갔을 때 기구 상자가 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 기회에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한숨 돌렸다. 존 노인이 초조하게 중얼거리는 동안 나는 뒤에 남겨두고 온 말 두 마리를 돌아보았다. 말들은 여울로 돌아가 놀고 있었다. 활기차게 서로 쫓아다니고 발로 물을 튀겼다. 벼랑은 그 장면에 어두운 배경막을 이루었다. 반짝이는 강물, 청동색과 황금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나무들, 향기로운 초록색 풀밭.

농가 마당으로 돌아오자 존 노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한두 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했다.

“고맙소, 젊은 선생.” 그러고는 홱 돌아서서 가버렸다.

내가 일을 무사히 끝낸 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구 상자를 자동차 트렁크에 집어넣고 있을 때, 아까 언덕을 내려가는 도중에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눈에 띄었다. 그는 양지바른 구석에 여느 때처럼 쾌활하게 앉아, 수북이 쌓인 자루에 등을 기대고 낡은 군용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그 늙은 짐승들을 보러 내려갔었군요?”

“영감님은 규칙적으로 그 말들을 찾아갑니까?”

“규칙적이라고요? 날마다 가죠. 날마다 영감님이 거기로 터벅터벅 내려가는 걸 볼 수 있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어요. 그리고 갈 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가져가지요. 곡식자루나 잠자리에 깔아줄 짚이나.”

“그런 일을 12년 동안이나 했군요?”

남자는 보온병 마개를 열고 홍차 한 잔을 따랐다.

“그동안 말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 녀석들을 말고기 장수한테 팔았다면 목돈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상하지 않나요?”

“맞아요. 이상한 일이네요.”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은 병원으로 돌아오는 동안 줄곧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날 아침에 파넌과 나눈 대화를 돌이켜보았다. 그때 우리는 가축을 많이 키우는 사람이 개개의 동물에게 애정을 느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방금 다녀온 목장에는 축사마다 가축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존 노인은 가축을 수백 마리나 키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날씨와 상관없이 날마다 그 언덕을 내려가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왜 그는 그 늙은 말들의 말년을 평화와 아름다움으로 채웠을까? 왜 그는 자신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마지막 안락과 평안을 그 말들에게 주었을까?

그것은 정녕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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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7일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2'에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들은 까불면서 장난을 치려고 존 노인의 주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발을 구르고, 머리를 흔들고, 그의 모자를 주둥이로 눌러서 눈을 덮어버리기도 했다.

“그만 해!” 그가 외쳤다. 하지만 그는 암말의 갈기를 잡아당기고 수말의 목을 쓰다듬었다.

“이 말들이 마지막으로 일을 한 게 언젭니까?” 나는 물었다.

“한 12년쯤 됐을 거요.”

나는 존 노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12년 동안 말들은 줄곧 여기 있었나요?”

“여기서 그냥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놀고…… 은퇴한 거나 마찬가지요. 그때까지 열심히 일했으니까 이만한 보상은 받을 만하지.” 그는 잠시 어깨를 웅크리고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말없이 서 있다가 마치 혼잣말처럼 조용히 말했다. “내가 노예처럼 일하던 무렵엔 이 녀석들도 노예나 같았지.”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연푸른 눈 속에서 그가 동물들과 함께 나눈 고통과 고난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감추어졌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12년이라니! 도대체 이 말들은 몇 살이나 됐습니까?”

존 노인의 입이 한쪽 구석만 말려 올라갔다.

“당신이 수의사니까 나한테 알려줘 보시오.”

나는 이빨의 마모도와 경사도 같은, 말의 나이를 판정하는 여러 단서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리고 얌전히 서 있는 암말의 윗입술을 뒤집고 이빨을 살펴보았다.

“맙소사!” 나는 놀라서 숨을 헐떡거렸다. “이런 건 처음 봅니다.”

앞니는 엄청나게 길었고, 앞으로 튀어나와 약 45도 각도로 위·아랫니가 서로 만나고 있었다. 어금니에 홈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닳아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웃으면서 존 노인을 돌아보았다.

“나이가 몇 살인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영감님이 말씀해주셔야겠는데요.”

“암말은 서른 살쯤 됐고, 수놈은 한두 살 어려요. 암말은 새끼를 열다섯 마리 낳았고, 이빨에 약간 문제가 있는 것 말고는 병을 앓은 적이 없다오. 이빨을 몇 번 갈아주었는데, 이제 또 갈아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둘 다 쇠약해지고 있어서, 건초를 씹다가 입에서 조금씩 흘리고 있지. 수놈이 더 심해서 먹이를 씹는 것도 이 녀석한테는 아주 힘든 일이오.”

나는 암말의 입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혀를 잡고 한쪽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어금니를 재빨리 조사해보니 내가 의심한 대로 윗니의 바깥쪽 가장자리가 너무 많이 자라서 톱니처럼 깔쭉깔쭉해 볼을 자극했다. 아래쪽 어금니의 안쪽 가장자리도 비슷한 상태였고, 그 때문에 혀의 피부가 약간 벗겨져 있었다.

“제가 곧 암말을 편안하게 해주겠습니다. 저 날카로운 이빨 가장자리를 줄로 갈아내면 신품과 마찬가지로 좋아질 겁니다.”

나는 기구 상자에서 줄을 꺼낸 다음, 한 손으로는 말의 혀를 잡고 뾰족한 부분이 충분히 줄어들 때까지 이따금 손가락으로 확인하면서 이빨의 거친 표면을 갈아냈다.

“이 정도면 되겠어요.” 잠시 후에 나는 말했다. “너무 매끄럽게 갈고 싶지는 않네요. 그러면 말이 먹이를 으깨지 못할 테니까요.”

존 노인은 약간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소. 이젠 다른 녀석을 좀 봐주시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저 녀석이 훨씬 더 잘못되어 있다오.”

나는 수말의 이빨을 만져보았다.

“암말과 똑같은데요. 이 녀석도 금방 고쳐놓겠습니다.”

하지만 줄을 밀 때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줄이 입 뒤쪽까지 완전히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줄을 막고 있었다. 나는 줄질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손가락을 최대한 밀어 넣어 탐색해보았다. 그리고 이상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될 장애물이었다. 그것은 입천장에서 아래쪽으로 튀어나온 커다란 뼈 같았다.

이제는 제대로 봐야 할 때였다. 나는 회중전등을 꺼내 혀 뒤쪽을 비추었다. 이제 문제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위쪽의 마지막 어금니가 아랫니 위에 겹쳐져서 뒤쪽 가장자리가 이상할 만큼 비대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8센티미터쯤 되는 칼 모양의 미늘이 잇몸의 부드러운 조직 속으로 뚫고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것은 뽑아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도 당장. 나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는 것을 겨우 억눌렀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가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긴 손잡이가 달린 그 가위에는 가로대로 작동하는 나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보기만 해도 오싹했다. 나는 누군가가 풍선을 부는 것도 무서워서 못 보는 사람인데, 이것은 그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우선 가위의 날카로운 날을 이빨에 고정시키고 가로대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린다. 곧 이빨이 거대한 지레장치 밑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언제라도 이빨이 부러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빨이 부러질 때는 누군가가 귀에 대고 소총을 발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개 큰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이때였다. 하지만 다행히 이 말은 얌전한 늙은 말이니까, 뒷다리로 일어나서 춤을 추며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자란 부분에는 신경이 공급되지 않으니까, 말은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소음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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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1'에 이어집니다. 



데너비 농장은 그냥 규모가 큰 농장이 아니라 한 남자의 인내와 기술이 낳은 기념비적 농장이었다. 오래되었지만 아름다운 집, 넓은 축사들, 낮은 산비탈을 따라 넓게 펼쳐져 있는 목초지는 모두 존 스킵턴 노인이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이룩한 성취의 증거였다. 그는 교육도 전혀 받지 못한 농장 일꾼으로 출발하여 이제 부유한 농장주가 되어 있었다.

그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존 노인은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지 못했을 만큼 힘든 일을 평생 계속해왔다. 그 생애에는 아내나 가족이 들어갈 여지도 전혀 없었고 육체적 쾌락을 누릴 여유도 없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에게는 농사 문제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있었고, 그것이 존 노인을 이 지역의 전설로 만들어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 길로 갈 때 나는 다른 길로 간다”는 그가 즐겨 인용하는 격언이었고, 다른 농장들이 파산으로 내몰리고 있던 어려운 시기에도 그의 농장들이 돈을 번 것은 사실이다. 데너비는 존 노인의 여러 농장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데일 저지대에 각각 150헥타르쯤 되는 넓은 경작지를 두 개나 갖고 있었다.

그는 승리를 얻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가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정복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오랫동안 승산 없는 싸움을 했고, 너무 격렬하게 자신을 몰아대서 이제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온갖 사치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밑에서 일하는 일꾼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조차도 존 영감보다는 나은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 잠시 멈춰 서서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 집을 바라보았다. 혹독한 기후를 300년 넘게 견뎌온 그 저택의 우아함에 나는 새삼 감탄했다. 사람들은 데너비 저택을 보려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서, 납으로 씌운 높은 창문이 달려 있고 이끼가 자란 낡은 기와 위로 거대한 굴뚝들이 우뚝 솟아 있는 우아한 장원 저택의 사진을 찍었다. 방치된 정원을 지나고 넓은 계단을 올라가 거대한 문 위에 돌로 만든 넓은 아치가 씌워져 있는 입구까지 가보는 사람도 있었다. 옛날에는 중간 문설주가 있는 그 여닫이 창문에서는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쓴 아름다운 여인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고, 주름장식이 달린 저고리와 반바지를 입은 기사가 끝이 뾰족한 갓돌을 얹은 높은 담장 아래를 걷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존 노인이 초조하게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을 뿐이었다. 단추도 다 떨어지고 누더기가 된 그의 코트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허리에 두른 기다란 삼실 한 가닥뿐이었다.

“잠깐 들어오시오, 젊은 선생.” 그가 외쳤다. “갚아야 할 외상값이 조금 있다오.”

그는 앞장서서 집 뒤쪽으로 돌아갔고, 나는 요크셔에서는 청구서가 항상 ‘약간의 외상값’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를 따라갔다. 우리는 판석이 깔린 부엌을 지나 우아하고 널찍하지만 가구라고는 탁자 하나와 나무의자 몇 개와 부서진 소파 하나밖에 없는 방으로 들어갔다.

존 노인은 벽난로로 다가가서 시계 뒤에서 종이 다발을 꺼냈다. 그리고 종이 다발을 뒤져서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은 다음, 수표책을 꺼내 내 앞에 탁 내려놓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청구서를 꺼내 거기에 적힌 금액을 수표에 옮겨 쓴 다음 서명해달라고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중하게 정신을 집중하여 글씨를 썼다. 이목구비가 작고 세파에 찌든 얼굴을 낮게 숙여서, 낡은 헝겊 모자의 앞챙이 펜에 닿을 지경이었다. 바지가 다리 위쪽으로 치켜 올라가서, 의자에 앉으면 앙상한 장딴지와 복사뼈가 드러났다. 그는 양말도 신지 않고 맨발로 무거운 장화를 신고 있었다.

내가 수표를 주머니에 넣자 존 노인은 벌떡 일어났다.

“강까지 걸어가야 할 거요. 말들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는 거의 뛰다시피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갔다.

나는 기구 상자를 자동차 트렁크에서 꺼냈다. 이상한 일이지만 내가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닐 때마다 내 환자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상자는 납으로 가득 찬 것처럼 무거웠고, 담장으로 둘러싸인 목초지를 지나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가벼워지지는 않을 터였다.

존 노인은 쇠스랑으로 건초꾸러미를 푹 찔러서 자루를 어깨 위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경쾌한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통용문을 차례로 지나갔고, 목초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를 때가 많았다. 존 노인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나는 숨을 조금 헐떡거리면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그가 나보다 적어도 쉰 살은 더 많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절반쯤 왔을 때 우리는 오랜 전통의 ‘담쌓기’ 작업을 하고 있는 남자들과 마주쳤다. 데일스의 푸른 언덕 비탈 곳곳에 무늬를 그리고 있는 돌담에 뚫린 구멍을 보수하는 작업이었다. 남자들 가운데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영감님.” 그는 쾌활하게 외쳤다.

“안녕이고 뭐고 어서 일이나 해.” 존 노인은 투덜거리며 대꾸했고, 사내는 칭찬이라도 받은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비탈을 다 내려가 평지에 도착하자 나는 기뻤다. 내 팔은 몇 센티나 늘어난 것 같았고,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존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보였다. 그가 어깨에 걸쳤던 쇠스랑을 흔들자, 갈퀴에 꽂혀 있던 건초꾸러미가 풀밭에 쿵 떨어졌다.

말 두 마리가 그 소리를 듣고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좁은 강변은 초록빛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잔디밭으로 차츰 변했다. 그 강변 바로 너머에 자갈이 깔린 여울이 있었다. 말들은 그 여울에 발목까지 물에 잠긴 채 서 있었다. 말들은 우리가 접근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서로 코와 꼬리를 맞대고 턱을 상대의 등에 부드럽게 문질렀다. 건너편 강둑 위로 튀어나온 높은 벼랑이 바람을 막아주었고, 우리 양쪽에는 참나무와 너도밤나무가 우거진 숲이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말들이 아주 멋진 곳에 있군요.” 나는 말했다.

“그래요. 더운 날씨에도 여기서는 시원하게 지낼 수 있고, 겨울이 오면 헛간으로 가지요.” 존 노인은 문이 하나뿐인 건물을 가리켰다. 벽이 두껍고 지붕이 낮은 건물이었다. “말들은 제 마음대로 오갈 수 있지.”

그의 목소리에 말들이 뻣뻣하게 굳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쳐서 강물에서 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말들이 정말로 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암말은 밤색이었고 수놈은 적갈색이었지만, 회색 털이 너무 많이 섞여서 둘 다 회색이나 흰색 얼룩이 있는 말처럼 보였다. 특히 얼굴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하얀 털이 얼굴 전체에 흩뿌려져 있고 눈은 움푹 들어가고 눈 위에 깊은 구멍이 있어서, 정말로 고귀해 보였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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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제임스 헤리엇'이라는 영국 수의사의 이야기 시리즈가 국내에 다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에 계속해서 재출간되었는데, 2010년대에도 어김 없이 돌아왔다더군요. 전 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 판매가 되었고,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2,0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고 해요. 


이번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이 1탄이고, 올해 말에서 내년까지 계속 이어진다고 해요. 네이버 책/문화판에서 10.11~10.20까지 '출간 전 연재'가 있었고, 제 블로그에서 특별히 4회에 걸쳐 '출간 연재'가 있겠습니다. 사실 맛보기죠~ 아시아 출판사에서 협조해주셨습니다^^ 본문 36화 중에, 25화에 해당됩니다. 다시 4회를 쪼갰어요. 오랜만에 정말 재밌는 글 읽은 것 같아요. 많이 봐주세요!



나는 아침 식탁에 앉아서 아침 햇살에 가을 안개가 차츰 사라지는 것을 내다보았다. 오늘도 맑은 날씨가 될 것 같았지만, 낡은 건물 안에는 냉기가 감돌고 있어서 몇 달 동안 계속될 혹독한 겨울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음을 상기시켜주듯 오슬오슬 추웠다.

“여기 이런 기사가 실려 있군.” 파넌이 《대러비 타임스》지를 커피포트에 조심스럽게 세우면서 말했다. “농부들은 키우는 동물들한테 동정심이 전혀 없다고.”

나는 토스트에 버터를 바르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잔인하다는 뜻인가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농부에게 가축은 영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 친구는 주장하고 있어. 가축을 대하는 농부의 태도에는 어떤 감정도…… 애정이 전혀 없다는 얘기지.”

“농부들이 모두 킷 빌턴 같다면 도저히 해나가지 못할 겁니다. 모두 미쳐버릴 거예요.”

킷 빌턴은 트럭 운전수였는데, 대러비의 노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가족의 식용으로 마당 한구석에 돼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돼지를 잡아야 할 때가 오면 킷이 사흘 동안 흐느껴 운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그가 돼지를 잡았을 때 우연히 그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와 딸은 고기를 삶아서 소금에 절이기 위해 열심히 고기를 썰고 있었지만 킷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화덕 옆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100킬로그램이나 되는 곡식자루를 번쩍 들어서 트럭 짐칸에 던질 수 있는 거구의 사내였지만, 내 손을 움켜쥐고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 헤리엇 선생님. 그 돼지는 기독교도 같았어요. 정말로 꼭 기독교도 같았다니까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파넌은 몸을 앞으로 구부려서 홀 부인이 손수 구운 빵을 한 조각 잘랐다. “하지만 킷은 진짜 농부가 아니야. 이 기사가 다루고 있는 건 많은 동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가축한테 휘말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거지. 쉰 마리의 암소한테서 젖을 짜는 낙농가가 그 암소들을 정말로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암소들은 단순히 우유를 생산하는 기계에 불과할까?”

“흥미로운 문제군요. 원장님은 가축의 수를 강조하신 것 같은데, 고지대에는 가축을 몇 마리만 키우는 농부도 많습니다. 그들은 암소한테 이름을 붙여주지요. 데이지라든가 메이벨이라든가. 요전 날에는 키펄러그스라고 불리는 암소도 만났습니다. 이런 농부들은 자기가 키우는 가축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가축을 키우는 농부들이 어떻게 애정을 가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파넌은 식탁에서 일어나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아마 자네 말이 맞을 거야. 어쨌든 오늘 아침에는 자네를 정말로 많은 가축을 키우는 농부한테 보낼 거야. 데너비 농장의 존 스킵턴이라는 사람인데, 이빨을 갈아야 할 말이 있다는군. 늙은 말 두어 마리가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인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니까 기구를 모두 챙겨서 가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복도를 지나 작은 방으로 가서 치과용 기구를 조사했다. 큰 동물의 이빨을 치료해야 할 때면 언제나 중세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고, 말이 짐수레를 끌던 시대에는 그것이 정기적인 일이었다. 가장 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어린 말의 낭치(狼齒: 앞어금니 앞쪽에 있는 작은 어금니)를 뽑는 일이었다. 이 이빨이 왜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의 어금니 바로 앞에 작은 낭치가 있었다. 어린 말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낭치가 책임을 뒤집어썼다.

퇴화하여 흔적만 남은 작은 이빨은 말의 건강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고 문제는 아마 기생충 때문일 거라고 수의사들이 항의해도 소용이 없었다. 농부들은 완강했다. 어쨌든 그 이빨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끝이 둘로 갈라진 금속 막대를 이빨에 대고 나무망치로 때려서 이를 뽑았다. 낭치는 제대로 된 뿌리가 없기 때문에 뽑아도 별로 아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말은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가 망치로 한 번 때릴 때마다 말은 대개 두세 번쯤 앞발을 들어 올려 우리의 귀 주위에서 휘두르곤 했다.

이 일을 끝내면, 단지 농부를 만족시키기 위해 잠깐 마술을 행했을 뿐이라고 말해주곤 했지만, 곤혹스러운 것은 그 후 말의 상태가 호전되고 그때부터는 계속 잘 자란다는 것이었다. 농부들은 우리가 치료비를 더 많이 청구할까 두려워 대개는 우리의 수고가 성공한 것에 대해 침묵을 지키지만, 이 경우에는 조심성을 모두 던져버렸다. 그들은 시장 건너편에서 우리를 보면 큰 소리로 외치곤 했다. “이봐요, 당신이 낭치를 뽑아준 말을 기억하슈? 그 말이 아주 좋아졌어요. 낭치가 문제였던 거요.”

나는 치과용 기구를 떨떠름한 눈으로 다시 살펴보았다. 60센티미터 길이의 팔이 달린 겸자, 날카로운 턱을 가진 가위, 개구기, 망치와 정, 줄. 마치 종교재판소의 조용한 구석에 있는 고문 기구들 같았다. 우리는 손잡이가 달린 길쭉한 나무상자에 그 기구들을 넣어서 갖고 다녔다. 나는 꽤 많은 기구를 골라서 나무상자에 담고 자동차로 가져갔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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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인터뷰] '파주북소리2016' 이근욱 총감독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 북 페스티벌(책 축제)은 어느 때보다 성황이다. 왜 일까. 답은 생각 외로 금방 나온다. 북 페스티벌을 통해서라도 책을 읽히게 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북 페스티벌에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 특히 책을 잘 구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하고 프로그램을 구경하며,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었으니까. 축제도 축제지만 저렴한 가격의 책 구입이 우선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2014년 10월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저렴한 가격의 책 구입 메리트는 사라졌다. 북 페스티벌은 한순간에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2015년, 그리고 2016년 북 페스티벌은 과도기 또는 혼란기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북 페스티벌 중 하나인 '파주북소리', 2016년에도 열린다. 작년 2015년에는 다녀온 사람의 말을 빌려보면 체감할 만큼 방문자가 떨어졌던 과도기였다는데, 이번엔 어떨까. 프로그램 일면을 보니 큰 결단을 내린 듯하다. 프로그램과 스테이지 체제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체계적이다. 그 모든 체제를 기획한, 향후 '파주북소리'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이번 '파주북소리2016'의 이근욱 총감독을 만나보았다. 가히 역사적 중책을 맡게 되어서 일까, 질문도 던지기 전에 '파주출판도시'와 '파주북소리'의 대략적 개요를 설명해주었다. 


'파주북소리2016' 이근욱 총감독 ⓒ최지애



"1997년부터인가 파주출판단지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어요. 논의가 시작된 건 그로부터 10여 년 전으로 알고 있고요. 우리나라 산업단지가 52개인데, 파주출판단지가 유일한 예술산업단지죠. 매우 특별한 곳이에요. 2007년에 사업이 완료되었어요. 1단계, 즉 1단지가 완공된 거죠. 이곳은 출판이 중심이에요. 그 후 바로 그전부터 논의가 되었던 2단계, 즉 2단지 사업이 시작되었어요. 이곳은 영상이 중심이고요. 내년 2017년에 완료되지요. 논의부터 시작해 30년의 사업이 완료된 거예요. 정식 명칭이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인데, 다른 산업단지와 차별을 둬야 한다는 취지 하에 '파주출판도시'라는 가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1단지에는 출판사를 비롯해 약 300개의 출판 관련 회사들이 입주했어요. 애당초 건물 하나에 회사 하나가 들어가게끔 추진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출판사가 아무리 커도 건물 하나가 통째로 필요하겠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어린이를 위한 체험장과 어른을 위한 카페로 1층을 썼죠. 그렇게 수많은 출판사가 모였으니 시너지를 일으킬 만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대표적인 게 북 페스티벌이 있겠죠. 올해로 벌써 14회를 맞이하는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가 먼저 테이프를 끊었어요. 아직 1단지가 완공되지 전이었죠. 그로부터 8년 후에 '파주북소리'가 시작되었어요. 다른 북 페스티벌과 차별되는 무엇을 지향하려 했다고 해요."


북 페스티벌 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책 구입하고 여러 유명한 작가들 보고 이것저것 출판사에서 챙겨주는 상품도 받고 이벤트도 참여하고 그러지 않나요? '파주북소리'는 어떤 게 달랐죠?


"파주출판도시에는 출판 관련 회사들이 많이 입주해 있어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출판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죠. 그래서 파주북소리는 출판인과 출판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저렴한 가격에 책을 살 수 있는 메리트를 가지게 기획되었어요. 그럼에도 방문하시는 대부분의 분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 오는 건 아무래도 저렴한 가격의 책이었죠."


그런데 2014년 10월부로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책을 저렴한 가격으로 팔 수 없게 되지 않았나요? 분명 타격이 있었을 텐데. 


"책 파는 걸 위주로 하는 북 페스티벌은 작년에 직격탄을 맞았을 듯해요. 반면 파주북소리는 도서 판매보다 프로그램에 더 힘을 실어서 괜찮았죠. 그렇지만 방문자분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을지 모르니 속단할 순 없죠. 저도 방문자수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하네요. 일종의 과도기였다는 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올해도 과도기는 이어질 텐데, 그래도 탈바꿈했으니 기대해도 좋을 듯 싶어요."


저를 '코디네이터'라고 불러주세요


아무래도 총감독님께서 모든 걸 기획 하셨을 듯한데, 언제부터 파주북소리에 관여하게 되셨나요? 


"작년에 운영위원으로 파주북소리에 발을 들여놨어요. 제가 본래 하는 일이 출판, 기획, 행사 같은 것들이거든요. 작년에 상당한 타격을 받고, '이런 식으론 안 되겠다' 싶었고, 방향을 다잡아줄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맡겨야겠다 하는 찰나, 운영위원 중에서 제가 추대된 거예요. 총감독 체제는 올해 처음 생겼죠."


'파주북소리2016' 이근욱 총감독 ⓒ이근욱



출판, 기획, 행사 일을 하신다고 했는데, 감독님에 대해서 조금 더 알려주세요. 이번 '파주북소리2016'만의 방향성을 아는 데 주요하게 참고가 될 것 같아요.


"저는 성공회대에서 신문방송과 예술경영, 문화기획을 공부했어요.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 눌러 앉아서 공부를 계속했는데, 그곳의 성격이 공연, 축제, 문화예술교육 이런 거예요. 아, 지금은 모교 겸임교수로 있어요. 한편 저는 출판, 잡지, 전시기획 이런 것들을 했어요. 시간이 가면서 더 많은 것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전자책, 문화콘텐츠에도 관심이 있어서 강의도 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잡다하게 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점적으로 스토리텔링과 문학의 접점을 탐색하는 작업을 합니다."


조금 더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왜 그런 일을 하게 되셨어요? 시작이 있을까요? 


"마쓰오카 세이고의 <지의 편집공학>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일본 최고의 독서가인데, 다양한 분야를 연결해 지식의 세계를 재편한 사람이에요. 그 분이 창조한 분야에 영향을 받아서, 그때 하고 있던 출판, 잡지, 전시기획에 편집을 접목시켰죠. 그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최근에 와서 조금 생각이 바뀐 게 있는데, '원 소스 멀티 유즈'에 관한 거예요. 저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나 빵 터뜨리는 게 메인이 되서는 안 된다고 본 거죠. 대신 '트렌스 미디어'가 필요해요. 미디어 또는 콘텐츠 간의 경계를 넘어서 서로 결합하고 융합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문화 코디네이터'라고 부르고 싶어요. 이번 '파주북소리2016'도 그 일환이라고 보면 됩니다."


경계를 넘어 결합하고 융합하는 축제


파주북소리2016를 통해 트렌스 미디어를 어떤 식으로 보여주려 하셨나요?


"한번 생각해보죠. 예술 페스티벌이 몇몇 있죠? 영화, 음악을 예로 들어보죠. 영화 페스티벌은 어떤 식이죠? 영화를 상영해주는 건 물론이고 감독이나 배우들이 나와서 관객이랑 소통하죠. 또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게 해주지 않나요. 관객몰이를 위한 홍보도 홍보지만, '주체들의 축제'라는 성격이 강해요. 음악 페스티벌은 어떤가요. 그야말로 주체들이 축제의 주체가 되죠. 노래 부르고 연주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에요. 반면 북 페스티벌은 어떤가요? 책 판매가 우선이고, 나머지는 판매를 위한 홍보 수단처럼 되어 버렸어요. 축제라고 하기가 민망하죠. 마켓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는 북 페스티벌도 좀 바뀌어야 해요. 다른 장르의 축제들처럼요. 그러기 위해선 경계를 허물어 결합·융합·접목·유연·확장의 사고를 하고 방향을 바꿔야 해요."


이를 테면?


"지금까지는 프로그램이 단순했어요. 저자가 나와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질문 받고 사인하고. 저자가 아니더라도, 책 관계자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이젠 책 사러 축제에 올 이유가 없는 마당에, 그렇게 하면 너무 재미도 없을 뿐더러 오지도 않겠죠. 그래서 이번 축제를 계기로, 영상과 음악, 공연 등을 책과 함께 접목시키는 작업을 했어요. 예를 들어, 저자가 나와 책을 단순히 낭독하는 게 아니라 따로 낭독공연팀이 나름대로 해석한 연극으로 보여준다던가, 북트레일러를 대형 스크린으로 보여준다던가, 디지털북과 3D프린팅 체험을 할 수 있게 한다던가. 영상 중심인 2단지 완공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시기이기 때문에, 콘텐츠를 확장함에 있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제 시작 단계라 많은 걸 보여드리진 못했지만, 앞으로 더 다양한 걸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축제에서, 주체들이 축제의 주체가 되나요?


"파주북소리는 본래 출판사와 출판인들이 직접 나서서 행사 전반을 소화하기 때문에, 주체들이 축제의 주체가 되는, 그런 축제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엄밀히 말해 출판사와 출판인들은 판매의 주체이지 온전히 책의 주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요. 저자, 창작자, 출판인, 그리고 북센트릭 비즈니스 전문가와 문화 콘텐츠 관계자 분들도 책의 주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들이 조금 더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번에 소소하게나마 실현을 해보려고요. 그들끼리의 네트워크가 활성화 되어야 더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진다고 봐요."


'파주북소리2016' 포스터 ⓒ이근욱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파주북소리2016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열독열정. 세상을 읽고 사람을 읽는 뜨거운 축제라는 뜻이에요. 책 속에 세상이 있고 사람이 있죠. 한편 세상에 책이 있고 사람이 있어요. 물론 사람은 세상에 속해 있고 책을 읽습니다. 책과 세상과 사람의 경계를 넘어 서로 결합하고 융합한다는 개념이에요."


이번 축제가 가지는 가장 차별화된 구성·운영은 무엇인가요?


"파주출판도시를 크게 3권역으로 나눠 주제별로 구성해 운영합니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를 중심으로 책을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인 인문 스테이지가 구성되어 운영하고요, 서축기념관 등의 2단지를 중심으로 책을 느끼는 곳이라는 의미인 문화예술 스테이지를 구성해서 운영합니다. 그리고 책방거리 광인사길을 중심으로 책을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인 출판 스테이지가 구성되어 운영해요. 제가 가진 모든 역량과 현재 격렬하게 고민하고 있는 개념을 쏟아부었죠."


꼭 참여해 즐겼으면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할 3개의 프로그램이 있어요. 먼저 중국의 대표적인 북디자이너 뤼징런과 중국 북디자인을 이끄는 그의 제자 10인의 테마 전시예요. 그분들을 초청, 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규모 특별전 '전승과 창조'를 기획해 지난 9월 24일부터 한 달여 간 전시합니다. 뤼징런의 첫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을 위한 북소리 피크닉을 마련했어요. 자유롭게 책을 보며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전용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푸드마켓과 독서의자, 독서텐트가 있고요, 입주사들의 책과 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북소리 키트를 만들어 참여자들에게 대여할 예정입니다. 축제 본연의 느낌을 가장 잘 살려줄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올해 신설된 콘텐츠 엑스포가 있어요. 오직 출판도시의 파주북소리만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죠. 출판사와 예비 출판인, 창작자와 저자, 북센트릭 비즈니스 전문가 그룹과 문화 콘텐츠 분야 관계자 네트워크 프로그램이에요. 출판 트렌드 및 최신 사례 전시, 출판과 관련 분야 콘텐츠 전문가들의 네트워크 프로그램, 개인이 기획하고 있는 출판 콘텐츠를 출판 가능한 콘텐츠로 조언해줄 수 있는 전문가 멘토링 프로그램 등으로 실속있게 구성하려고 노력했어요. 콘텐츠 엑스포야말로 이번 축제가 추구하는 트렌스 미디어의 핵심입니다."


마지막으로 문화 코디네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파주북소리2016을 찾을 분들께도요. 


"책은 대안을 제시하진 않지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순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접하기 위해 책을 읽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돌이켜 보죠. 그런 의미에서 '파주북소리2016'은 새로움과의 접촉이에요. 책의 세계를 좀 더 깊고 친근하게 접하기 위한 문화놀이터인 거죠. 어느덧 국내 최대의 책잔치로 자리 잡은 파주북소리 축제가 부디 '출판문화인의 축제'에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제'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지켜봐주세요."


이근욱 감독은 '도서 정가제'로 어쩔 수 없이 축제의 방향이 바뀐 측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꼭 그것 때문이 아니라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었고 그렇게 흘러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비단 책 축제뿐만 아니라 책 자체를 대함에 있어서도 트렌스 미디어의 개념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고전적인 의미의 '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슬프게 들려왔다. 


책이 저물면서 여기저기서 걱정하는 소리, 볼 맨 소리, 비판의 소리가 들려온다. 정작 미래를 설계하고 제시하고 실행에 옮기는 이는 많지 않다. 이근욱 문화 코디네이터는 이번 축제로 책이 가야할 방향을 설계하고 제시하고 실행에 옮긴 듯하다. 물론 그의 말처럼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부디 그의 실험이 성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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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연 신부님의 행복 공감 에세이, <삶 껴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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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홈커밍 데이(Home-coming Day)’라는 행사를 합니다.

 

제가 나온 학교 출신 중에 현역 국회의원이 세 명이나 있고

모교가 있는 시의 시장님도 5년 선배라고 하니,

명문이라며 동창들끼리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아무튼, 졸업생들이 홈커밍 데이행사를 열기로 하고

강사를 누구로 할까 고민하다가,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한때 전교 610명 중 597등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저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봤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친구들은 제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서 부른 것 같았습니다.

 

제가 왜 사람들 눈에 그리도 행복해 보일까요?

그 이유는 어려서부터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절망에 빠져 있는 젊은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먼저 눈을 돌려보십시오.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정없이 깎아내리지 말고,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을 소중하게 껴안아주십시오!

 

남과 비교하지 말고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행복에 다가가는 첫걸음입니다.

 

 

황창연 신부 / 삶 껴안기

상세정보 http://me2.do/GFZQ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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