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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현대사회'에 해당되는 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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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장' 미카엘 하네케가 보여주는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 <해피엔드> 2019.07.04
  •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매스미디어, 그 속살에 대해서, 영화 <트루먼 쇼> 2018.05.30
  • 현대사회 악과 싸운 연대 투쟁의 희망 <내일을 위한 시간> 2018.01.12
  • 현대사회에 대한 치명적이고 통렬한 실험 우화 <더 랍스터> 2017.07.05
  • <인 디 에어> 계속되는 단절에 지쳐가는 현대인, 탈출구는? 2014.09.04

'거장' 미카엘 하네케가 보여주는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 <해피엔드>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7.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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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해피엔드>


영화 <해피엔드>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미카엘 하네케, 자타공인 '거장'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현역 영화감독 중 하나이다. 영화평론가를 하다가 연극, 텔레비전 일을 전전하고는 한국 나이 48세에 비로소 장편영화 데뷔를 했다. 올해로 데뷔 30주년, 그동안 10편 남짓한 작품을 만들었고 어느덧 80세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활동적으로 작품을 내놓고 있다. 


코엔 형제, 다르덴 형제, 켄 로치와 더불어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일 미카엘 하네케, 심사위원대상과 감독상과 대망의 황금종려상 2회 수상에 빛난다. 그의 작품을 통해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메인 상에서 각본상과 심사위원상만 타지 못했을 뿐, 그 위의 진짜배기 상들은 모조리 수상한 이력이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2009년 <하얀 리본>과 2012년 <아무르>(미카엘 하네키 필모 상으로) 초유의 연속 황금종려상 수상은 그를 더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을 만큼 올려놓았다. 아무래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5년 만에 들고 온 <해피엔드>는 어땠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원숙미의 끝을 보여주며 더할 나위 없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만들었을지, 시도해보지 않았고 못했던 새로운 것을 찾아 실험정신을 발휘해 영화를 만들었을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피 엔드>는 후자에 가까웠다. 


파편화되고 단절된 가문


파편화되고 단절된 프랑스의 어느 가문을 중심으로. 영화 <해피엔드>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프랑스 칼레, 지방 유지이자 건설업 부자 '로랑'가로 13살 여자아이 에브가 들어온다. 그곳에는 최연장자이자 로랑 가문의 건설회사를 일으킨 조르주, 조르주의 뒤를 이어 CEO로 활동 중인 앤, 에브의 아빠이자 외과의사 토마스, 앤의 아들이자 가문과 회사의 유일한 후계자 피에르가 있다. 토마스의 전 부인이자 에브의 엄마는 약물과다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다름 아닌 에브가 저지른 일이다. 


식사 때면 어김없이 모여 함께 밥을 먹는 가족들, 하지만 지극히 파편화되고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조르주는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지만 실패했고, 앤은 무너진 공사현상 뒷수습을 매정하게 진행하는 등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며, 토마스는 잘 나가는 외과과장이지만 두 번째 결혼임에도 바람을 피우는 듯하며, 피에르는 가문과 회사의 후계자로서 그에 걸맞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피를 나누고 함께 살며 밥을 먹지만 서로를 잘 모르는 듯하다. 아니, 서로를 알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가족의 일원이자 가문의 일원인 에브를 향한 시선도 못마땅이 아닌 무관심에 가깝다. 와중에 최연장자 조르주와 최연소자 에브가 '죽음'이라는 극단적이지만 순수한 매개체로 조금씩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린 이 영화가 '해피'한 '엔드'를 이룰 것 같진 않다. '해피'가 '엔드'하면 몰라도. 


파편 그리고 SNS


영화의 메인 키워드는 '파편'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해피엔드>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누가 보았든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계속 들게 할 영화 <해피엔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여러 의도가 복잡다단하게 깔려 있다. 영화를 보기 전과 보는 도중과 보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이 전혀 다를 테고, 같은 캐릭터와 사건과 장면을 보면서도 저마다 해석이 다를 테다. 필자는 이 영화를 이룰 수많은 개념들 중에서 나름 몇몇을 골라 관련하여 생각과 해석을 달아보겠다. 현상보다 본질에 가까웠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 싶다. 


우선, '파편'이라는 단어 개념을 상정해보았다. 영화 자체의 만듦새도 그러하고, 영화 속 로랑 가문의 면면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지극한 부정적 단면'이라는 전제 하에 감독이 다분히 의도한 듯 보인다. 영화 구성이 매우 불친절하다. 앞뒤를 매끄럽게 연결시키기 힘든 파편화된 장면들이 나열되다 보니, 맥락 있는 이야기를 감상하기가 힘들다. 나중에 은근슬쩍 설명으로 어찌저찌 맥락을 구성하긴 하지만 말이다. 덕분에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지만, 자칫 영화 자체를 기피하게 될 공산이 있다는 점을 말해둔다. 


로랑 가문 구성원들의 파편화된 면면이 아니었다면, 이런 불친절한 구성은 그냥 그렇게 불친절함으로 의미없이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해피엔드>에서는 영화 밖과 안이 의미있고 재미있게까지 조우하는 것이다. 그러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이야말로 작금 현대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중류층의 표본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밖에 모르며 다른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남들에게 해피해 보이는 데에만 신경 쓰며, 극단적 상황이 닥칠 때면 끝까지 놓아주지 않거나 혹은 가차없이 버린다. 파편화된 것도 모자라 단절된 삶을 산다."


파편은 'SNS'라는 소재로 자연스레 옮겨가는 듯하다. 영화 초반 에브의 라이브 영상을 통해, 영화 중반 토마스의 채팅 장면을 통해, 후반 다시 에브의 라이브 영상을 통해 감독은 SNS의 특성과 폐해를 다룬다. 우린 SNS로 자연스레 일상적으로 습득한다. 그것이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띄고 있더라도 말이다. 한편, 우린 SNS 때문에 당사자와 제3자 간의 직접통로를 경험한다. 피아 구분이 잘 되지 않기에 아직 덜 성장한 아이들에게서 윤리적인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영화 <해피엔드>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사실,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직시하고 들여다보고 파고드는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무수히 선보여왔다. 그래서 우린 그 무서움을 익히 알고 그에 대한 두려움을 새기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많지 않다.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그 무서움과 두려움이 무뎌졌거나 몸에 깊숙히 박혀 감수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해피엔드>는 날카롭거나 집요하게 파고들진 않는다. 광범위하게 루즈하게 들여다보는 수준이다. 다만, 평면적으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입체적으로 다가간다. 소재와 주제, 구성 및 전달 방식, 캐릭터와 사건 요소 등 모든 면에서 입체적이다. 위에서 영화의 만듦새가 파편적이라고 했기에, 영화가 입체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다가간다는 게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앞엣것은 의도적인 것이고 뒤엣것은 의도하지 않은 것이 다른 점이라 하겠다. 


영화 속 조르주는 미카엘 하네케의 전작 <아무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르주는 손녀 에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에브의 기억 속엔 없는 할머니이자 조르주의 부인 안느가 반신불수가 되곤 3년 후 더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자 직접 목을 졸라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일환이었다고 말한다. <아무르>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물으며 사람과 사람의 촘촘한 사이사이로 파고 들었다면, <해피엔드>는 진정한 사랑이 지나고 난 이후 세대의 삶을 논하며 사람과 사람의 느슨해진 사이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는 듯하다.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은 진정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반면 적당한 사랑이야말로 여러 면에서 이득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극단적으로 흩어져버린 세상에서는 극단적인 사랑법이야말로 그나마 소용이 있을지 모른다. 왠만한 극단에는 이미 적응되고 무뎌져버린 지금이 아닌가. <해피엔드>를 계기로 한 번쯤 우리와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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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단절, 모모 큐레이터, 미카엘 하네케, 중산층, 칸영화제, 파편, 해피엔드,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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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피할 수 없는 매스미디어, 그 속살에 대해서, 영화 <트루먼 쇼>

오래된 리뷰 2018. 5.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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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트루먼 쇼>


영화 <트루먼 쇼> 포스터. ⓒ파라마운트 픽쳐스



'굿모닝,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이트.' 성격 좋고 무난한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 분)는 조그마한 섬에서 살며 보험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는 대학 동창 메릴과 결혼했고 역시 대학 동창 말론과 절친 사이다. 트루먼은 대학 때 잠깐 만났다가 황망하게 헤어진 로렌을 만나러 피지로 여행을 가려 한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고 물 공포증을 앓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하늘에서 조명기구가 떨어지질 않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났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와서 끌고가버리질 않나,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자신의 이동경로를 고스란히 생중계하고 있질 않나. 하지만 엄마와 아내는 그의 말을 전혀 믿어주질 않고, 말론은 그의 말을 믿는 대신 자신을 믿어야 한다며 위로의 말을 함께 건넨다. 


한편, 트루먼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전 세계 수백만 명 시청자에게 완전한 리얼리티 삶을 보여주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그가 사는 섬은 그 자체로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세트장이고,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섬에 사는 모든 사람이 연기자이다. 이를 총괄기획한 크리스토프는 '트루먼 쇼'를 진짜 삶이자 특별한 삶이라 믿는다. 그리고 모든 게 완벽하게 만들어진 그곳을 천국이라 믿는다. 


거장과 최고의 도전이 빚어낸 최고의 작품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파라마운트 픽쳐스



영화 <트루먼 쇼>는 199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사한 짐 캐리의 대표작 중 대표작이다. 그의 필모에서 <마스크> <덤 앤 더머> <에이스 벤츄라> 등의 코미디와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잇는 코미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 <마제스틱> <예스맨> 등으로 이어졌다. 


한편 피터 위어 감독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70년대에 칸영화제를 섭렵하며 호주의 거장으로 이름 높은 그는 잘 알려진 명작 <죽은 시인의 사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수작 로맨틱 코미디 <그린 카드>로 유명세를 떨쳤다. <트루먼 쇼>라는 코미디가 가미된 드라마로 정점을 찍었고 이후 <마스터 앤드 커맨더>와 <웨이 백>이라는 대작 느낌이 물씬 풍기는 두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영화는 피터 위어라는 거장의 작가정신과 여유, 짐 캐리라는 당대 최고의 '코미디' 배우의 도전 아닌 도전이 빚어낸 최고의 작품이다. 몇 번을 봐도 '재미'를 보장하는 이 영화는, 지금은 일상화되어 있거니와 그래도 여전히 열광하는 몰래카메라 또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와 연결되어 있다. 제작진의 주장에 따르면, 트루먼의 진짜 인생이다. 


몇 번을 보면 보이는 '논란'의 부딪힘은, 트루먼 쇼를 만든 크리스토프의 철학과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좌지우지 하는 이른바 '신'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다분히 '비인간적인' 방송 철학과 맞닿아 있는 그의 '인간적인' 믿음이 현대사회의 모순적인 병폐를 상징하는 것 같다. 


매스미디어 병폐의 우화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파라마운트 픽쳐스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조작되어진 이 세계, '트루먼 쇼'의 세계에서 트루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크리스토프는 말한다. 그가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우리가 사는 곳은 역겹지만 그가 사는 곳 씨헤이븐은 천국이라고 말이다. 더욱이 트루먼은 가짜가 아닌 진짜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거기엔 '진실'이 없다.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만이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트루먼(truman)'이라는 이름을 들여다보자. '트루', 즉 진실(true)라는 단어에서 추출했다는 게 명백하다. 트루먼은 진실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고, 결국 이 트루먼 쇼의 결말은 트루먼이 진실을 찾아 가는 것으로 결말이 날 공산이 크다. 그게 비록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말이다. 


한편, 이 영화를 지탱하는 다른 큰 축 크리스토프(christof)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이름은 전지전능하신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christ)에서 온 게 분명하다. 그는 트루먼의 인생뿐만 아니라, 트루먼이 사는 세계와 그 세계에서 일하는 연기자 모두에게 자신의 철학을 주입시켰다. 그들은 모두, 특히 트루먼의 아내와 절친은 사생활과 사회생활이 따로 없는 인생을 영위하고 있고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게 진짜 인생의 일부분이고 숭고하며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통제'를 '약간의 통제'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믿음은 크리스토프의 철학에 기초한 것이고 그 철학에 쉼없이 숨을 불어 넣고 있다. 가히 '방송 예술'이라 칭할 만한 이 작태는, 수많은 광고가 딸려 있는 시청률과도 맞닿아 있는 바 현대사회를 지탱하면서도 파괴시키고 있는 여러 병폐 중 하나인 '매스미디어 병폐'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는 우화이기도 하다. 


누구도 매스미디어를 피해갈 수 없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파라마운트 픽쳐스



매스미디어 병폐 중에서도 가장 큰 병폐는 통합, 통제 등의 전체주의 잔재들이다. '통합'이라는 긍정적인 단어는 '통제'와 함께 할 땐 더할 나위 없이 악랄한 단어가 되고 만다. 영화에서 그것은 크리스토프가 만들어낸 가상임에 분명한 진짜 세계에 블랙홀처럼 모든 걸 쓸어담아버리는 걸 뜻한다. 


'천국'이라 명명되어진 그곳은 크리스토프의 명명백백한 철학과 그 철학을 뒷받침하는 어마어마한 시청률 아래에서 모든 것이 허용되고 가능하다. 그건 작은 나라의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돈과 인력이 투입되어 철저하게(누군가 생각하기로는 약간의) 통제가 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스미디어를 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 어딜 가든 매스미디어가 우릴 반기고 유혹하고 협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매스미디어를 피해갈 수 없다. 거기에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즐기기만 하는 사람도, 거기에 그 무엇도 비할 수 없는 심각성을 느끼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토프의 말마따나 우리 모두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익숙하고 안주하기 때문인 것이다. 


방법은 '진실'뿐인가. 매스미디어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져 우리 눈앞에 보여지는지 속속들히 아는 것인가. 아니, 그 이후에 크나큰 절망감을 느낄 게 자명하다. 트루먼이 '트루먼 쇼'의 진실을 알고 그 세계를 탈출하게 된다고 해서 그는 그의 진짜 삶, 스타가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매스미디어의 진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이 재미있는 영화는 끝까지 그 재미를 놓치지 않은 채 거대하고 진지하고 속절없는 물음만 던져놓는다. 우리는 그 막막한 물음 앞에 한동안만 멍하니 생각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당연한듯이 다른 매스미디어를 찾을 것이다. '트루먼 쇼'가 아닌 또 다른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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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매스미디어, 신, 인간, 진실, 짐 캐리, 통제, 트루먼 쇼,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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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악과 싸운 연대 투쟁의 희망 <내일을 위한 시간>

오래된 리뷰 2018. 1.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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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


자타공인 거장 '다르덴 형제'의 원숙하고 완성된 스타일을 보여준 <내일을 위한 시간>. ⓒ그린나래미디어㈜



1990년대에 이어 2000년대, 2010년대까지도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팀)이라 할 수 있는 다르덴 형제. <로제타> <더 차일드>로 황금종려상을, <자전거 탄 소년>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아들>로 심사위원특별상과 남우주연상을, <로나의 침묵>으로 각본상을 탔다. 그야말로 자타공인 명백한 거장이다. 


영화제가 사랑하는 그들의 작품은 예술성보다 현실성에서 기인한다. 그 현실성엔 지극히 현대적인 불안이 내재되어 있는데, 그들은 그 불안에 천착한다. 그 불안이야말로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대체로 짧고 굵은 느낌이다. 군더더기 없이, 겉치레 없이, 미사여구 없이 다큐멘터리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2014년작 <내일을 위한 시간>은 다르덴 형제의 명성에 걸맞는 수상 실적을 내진 못했지만, 그들의 원숙하고 완성된 스타일의 면모를 가장 잘 내보인 작품이라해도 무방하다.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특별할 것 없는 설정이지만, 여지없이 그 이면에 깊숙이 깔려 있는 불안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거장의 솜씨다. 


짧지만 악몽 같은 투쟁 일지


영화는 주말 동안의 투쟁, 그 짧지만 충분히 악몽 같은 1박 2일을 보여준다. ⓒ그린나래미디어㈜



복직을 앞둔 금요일 오후,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에게 줄리엣의 전화가 걸려온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회사 동료들이 그녀의 복직 대신 보너스 1000유로를 선택하는 투표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반장에 의한 겁박에 의해 행해졌기에 사장한테 말하면 월요일에 재투표를 하게 해줄 거라는 것. 


산드라는 일자리를 되찾고 싶지만, 동료들에게 보너스 1000유로를 포기하고 자신의 복직을 선택하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월급 없이는 생계를 충분히 꾸려가기 힘들다. 산드라는 남편의 격려와 협박 아닌 협박에 힘입어 주저하고 힘들어 하면서도 주말 동안의 동료 설득하기 여정에 나선다. 


이미 자신의 복직을 지지해주는 몇 명의 동료들을 확보해놓았지만 16명의 과반수인 9명을 설득시키기란 너무나도 어렵다. 말그대로 '일희일비', 우울증을 앓았고 아직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산드라에겐 지옥과 다름 아니다. 지지해주는 동료를 만나면 한없이 기쁘고 힘이 나지만, 반대하는 동료와 폭력을 휘두르려 하는 동료를 만나면 당장 때려치고 싶다. 복직한다고 해도 반대한 동료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운명의 월요일이 다가오고 있다. 


<내일의 위한 시간>은 주인공 산드라의 복직을 위한 주말 동안의 짧지만 악몽 같은 투쟁을 그린다. 그녀는 회사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월요일 재투표에서 자신의 복직에 투표해 달라고. 그러면 동료들은 하나같이 묻는다. 다른 동료들은 어떤 의견을 냈느냐고. 이 단순한 설정에서 오는 긴장감이 묘하게 상당하다. 


산드라를 원하는 동료들, 원하지 않는 동료들


산드라를 지지하는 동료들과 지지하지 않는 동료들, 전부 각자의 사정이 있다.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그린나래미디어㈜



상상을 해본다. 대입을 해본다. 내가 산드라였다면? 내가 아파서 자리를 비웠음에도 회사는 충분히 잘 돌아갔다는데, 그리고 내가 복직하는 대신 동료들이 보너스를 받는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그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보너스를 받아야 하는 사정 말이다. 그걸로 그 이들을 원망할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내가 산드라의 회사 동료들이었다면? 솔직히 말해서 무슨 이유를 지어내든 보너스를 택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녀가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내가 일하는 데 있어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고,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에게 꽤 큰 돈이 돌아오는데 말이다. 그녀가 돌아온다면 그녀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지?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는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나처럼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고, 모두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산드라를 원하지 않는 동료들은 모두 다 다른 이유와 사정이 있지만, 산드라를 원하는 동료들은 아무 이유없이 그저 산드라의 복직을 원하고 산드라에게 미안하고 산드라를 응원할 뿐이다. 


톨스토이의 저 유명한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르다."가 생각나게 하는 대목인데, 주말 동안의 여정에서 산드라가 행복할 때는 그저 활짝핀 웃음만을 내보이는 반면 불행할 때는 그때마다 다른 표정과 행동과 말투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현대사회의 '악', '불안', '투쟁', '연대', '희망'


현대사회의 '악'에 직면해 연대 투쟁의 희망을 이어나간다. ⓒ그린나래미디어㈜



영화는 산드라의 여정, 그 반복되는 여정에서 오는 긴장감 어린 서스펜스를 겉으로 내보이고 있지만, 이면에는 사실 이 현대사회의 뿌리내린 거대한 '악'의 결정체가 자리하고 있다. 애초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회사 복직과 생계에 아주 미묘하게 결정적인 보너스를 동일선상에 놓고 양자택일을 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악랄하기 그지없는 짓이 아닌가. 그에 비하면 반장이 협박을 일삼으며 자신을 포함한 사원들이 보너스를 타게끔 하려는 수작은 애교에 가깝다. 


거기에 산드라를 비롯한 회사 동료들은 모두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안'의 일면들이다. 기본적으로 월급 없이는 생계조차 꾸려갈 수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1000유로 정도의 보너스로 동료 한 명의 생계를 알면서도 짓뭉개버리는 결과를 찬성한다. 심지어 그 돈이 원래 받지 않았어야 할 돈임에도 말이다. 돈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이 사회에서 절대적인 것이다. 


한편, 산드라는 '열심히' 싸웠다. 지지하는 동료들과 함께 반대하는 동료들에 맞서 싸운 게 아니라, 심지어 반장과 사장을 상대로 싸운 게 아니라, 이 악몽같은 상황 그리고 우울증에 시름하는 자신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겠다. 그녀는 이겼을까, 졌을까. 이기는 게, 지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녀는 왜 싸운 것일까. 그 회사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없어 보였는데 말이다. 


그녀의 짧은 여정이 긴 여운을 남기고 번뜩이는 깨달음을 안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바로 다른 회사를 알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다름 아닌 그녀를 지지해준 이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그녀는 싸웠던 것이다. 그들 덕분에 그녀는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다. 이것이 '연대'의 힘이 아닌가. 영화는 이 지독한 현대사회에 맞설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연대에서 찾았다. 우리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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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대한 치명적이고 통렬한 실험 우화 <더 랍스터>

오래된 리뷰 2017. 7.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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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더 랍스터>


현대사회에 대한 우화로도, 사랑에 대한 기막힌 상상으로도 읽을 수 있는 압도적 수작 <더 랍스터>. ⓒ영화사 오원



근시라는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은 데이비드(콜린 파렐 분)는 호텔로 오게 되었다. 그곳은 일명 '커플 메이킹 호텔'로, 45일 간 머무르며 커플이 되는 교육을 받는다. 만약 그 시간이 지나서까지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한다. 단, 매일 숲으로 가서 마취총을 이용해 서로 사냥을 하는데 거기에 성공한 횟수만큼 기간이 늘어난다. 이 시대는 누구나 반드시 사랑을 하고 커플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그런 시대다. 


데이비드는 혹시 동물이 되는 상황이 되면 랍스터가 되고자 한다. 100살까지 살 수 있고 피는 귀족적인 푸른색이며 근시다. 그렇지만 동물이 되긴 싫다. 동물이 되면 숲에 버려지는데, 위험에 상시노출되어 있지 않은가.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을 찾아 다닌다. 그것이 일차적인 사랑의 증표인 것이다. 데이비드는 커플 되기에 성공할까?


우여곡절 끝에 호텔에서 탈출해 숲으로 향한 데이비드, 그곳은 호텔과는 완전히 반대로 절대 사랑을 해서도 안 되고 커플이 되어서도 안 되는 솔로 구역이다. 안 그러면 동물이 되는 게 아니라 죽는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하필 그곳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근시를 가진 여인을 말이다. 데이비는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까? 또 탈출 감행?


영화 <더 랍스터>는 현대사회에 대한 실험 우화를 치명적으로 통렬하게 보여주는 데 정통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네 번째 장편이다. 그리스에서 온 이 젊은 감독을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지극히 사랑하는데, 이 영화는 제68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세상은 넓고 좋은 감독과 작품은 많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퍼포먼스다. 


'솔로 지옥 커플 천국' 커플 메이킹 호텔


절대적으로 커플이 되어야 하는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커플이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사 오원



먼저,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버리는 '솔로 지옥 커플 천국' 커플 메이킹 호텔 이야기다. 개인의 자유를 심히 억압하는 전체주의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아프게도 민주주의 한복판에 위치한 우리도 이 전체주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알려준다. 참으로 눈물난다. '커플 천국'의 아이러니다.


굳이 과거의 우리나라나 이웃나라 중국의 산아 제한 정책이나 출산 장려 정책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연애와 결혼에 대한 당연한 시각이 지배하고 있음을 안다. 동물로 변해버리는 것 못지 않게 커플이 되지 못한 이, 결혼을 하지 못한 이가 갖는 절망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건 역사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개인으로 내려온 역겨운 전통이다. 


문제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조차 없는 분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체제'일 텐데, 그렇다면 누군가는 '체제 전복'을 외칠 만한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여기에 온 이들도 사랑을 하고 싶기 때문일 거다. 그렇지만 사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부분에서 사랑은 더 이상 지극히 은밀하고 가장 아름다운 개인의 사생활이 아니라, 자유를 속박 당한 집단에 속한 개인의 의무가 된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 솔로 천국의 숲으로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된다. 그 이상의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없어지는 것이다. 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장막을 걷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어찌저찌 도망을 간 솔로 천국의 숲은 어떨까? 거대한 장막의 자장 밖에 있을까?


'솔로 천국 커플 지옥' 숲


절대적으로 솔로가 되어야 하는 '숲'에서는 솔로로 남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영화사 오원



다음, 커플이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솔로 천국 커플 지옥' 숲 이야기다. 커플이 되지 않을 자유를 찾아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탈출한 이들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어째서 자유로운 곳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솔로 지옥 입장에서 보면 솔로를 선택할 수 있는 이 곳이 자유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솔로도 커플도 자유로운 제3자 입장에서 보면 거기나 거기나 거기가 거기다. 도긴개긴이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는 새 운명적인 '만남'은 들어봤어도 운명적인 '헤어짐'은 익히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역설이 이성적인 깨달음이라면, 이것저것 볼 것 없이 만남은 감성과 이성을 초월한 깨달음이다. 커플이 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솔로로 살아가는 거라는 말이다. 


이런 초월성을 죽음으로 막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안다. 사랑을 택하고 죽음을 받아들인 수많은 커플들의 역사를 말이다. 솔로 천국의 아이러니다. 굳이 이들의 세계에 전체주의의 뱃지를 달아주지 않는 이유다. 대신 이곳에는 어리석음의 뱃지를 달아주고자 한다. 


단순 비교를 하자면, 무조건 커플과 무조건 솔로의 통제 중 무조건 솔로가 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본능, 인간다움, 아니 생물다움을 버린 처사다. 물론 이 역시 역겨운 처사다. '사랑을 해야 한다' 안에는 조금이나마 '사랑하고 싶다'가 내재되어 있는 반면, '사랑하면 안 된다' 안에는 '사랑하기 싫다'가 조금도 내재되어 있지 않다. 


뼈아프게 잔인하고 잔혹한 이 세상의 실체, 나의 실체


이 영화가 치명적인 이유는, 세계를 형성하는 가장 무섭고 두려운 부분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사 오원



나부터도 그러한대, 우리는 흔히 이것을 피하고자 저것을 택한다. 아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선택지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기 때문일 거다. 남자 아니면 여자, 커플 아니면 솔로, 삶 아니면 죽음, 커플 메이킹 호텔 아니면 숲. 데이비드도 그렇게 했다. 나름 자의적인 선택, 그나마 혁명의 끄나풀 정도 잡고자 한 행동. 그것도 결코 쉽지 않은 게, 자그마치 죽음을 각오한 탈출인 거다. 


고약한 건, 내가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만을 선택해야 하는지 안타깝고 분통 터지고 욕지거리까지 튀어 나오지만, 나는 이곳에서 탈출할 용기나 지혜, 하다못해 지식도 없다. 세상에서 알고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게 가장 '나쁜' 거라는데, 나는 못난 것도 아니고 나쁘다. 


영화에서 제3지대나 제3자는 아예 나오지 않거니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말로 꺼내지 않는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원하는 것들이 불편하고 역겨울 때가 시도때도 없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말하고 어딜 가나 똑같을 거라고 말할 뿐이다. 그건 사실이다. 영화에서 보지 않았나. 


원점으로 돌아간다. 커플 메이킹 호텔의 짓거리가 전체주의적이라 했던가? 숲 인간들의 짓거리가 한심하다 했던가? 둘 다 똑같다고 했던가? 그렇다. 내가 고작 생각할 수 있는 한도치는 '둘 다 똑같다' 정도의 깨달음과 비판이다. 감독은 영리하게, 너무 영리하게 그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이상의 깨달음을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실체, 나의 실체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그 어떤 영화보다도 잔인하고 잔혹하다. 고작 현실의 부정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우화의 나열과 그 사이를 건너는 한 인간의 서사를 보여줄 뿐이지만, 이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무섭고 두려운 부분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감히 말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정확한 이 세계의 지도(MAP, 地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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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 세계, 솔로, 숲, 실험 우화, 전체주의, 커플, 커플 메이킹 호텔,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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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 계속되는 단절에 지쳐가는 현대인, 탈출구는?

오래된 리뷰 2014. 9. 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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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조지 클루니 주연의 <인 디 에어>


영화 <인 디 에어> ⓒCJ 엔터테인먼트



그 수식어도 참으로 생소하고 낯설고 무시무시한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분). 그는 일 년에 322일 동안 지구에서 달보다 먼 거리(최소 38만km 이상)를 출장다닌다. 미국 전역을 다니며 차마 직원들을 해고하지 못하는 고용주를 대신해 좋은 말로 해고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예상했다시피, 해고된 이들에게 온갖 욕을 다 먹고 다니는 그다. 직업적 특성때문인지는 몰라도, 인간관계에 있어 형편없는 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기 위에서 보내다 보니, 집은 물론이고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없다. 스치듯 지나가는 단편적인 관계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던 그에게 두 여자가 나타난다. 한 명은 그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인 알렉스. 그녀는 그 못지않게 출장을 많이 다니고 항공 마일리지에 광분하고 단편적이고 자유로운 연애를 지향한다. 그녀와의 연애 역시 그저 그렇게 끝나고 말 것인가?


한편, 빙햄이 다니는 해고 전문 회사에 신입사원 나탈리가 혜성같이 등장한다. 그녀는 코넬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로, 사장에게 기막힌 해고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이른바 '온라인 해고 시스템'. 화상 연결을 이용해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 해고를 해버리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해고 전문가의 감정 소비와 출장비 등을 어마어마하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 계속되는 해고는 이 회사에 큰 기회이고, 그 수요를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떠돌이 인생의 속사정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여러 용어 중에 '인스턴트'라는 말이 있다. '즉석에서 간편하게 이루어짐' '지금 한 순간'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고도 성장기에 탄생한 기존의 자본주의와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통칭하는 '소비사회'의 대표적인 아이콘이기도 하다. 소비사회에서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위치를 내보인다. 또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소비를 위해 간편함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간편함은 소비를 넘어 인간 사회 전체에 퍼져가기 시작했다. 결국은 한 인간을 규정하기까지 하게 된다. 


빙햄은 바로 그 인스턴트로 규정할 수 있는 인물이다. 어찌 되었든 결국 혼자다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그. 그런 그가 두 여성과 함께 하는 여행을 통해 차츰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또한 예상할 수 있듯이, '인간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신입사원 나탈리 또한 마찬가지다. 빙햄보다 더욱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빙햄과 함께 하는 '직접 대면 해고 체험'을 통해 피해고자들의 좌절과 눈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빙햄이 인간적으로 바뀌는 결정적 순간은 그의 여동생 결혼식을 통해서이다. 그는 여자친구 알렉스에게 여동생 결혼식에 동행해줄 것을 청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의 모교에 같이 몰래 들어가 옛 추억을 상기하며, 그야말로 굉장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 하루 전 날에 결혼을 망설이는 여동생의 남편에게 다가가 따뜻한 말로 위로해줘 그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한다.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고 있는 듯하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그렇지만 영화가 이렇게 풀려나가면 재미 없지 않을까? 그(빙햄)는 분명 엄청난 업보(해고당한 사람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아우라를 온 몸으로 받는)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녀(나탈리)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이건 그 업보의 제대로 된 맺음이 되지 않는 것 같단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위기가 찾아온다. 


계속되는 단절의 연속 안에서


그 위기란 다름아니라 계속되는 '단절'이다. 그들은 본래 단절 속에서 살아오다가 차츰 '관계'에 눈을 떠가고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나 중국 등은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관계로 안 되는 일도 되게 하고 되는 일도 안 되게 할 수 있다. 반면에 관계를 천시여기는 풍조도 있다. 정당한 실력이나 노력 없이 관계만으로 살아가려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비즈니스에서건 사적에서건 적당한 관계는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먼저 당하게 된 이는 나탈리이다. 그녀는 자신이 제시했던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극을 맛본다. 남자친구가 문자메시지로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것이다. 어처구니 없을 수도 있지만, 인간 세계에서 제일 기본적인 부분에서 맛본 이 단절의 아픔을 통해 그녀의 시각이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빙햄에게는 두 가지 일이 연달아 터진다. 하나는 여자친구 알렉스, 다른 하나는 신입사원 나탈리이다. 주지했다시피 그는 점차 변화하게 되고, 그 변화는 가족에게로 갔다가 알렉스에게로 향한다. 그는 출장 복귀 후 강의 시간 때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알렉스에게로 향한다. 보고 싶다는 일념 하에 어마어마한 거리를 단숨에 달려간다. 하지만 그의 눈 앞에 나타난 건 단란한 가정이 있는 알렉스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단절의 충격을 뒤로 하고 복귀해 보니 나탈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피해고자의 자살 소식을 듣고 바로 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빙햄에게 연속된 단절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빙햄은 이미 변화해 있었다. 나탈리가 다른 직장을 알아보며 면접을 볼 때 빙햄의 추천서가 큰 힘이 되주었다. 또한 그는 가정과 친구, 지인, 동료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작품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영화


이 영화는 작품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영화라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2010년 아카데미에서 6개 부문에 노이네이트되었고, 골든 글로브와 LA 비평가 협회 등을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각색상과 각본상을 휩쓸었다. 그만큼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이다. 환상적인 오프닝부터 시선을 잡아 끌더니 시종일관 지루할 틈 없이 끌고가는 그 힘이 감탄스럽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들추는 시나리오에 예기치 못한 웃음들이 뒤따른다. 개그 코드의 웃음이 아니라 독특함에서 오는 웃음이다. 겉으로는 날카로움을 유지하는지 몰라도 가끔 어리버리하고 여린 모습을 보이는 나탈리. 그런 나탈리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빙햄. 그리고 여러 대화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어이없는 대답과 유머 등. 


마지막으로 하나. 초반과 중반과 종반에 걸쳐 계속 나오는 피해고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피해고자들이 울먹이며 하는 말은 '가족'에 대한 걱정이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이렇게 해고를 당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란 말인가. 그때 빙햄은 진실된 목소리를 답해준다. 


그 가족들을 위해 절대로 주저앉지 말라고. 그리고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릴 테니,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본래 꿈을 향해 정진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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