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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같은 듯 또 다른, 충분하고 충분한 영화 <알라딘>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6. 24. 12:20



[리뷰] <알라딘>


영화 <알라딘>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지난 2014년 <말레피센트>로 '디즈니 실사영화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년에 한 편 이상씩 선보였는데, <신데렐라> <정글북> <미녀와 야수>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덤보>까지 이어졌다. <정글북>과 <미녀와 야수>의 기록적 흥행으로 힘을 받아 2018년, 2019년 2편 이상을 선보일 계획을 세웠지만 2018년에는 망했고 2019년 첫 주자 <덤보>도 맥을 못추렸다. 


하지만 '필살기'가 있었으니 2019년 7월 개봉 <라이온 킹>으로, <아이언맨> <정글북>의 존 파브로 감독이 또 한 번의 역대급 대박을 준비하고 있다. 그 바로 전 6월에는 <알라딘>이 개봉했는데, <라이온 킹>의 개봉 전 이벤트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은 가이 리치로, 20여 년 전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로 데뷔와 동시에 할리우드 최고 기대주가 되면서 10살 연상 마돈나와 결혼까지 했지만 곧바로 추락한 이력이 있다. 2010년대에 들어 <셜록 홈즈> 시리즈로 재기했지만 최근 다시 추락하고 있다. 


거기에 주연은 어떤가. 지니 역의 윌 스미스, 1990~2000년대 최고 스타였지만 2010년대 거짓말처럼 추락해 나오는 영화마다 융단폭력을 당했고 당하고 있으며 당할 게 자명해 보였다. 알라딘 역의 메나 마수드,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보는 얼굴이고 실제로도 <알라딘>을 포함해 단 두 편의 영화를 찍었을 뿐이다. 자스민 공주 역의 나오미 스콧, 역시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보는 얼굴인데 메나 마수드보다는 이력이 조금 더 풍부하다. 디즈니 라이브액션 프로젝트의 하나라는 점과 '알라딘'이라는 타이틀을 제외하면 기대를 할 여지가 거의 없다 하겠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토록 뻔하지만 마음을 들썩이게 만드는 재주는 역시 디즈니를 따라갈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그건 디즈니와 경쟁하는 할리우드의 메이저 제작배급사는 물론이고 관객들도 마찬가지이겠다. 원작을 철저히 답습한다는 점에선 별다를 게 없거니와 시덥잖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된 메시지와 OST 그리고 싱크로율과 윌 스미스의 연기 등이 자잘하게 역할을 했다. 


아그라바 왕국,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와 지니


영화 <알라딘>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원작을 봤다면 굳이 줄거리에 눈길을 두지 않아도 되겠지만, 혹시 본 적이 없거나 필자같이 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줄거리에 눈길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사막 속 아그라바 왕국, 좀도둑 알라딘은 원숭이 아부와 함께 여지없이 소소하게 훔치고 도망다니고 있다. 와중에 자스민 공주를 곤경에서 구해준다. 공주는 처음엔 자신을 공주의 시녀 자스민이라고 속인다. 하지만 곧 이웃나라에서 왕자가 방문하고 공주는 궁으로 돌아간다. 알라딘은 아부가 훔친 달리아의 팔찌를 돌려주러 궁으로 향해 결국 공주를 만난다. 


한편, 아그라바 왕국에는 술탄이 나라를 다스린다. 그의 슬하엔 자스민 공주밖에 없기에 하루빨리 공주를 다른 나라 왕자와 결혼시키려 한다. 이에 자스민은 본인이 술탄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하지만, 여자는 술탄에 오르지 못한다는 법과 1000년 역사에 전례가 없는 율령에 의해 모두가 반대한다. 재상 자파는 밑바닥에서 산전수전을 겪고 그 자리에 오른 인물로 2인자에 머물 마음 없이 술탄의 자리에 오르려 한다. 


자파는 신비의 동굴 속 마법의 램프를 찾고자 한다.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사는 램프를 찾기만 하면 술탄의 자리에 오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동굴은 죽음이 상존하는 매우 위험한 곳, 자파는 알라딘을 꿰어내 공주도 좋아할 만한 재력의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며 신비의 동굴로 가 마법의 램프를 가져오라고 한다. 알라딘은 바로 동굴로 향하는데... 알라딘은 무사히 램프를 가져올 수 있을까? 자파에게 줄까, 본인이 직접 지니를 불러낼까? 자스민 공주와 잘 될까? 아그라바 왕국은 어떻게 될까?


가치, 자유, 침묵


영화 <알라딘>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알라딘>은 디즈니 영화답게 균형감을 중심에 두고 뒤탈 없을 만큼 적당하고 누구나 알아듣기 쉬울 만한 메시지들을 주요 캐릭터들의 삶과 생각에 맞게 배치시켜 풍성하게 마무리한다. 이번에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진실'이라는 메시지를 중심에 두고, 알라딘에게는 '가치'를 지니에게는 '자유'를 자스민 공주에게는 '침묵'이라는 메시지를 부여했다. 영화는 알라딘에 치중하지 않고 주요 캐릭터들에 고루고루 시선을 분산해 고유의 신조를 발산하게 했다. 균형감이 풍성함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었다. 


일찍이 고아가 된 알라딘은 좀도둑으로 빌어먹고 있지만 자신에겐 자신만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정작 그가 잘하는 건 쥐도 새도 모르게 자잘한 물건들을 훔치는 것과 좀도둑다운 날렵한 몸놀림으로 도망가는 것뿐인 듯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이타적 마음이라는 가치가 있다. 그게 매력으로도 발산해 동네 사람들이 좀도둑에 불과한 그를 이리저리 돕는 게 아니겠는가. 비록 내면적 가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자신은 물론 남들은 더욱더 발견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만 년을 살면서 지난 천 년 동안은 램프에서 나올 일이 없었던 지니, 그의 소원은 의외로 자유를 찾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그이지만, 두 팔목에 장착된 족쇄 때문에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더욱이 램프를 문질러 그에게 소원을 비는 주인님이 아니면 램프에서 나올 수도 없다. 그래서 지니는 족쇄를 풀고 영원히 사는 삶에서 벗어나 인간이 되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건 오직 주인님의 소원으로만 가능하다. 지난 만 년 동안 그런 소원을 빌어준 주인은 당연히 한 명도 없었다. 


아그라바 왕국의 유일한 상속자 자스민 공주, 하지만 법으로 정해진 바 그녀는 술탄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남자보다 출중한 문무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술탄은 법을 바꿀 수 있기에 아버지 술탄이 바꾸면 가능하지만 왕국이 새워진 이래 1000년 동안 그런 전례가 없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자스민 공주는 그저 공주라는 신분에 만족한 채 침묵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으려 한다. 나라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술탄으로서의 능력을 두루 갖춘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OST 그리고 윌 스미스의 끼


영화 <알라딘>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지한 여러 메시지 중 자스민 공주의 경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현재 추세상 매우 적합했는데, 예상했지만 역시 업그레이드된 신선함을 느꼈다. 특히 파워풀한 노래 speechless로 지금의 심정과 앞으로의 행동을 내보인 게 인상적이었는데, 아주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잘 살려냈다. OST의 준수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원작 때부터 유명했던 A whole new world은 추억 어린 감동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켰고, 지니가 주측이 되어 힙합 스웩 다분하게 끼를 발산한 Friend like me는 흥을 돋우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OST조차 주요 세 캐릭터에 골고루 분산시키는 전략을 짠 <알라딘>, 균형 분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알라딘에게는 원숭이를 자스민 공주에게는 호랑이를 자파에게는 앵무새를 붙여놓아 또 다른 종류의 보는 즐거움과 요밀조밀세밀한 맛을 느끼게 했다. 들여다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알라딘에게 가장 적은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데, 그 덕분에 그와 함께 다니는 원숭이 아부와 날으는 마법 양탄자가 부각되어 균형을 맞췄다. 


이 영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 이 영화의 흥행 성공에 절대적 지분을 차지하는 것, 지니로 분한 윌 스미스의 연기다. 아니, 연기라기 보다 '끼'의 분출이라고 해야 맞을까. 1990~2000년대 전성기의 윌 스미스 그 이상의 빨려들어갈 것 같은 끼를 선보였다. 시쳇말로 '약 빤 연기'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그 모습에 '윌 스미스가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느낌마저 든다. 한편, 그런 윌 스미스의 지니가 원작과 싱크로율이 그리 맞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외에 대부분의 장면장면이 원작을 답습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똑같다.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보는 메리트를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의외의 성공을 이룩하였고, 의외의 성공작으로 분류되어 길이남을 영화 <알라딘>. 비록 전체적으론 별다른 특이점을 찾기 힘들고 자못 유치했지만, 대상이 어린과 아이 모두라는 점을 인정했을 때 명백한 건 보는 내내 행복했다는 것이다.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없이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걸로 충분하다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충분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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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OST, 가이 리치, 가치, 균형, 끼, 디즈니, 알라딘, 윌 스미스, 자유, 진실, 침묵
  • BlogIcon 여강여호
    2019.06.24 17:30 신고

    사실 저도 가물거려서 줄거리만 내내 읽고 갑니다. .ㅎㅎ..

    • BlogIcon singenv
      2019.06.24 17:55 신고

      다른 건 몰라도, 디즈니 특유의 재미는 확실히 있었어요 ㅎ

  • 김성회
    2019.06.25 19:12

    정말 IMAX로 보시길 강추! 그럼 감동 백배!

    • BlogIcon singenv
      2019.06.25 19:16 신고

      아쉽게도 IMAX로 못봤어요ㅠ IMAX는 아예 다른 영화에 가깝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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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위한 시간> 명징한 정신과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이 그립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11. 11. 08:00




[서평] <침묵을 위한 시간>


<침묵을 위한 시간> 표지 ⓒ봄날의 책

우리가 잘못 인지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말'에 대한 것이다. 하나는 전자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람들 간의 대화 시간이 줄어 들었다는 생각.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의사소통 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 여자는 하루 평균 25,000개의 단어를, 남자는 10,000개의 단어를 말한다고 한다. 


이는 자연스레 다른 하나의 오해로 넘어가는데, 말을 입으로 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인다는 것. 이제는 입으로 뿐만 아니라 손으로 하는 말도 넓은 의미의 말로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확실히 우리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말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생각의 과잉으로 이어진다. 입으로 생각을 방출하지 않고 손으로 저장하다 보니 생각은 계속 쌓이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리 없는 침묵이 더해가지만, 실상 소리 없는 소음이 우리를 시시각각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진짜 침묵이 너무도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 침묵이 무언지 알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무섭고 견딜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수도원이란 어떤 곳인가?


아무래도 침묵하면 떠올리기 쉬운 것이 종교이다. 경건함 속에서 신을 영접 하는 장소, 그리고 시간. 그 중에서도 가톨릭의 수도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듯싶다. 개인적으로 수도원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지만 '유럽 수도원 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침묵을 위한 시간>(봄날의 책)이라는 책을 통해, 수도원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시에 케케 묵은 오해도 풀 수 있었다. 


이 책은 '패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영국의 전쟁영웅이자, 독특한 문체와 깊이 있는 관찰이 돋보이는 20세기 최고의 여행작가 중 한 사람인 패트릭 리 퍼머가 유럽의 4개 수도원을 여행하고 쓴 에세이다. 여행기 답게 기막힌 묘사와 함께 잔잔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음에도 이 책 만으로 수도원이 그려지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이 책은 절대 찬사를 받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에는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서는 무엇이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수도원에 관련된 역사, 수도원 생활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정보,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할 수도사의 생활과 그에 반하는 바깥 세상의 생활 등이다. 각주를 제외한 본문 분량 만으로 10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책에 그런 부분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이다.  


수도원에 대한 하찮은 오해


물론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지 60년이 흘렀지만, 수도원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여전히 금욕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고독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수도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려지는 검정색 수도복을 입고 중얼거림조차 배제한 침묵의 일생을 보낼 것이 아닌가? 그런데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책은 보여준다. 


"그들에게서는 묘지를 연상시키는 음침함이나 편협함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의에 바친 자신의 삶에 진지하게 임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서로 어울릴 때 보면 그들은 균형 잡히고 박식하며 재치가 넘치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여느 프랑스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본문 중에서)


이런 수도원이 있는가 하면, 다른 수도원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음침하기도 하다. 그들은 황야에서 겪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겟세마니 동산에서 방황했던 그리스도의 고뇌, 십자가의 길과 골고타 언덕에서 끝난 그리스도의 마지막 희생에 대한 평생에 걸친 모방의 일환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영적 수련을 평생에 걸쳐 한다. 그들에게 수도자의 삶이란 길게 이어지는 속죄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고행 하는 삶이 어떤 영적인 위안을 준다고 말한다. 그 위안은 곧 '길게 이어지는 천국의 암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 그 이상이다. 이를 행복한 침묵이자 행복한 고독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전적으로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생각의 과잉에 하루라도 골머리를 썩지 않을 날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줌이 분명하다. 


"수도원은 무덤의 정 반대가 되었다. 수도원은 어떤 비밀스러운 길을 찾는 사원이나 고통을 잊게 하는 마법의 약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조용한 대학이자 시골 저택이었고 일상의 괴로움과 고민거리들이 닿지 못하는 공중에 뜬 성이었다." (본문 중에서)


저자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저자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수도원 4개를 여행하며 우리에게 무엇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수도원에 대한 하찮고 편협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을 것이고, 궁금했을 수도원 생활과 수도사의 삶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며, 수도원에 관련된 박학다식한 지식을 뽐내고도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수도원에 간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술과 파티로 런던 생활에 환멸을 느끼며, 서머싯 몸이 그를 두고 '상류층 여성들을 상대하는 제비'라고 칭한 적이 있을 정도의 '끼'가 있었던 저자는 삶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도원을 전전하게 된 것이리라. 그러면서 여행서로서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구성과 문체를 선사해 주니 저자는 상당히 영악한 자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여전히 뭔가 우리에게 와 닿는 의미가 빠져 있는 것 같다. 무엇일까? 침묵과 고독의 대명사인 수도원과 우리의 삶이 맞닿아 있는 게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건 수도원 생활을 방문객 신분으로나마 직접 체험하면서 저자가 겪은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아니, 순간순간 끊임없이 달려드는 모든 것에 시달린다. 더군다나 스마트폰 혁명의 광풍이 불어 닥친 후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의 속도와 양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와중에 저자가 수도원 생활을 하며 느끼는 변화, 즉 '명징한 정신과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은 더없이 진하게 다가온다. 어느새 상상하기 힘들게 된 그것들이, 이 책을 보며 조금이나마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 삶에 '침묵을 위한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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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말, 생각, 수도사, 수도원, 침묵, 침묵을 위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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