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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전설'에 해당되는 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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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채를 더해가는, 미국 대중문화 센세이션의 신화 <졸업> 2020.03.11
  • 개인 성장, 사회 변화와 함께 하는 산타 클로스 전설의 재해석 <클라우스> 2019.12.04
  • 홍콩 도박느와르의 시작이자 상징 <지존무상> 2019.11.20
  • 코엔 형제 범죄 스릴러의 전설적 시작 <블러드 심플> 2019.10.18
  • 흥미로운 설정에 인간 심리를 건드리는 변주... 그 끝은? <양의 나무> 2018.10.19

색채를 더해가는, 미국 대중문화 센세이션의 신화 <졸업>

모모 큐레이터'S PICK 2020. 3.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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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졸업>


영화 <졸업> 포스터. ⓒ 시네마 뉴원



EGOT라고 하면, 미국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 네 개를 지칭한다. 텔레비전의 에미상(Emmy), 청각 매체의 그래미상(Gramy), 영화의 오스카상(Oscars), 극예술의 토니상(Tony)까지. 이중 2~3개를 수상한 사람은 발에 차일 만큼 많지만, 4개 모두를 수상한 이른바 '그랜드슬래머'는 현재까지 15명뿐이라고 한다. 우리도 알 만한 사람을 뽑자면, 오드리 헵번, 우피 골드버그, 존 레전드 정도가 아닐까 싶다. 


상들의 특성상 배우나 작곡가가 많은데 딱 한 명만 정체성이 '감독'인 이가 있으니 '마이크 니콜스'이다. 특이하게, 1960년대에 에미상을 제외한 세 부분의 상을 석권하며 명성을 누렸던 그는 40여 년이 지난 2000년대에 이르러 에미상을 수상했다. 1931년에 태어나 2014년에 작고했고 2007년 <찰리 윌슨의 전쟁>이 마지막 연출이었다는 점을 보면, 인생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아 결실을 보았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우린 마이크 니콜스라는 이름을 잘 알진 못한다. 그만큼 그가 작품으로만 자신의 대중문화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우린 그의 작품을 아주 잘 안다. 196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두 작품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라> <졸업>만으로 충분하겠지만, 2004년 <클로저>도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다. 지난 2월, 졸업의 계절에 <졸업>이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찾아왔다. 근래 수없이 많은 고전들이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오고 있는데, 걔중 단연 압권이랄 만하다. 


믿기 싫은 기이한 삼각 관계


우수한 성적과 모범적인 생활로 훌륭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벤자민(더스틴 호프만 분), 부모는 온갖 지인들을 불러모아 환영파티를 열어 벤자민의 앞날을 기획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부담스럽고 당혹스럽고 불안하기만 할 뿐, 이 자리를 한시라도 빨리 피하고 싶다. 여기저기 붙잡여서 당황하던 찰나, 다행히 자리를 피했는데 로빈슨 부인과 맞딱뜨린다. 그녀의 가족과는 예전부터 잘 알고 친하게 지내온 사이. 


로빈슨 부인은 벤자민에서 집에 데려달라고 한다. 낌새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못할 건 없으니 로빈슨 부인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벤자민, 하지만 로빈슨 부인은 노골적이다시피 벤자민을 유혹한다. 다행히(?) 로빈슨 부인 남편이 집에 돌아와 위기를 모면하는 벤자민, 하지만 머릿속에서 로빈슨 부인을 떨쳐내지 못하곤 결국 호텔로 불러내 육체적 관계를 맺기까지 한다. 그녀는 결혼생활의 싫증으로 그를 탐한 것이겠지만, 그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던 걸까?


밀회를 이어가던 벤자민과 로빈슨 부인, 와중에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온다. 사실, 벤자민 부모님과 로빈슨 부인 남편은 벤자민과 일레인이 좋은 관계로 발전하길 바랐다. 일레인을 본 이후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한 벤자민, 하지만 로빈슨 부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결국 일레인은 벤자민과 로빈슨 부인의 관계를 알게 되고, 집을 떠나 학교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과연, 벤자민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로빈슨 부인인가, 일레인인가? 꼭 둘 중에 한 명이어야 하는가?


청춘의 방황, 미국의 일탈


영화 <졸업>은 족히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봐도 막장이랄 만한 삼각 관계를 정면으로 내세운다. 정극 기반의 코미디로,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웃음을 유발하는데 개그보다는 유머에 가깝다. 사이먼 앤 가펑클이 책임진 희대의 OST들은 영원히 청춘들의 심금을 흔들 만하다. 여러 모로 이 영화는 영화계 센세이션 따위를 뛰어넘은 대중문화 센세이션의 신화라 할 것이다. 영원히 계속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색채를 더해가는.


지극히 일차원적으로 들여다보자면, 하라는 대로만 정신없이 달려온 대학 졸업생 청춘의 방황을 보여준다. 하여, '청춘'이 주요 모토이다. 환영파티에서 어느 분이 '플라스틱!'이라고 외치며 그의 미래를 자본과 물질 세계의 훌륭한 부품으로 재단하듯 단정한 행동에, 반감이 아닌 당혹을 비추는 모습이 가련하기까지 하다. 부모는 벤자민이 자신의 뜻대로 계속 길을 가지 않을 뿐더러 뭐라도 하지 않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불평이 쌓이는데, '졸업'이라는 말의 함의가 주는 가련함도 함께 쌓이는 듯하다. 끝과 동시에 시작해야 하는 인간의 삶이란. 


이차원, 삼차원을 건너띄고 사차원적으로 들여다보자면, 벤자민에 미국을 껴맞춰 볼 수 있겠다. 1960년 중반 미국이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전방위적으로 절대적 힘과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거인이자 괴물이었다. 대공황의 위기를 지나,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을 치르고, 베트남 전쟁과 냉전이 한창인 상황으로, 해야 할 게 많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깊숙이에선 허무의 기운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와중에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건, 도피와 위안과 자극으로서의 일탈이다. 


전설로 회자되는 장면들


비록 일차원과 사차원적이지만 개인적인 차원과 국가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봐도 큰 위화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영화 <졸업>의 스펙트럼은 어마어마하다. 즉, 이 영화에 그 어떤 걸 들이대도 전부 흡수하고는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으로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완벽히 갖췄다고 할 수 있는 바, 우리는 이 작품을 가지고 각자에 맞게 이리저리 가지고 놀 수 있다. 


이 영화는 전설로 회자되는 몇몇 장면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압권이 세 군데 정도 있다.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든 예상할 수 있을 테고, 심지어 본 적이 없던 이라도 연상할 수 있을 테다. 메인 포스터로도 볼 수 있는, 로빈슨 부인이 스타킹을 신는 장면. 그야말로 평범하고 탈 없고 재미도 없을 것 같은 중산층의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미국의 중산층을 표현하려 해 왔지만 <아메리칸 뷰티> 정도를 제외하곤 필적할 만한 작품이 없다. 


다른 두 장면은 영화 막바지에 몰려 있다.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50년이 넘는 작품에 스포일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벤자민이 초대받지 못한 일레인의 결혼식에 쳐들어가 일레인을 목놓아 부른다. 이에 응답하는 일레인, 벤자민은 교회 십자가를 뽑아들어 하객들을 물리치고는(?) 함께 도망친다. 수없이 패러디되고 오마주되었을 교회 결혼식장 도주 장면은, 유쾌 상쾌 통쾌한 혁명적 일탈을 시원스럽게 보여 준다. 혼돈스러울 정도로 자유분방한 '미국'이라는 나라를 선전하고 있다고까지 느낄 정도이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은 이를 한순간에 뒤집는다. 


결혼식 도중 호기롭게 도망친 벤자민과 일레인, 함박웃음을 지으며 버스를 타고는 어딘가로 향한다. 하지만 곧바로 들이닥친 현실, 딱 들어 맞는 신조어가 하나 있다. 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 '현타', 함박웃음에서 일순간 당혹과 허무와 걱정이 오묘하게 뒤섞인 표정으로 돌아선 그들을 보고 있기로서니 준비와 계획 없는 미래가 얼마나 무시무시할 수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NG로 우연히 만들어진 걸로 유명한 이 장면 하나로, <졸업>은 이미 충분한 전설적 퍼포먼스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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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OT, 대중문화, 더스틴 호프먼, 마이크 니콜스, 미국, 일탈, 장면, 전설, 졸업,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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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성장, 사회 변화와 함께 하는 산타 클로스 전설의 재해석 <클라우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12.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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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클라우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클라우스> 포스터. ⓒ넷플릭스



산타클로스, 매년 12월이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심을 자극하는 그 이름이다. 성 니콜라오라는 기독교 성인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그는 4세기 동로마 제국 대주교로 축일이 12월 6일이다. 수녀들이 전날 12월 5일에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면서 전설이 시작되었고, 네덜란드에서 성 니콜라오 축일을  'Sinter Klaas'라는 이름으로 기렸다. 


사실 크리스마스와는 상관이 없었지만, 근대 들어 미국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Santa Claus'라는 이름으로 크리스마스와 접목시켰다. 산타클로스의 특유의 후덕한 할아버지 인상에 길고 하얀 수염과 붉은색 바탕에 하얀 장식을 한 복장 또한 만들어진 모습이다. 성 니콜라오가 살아생전 대주교였다는 점에서 착안, 주교의 의복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지만 말이다. 


<클라우스>는 산타클로스 전설과 기원을 새롭게 혹은 다시 해석한 넷플릭스 최초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받아들이지 않았고 넷플릭스가 받아줘 겨우 선보일 수 있었다는 후문이 전하는데, 작품을 접하면 그들의 안목이 굉장히 후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쏟아질 텐데 그중 단연 군계일학이겠다. 


금수저 안하무인 제스퍼가 향한 곳


왕립우편사관학교, 우정공사 총재 아들 제스퍼는 아버지만 믿고 제대로된 훈련을 받지 않는다.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니 이 일을 어찌 하나. 제스퍼 아버지는 그에게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홀로 임시 우체국을 세워 1년 안에 6000통의 편지를 처리해야 하는 곳으로, 스미어렌스버그를 낙점시킨 것이다. 어길 시 그가 누리는 모든 것을 빼앗고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는다는 약속과 함께. 


으스스하고 춥고 사람도 많지 않으며 사람들이 찾아올 것 같지도 않은 외딴 섬 스미어렌스버그, 알고 보니 그곳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크롬 가문과 엘링보 가문이 아주 오랫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하며 지내왔기로서니,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그런 곳에서 편지란 게 오갈리 없었을 터, 제스퍼는 우연히 발견한 '산지기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그곳엔 거대한 체구의 길고 하얀 수염을 가진 클라우스 씨가 수많은 장난감을 만들며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친해진다. 


두 가문의 오랜 적대 관계 때문에 친구들과 제대로 놀지 못하는 어떤 아이에게 장난감을 전달하게 된 클라우스와 제스퍼, 아이는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클라우스에게 쓴 편지를 제스퍼에게 가져가서 보내면 장난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제스퍼는 6000통 프로젝트를 시작하고는 클라우스를 찾아가 제안한다. 클라우스는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제스퍼와 함께 한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제스퍼는 착한 아이만 장난감을 받을 수 있다고 소문을 퍼뜨린다. 아이들은 크롬 가문과 엘링보 가문을 아우르며 착한 행동을 시작한다. 미스 크롬과 미스터 엘링보가 이를 두고 보진 않는데... 제스퍼와 클라우스는 아이들에게 계속 장난감을 선물할 수 있을까? 스미어렌스버그엔 평화가 찾아올까?


개인적·사회적 성장의 면면


영화 <클라우스>는 여러모로 새롭고 영리하다. 제목이 '클라우스'인 만큼, 당연히 클라우스가 시작과 끝을 함께 하며 극을 이끌 것 같지만 제스퍼가 대신한다. 한 마디로 그가 클라우스 신화의 산증인이자 화자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영화는 제스퍼의 이야기로도 클라우스의 이야기로도 읽힌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군더더기 없고 빈 곳 없이 꽉 차고 찰진 느낌이다. 


단편적으로, 제스퍼의 성장이 보인다. 금수저 집안의 못난 놈이 세상을 깨닫고 자기를 돌아보며 진짜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 말이다. 전형적이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한 스토리라인일 것이다. 영화는 영리하게도 전형에 새로움을 얻힌다. 우연이라고 하지만, 그의 개인적 성장에 반목과 고정관념과 차별 등의 부정이 긍정으로 바뀌는 사회적 성장이 함께 한다. 


제스퍼가 파견된 곳은 참으로 오래전부터 전통적으로 반목을 해온 두 집안이 있고, 그가 아무것도 모른 채 찾아간 산지기의 오두막 클라우스 씨는 모두가 꺼려하는 외향을 가졌으며, 다르게 생겼고 다른 문화를 가졌으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가 있다. 제스퍼가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시작한 일이 결국 화합을 가져오고 고정관념을 타파하며 차별의 개념을 가질 수 없게 하는 것이다. 


하여, 제스퍼의 성장은 그 자체로 보수적인 외딴 섬에 '진보'로 작용한다. 자의든 타의든,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그 시작의 모양새와 이유가 어떻든, 외부인의 새로운 관념은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가 변화의 모습을 띤 진보를 보여줌에 있어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에 탁월함을 발휘했다. 


산타 클로스 신화·전설의 재해석


한편, 영화는 제목에 걸맞게 산타 클로스 신화 또는 전설을 새롭게 혹은 다시 해석하는 데도 탁월함을 발휘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산타 클로스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말이다. 어이없지만 재밌게도 제스퍼의 별 생각 없는 행동들을 두고 아이들끼리 모여 소곤소곤 대며 떠들어댔던 것. 신화나 전설의 시작이 대부분 거창하기는커녕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

그런가 하면, 마냥 제스퍼의 황당한 행동들만이 아닌 클라우스 또는 클라우스와 제스퍼의 진심 어린 생각과 행동 그리고 슬픈 이야기에서 나온 것도 있으니 균형이 맞춰졌다 하겠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다고 생각되는 게 바로 '균형' 덕분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 메시지, 상징 모두에서 억지 아닌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재미와 감동, 상승과 하락, 위기와 해결, 갈등과 화해 등. 


<클라우스> 하나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향한 믿음은 확고해졌다. 애니메이션으로 출발하지 않은 콘텐츠 기반 스튜디오가 애니메이션을 출범하는 시기는 굉장히 중요한데,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자 하는 목적은 갖지만 기존의 콘텐츠 시장에서 완전히 확고한 자리를 잡고 난 이후던가 경쟁에의 위기를 느낀 이후라고 하겠다. 지금의 넷플릭스 행보로 보아선 둘다에 해당하지만, '디즈니+'의 진출로 보아 후자에 조금 쏠려 있는 듯하다. 그런 면을 고려해서 봤을 때 <클라우스>라는 작품의 선택은 훌륭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차기작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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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도박느와르의 시작이자 상징 <지존무상>

오래된 리뷰 2019. 11. 2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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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지존무상>


영화 <지존무상> 포스터. ⓒ태흥영화주식회사


1980년대 홍콩영화는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인기는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쳐서 당시 한때 미국영화 보다 더 우월한 포스를 뿜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할리우드영화'처럼 '홍콩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단어이자 콘텐츠였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할 운명이었다. 89년엔 예기치 못한 천안문 사태가 발발했고, 97년엔 홍콩 반환이 예기되어 있었다. 90년대 초에 기울기 시작해 90년대 말이 되기 전에 쇠퇴하고 만다.


그 짧은 시기, 성룡으로 대표되는 무술, 주윤발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 주성치로 대표되는 개그, <천녀유혼>으로 대표되는 무협판타지 등의 장르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들은 성공에 힘입어 수많은 후속작 또는 아류작를 양산했는데 확대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선 장점으로 작용했을지 모르나 결국 가장 결정적인 쇠퇴의 단점으로 작용했다. 와중에, 도박 또한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 시작이 89년작 <지존무상>이다. 

 

3개월 만에 <도신>으로 도박영화 셀프 복제를 하여 큰 성공을 거둔 왕정 감독의 히트작이자 황화승 감독의 유일한 연출작으로, 홍콩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훨씬 더 많은 인기를 구가했다. 알란 탐과 진옥련이 주인공이지만, 주연으로 분한 유덕화와 관지림이 수혜를 입었다. 특히 유덕화에겐 <열혈남아> <천장지구> <무간도>와 더불어 <지존무상>이 그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들 중 압도적 대표작으로 남아 있다.


아해와 아삼의 의리, 그리고 비극


교도소에서 출소한 아해(유덕화 분)는 친구 아삼(알란 탐 분)과 함께 다시 홍콩 도박계에 발을 붙인다. 이내 미국에서 용 형이 지원요청을 해오는데, 일본인 도박사들이 수법을 쓰는 것 같으니 이를 해결해달라는 것이었다. 아해와 아삼은 어렵지 않게 수법을 간파해 해결하곤 미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아삼은 카렌이라는 여인을 만나 결혼까지 약속한다. 


홍콩으로 돌아온 아해와 아삼, 일상을 즐기다가 아삼이 조직원들로 보이는 이들에게 습격을 당한다. 미국에서 그들이 일망타진시키는 데 도움을 준 일본인 도박사들과 얽혀 있는 마피아 미야모토 부자가 사주했던 것이다. 아해는 아삼을 구하려다 왼손을 못 쓰게 되고 힘든 생활을 이어간다. 한편 아삼은 카렌과 결혼하며 장인어른께 사업을 배우는가 하면 도박을 끊겠다고 약속한다. 힘들어 하는 아해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지만 아해는 거절한다. 상심해 있는 아해와 아삼의 도박 파트너 보보는 연인관계가 된다. 


아해는 미야모토 부자의 아들인 타로한테서 거액의 돈을 따 보보와 함께 브라질로 가 행복하게 살겠다는 마지막 각오로 아삼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아삼은 거절하고 아해 혼자서 향한다. 왼손을 다쳐 타로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아해는 사전에 보보와 짜고 타로의 돈을 강탈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에 타로는 복수로 아삼과 카렌의 아버지가 사업 차 호주에 가 있는 사이 카렌을 납치하곤 아해에게 알린다. 아해는 죽음을 각오한 채 카렌을 구하러 떠나는데...


홍콩 도박영화의 시작이자 상징


영화 <지존무상>은 몇몇 작품과 함께 '홍콩영화'의 상징 같은 작품이다. 하여 연출력과 만듦새와는 별개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인정받을 것이다. 영화는 홍콩 도박영화의 시초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이전에 홍콩 느와르 장르에 속한다. 다만, <영웅본색> <첩혈쌍웅>과 다르게 조직 이야기가 아니라 도박 이야기가 주이다. 


홍콩 느와르는 조직 즉 갱단에서의 비극적인 이야기와 화려하고 비현실적인 총격전과 죽음도 불사하는 의리가 가장 중심이자 모든 것이다. 이미 홍콩에선 5~60년대부터 존재해왔지만, 1986년 <영웅본색>으로 본격적으로 알려져 양산되고 홍콩영화 자체를 상징하고 이끄는 장르가 되었다. <지존무상>은 <영웅본색>으로부터 불과 3년 후의 영화지만, 그 사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 홍콩 느와르들에서 느꼈을 피로감과 별개로 떨어질 수 없었다. 즉, 이 영화는 홍콩 느와르 장르에선 늦은 편이자 일각에선 이미 퇴화되고 있을 때 나온 작품이라고까지 평한다. 


이미 정통이라고 할 만한 홍콩 느와르는 다 나왔을 때 <지존무상>이 출현했고, '도박'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기회로 만들 것일 테다. 그 결과 지금에 이르러서는 홍콩 도박영화의 시작이자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엔 총격전과 의리와 비극이 존재한다. 특히 의리와 비극은 원류인 <영웅본색> 못지 않다. 심금을 울리는 상징적 장면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의리와 비극의 길목에서 이루어지는 실존적 도박


홍콩 도박영화 하면 사실 <도신>을 가장 앞에 세운다. 당대 최고 주윤발과 유덕화를 내세운 무협 기반 도박 소재의 코믹 영화로, 왕정 감독의 작품이다. 그에 살짝 앞서 개봉한 <지존무상>이 느와르 기반의 나름 진지한 영화였던 것과 확연히 다르다. 한편, 이들 뒤를 이은 <도성>은 주성치를 앞세워 <도신>을 향한 오마주와 패러디로 중무장한 코믹 영화이다. 도박영화는 1980년대에서 90년대로 이어지는 때의 홍콩영화계를 점령한 주류였던 것이다. 


<지존무상>은 이들 중 홍콩 현지에서는 가장 낮은 흥행성적을 기록했지만, 한국에선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홍콩 느와르에 도박을 입힌 점과 너무나도 멋지게 나온 유덕화가 큰 몫을 차지했겠지만, 귀에 착 감겨서 떠나지 않는 제목도 한몫했을 듯하다. 다만, 영화에선 정작 도박하는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의리와 비극의 주요 길목에서 실존적 도박이 이루어진다. 바로 이 지점이 <지존무상>만의 백미이다. 


오래된 영화를 다시 보면서 추억을 되짚는 건 축복받은 일이다. 홍콩영화는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콘텐츠인 것 같다. 그 시대에 화려하게 꽃 피고 금방 져버려서 이제는 흔적도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오직 추억으로만 복기할 수 있을 뿐이다. <지존무상>은 그 한복판에서 가장 빛났던 존재 중 하나이다. 왕정 감독과 유덕화 배우는 여전히 열일 중이지만, 알란 탐이나 관지림이나 진옥련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홍콩영화가 다시금 기지개를 펼 날이 요원한 가운데 하염없이 옛날을 그리며 전설을 추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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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느와르, 비극, 유덕화, 의리, 전설, 지존무상, 홍콩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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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 범죄 스릴러의 전설적 시작 <블러드 심플>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0.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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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블러드 심플>


영화 <블러드 심플> 포스터. ⓒ(주)콘텐츠 윙



오랜 세월이 흘러 전설을 처음 혹은 다시 목도하는 건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경우 극장 개봉을 해주지 않는 이상 접하기가 쉽지 않다. 외국 영화인 경우엔 더욱 어려운 건 자명한 사실이다. 다른 채널로는 잘 접하게 되지 않으며 제대로 된 번역으로 즐길 수가 없다. 하여 얼마전 최초 개봉했던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나 역시 얼마전 수십 년만에 재개봉한 자크 데미의 <쉘부르의 우산> 같은 경우는 축복이라 하겠다. 


오래전의 전설적인 작품들이 재개봉이나 최초 개봉으로 선보이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이번 11월 초에 최초 개봉 예정인 1985년작 <타이페이 스토리>나 1987년작 <모리스>의 경우 작품 자체가 대단하기도 하지만 감독인 에드워드 양과 제임스 아이보리가 최근 여러 루트로 다시 한 번 이름을 알렸기 때문이겠다. 한편, 코엔 형제의 데뷔작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블러드 심플>의 경우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되면서 큰 호응을 얻고서 개봉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블러드 심플>은 국내에선 극장 개봉 대신 비디오로 정발되면서 '분노의 저격자'로 번역되어 불렸다. 이 영화는 코엔 형제를 말할 때 항상 따라다니는 '선댄스 영화제' 제1회 심사위원대상작이다. 언젠가부턴 거꾸로 선댄스 영화제를 말할 때 코엔 형제가 따라붙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블러드 심플>은 선댄스 영화제가 추구하는 작가주의 독립영화의 부흥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영화라 하겠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불륜 사건


미국 텍사스, 바를 운영하는 마티에게 자신을 사립탐정이라고 밝힌 남자가 찾아와서는 사진을 건네며 말한다. 마티의 술집에서 일하는 종업원 레이와 마티의 아내 애비가 침대에 함께 있는 모습의 사진이었고, 그가 말하길 밤새도록 쉬지 않고 뒹굴더란 것이었다. 마티는 나쁜 소식을 전한 사립탐정 비저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술집에 찾아온 레이는 마티에게 오히려 뻔뻔하게 "뭐죠?" "날 치겠소?" 식으로 굴며 비웃으며 2주치 급료를 요구한다. 마티는 너 따위와 얘기를 섞고 싶지 않다며 아내 애비가 그러고 있는 게 자신을 우습게 만든다고 말한다. 레이는 해고 당한다. 레이의 숙소에 함께 기거하게 되는 레이와 애비, 마티는 애비를 납치하려다가 실패한다. 


레이와 애비를 용서할 수 없는 마티는 비저에게 1만 달러를 약속하며 레이와 마티 청부살인과 확실한 뒷처리를 맡긴다. 자신은 비저의 제안에 따라 낚시를 떠나고, 비저는 실행에 옮긴다. 다시 만난 그들, 비저는 총으로 쏴서 죽인 그들의 사진을 마티에게 건네고 마티는 비저에게 1만 달러를 건넨다. 그때 비저가 마티를 죽이는 예상치 못한 짓을 저지르고, 레이가 다시 마티를 찾아와서는 죽은 마티와 애비의 총을 보고는 애비가 마티를 죽였다고 판단해 현장을 치우고 마티를 데려가면서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하드보일드 고전 오마주


<블러드 심플>은 코엔 형제의 고전, 그중에서도 하드보일드 고전을 향한 오마주의 일환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개인이 상황이나 환경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해결해 나가거나 또는 꼬일대로 꼬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이나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개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옛날이야말로 한 개인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옛날의 범인(凡人)은 세상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 반면 지금을 비롯 점차 범인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하여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사건을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원제 'blood simple'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하드보일드 소설 창시자라 불리는 대실 해밋의 데뷔작 <붉은 수확>에서 따온 단어로 폭력적인 상황에 장기간 몰입한 사람들의 추악하고 두려운 사고방식을 뜻한다. 영화 속에서 애비를 제외한 세 남자의 사고와 행동을 들여다볼 것도 없이 대략의 겉모습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는 곧 '그럴 수도 있겠다'로 바뀐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 자못 평범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별 것 없을 만한 고전 스타일을 가져와 '코엔 스타일'로 변형 아닌 비틀기와 재해석을 시도한 게 35년 전이니 말이다. 바로 그 비틀기와 재해석에 이 영화를 보는 이유와 방법이 있다. 메이저와 마이너 경계에서 35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 코헨 형제의 시작을 살펴보는 건, 현대 영화의 아이콘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름 없을 것이다. 


코엔 형제표 범죄 스릴러


영화를 시작하는 내레이션이 눈길을 끈다. "세상은 불만자로 가득해.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교황이 잘못하면 미 대통령도 그 어느 것도 잘못될 수 있어. 난 불만을 가진 채로 살 거야.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모두 헛일이야. 러시아 체제는 모두들 서로에 협력하도록 되어 있어. 그건 이론일 뿐이고, 내가 아는 건 텍사스야. 여기선 너는 너야."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는 말이 영화를 관통한다 하겠다. 


불확실성은 현대 사회를 지칭하고 상징하는 대표적 개념이다. 시시각각 어디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현대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불확실성은 항상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개념이었을 터, 35년 전 코엔 형제는 영화를 통해 불확실성의 굴레에 처한 인간을 고찰했다. 코엔 형제는 일면 정형화되어 왔을 불확실성을 확장시키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펼쳐 보인다. <파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이어질 코엔 형제표 범죄 스릴러의 시작이다. 


<블러드 심플>로 시작된 전설은 코엔 형제뿐만 아니다. 형 조엘 코엔의 실제 부인인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이 영화의 주연으로 연극계에서 영화계로 성공적으로 이착륙할 수 있었다. 이후 코엔 형제의 페르소나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에서 단역, 조연, 주연 가리지 않고 출연했다. 아카데미 2회 수상의 빛나는 업적을 자랑한다. 한편 코엔 형제의 업적은 정리 및 언급이 불필요할 정도로 엄청나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의 촬영 감독과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배리 소넨펠드는 이후 코엔 형제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면서 촬영 감독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빅>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저리> 등으로 촬영 감독으로선 최고의 커리어를 쌓은 그는 <아담스 패밀리>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해냈고 이후 <맨 인 블랙> 시리즈로 크게 흥행해 유명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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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설정에 인간 심리를 건드리는 변주... 그 끝은? <양의 나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10. 1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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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양의 나무>


영화 <양의 나무> 포스터. ⓒ영화사 오원



내세울 건 사람들도 좋고 생선도 맛있는 것뿐인 평화롭고 작은 어촌 마을 우오부카, 6명의 낯선 이들이 신규로 전입온다. 시청 직원 츠키스에(니시키도 료 분)는 상사의 지시로 거주지도, 근무지도 정해져 있는 그들의 정착을 돕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정체를 의심을 품게 된 그는 상사에게서 여러모로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지자체가 고용과 주거를 보장하면 신원보증인 없이 수감자들을 가석방시킬 수 있게 정책이 바뀌면서, 인구 과소의 어촌 마을 우오부카가 이를 받아들였고 그들은 최소 10년간 우오부카 소속의 시민이 되어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모두 갖가지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이었다는 사실...


어느 날 의문의 살인 사건이 발생, 새로 전입 온 6명이 살인범이었다는 걸 유이하게 아는 츠키스에는 그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대놓고 야쿠자인 스기야마를 제외하곤 5명 모두 지금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람을 죽였던 이들...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믿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


흥미로운 설정, 기대되는 변주


영화 <양의 나무>의 한 장면. ⓒ영화사 오원



좋은 원작을 가지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왔던 일본의 믿을 만한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 2006년에 장편을 데뷔한 그의 작품들은 2010년 4번째부터 국내에도 꾸준히 소개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은 <종이 달>, 199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를 훌륭하게 변주해내어 깊은 인상을 주었다. 


드라마를 기본으로 그 위에 다양한 장르를 덧씌우고 흥미롭기 이를 데 없는 설정과 자유자재 변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시킨 그의 신작 <양의 나무>가 국내에 상륙했다. 이 영화 역시 기본 설정이 매우 흥미롭다. 어떤 변주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 6명의 평범한(?) 살인범 수감자가 가석방되어 들어오는데 얼마 안 가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설정,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들을 향한 다양한 형태의 시선들, 마을 전설과의 접점에서 벌어지는 변주. 


현대사회적 문제들, 그리고 인간 심리의 근간


영화 <양의 나무>의 한 장면. ⓒ영화사 오원



영화는 일본의 현대사회적 문제들인 가석방, 지방의 인구 과소, 고령화 등을 터치하며 기본 설정을 정하는 동시에 이목을 끌고, 그 반석 위에서 인간 심리의 근간을 과감히 터치하며 궁극적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그들을, 살인범들을 믿을 수 있겠냐고. 용서를 하고 안 하고가 아닌, 믿을 것인지 믿지 못할 것인지의 질문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살인범을 용인하고 용서하는 것과 용인하지 못하고 용서할 수 없는 건 상대적으로 가능하기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절대적으로 어렵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한 후에도, '믿음'을 주는 건 또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살인범이 아닌 평범한 사람과도 믿음을 주고 받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는 누구나가 아주 절실히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살인범'이라는 낙인은, 그가 살인과는 전혀 상관 없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실수를 했을 때도 '역시 살인범이야. 살인범인 이유가 다 있지. 괜히 살인을 했겠어.'라고 생각하게 되어 '믿음'과는 하등 멀어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악독한 범죄인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을 향해, 인간이 가장 컨트롤하기 힘든 믿음과 불신이라는 절대적 반대의 입장이면서도 한끗 차이로 경계에서 오가는 두 개념 중 하나를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인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이라면 어떻게 할 수밖에 없을까.


헐거운 용두사미


영화 <양의 나무>의 한 장면. ⓒ영화사 오원



츠키스에가 우리를, 평범한 인간을 대변한다. 그는 분명 선해 보이는 사람이다. 더불어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마을 사람, 아버지까지 최대한의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지만 그 자신이 관련된 건 객관적이기 힘든 것 같다. 그와 별개로 일어날 사건은 일어났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이란 절대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하길 바라서도 안 된다는 걸 시사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츠키스에를 중심으로, 6인끼리의 대면이나 얽힘이 아닌 츠키스에와의 대면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영화가 질문을 던지는 대상이 츠키스에를 내세운 평범한 인간들, 즉 영화 밖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영화 자체도 그 때문인지 뒤로 갈수록 실망의 길로 가는 것 같다. 


우리가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 알고 싶었던 건 우리가 아닌 살인범들이었을 테다.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보이 A>가 훌륭하게 보여준 감성 말이다. 거기에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더해져 얽히고 설킨 와중에 아픈 감성들의 부딪힘이 극에 다다르면 더할 나위 없는 서스펜스 스릴러 드라마가 탄생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두고 '용두사미'라는 사자성어와 '헐겁다'라는 형용사를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무리 평범한 스릴러의 틀에서 벗어나 스릴러 앞에 '심리'를 붙이며 새로운 스타일 변주를 시도했다고 하나, '빵' 터져야 할 후반이 오히려 전반보다 헐거운 아쉬움이 너무 컸다. 그래도, 전반이 적어도 설정에서는 용에 비견될 정도로 괜찮은 건 그 자체로 이 영화를 볼 만한 충분한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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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양의 나무, 요시다 다이하치, 용두사미, 인간 심리, 전설, 현대사회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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