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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왜 인기가 많을까?

생각하다 2018. 9. 2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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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추리소설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다. 내 생애 유일하게 밤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다 읽어버린 책도 다름 아닌 추리소설이다. 피터 러브시의 <가짜 경감 듀>, 그 유쾌하고 짜릿했던 순간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을 때 종종 추리소설을 찾는다. 


세계 3대 추리소설이니 세계 10대 추리소설이니 따위의 것들을 거의 모두 섭렵했다. 개중엔 크게 추리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중심으로 추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소설, 추리는 곁가지인 대신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이면과 세상의 필연적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소설이 있다. 개인적으로 후자를 더 좋아하고 더 높게 치는 편이다. 


추리소설의 본래적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뭐니뭐니 해도 '추리'가 아닐까. 추리, 즉 사건과 트릭이 얼마나 치밀하고 철저하게 직조되어 있느냐, 독자들로 하여금 얼마나 감탄을 자아내게 할 수 있는가, 독자들의 예측 범위를 얼마나 벗어났는가 등이 중요할 것이다. 엘러리 퀸의 작품들을 보면 가히 그 환상적인 추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추리소설 마니아들은 당연히 이들 소설을 더 높게 친다. 거기에서 어떤 문학적, 인문학적 요소를 끄집어내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저 충실하게 누구도 생각할 수 없으면서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추리를 내보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많다. 


동양 추리소설의 천국이자 최첨단, 일본


히가시노 게이고 ⓒ나무위키



추리소설에서 추리적 재미 아닌 의미를 찾아야 하겠느냐고 불평할 수 있겠지만, 나 같은 독자는 그래야 한다. 추리소설 입문을 늦게 한 독자일 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겠는데, 추리소설계에서 보면 수준이 낮은 독자일 수도 있고 오히려 수준이 높은 독자일 수도 있다. 결론은 추리소설계 전체의 수준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던 건 분명하다. 


동양에서 일본은 추리소설의 천국이자 최첨단이다. 아니, 현재는 전 세계에서조차 북유럽 정도 아니고선 대적할 곳이 없는 최고의 추리소설 나라이다. 그런 일본 추리소설계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한다. 신본격과 신사회파. 본격에서 시작된 일본 추리소설이 사회파를 지나 두 가지 흐름이 따로 또 같이 흐르게 된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로 대표되는 본격은 사건과 트릭을 중심으로 촘촘하고 철저하게 직조된 소설이고,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자 국민작가이기도 한 마츠모토 세이초로 대표되는 사회파는 인간을 중심으로 현실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된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이다. 이후 80~90년대에 사회파에 반하고 본격으로 돌아가자는 신본격과 사회파를 잇는 신사회파가 동시다발로 출현한다. 


그 즈음 출현한 수많은 추리소설가들, 그중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치는 독보적인 듯하다. 특히 옆나라인 우리나라에서 그 위치는 추리소설계, 아니 문학계, 아니 출판계 전체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왠지 생각나는 그 이름 무라카미 하루키가 몇 년에 한 번씩 출현해 출판계 전체를 뒤집어버리려고 하는 것과 다르게 실상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과 다르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 년에도 몇 편씩 출간하면서도 적어도 흥행면에서 실망시키는 법이 한 번도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 ⓒ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를 시작할 때 가장 많이 접하는 소설은 단연 <용의자 X의 헌신>일 것이다. 일본 대중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상 중 최고봉인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데뷔한 지 35년 정도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약 데뷔 20년 정도 시기의 작품으로 모든 면에서 완숙된 면모를 보인다. 


추리소설에 한창 빠져 있던 당시 막 출간되어 수없이 많은 추천을 듣고 읽기 시작했었는데, 자연스레 그의 다른 소설들을 접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기억에, 오프라인 아닌 온라인에서 주로 추천의 말들을 접했는데 대부분 여성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이 겉은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실상 극강의 사랑 방식을 내보이기 때문이었기 때문인데, 언제 보아도 반할 만한 아름다고 슬픈 사랑의 모습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으로 본격 미스터리 대상 소설부문을 수상했을 만큼, 일본 추리소설계 계파에서 신본격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는 소설가이다. 하지만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보다시피 추리를 수단으로 사용할 만큼 추리 자체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선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국내에 출간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포진되어 있거니와 얼마전에는 100만 부를 돌파하기도 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실상 인간 본성의 따뜻함을 내보이는 게 주된 목표인 소설이다.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추리적 재미의 반석 위에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한껏 발휘한 '인간'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낸 소설이라면 독자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무겁거나 사회의미적이지도 너무 가볍거나 사건트릭 위주도 아닌 그 경계에서 자유자재로 줄타기를 하는 소설이 어디 흔한가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


우리나라 추리소설계를 생각해보자. 뭘 알아야 생각도 해볼 텐데 알 수가 없으니 패스하자. 우리나라 문학계를 들여다보자. 여전히 본격문학이 우위에 있다. 대중문학 또는 장르문학은 무시하고 거들떠도 안 본다. 그 소설들의 역량이 떨어지던가 또는 건질 게 없던가 하는 건 차치하고서도 말이다. 들여다보지 않으니 역량을 높일 이유가 없던가, 역량이 떨어지니 들여다볼 필요가 없던가, 여튼 어떤 식으로 문제는 문제다. 


일본은 추리소설계뿐만 아니라 문학계 전체에서도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을 따로 또 같이 챙겨왔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게 아닌가. 본격문학을 대표하는 상인 아쿠타가와상과 대중문학을 대표하는 나오키 상의 동급 위상은 일본 문학계의 축복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는 단편적으론 여성이 좋아할 만한 소재, 추리가 주는 내재적 재미와 추리 아닌 것들이 주는 외재적 의미의 자유자재 줄타기, 무엇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훌륭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 등이 있을 테다. 하지만 기실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 뒤에는 일본 문학계의 실력이 있다. 


본격과 대중을 가리지 않고 재미와 의미를 포용하는 자세 말이다. 분명 이는 오랜 시간 반목과 조율을 그 자체가 분열이나 혼란이 아닌 민주적 다양성의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너른 자장 아래서 계속 반복해온 결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소설가가 탄생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와중에 영리하게 이쪽 저쪽을 오가며 셀프포지셔닝을 하는 소설가 장강명이 있긴 하다. 기자 출신으로 어떻게 하면 사회에 목소리를 내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 굴하지 않는 자신만의 신념을 지닌 채 다작의 기본으로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데뷔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그의 앞으로의 10년이 기대되는 점이다. 제2의 히가시노 게이고, 제2의 장강명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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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본격, 용의자 X의 헌신, 인기, 일본문학, 추리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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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미션, 따라오는 인기와 돈... 플레이할 것인가? <너브>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1.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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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현대판 글레디에이터 <너브>


SNS 미션 수행 사이트 '너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10대들의 이야기, 영화 <너브>. 별 생각 없이 봐도 무방하지만, 현대판 글레디에이터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발상이겠다. ⓒBoXoo 엔터테인먼트



시티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곳에 거주하는 소심한 성격의 비, 대학 입학을 앞두고 고민이다. 엄마와의 소소한 말다툼, 결국 엄마의 말을 듣기로 한다. 학교에서는 럭비 선수들 사진 담당인듯, 선수들 사진을 멋지게 찍어 대지만 정작 짝사랑하는 주장 JP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한다. 친구들이 놀리는 와중에, 시드니가 '너브' 운운하며 비의 소심함을 지적한다. 그러고는 JP에게 가서 비에 대한 감정을 떠보는데, 그 자리에서 비가 자기 스타일이 아님을 말한다. 비는 빈정이 상해 자리를 뜨고, 집으로 가서는 너브에 접속하고는 '플레이어'로 시작하는데...


'너브(Nerve)'에는 여러 뜻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용기 또는 대담성을 뜻하겠다. 더불어 이 영화에서는 주로 10대들의 비밀 사이트로, 운영자는 미션을 내리고 '플레이어'가 이를 수행하면 일정 정도의 돈을 주며 '왓쳐'는 미션 수행 동영상을 보고는 '좋아요'를 눌러주는 시스템이다. 미션은 단계가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는 대신 금액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미션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포기하면 그동안 받았던 돈을 모조리 돌려주어야 하며, 끝까지 남은 최종 2인은 수많은 와쳐들이 모인 경기장에서 죽음의 대결을 벌인다. 그에게는 엄청난 인기와 함께 엄청난 돈이 수여될 것이다. 


영화 <너브>는 SNS를 기반으로 한 비밀 미션 수행 사이트 '너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10대들의 치기 어린 이야기를 담았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10대 대상 저예산 스릴러 영화로, 현실을 그대로 담으려고 하면서 문제제기를 한다. 현대판 글레디에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영화가 길지 않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너브에 접속하면서 사건이 급속도로 제기되며 재미지수 또한 그만큼 올라간다. '시간때우기' 용 이상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영화다. 


영화 속 미션이 주는 적당한 퀄리티와 긴장감


영화는 미션으로 거의 모든 걸 설명한다. 영화의 스토리가 즉 미션의 스토리인 것이다. 고로 미션의 퀄리티가 중요할 텐데 괜찮은 수준이다. ⓒBoXoo 엔터테인먼트


플레이어가 된 비에게 내려진 미션은 처음엔 주로 부끄럽고 민망한 것들이다. 두 눈 꼭 감고 그저 하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고 인기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단계가 올라갈수록 주어지는 미션은 그저 한다고 되는 게 아닌,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비는 1단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이안과 함께 미션을 수행한다. 서로가 서로의 미션 수행 대상이 되기도 하고, 미션을 수행함에 있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서로를 향한 좋은 감정이 싹튼다. 비의 경우엔 소심한 자신의 성격에 대한 반발심이 크게 작용했을 거다. 


영화에서 플레이어가 미션 수행하는 장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아무래도 플레이어가 이 시스템의 한 가운데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을 보는 다양한 눈이 없다면, 그들도 존재하지 않을 테고 그들의 미션 수행도 재미 없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의미도 없을 테고. 그들을 지켜보는 왓쳐들의 시선, 그들 스스로의 미션 수행 장면을 찍는 시선, 외부의 시선, 그리고 그들 모두를 몰래 통제하는 운영자의 시선까지. 이 영화를 '스릴러' 장르로 표현할 수 있는 이유가 다름 아닌 거기에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왓쳐가 되어서 플레이어의 미션 수행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도 들지만 플레이어가 되어서 직접 미션 수행을 하고 있는 느낌도 드는 것이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허접하지도 않은 수준의 퀄리티를 선보였다. 적당한 수준의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었기 때문에, 좋다 안 좋다를 논할 수 없을 정도의 무(無)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집중할 수 있었다. '기승전결'을 영화 자체가 아닌 영화 속 미션 수행에 가져다 붙인 것이다. 한 우물을 판 전략이 유용했다고나 할까. 


플레이어인가, 왓쳐인가


직접 미션을 수행하고 인기를 얻고 돈을 받는 '플레이어', 플레이어가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열광하는 '왓쳐'. 무엇이 되고 싶은가? ⓒBoXoo 엔터테인먼트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 아프리카 BJ의 자극적이고 대담한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혀를 끌끌 차며 저게 뭐하는 거냐며 비난하지만 쉽게 나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들의 행동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좋아하고 환호할 만한 요소가 풍부한 것이다. 그들이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고 보여주려 한 것이든,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그들에게 제안한 것이든, 서로가 좋아하고 원하는 시스템이니만큼 성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기에 대중심리라는 소프트웨어와 SNS라는 하드웨어가 합쳐지니, 그 시너지 효과는 그동안 발전해 왔던 인터넷 문화가 한 정점에 다다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영화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이 어떤지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는다. 그게 나쁘냐 좋으냐 가타부타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의 행동을 보여줄 뿐이다. 선택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를 테니. 너브에 가입해서 플레이어가 되든 왓쳐가 되든, 너브에 가입하지 않고 지나가다가 가끔 혹해서 몰래 보곤 하는 외부인이 되든. 


나라면 무엇을 선택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너브를 가입할까? 가입하는 순간,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도 받겠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에 들어와 설명할 도리 없는 욕구를 분출하는 환희를 맛보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난 가입할 것 같다. 


플레이어인가, 왓쳐인가. 돈과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그 세계에선 신만큼 위대해질 수 있는, 즉 수많은 사람들의 추종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플레이어이다. 물론 그만큼, 그 이상의 위험이 따를 것이다. 반면, 왓쳐는 그저 즐기면 된다. 원하는 것을 꺼리낌 없이 말하고 마음껏 비난하고 욕하고 환호하면 된다. 간편하지만, 그게 끝이다. 그걸 함으로써 돈도 벌 수 없고 인기도 얻을 수 없다. 난 열심히 왓쳐를 하다가 어느 때는 플레이어를 할 것 같다. 


'통제'가 필요한가? '자가해결'이 답인가?


10대들의 위험천만한 미션 수행을 보고 있노라면 계속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통제'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다행히도 영화는 '자가해결'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비록 미숙하더라도 좋은 모습이다. ⓒBoXoo 엔터테인먼트



모든 것엔 양면성이 있다. 이 영화는 한 면만 부각한다. 그저 보여줄 뿐이지만, 그 자체가 자극적이고 대담하고 위험하다는 걸 누구나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TV, 유튜브, 페이스북 라이브까지 퍼져나가는 실시간 동영상 세계, 그 세계도 양면이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소통'의 부재, 이를 타파할 수 있는, 아니 이를 타파하고 있는 게 다름 아닌 이 실시간 동영상들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그 어떤 이들보다 더 많이 소통하고 있으며, 그 하드웨어는 그 어떤 하드웨어보다도 더 쉽게 소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린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가. 


문제는, 그 '좋은 세상'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 <너브>에서 보여지는 '너브'의 세상이 그렇다. 그 세상에 속한 이들은 너무 즐거워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보호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한 곳으로 휩쓸리는 건 한순간이고 그 휩쓸림이 좋지 않은 쪽으로 가는 것도 한순간이며 최악의 결과를 내고서도 모르는 게 다반사다. 그들 서로를 지켜주는 보호장치는 아무 소용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칫 '통제'가 필요하다는 말로 귀결될 요지가 있다. 이 영화가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던지는 메시지가 굉장히 크게 다가오는 게 바로 여기에 있는데, 외부의 '통제'가 아닌 순수한 '보호' 또는 '자가해결'이 답이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방법까지 보여줄 역량은 못 되었지만,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이 속한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는 건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좋은 세상이 되든, 힘겨운 세상이 되든 말이다. 누군가가 재단하고 제시하고 통제한다면 그 순간 지옥이다. 영화는 플레이어가 될 것인지, 왓쳐가 될 것인지 물어보지만, 그 이면엔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걱정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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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너브, 돈, 미션, 왓쳐, 인기, 자가해결, 통제,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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