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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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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장례날 남의 잔칫집에 가야 했던 한 남자 <잔칫날> 2020.12.23
  • 전쟁의 일상과 날것의 현장감이 압권인 명작 전쟁영화 후보 <아웃포스트> 2020.09.25
  • 중국 영화의 새로운 '믿보' 조합, 청궈샹 감독과 저우둥위 배우 <소년시절의 너> 2020.07.14
  • 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될, 영화 <조커> 2019.10.05
  • 열일 하정우, 대세 하정우, 종합예술인 하정우 2017.08.03
  •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 실화에 접근하는 방법 <클랜> 2016.06.06
  • 이번엔 오스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레버넌트>(2) 2016.01.29

아빠 장례날 남의 잔칫집에 가야 했던 한 남자 <잔칫날>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2.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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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잔칫날>


영화 <잔칫날> 포스터. ⓒ트리플픽처스



무명 MC 경만은 온갖 행사를 뛰며 대학교에 다니는 여동생 경미와 함께 뇌졸중으로 2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빠를 간호 중이다. 엄마는 집을 나가고 없다. 여의치 않지만 한 가족이 서로를 보다듬고 보살피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경만이 일을 하던 도중 경미가 간호 중에 있을 때 아빠가 돌아가신다. 딸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다가 다친 걸로 보인다. 


졸지에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게 된 경만과 경미, 그런데 슬퍼할 겨를도 없이 서슬 퍼런 현실과 맞딱뜨린다. 장례식을 치르는 비용이 뭐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바로 결제를 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경만은 돈이 없다. 그런 와중에, 친한 형이 아내의 출산으로 뛰지 못할 지방의 큰 건을 경만에게 부탁한다. 경만은 당연히 거절하지만, 큰 액수를 듣고 결심한다. 경미에겐 집에 갔다가 병원에 들러 온다고 거짓말을 해 놓고, 팔순 축하연 행사 MC를 맡으러 삼천포로 향한 것이다. 


현장에 가니, 동네 잔치급의 행사에다가 남편을 잃은 후 웃음이 사라진 팔순의 어머니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면 좋겠다는 아들 일식의 특별 주문도 받게 된다. 아빠의 장례날에 생판 모르는 남의 생신 축하연에서 재롱을 피워야 하는 아이러니란... 팔순의 어머니께 웃음을 찾아 주는 덴 성공하지만, 갑자기 쓰러지시니 잔칫날의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한편, 아빠의 장례식장을 홀로 지키고 있지만 경만의 부재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미에겐 온갖 사람들한테서 압박과 잔소리가 들이닥치는데... 애잔한 남매의 짠한 하루의 끝은 어떨까?


김록경 배우의 관록 있는 장편 연출 데뷔작


영화 <잔칫날>은 2004년 데뷔 후 메이저급 영화의 단역과 단편의 주연을 넘나들며 수십 편의 작품에서 얼굴을 비춰 온 김록경 배우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올해 7월 치러진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자그마치 4관왕(작품상, 배우상, 관객상, 배급지원상)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리다 못해 날렸다. 몇 년 전부터 단편 연출로 단단하게 연마해 온 실력을 유감없이 뽐낸 것이리라. 


장례식장과 잔칫집을 오가는 상반된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해 내는지가 관건이었을 텐데, 톤 앤 매너가 굉장히 적절했다. 웃음과 울음, 코믹과 메마름의 경계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 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애잔한 남매의 끝없이 꼬여만 가는 상황 설정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똑같은 심정을 느끼는 것처럼 만들었다.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까지 도맡아 한 김록경 '감독'의 실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라 하겠다. 아무도 겪고 싶지 않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생의 단면을 세밀하게 직조해 낸 바, 그의 다음 연기보다 각본과 연출이 더 기대된다. 비록 한 편뿐이지만, 이 정도면 믿고 볼 수 있는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그를 향한 찬사는, 자연스레 그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하준과 소주연 배우 그리고 조연들의 열연


많은 독립영화가 각본과 연출뿐만 아니라 연기도 출중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다. 기대와 함께 스포트라이트의 한 가운데에 서 있지 않은 데에서 오는 '힘 빼기'의 결과일까? 메이저로 가는 등용문 또는 관문으로서 출중한 실력자들의 '당연한' 모임이기 때문일까? 여하튼, <잔칫날>도 출중한 각본과 연출 못지 않은 연기가 눈길을 끈다. 


아무래도 가장 눈이 가는 건 두 주연 배우 하준과 소주연, 각각 경만과 경미로 분한 이들이다. 경만으로 분한 하준 배우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묻어난다. 세상에서 가장 애잔한 얼굴에서 한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발랄한 얼굴이 된다. 그 사이 촘촘히 열 맞춰 서 있는 갖가지 감정의 얼굴들은 덤이다. 그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하나의 영화가 된다고 할까, '천의 얼굴'을 지닌 배우를 알게 되었다. 드라마 쪽에선 주연급의 배우로 우뚝 섰는데, 앞으로가 훨씬 기대된다. 


경미로 분한 소주연 배우는 왠지 익숙하다. 나이도 많지 않고 데뷔한 지도 오래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 배우 역시 하준 배우와 마찬가지로, 얼굴 자체가 주는 매력이 확실한 듯하다. 많은 곳에서 얼굴을 비추지 않았지만, 나온 곳에서 그녀는 항상 빛났으니 말이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얼굴로 보여 준다. 소극적이고 침울했다가, 적극적이고 단단해지는 변화를 말이다. 영화가 아무래도 경만 위주일 수밖에 없는데, 그 사이사이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장면을 꽉 채웠다. 


그런가 하면, 조연들의 열연이 그 어느 영화보다 빛난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빛나는 조연들은 경만이 팔순 잔칫집을 하러 찾아간 마을의 청년회장과 부녀회장인데, 얄미워도 이렇게 얄미울 수 있을까 싶게 연기를 했다. 이 영화가 보기 힘들었다면 즉, 경만을 둘러싼 상황들 때문에 너무 애잔하고 답답해 보기 힘들었다면 모두 그 둘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종종 얼굴을 비춰 몇 마디 나누지 않는 조연들 모두가 자기 몫을 톡톡히 해냈다. 모두가 신스틸러였는데, 그 누구도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영화 안에서 최대를 발휘했다. 


아이러니에서 끄집어 낸 페이소스


영화 <잔칫날>은 현실과 맞닿아 있는 아이러니에서 진한 페이소스를 끄집어 냈다. 관객으로 하여금 아빠의 장례날에 남의 잔칫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상주의 아이러니한 상황에 이끌리게 한 뒤, 어디까지 뒷걸음질 치고 또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애잔하고 지난한 과정들을 뒤로하고 잔잔하게 폭발하는 후반부에선 함께 울지 않을 수 없다. 그 호소력이 강력하다. 


특히 과정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이들의 면면이 보여 주는 치졸하고 졸렬한 모습이 너무 현실밀착이어서 일면 역겹기까지 했고 잔칫날 한순간에 뒤바뀐 상황 후 마을 사람들의 면면 역시 치졸하고 졸렬하다 못해 역겹기까지 했다. 그 상황에 정면으로 대면한 경만과 경미는 갖가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어른아이'였다. 이는 두 남매의 '성장'을 보여 주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 할 수 있겠는데, 너무 잘 표현해 냈기에 일면 보고 있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마음 졸이며 보고 있던 와중, 그 둘을 살린 건 다름 아닌 그 둘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남는 건 두 남매, 두 남매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는 내 자신,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의 힘이었다. 영화 포스터에 있듯, 누구나 살며 그런 적이 한 번쯤 있을 것 같다. 영화에서는 '울고 싶은데 웃어야 하는' 상황으로 빗댔지만, 슬픈 아이러니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돈'이 아이러니를 만든 장본인인데, '돈'을 주체로 만들지 않아서 다행이거니와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돈 대신 '상황'의 아이러니를 주체로 둔 점을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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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록경, 돈, 소주연, 아이러니, 연기, 연출, 잔칫날, 장례식, 조연, 페이소스, 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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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일상과 날것의 현장감이 압권인 명작 전쟁영화 후보 <아웃포스트>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9.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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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아웃포스트>


영화 <아웃포스트> 포스터. ⓒ㈜제이앤씨미디어그룹



9.11 테러 직후 벌어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쟁이 한창인 2006년 미국은 반격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전초기지를 설치한다. 파키스탄과 탈레반의 무기 거래를 막고 지역민들의 협조를 받기 위함이었다. 그중 하나가, '몰살 기지'로 불린 캄데시의 키팅 기지였다. 힌두쿠시 산맥의 협곡으로 둘러싸인 이곳으로 클린튼 로메샤 하사와 타이 카터 상병을 비롯한 몇몇 병사들이 파견된다. 


다음 날 아침 새로 온 병사들이 기지 안을 돌면서 기존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것저것 둘러볼 때 협곡 어딘가에서 총알이 빗발친다. 그건 시작에 불과, 그들의 일상은 산발적인 전투와 다름 아니었다. 기지를 이끄는 지휘관 키팅 대위는, 그럼에도 지역민들과의 화합을 강조한다. 하지만 윗선의 황당한 명령을 수행하다가 어이없이 사망한다. 뒤이어 부임한 이예스카스 대위,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밀어붙였지만 탈레반의 IED 공격으로 비명횡사하고 만다. 


뒤이어 부임한 브라워드 대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소극적이다. 그는 키팅 기지 폐쇄가 결정되었다고 알린다. 소극적으로 일관하던 브라워드 대위가 전출되며 2주 뒤 새로운 지휘관이 부임할 거라고 한다. 하지만, 번더만 중위가 임시 지휘관을 맡고 있던 2009년 10월 3일 오전 5시 50분 탈레반 400명이 50여 명에 불과한 키팅 기지를 일시에 급습한다. 퇴각할 곳은커녕 숨을 곳도 없이, 공격 받은 박격포를 쏠 수도 없고 기상 악화로 당장의 공중지원도 불가능했다.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가능한 일일까. 


낯선 배우들에서 묻어나는 익숙함


영화 <아웃포스트>는 2009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가장 유명했던 캄데시 전투 실화를 바탕으로 참전용사들의 인터뷰와 취재로 완성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다. 이 전투가 유명한 건, 전투가 끝나고 4년 후 당시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두 생존 병사 즉 이 영화의 주인공 로메샤 하사와 카터 상병에게 미국 최고 무공 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전투의 두 생존 병사가 명예훈장을 받은 건 베트남 전쟁 이후 50여 년만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20여 년 전 로버트 래드포드 주연의 <라스트 캐슬>로 이미 유명세를 떨친 로드 루리 감독이 연출했다. 다른 무엇도 끼어들 수 없는, 오직 생존을 위한 극한의 전투를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려냈을지 기대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출연진들이 낯선 듯 익숙하다. 유명한 영화인들의 2세가 대거 출현했기 때문이겠다. 그들의 낯선 얼굴에서 익숙함이 묻어난다. 


주인공 로메샤 하사로 분한 배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 스콧 이스트우드이다. 두 번째 지휘관 이예스카스 대위로 분한 배우는 멜 깁슨의 아들 마일로 깁슨이다. 마약 문제로 쫓겨날 뻔하다가 키팅 대위의 선처로 머물렀고 캄데시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포크너 일병으로 분한 배우는 영화 <간디>로 유명한 리차드 아텐보로의 손자 윌 아텐보로이다. 그런가 하면, 박격포 사수로 결정적인 지원을 자처한 로드리게즈 상병은 다니엘 로드리게즈 본인이 연기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타이 커터는 카메오로 출현했다고 한다. 


전쟁의 일상을 보여 주는 전반부


두 시간의 러닝타임을 반으로 자르듯, 전반의 한 시간과 후반의 한 시간이 확연한 온도차를 보인다. 산발적인 전투만 치르며 큰일 없는 '일상'을 영위하는 병사들, 하지만 지휘관은 죽어나가고 새로운 지휘관이 오면 기지의 방향과 기조와 분위기가 바뀐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별 탈 없다. 물론, 영화를 보는 이의 입장에선 지루할 수 있다. 


영화 전반부가, 영화 전체의 기승전결 중 기승에 해당하여 뒤따라 올 전결의 전초전 느낌으로 분위기를 올리는 역할을 하거나 그 자체로 감동적이거나 처절함이 동반된 서사가 집약되어 있거나 중요 캐릭터들의 특별하고도 공감 가는 사연들이 따로 또 같이 보여지고 있거나 하는 게 전혀 아니다. 어찌 보면, 거기엔 어떤 영화적 '연출'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뭘까. 후반 한 시간을 위한 폭풍전야 느낌 한껏 살린, 영화 전체를 위한 희생양일까.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전쟁 중에 지휘관이 계속 바뀌는 처연함은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봤던 그것과 같고, 상부의 황당한 명령에 따르다가 어이없게 죽고 마는 건 수많은 전쟁 영화에서 봤던 그것과 같으며, 와중에도 먹고 싸고 놀고 자고 얘기하는 갖가지 일상 행동 또한 수많은 전쟁 영화에서 봤던 그것과 같다. 하여, 이 영화의 전반부는 영화적이지 않은 연출로 많은 전쟁 영화가 추구했던 전쟁의 일상을 손쉽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갑 오브 갑의 현장감을 선보이는 후반부


영화 <아웃포스트>의 백미이자 압권은 단연 후반 한 시간에 있다. 예상치 못한 적 수백 명의 습격에 대항한 불과 수십 명의 아군, 몰살 당하기 딱 좋은 지형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버텨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보다 더 영화적인 설정과 배경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사실적으로. 그래서 감독은 전반부처럼 후반부에도 '연출'을 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 줄 뿐이다. 공포와 두려움, 절망과 안도의 시공간을 그대로 우리 앞에 던져 놓는다. 


우린 그저 감상하기가 힘들다. 식상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타 전쟁 영화들이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리얼리즘을 강조하며 제대로 된 '연출'을 시도했고 또 성공했지만, 이 영화는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현장의 날것 그대로를 가져온 것 같다. 회를 맛있게 먹기 위해, 한쪽은 회를 떠서 양념으로 무쳤고 한쪽은 회를 떠서는 그냥 주었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 즉 전쟁과 전투의 날것을 좋아하는 이에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접시 또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수많은 전쟁 영화를 접했지만, 장장 40분 동안 쉼없이 이어지는 처절한 전투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시피 하다. 그 방면의 대표격이라고 할 만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초반부 노르망디 전투 그리고 후반부 시가지 전투와는 확연히 다르다. 대규모 아닌 소규모의 지속적인 전투가 훨씬 더 현장감 풍부한 리얼리티를 전한다. 얼마전 접한 <그레이하운드>도 엄청난 분량의 전투신을 자랑하지만, 그 또한 <아웃포스트>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블랙호크 다운> 정도가 비슷한 면모를 풍긴다. 


감히, 전투의 현장감을 경험하고픈 밀리터리 마니아 혹은 전쟁영화 마니아들에게 <아웃포스트>를 권한다. 다음에 또 어떤 전쟁영화가 나와 이 영화보다 더한 현장감을 선사할지 모르지만 혹은 이전의 어떤 전쟁영화가 이 영화보다 더한 현장감을 선사했을지 모르지만, <아웃포스트>가 전쟁영화가 주는 현장감에 있어서 갑 중 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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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아웃포스트, 연출, 전쟁영화, 전쟁의 일상, 캄데시 전투, 현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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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의 새로운 '믿보' 조합, 청궈샹 감독과 저우둥위 배우 <소년시절의 너>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7. 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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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소년시절의 너>


영화 <소년시절의 너> 포스터. ⓒ(주)영화특별시SMC



여배우 발굴의 엄청난 능력을 자랑하는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2010년 <산시나무 아래>로 화려하게 데뷔한 저우둥위, 이후 차근차근 필모를 쌓아 중화권 최고의 여배우로 우뚝 섰다. 우리에게는, 지난 2016년 이준기와 함께 열연한 <시칠리아 햇빛 아래>로도 얼굴을 비췄지만 1년 뒤 청궈샹 감독과 함께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쉴 새 없이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는데, 넷플릭스를 통해 <애니멀월드> <먼 훗날 우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청궈샹 감독과 함께한 <소년시절의 너>로 본인 필모뿐만 아니라 그의 연기를 보는 우리에게도 '인생 영화'를 경신하였다. 작년 11월 중국 현지에서 개봉하여 흥행(2019년 중국 흥행 TOP 10 안에 듦)과 비평, 파급력과 영향력 등에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인 바 있는 이 작품, 개인적으로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코로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늦게나마 찾아와 기뻤다. 


영화 내적으론 학교 폭력과 중국의 대학입학시험인 '가오카오'로 대변되는 교육 문제 그리고 이를 좌시하고 부추기는 어른들의 모습을 탄탄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그려냈다면, 영화 외적으론 중화권 최고의 여배우로 우뚝 선 저우둥위와 6억 명 이상의 팬을 몰고 다닌다는 현존 중화권 최고의 아이돌 'TFBOYS'의 멤버 이양첸시(웨이보 8500만 명으로 중화권 10위권 안)가 함께해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를 불러일으켰다. 영화 안팎으로 이보다 더 좋은 모양새를 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인생이 고달픈 소년 소녀


가오카오가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학교, 한 여고생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방금 전까지 함께 있던 첸니엔(저우둥위 분)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다가가 옷을 벗어 덮어주지만 전교생의 이목을 얻는다. 이후, 자살한 친구를 향했던 일진의 화살이 그녀에게로 향한다. 그녀는 매일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하고,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그녀는 성적 우등생이지만, 홀로 불법적인 일로 집안을 지탱하며 빛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인 엄마 때문에 제대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결국 학교에까지 퍼져 그녀를 더욱 괴롭게 한다. 


어느 날 밤 늦게 집으로 향하던 첸니엔은 길 한가운데에서 3 대 1로 맞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곤 경찰에 신고하려 한다. 딱 붙잡힌 그녀는 위험에 처하는데, 맞고 있던 청년이 기지를 발휘해 함께 도망칠 수 있었다. 샤오베이(이양첸시 분)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년은, 외곽 허름한 집에서 홀로 살며 삶을 영위하는 양아치였다. 그는 그녀에게 보호를 제안하지만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일단 그들은 그렇게 헤어진다.


하지만, 첸니엔의 학교 생활을 더욱 고달퍼질 뿐이었다. 매일같이 수위가 높아지던 어느 날, 목숨까지 위협받던 그녀는 베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후 베이는 근거리에서 첸니엔을 따라다니며 보호해 준다. 첸니엔을 괴롭히는 일당에게 직접적으로 물리적 협박을 행사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베이가 성범죄자로 의심받아 구치소 신세를 면치 못했을 한나절, 첸니엔은 머리도 깎이고 옷도 강제로 찢어발겨져 영상으로도 찍히는 짓을 당한는데... 소년 소녀의 앞날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다방면으로 선보인 괜찮은 퍼포먼스


영화 <소년시절의 너>는 다방면으로 괜찮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학교 폭력의 참혹한 민낯을 강렬하게 선보이는 동시에 가오카오로 대변되는 극심한 대입 경쟁의 민낯 또한 생생하게 선보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학창시절'과 '학교'라는 시공간의 가학적인 이면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첸니엔은 동급생들의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녀를 괴롭히는 이들 또한 큰 틀에서 '피해자'이기에 시스템과 시스템을 만든 어른들이야말로 진정한 가해자라는 걸 가감없이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시스템과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청년 베이가 첸니엔을 보호해주는 아이러니가, 우리로 하여금 영화에게로 끌어당기는 힘의 원천이다. 물론, 거기엔 식상하기까지 한 로맨스 구도와 무엇으로도 갈라서게 할 수 없는 그들만의 사랑 방정식이 있지만 말이다. 이 모든 걸 부자연스럽지 않게 이어주는 게, 바로 청궈샹 감독과 저우둥위 배우의 힘이다. 


청궈샹 감독은, 중국 로맨스 영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자못 몽환적인 분위기를 가져와, 학교의 이면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메시지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소년 소녀가 서로를 보호해준다는 로맨스를 잘 엮었다. 거기엔, 저우둥위의 내유외강 또는 외강내유의 구분하지 힘든 연약하면서도 강한 연기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의 모든 면면이 그녀를 중심으로 빛을 낼 수 있었다. 중국 영화의 믿고 보는 새로운 조합, 청궈샹 감독과 저우둥위 배우이다. 


중국 영화의 새로운 '믿보' 조합, 청궈샹과 저우둥위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격렬히 반응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다. 격렬히 숨을 몰아쉬며 분노하다가, 어느 순간 격렬히 숨을 몰아쉬며 울고 있을 테다. 왜 세상은 그들로 하여금, 악에 받쳐 증오심으로 살아가게 하면서 그조차 비틀거리게 하는 것인가. 그들의 사랑은, 왜 그들을 파멸에서 구해내지 못하고 파멸로 굴러떨어지게 할 뿐인가. 왜 환한 웃음을 짓게 하지 못하고, 슬픈 미소만을 겨우 짓게 할 뿐인가. 


화끈하기까지 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감정을 뒤흔드는 로맨스를 펼칠 줄 아는 작품, 이를 완벽히 소화해낸 저우둥위도 기대되지만 청궈샹 감독을 향한 기대를 한껏 품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청궈샹 감독 자신이 소싯적 배우 활동을 주로 홍콩에서 했기 때문일까, 영화 곳곳에서 8~90년대 홍콩영화의 향수를 목격할 수 있었다. 분위기나 연출 방식에선 업그레이드된 면모와 함께 말이다. 


잔혹한 세상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나 그리고 너라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나와 너는 사실상 하나이기에, 범위는 더 축소된다. 들여다보면 참으로 무섭고 두렵고 그렇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진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 걸음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인 건 매한가지 아닌가. 비정한 세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비정한 세상에서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진정으로 원하는 게 어떤 것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소년시절의 너가 변치 않고 지금에 이르렀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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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될, 영화 <조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10.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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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조커>


영화 <조커>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미국 코믹북 시장의 양대 산맥 DC와 마블, '마블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탠리가 1960년대 '판타스틱 4'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 전까진 DC가 앞섰다고 한다. 영화 판권 시장 역시 슈퍼맨과 배트맨을 앞세운 DC가 앞섰다가, 2008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시작한 마블이 완전히 앞서게 되었다. DC도 뒤늦게 유니버스를 창조했지만 역부족, 다른 방도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본래, 마블이 캐릭터를 앞세웠다면 DC는 스토리를 앞세웠다. 그런 기조는 영화로도 이어져,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DC의 <다크나이트>가 손꼽히게 된 것이리라. 감독의 역량이 크게 좌지우지하겠지만 제작사의 입김이 없을 리 없다. 와중에 DC에겐 절대적 무기가 있으니,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캐릭터 '조커'이다. 역설적이게도 조커는 슈퍼히어로가 아닌 빌런이다. 신기하게도 조커 단독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다. 


DC가 방도를 모색할 때 아무래도 마블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수많은 캐릭터를 앞세워 거대한 연결 세계를 창조한 마블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보려고 한 것 같다.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 배우를 앞세운 영화 <조커>로 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을 탄생시킨 것이다. DC가 앞으로도 별처럼 홀로 빛나는 캐릭터 영화를 만들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별개로 <조커>는 반영구적으로 빛날 게 분명한 명작이다.


의심과 논란의 여지 없는 '연기'


고담시에서 광대로 일하며 낡은 아파트에서 노모를 모시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 코미디언을 꿈꾸는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뇌 또는 신경 이상으로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웃음발작을 일으키고, 망상증세도 심각한 수준이다. 주기적으로 약을 타 먹고 상담도 받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약골의 외모로 지나가는 10대 아이들한테 무시받으며, 발작적인 웃음에는 들여다보려 하지는 않을지언정 하나같이 뭐가 웃기냐며 의아해할 뿐이며 심지어 테러까지 일삼는다. 


영화 <조커>에서 의심과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연기'다. 호아킨 피닉스의 아서 플렉과 조커, 그리고 아서 플렉이 조커로 거듭나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한 로버트 드 니로의 머레이 프랭클린. 우선 로버트 드 니로는 35여 년 전 본인이 주연 루퍼트 펍킨 역을 맡은 영화 <코미디의 왕>을 연상시키는, 짧지만 굵은 연기를 선보인다. <조커>에서는 아서 플렉이 루퍼트 펍킨과 대칭된다.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웃기지 못하는 아서 플렉,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기회를 갖지 못하는 루퍼트 펍킨. 둘 다 망상증세가 심각하다. 


베니스와 칸을 접수했지만, 미국 아카데미에선 3번이나 고배를 마신 호아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조커>는 족하다. 많은 이들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최고의 조커로 '히스 레저'를 떠올리겠지만, 만들어진 조커와 만들어지는 과정의 조커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즉,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와 자레드 레토의 조커와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조커들은 광기와 혼란과 악의 개념 하에 있지만, 만들어지는 과정의 조커에겐 슬픔과 아픔과 공허까지 있다. 태반이 웃음발작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데, 조커 하면 떠올리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웃음의 슬픈 기원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하염없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염없이 한숨짓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영화 <조커>의 모든 것을 직조했다. 


흠잡을 데 없는 '연출'


10대들한테 밟히고 광고판까지 박살나고선 실의에 빠져 있는 아서에게 광대 동료가 총을 건넨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쏴버리라고. 집에서 혼자 폼을 잡으며 시늉하다가 쏘아 보니 당황스럽고 무서운 게 아닌가. 그런데 하필 총을 아동병원에 가지고 갈 게 뭐람. 그 일로 아서는 회사에서 잘린다. 여자 한 명을 희롱하는 술 취한 3명의 남자들과 지하철 한 칸에 같이 탄 아서, 웃음발작이 터지고 그들에게 밟힌다. 곧 총성이 울리고 3명이 죽는다. 아서가 저지른 살인이었다. 이후 토마스 웨인 시장 후보가 죽은 3명을 옹호하는 인터뷰를 하고 고담시는 폭풍전야에 빠진다. 


영화 <조커>의 연출을 맡은 이는 토드 필립스 감독이다. 그가 누구인가. <행오버> 시리즈로 할리우드 막장 코미디의 대표 자리를 꿰찬 이가 아닌가. 연출 필모를 3편을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그는, 이후 2000~2010년대에 내놓은 9편을 모두 코미디로 채운다. 그야말로 코미디에 환장한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런 그가 <조커>를 연출한다니?


DC의 후광으로 대대적인 관심과 어느 정도의 흥행은 보장받을 테지만, 작품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지는 의문스러웠다. 솔직히, 많은 이들이 DC에서 내놓은 <조커>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테다. 뚜껑을 열어보니, 개봉도 하기 전에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코믹스 최초 3대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에 이은 최초의 황금사자상 수상까지, 예상치 못한 이변이자 예상했을 쾌거이다. 


영화는 흠잡을 데가 없다. 개인과 사회라는 씨줄과 날줄로 종횡으로 엮어 탄생 신화를 써내려갔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어구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다. 미쳐 돌아가는 사회 때문에 괴물이 탄생했다는 일방향식 서사에, 조커 이전 아서 플렉이라는 지극한 개인적 서사를 얹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입체감을 얻었다. 


<조커>에 있는 것들


우발적인 살인 이후 표정과 행동이 바뀌는 아서, 대담해지고 일면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엄마 말마따나 항상 웃으며 살려고 했지만 오히려 웃음발작 때문에 행복한 적이 없었던 아서, 그에게 살인이라는 건 무례한 세상을 재탄생시키기 위한 가멸찬 외침이 되었고 당하고만 살았던 불행한 자신의 인생을 향한 위로도 되었다. 이후 그는 광대라는 가면 뒤가 아닌 그 자신 광대가 되어 진짜 웃음과 함께 한다. 


영화 <조커>의 전체적인 줄거리에 특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깨달음은 차라리 <다크 나이트>에게서 받았고, 뇌리에 영원히 남을 듯한 모습은 히스 레저의 조커에게 남아 있으며, 기 막히게 창조된 세상은 DC 아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에 보다 확실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면 <조커>에는 무엇이 있는가. 


코미디의 대가가 재창조한 완벽한 코미디 세상 고담시, 미친 도시이자 코미디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자 미쳐 가고 비극인 줄 알았는데 개 같은 코미디 인생을 산 아서 플렉, 토마스 웨인을 위시한 기득권층을 적으로 둔 대중들과 조롱의 코미디언 머레이 프랭클린을 적으로 둔 아서 플렉의 조우. 개인, 대중, 사회가 맞물리는 지점을 '조커'라는 상징과 은유의 꼭짓점으로 모이게 하는 과정이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진행된다. 고담시, 웨인 부자, 아캄 정신병원 등 영화 <배트맨> 시리즈과 조우하는 요소들도 모두 조커로 모이는 것이다. 영화 <조커>에는 조커가 있다. 


신경을 긁는 불쾌함과 세상을 바꿀 이의 탄생을 직시하게끔 만드는 웅장함이 일품인 음악과 화려하진 않지만 조커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최적의 워킹을 선보이는 카메라, 그리고 아서 플렉의 어두침침한 집 내부와 생각조차 나지 않는 색의 옷에서 조커를 상징하는 화려한 색감의 옷과 초록 머리 그리고 빨간 입술 등이 항상 뒤를 받친다. 이보다 더 조커와 조커를 둘러싼 세상을 표현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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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개인, 대중, 사회, 연기, 연출, 조커, 코미디, 토드 필립스, 호아킨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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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 하정우, 대세 하정우, 종합예술인 하정우

생각하다 2017. 8.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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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열전] 하정우


개인적으로 '하정우'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된 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청어람



2005년, 일병 정기휴가 때였다. TV를 틀어 우연히 보게 된 게 하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현역 군인이 제대로 된 한국 군대 영화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못해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저 상병과 병장은 미래의 내 모습일 것 같고, 저 일병은 현재 내 모습인 것 같고, 저 이등병은 얼마 전 내 모습인 것 같고...


그때 배우 하정우를 처음으로 보았다. 하정우가 분한 유태정 병장의 군대 생활과 제대 이후를 교차 편집해 보여주며, 그의 중학교 적 친구 이승영이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맛물려 누가 진짜 '용서받지 못한 자'인가를 신랄하고 가슴 아프게 전한다. 하정우의 실생활적 면모에 기반한 연극적·영화적 연기를 두루 감상할 수 있는데, 윤종빈 감독이 중요한 역으로 나와 함께 전설적 캐미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하정우의 스크린 데뷔작은 아니다. 그는 2002년에 드라마와 영화로 데뷔해 이듬해와 그 이듬해에도 역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갔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한 자>가 개봉하기 전에 이미 <잠복근무>라는 당시 메이저급 영화에 조연으로 얼굴을 알리기도 했고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와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 위한 방편처럼 느껴진다. 


열일 하정우


'열일' 하정우의 한창 때 작품이자, '대세' 하정우로의 다리가 되어준 작품 <추격자>의 한 장면. ⓒ쇼박스



그는 1998년부터 데뷔를 하고 나서인 2003년까지 거의 매년 한두 작품씩 연극무대에 섰는데, 그 나이 때 배우들이 많이들 듣는 '발연기' 논란 한 번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김용건'이라는 전국민이 누구나 알 만한 배우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버리고 오로지 자기만의 클래스를 만들고자 한, 멀고 험하지만 알차고 지능적인 경력생활이다. 


하정우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윤종빈이다. 이들은 자그마치 4편을 함께 하는데, 하정우는 단연코 어느 한 감독과 그만큼의 영화를 함께 하지 않았다. '페르소나'라고 할까. 이들은 다름 아닌 대학 선후배 관계다. 둘 다 중앙대학교 출신으로 하정우는 1978년생 연극학과, 윤종빈은 1979년생 영화학과. <용서받지 못한 자>는 윤종빈 감독의 졸업작품인데, 하정우를 비롯 학교 선후배를 총동원해서 찍었다고 한다. 결과는 대성공. 이들은 훗날 일명 '윤종빈 사단'이 되어 많은 영화를 함께 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하정우는 말그대로 '열일' 한다. 하정우 하면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먹방과 열일인데, 열일 수식어는 아마 이때부터 그 싹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2년 동안 그는 자그마치 단역, 조주연 가릴 것 없이 6개 영화에 출연한다. 대부분 비대중적이지만, 모든 면에서 그의 연기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8년이다. '대세' 하정우의 시작이다.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2008년 <추격자>야말로 하정우의 이름값을 수직상승시킨 영화다. 희대의 사이코패스 지영민은 2000년대는 물론 한국영화사에 남을 만한 캐릭터로, 하정우는 '능청스럽게' 연기해버린다. <공공의 적>의 사이코패스 조규환이 준 충격을 완전히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다. 10년이 지났어도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는 그 눈빛과 행동, 그의 나이 불과 31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해, 단역 한 편과 주연 세 편을 합쳐 네 편의 영화에 출현했다. 윤종빈 감독과 함께 한 <비스티 보이즈>처럼 조금 아까운 영화도 있고, <멋진 하루>처럼 멋진 영화도 있다. 


대세 하정우


그야말로 '대세' 하정우의 한 가운데에서 흥행과 비평, 이슈 모두 훌륭했던 작품 <터널>의 한 장면. ⓒ쇼박스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하정우라는 배우의 캐릭터가 완벽하게 굳어진 시점이. 사이코패스조차 능청스럽게 연기해버리는, 그만의 특유한 연기 방식이 말이다. 그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사람의 모습을 띤다. 거기에 어떤 '연기적' 요소를 찾기 힘들다. 여타 연기자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톤 앤 매너가 그에겐 없다. 


반면, 지극히 '연극적' 요소는 항상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내 주위에도 있는데, 연극적인 일반인 말이다. 하정우는 그 연극적 요소들을 깨알같이 잘게 부수어 연기 전반에 촘촘히 박는다. 부자연스러움은 옅어지고 신선함과 재미짐이 떠오르는 광경을 우린 목격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아니 2005년 이후 2016년까지 2014년을 제외하고 하정우는 일 년에 두 편 이상 영화에 출현하지 않은 때가 없다. 그리고 최소 한 편 이상 흥행, 비평, 이슈 등으로 한 해 영화계를 흔들 만한 메이저급 영화에 출현한다. 나열해 보자면 2009년 <국가대표>, 2010년 <황해>, 2011년 <의뢰인>, 2012년 <범죄와의 전쟁>, 2013년 <베를린> <더 테러 라이브>, 2014년 <군도>, 2015년 <암살>, 2016년 <터널> <아가씨>... 누군가는 한 편 출현하기에도 힘들 영화들이다. 그리고 올해에는 엄청난 제작비와 함께 그 만듦새 때문에 엄청난 걱정거리(?)를 안기고 있는 <신과 함께>가 대기 중이다. 


하정우 하면 다가오는 이미지가 '믿음'과 '탄탄' 등일 것이다. 탄탄한 연기에 기반한 믿음가는 영화 또는 캐릭터랄까. 그건 하정우라는 사람한테까지도 충분히 적용될 만하다. 그는 이에 부응하듯 배우라는 타이틀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하고 도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종합예술인 하정우


'아티스트' 하정우로서의 작품들이다. 하정우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인이 아닌가. ⓒ하정우



영화 감독 타이틀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2013년 <롤러코스터>와 2015년 <허삼관>을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했다. <허삼관>에는 주연까지 도맡아 했다. 비록 두 작품 모두 흥행 면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고 비평 면에서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그 도전 자체로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배우 열일로도 충분히 바쁠 텐데, 언제 글을 쓰고 연출까지 했을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는 엄연히 수많은 아트페어와 개인전까지 연 '아티스트'다. 


하정우 열일의 절정기이자 대세 하정우의 시작점인 2008년, 그는 이미 아티스트로의 길을 암중모색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국가대표급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때 2009년, 자원순환 정크아트 공모전에 작품을 기증한다. 그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데, 캐릭터의 이미지와 심리를 연상시키는 그림들이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독백과 세상을 향한 방백을 그림으로 승화시키며, 인간, 배우, 남자로서 스크린에서 하지 못했던 또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리라. 


그야말로 하정우를 '종합예술인'이라고 칭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배우라는 타이틀에 한정짓기에는 하정우라는 사람의 면면이 너무 방대하고 이채롭다. 연극, TV드라마, 영화, 시나리오 작가, 감독. 그리고 에세이 작가, 그림 작가까지. 그 자체로 현대 '종합예술'의 결정판으로 여겨지는 영화의 한 가운데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그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하지만 같은 길을 가는 방면을 개척해 역시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는 그.


이제 좀 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지만, 그의 이름 석 자가 아로새긴 예정작들이 즐비하다. 우린 그저 즐거울 뿐이다. 열일하는 그가 부러우면서 믿음직하고, 한없이 대세인 그가 계속 대세였으면 좋겠으며, 종합예술의 경지에 오른 그가 더 멀리 오래 비상하기 위해 조금은 몸을 추스렸으면 한다. 오래된 팬으로서 갖는 아이러니이지만, 여하튼 그를 여기저기에서 꾸준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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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 연기, 대세, 드라마, 아티스트, 연극, 연출, 열일,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윤종빈, 작가, 종합예술인, 추격자,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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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 실화에 접근하는 방법 <클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6.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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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클랜>


영화 <클랜> 포스터 ⓒ더블앤조이픽쳐스

 


전직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 퇴직 후에도 여러 전현직 공무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족들에게는 다정다감하고 책임감 있는 아버지다. 매일 아침 집 앞을 청소하며 오가는 사람들과 다정하게 인사도 한다. 어딜 가든 환영 받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큰아들은 전도유망한 럭비 선수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인기도 단연 많다. 집에서도 훌륭한 아들로 가족의 자랑이다. 큰아들을 포함한 셋째 아들, 넷째와 다섯째 여동생도 모두 아주 잘 지낸다. 그야말로 남부러울 게 전혀 없을 듯한 가족의 전형이다. 다만 둘째 아들이 해외로 가서 연락이 없다. 


그런데 그런 가족이 작당모의해 하는 짓이 납치, 감금, 고문, 협박, 살인 행각이다. 보고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이 가족은 실제했다. 그들 이야기는 다양한 콘텐츠로 소개되었고, 드디어 영화로도 소개되었다. 영화 <클랜>이다. 


평번한 가족이 작당모의해 하는 짓이 납치, 감금, 고문, 협박, 살인 행각이다. 영화 <클랜>의 한 장면. ⓒ더블앤조이픽쳐스



영화는 1982년부터 1985년 사이에 아르헨티나에서 있었던 '푸치오 가족'에 의한 납치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믿을 수 없는 이 사건, 이 가족의 속사정은 당시 아르헨티나의 속사정과 괘를 같이 한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는 군사정권의 통치 하에 있었다. 군사정권은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은 물론 일반인들 3만여 명에 대해 테러, 고문, 조작, 납치, 살인을 일삼았다. 푸치오 가족의 가장 아르키메데스는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의 고위 공무원으로서 군사정권이 자행한 학살을 주도한 이 중 한 명인 것이다. 


이 영화가 실화에 접근하는 방법


영화는 이 실화에 어떤 식으로 접근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분히 영화적으로 접근했다고 할 수 있겠다. 실화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되, 그 사이 사이의 심리를 재구성한 것 같다. 대표적으로 아버지 아르키메데스와 큰아들 알렉스의 심리다. 반면 당시의 시대와 이어지는 면면은 잘 보이지 않고 보다 개인에 천착했다. 이런 접근 방식은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개인적으로 보는 내내 불편했다. 


아르키메데스는 전현직 공무원들과 정보를 주고 받으며 수하인들과 일견 조직적으로 납치 행각을 벌인다. 처음에는 큰아들 알렉스의 친구를 납치해 고문하고 가족들에게 협박해 돈을 뜯어 내고 결국 죽여버린다. 알렉스를 의심했다는 명목으로 죽인 것이었다. 그는 그 무엇보다 '가족'이 최우선이라는 신조가 있었다. 설령 그것이 살인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편 알렉스는 납치까지 협조했을 뿐 살인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는 괴로워한다. 괴로워하지만 아버지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다름 아닌 가족을 위함임을 알고 있기에, 또 만져보지도 못한 엄청난 돈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계속 협조한다. 


집단 최면에 빠진 듯한 푸치오 가족.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이해하거나 옹호할 수 없다. 영화 <클랜>의 한 장면. ⓒ더블앤조이픽쳐스



다른 가족들도 다르지 않다. 협조해 행동에 옮기지는 않지만 집안에 감금한 피해자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만히 있는다. '가족을 위해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니까 이해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균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겉보기에는 아주 평범하고 완벽하리만치 단란한 가족이다. 집단 최면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


영화는 이들 가족이 범죄를 저지를 때 의도적으로 감각적인 연출과 음악을 선보인다. 이를 테면 일련의 납치, 감금, 고문, 협박, 살인 행각을 알렉스의 일상(여자친구와의 데이트와 섹스, 럭비 경기)과 대비시키는 교차편집을 선보인다던가, 경쾌하고 코믹적이기까지 한 음악을 넣곤 하는 것이다. 


이 모습만 보면 전혀 시대를 엿볼 수 없다. 한나 아렌트가 주창한 '악의 평범성'을 말하고자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역사 속 악행은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행해진다는 주장 말이다. 당시의 시대상과 결부시키는 것보다, '가족'이나 '악의 평범성'과 같은 주제와 결부시키는 게 영화적 기법을 실현시키기에 더 알맞을 것이다. 


'악의 평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당시 시대상과 결부하지 않은 것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영화 <클랜>의 한 장면. ⓒ더블앤조이픽쳐스



바로 그 점에서 이 영화는 불편하다. 시대를 설명하고 있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정작 중요한 사건을 보여줄 땐 시대가 보이지 않는다. 도망가고 있는 것 같다. 탁월한 연출력을 가지고 흥미로운 사례에서 사례 그 자체만 쏙 빼온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선 자연스레 아버지, 아들, 가족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백 번 양보해 시대가 보이진 않더라도, 이런 희대의 악마들에게 가족을 들이밀면 안 되지 않은가. 


영화 자체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연출도 빼어났고 연기도 좋았으며 음악과 의상과 배경도 흠잡을 데 없었다. '영화는 영화다'라고 말하면 그만일지 모른다. 문제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고, 하필 그 실화가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용서받지 못할 짓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행각에 실제로도 '가족'이 큰 역할을 했다손 치더라도 전면으로 내세울 만한 건 아니었다. 훨씬 더 무겁고 덜 감각적으로 그들의 행각에 치를 떨게 만드는 옇화가 되었어야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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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납치, 살인, 시대, 아들, 아르헨티나, 아버지, 연출, 클랜, 푸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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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오스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레버넌트>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1. 2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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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영화 <레버넌트>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거짓말 같은 실화'에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으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얼핏 생각나는 작품도 몇 가지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애비에이터>,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그리고 <타이타닉>도 있다. 이 밖에도 여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주연으로 활약했다. 


아무래도 기막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주연이면 모든 포커스가 그에게 몰리기 마련이다. 그 중압감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약관의 나이 때부터 꽃미남의 원 톱 주연으로 수많은 조명을 받아 왔기에, 어느 정도에 이르러서는 중압감을 넘어서 오히려 원 톱 주연 영화에만 출연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물론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의 존재감은 월등했다. 


글래스의 피츠제럴드를 향한 기나긴 복수의 여정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 또한 그에게 지극히 어울리는 그런 영화다. 엄연히 이 영화의 주연은 4명, 아무리 좁혀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하디 2명이다. 하지만 포스터에 오로지 디카프리오 얼굴만 나온 걸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디카프리오 원 톱 주연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더욱이 <레버넌트>는 '거짓말 같은 실화'이다. 디카프리오가 벼르고 벼른 느낌이다. 


영화는 스토리보다 연기와 연출, 촬영에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은 이 추운 겨울에 봐도 더할 나위 없는 추위가 느껴지는 개척 시대 이전의 19세기 초중반 아메리카 대륙 서부이다. 모피 사냥꾼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아들 호크와 함께 모피 회사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인디언 족의 습격을 받아 큰 타격을 받고 도망 다니던 중, 글래스는 회색곰에게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받는다. 


그 타격으로 인해 글래스는 말도 할 수 없고 앉을 수도 걸어 다닐 수도 없는 처지가 된다. 멀지 않아 죽을 거라고 누구든 예상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대장 헨리(돔놀 글리슨 분)은 남은 인원들이 힘을 합쳐 그를 이송할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지형이 나타나자 피츠제럴드(톰 하디 분)와 브리저(윌 폴터 분)에게 그를 잘 돌보고 장례식을 잘 치러줄 것을 명하고 자리를 뜬다. 


피츠제럴드와 브리저, 호크 그리고 글래스. 피츠제럴드는 글래스와 호크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글래스에게는 빨리 죽음을 맞이할 것을, 인디언 엄마에게서 난 자식인 호크에게는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었다. 결국 피츠제럴드는 글래스가 보는 앞에서 호크를 죽이고 글래스를 생매장 시킨다. 브리저에게는 인디언 습격 때문에 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고 거짓말을 한 후 급히 자리를 뜬다. 영화가 비로소 시작되는 느낌이다. 글래스의 피츠제럴드를 향한 기나긴 복수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 <레버넌트>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레버넌트>를 만들어낸, 연출과 촬영과 연기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전작 <버드맨>으로 아카데미를 거머쥐었다. 또한 <버드맨>의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 감독은 <그래비티>에 이어 2회 연속으로 아카데미를 거머쥐었다. <레버넌트>는 이 둘이 다시금 뭉쳐 1년 만에 돌아왔다. 현재 아카데미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오랜 숙원(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풀어줌과 동시에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2회 연속 감독상 수상과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 감독의 3회 연속 촬영상 수상이라는 대업적의 신화를 가시화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이 세 명이, 이 세 부분이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하겠다. 연출과 촬영과 연기. 이 영화가 추구하는 극사실주의를 위해 오로지 자연조명과 불빛 만을 사용했다는 후문은 이미 전설이다. 당연히 인공조명이 수없이 투입되었다고 알고 있고, 현대 영화 제작에서 그건 너무나 당연하면서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런데 그것 제한했다는 건 하나의 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도전은 잘하면 칭찬을 받지만 잘못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이들의 도전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촬영 기법은 어떠한가. <버드맨>으로 가공할 만한 롱테이크 기법을 선보인 바 있는 그들이 이번에도 동일한 기법을 들고 왔다. 예를 들어, 말하는 인물이 바뀌어 카메라를 비추어야 할 때면 화면이 바뀌는 게 대부분이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는 인물이 바뀌어 카메라를 비추어야 할 때면 카메라가 움직이곤 했다. <버드맨>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롱테이크를 구사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지만, 광활하고 탁 트인 곳에서 롱테이크를 구사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두 눈으로 보고서도 그 동선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영화 <레버넌트>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화룡정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 영화에서 연기야말로 가장 빛나는 화룡정점이라고 생각한다. 회색곰에게 온몸을 찢기는 장면은 두고두고 보고 싶지만, 한편 절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장면이다. 유일하게 CG로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그토록 완벽한 장면을 만들어 냈으니 회색곰에게도 영예를 안기고 싶은 심정이다. 그 한 장면으로도 특수 효과의 최고봉을 맛보았다. 난 그렇게 탄생한 회색곰도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마지막으로 올리는 건 그에 대한 예의 표시라고 봐도 무방하다. 혹자는 톰 하디의 연기,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매드 맥스>에서 얼굴을 가리고 나왔음에도 보여줬던 그의 눈빛 연기를 높게 쳐주고 있지만, 역으로 생각해볼 때 그는 그런 연기에만 특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 영화는 디카프리오를 위한 무대였다. 


목을 다쳐 소리를 내지 못하고 온몸이 묶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의 앞에서 아들이 죽어갈 때 보여준 극도의 분노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함께 관자놀이가 터질 것 같고 이를 악 다물고 손톱으로 피가 날 정도로 손을 꽉 쥐게 만들었다. 그가 조금씩 기력을 되찾으면서도 계속해서 위기에 봉착하고 다시 살아나고를 반복할 때면, 죽지 말고 반드시 살아나 아들의 복수를 할 것을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꼼짝 없이 죽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함께 한 말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모두 꺼낸 후 발가벗은 채로 그 안에 들어가 체온을 보존해 죽지 않은 장면을 봤을 때는, 실제로 몸이 바르르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히며 손이 차가워지면서 온몸에 소름이 끼쳐 어떤 카타르시스 비슷한 걸 맛보게 해주었다. 디카프리오의 팬이 되었다. 그의 연기가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 적이 몇몇 있었는데, 이 영화 또한 그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왠지 앞으로도 더더욱 정진된 연기를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영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본 것 같다. 인간이 생존과 복수라는 본능에 충실할 때, 저리도 위대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인간의 고뇌를 얘기하는 영화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작금의 할리우드에서 이런 영화가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니, 감사하다고 할까? 이성의 극단 세계에서 본 본성의 극단은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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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그래비티, 레버넌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롱테이크, 버드맨, 복수, 실화, 연기, 연출, 촬영, 추위
  • BlogIcon 空空(공공)
    2016.01.29 10:21 신고

    디카프리오를 조금 더 아시려면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영화도
    한번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BlogIcon singenv
      2016.01.29 11:04 신고

      네, 잘 알죠^^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올랐는데, 도망자의 토미 리 존스에게 내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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