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책하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알폰소 쿠아론'에 해당되는 글 3건

제목 날짜
  •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큰 목적을 완벽히 이룬 영화 <로마> 2018.12.27
  • 3D 혁명의 연장선상에서, '힘든' 삶으로의 나아감까지 <그래비티> 2018.12.14
  • <칠드런 오브 맨> 전장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울음 소리(3) 2014.03.17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큰 목적을 완벽히 이룬 영화 <로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8. 12. 27. 08:00
728x9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영화 <로마> 포스터. ⓒ넷플릭스



1950년대 이후 컬러영화가 대중화되었다지만, 사실 최초의 컬러영화는 19세기 말경에 시작되었다. 그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은 셈. 이제는 당연한 컬러영화 시대에 종종 고개를 내미는 흑백영화는 자못 새롭게 다가온다. 


눈이 호강하다 못해 피곤해지게 만드는 화려한 색감의 '요즘' 영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왠만한 화려함에는 성에 차지 않게 된 조류의 반대적 개념이라 하겠다. 영화를 위해 흑백을 수단으로 했던가, 흑백 자체에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집약적으로 들어 있던가. 


최근 들어서도 1년에 한 번은 흑백영화 또는 흑백과 컬러가 교차로 나오는 명작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아니, 현대 흑백영화는 대부분 명작인 것인가. 우리나라 영화로는 <동주> <지슬> 등이 생각나고, 외국 영화로는 <프란시스 하> <프란츠> <아티스트> 등이 생각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명작 흑백영화가 찾아왔다.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넷플릭스로 건너가 자전적 이야기 <로마>를 내놓은 것이다. 이 영화는 칸에서 받아주지 않았지만 베니스에서는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중산층 집안 가정부 클레오 이야기


멕시코시티 중산층 집안 가정부 클레오의 평범한 이야기.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70년대 초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중산층 동네 '로마', 남자 아이 셋과 여자 아이 하나 그리고 친정 엄마와 같이 사는 한 중산층 집안에서 클레오는 다른 한 명과 함께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단란해 보이는 가족, 모두 클레오를 한 가족처럼 대하고 어린 두 아이들은 클레오를 엄마 또는 이모처럼 생각한다. 클레오는 남자친구도 사귀며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하지 않을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종종 들려오는 흉흉한 말들이 마음을 심란하게 할 뿐이다. 정치적 격랑의 강도가 심상치 않은 듯하다. 와중, 클레오는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남자친구는 도망가 버리고, 클레오가 몸을 담고 있는 이 가족의 가장이 바람을 피워 뒤숭숭하고, 멕시코시티는 보다 격렬한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클레오는 혼자서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될까, 가장의 외도로 흔들리는 이 가족의 앞날은 어떨까, 멕시코시티와 멕시코는 언제쯤 보다 좋은 세상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목적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목적을 완벽히 이루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로마>는 20여 년 전 베를린 은곰상에 빛나는 명작 흑백컬러영화인 중국 장이머우의 <집으로 가는 길>이 생각나게 한다. 단순히 흑백영화라는 점뿐만 아니라 한 개인, 한 가족의 특별할 것 없는 개인사 또는 가족사를 통해 시대까지 자연스럽게 들여다보는 맥락에서 그렇다. 


이 가족의 네 아이 중 하나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의 개인사를 가져오면서 가정부 클레오의 시선을 취하고 있어 보다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가족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조망하는 듯한 정적이게 스며드는 카메라 워킹과 일절 OST 없이 자체 사운드로만 채우는 시도가 완벽히 들어맞았다. 흑백인 점까지 더불어, 이 개인사와 가족사에 오롯이 천착할 수 있게 철처하게 판을 짜서 준비를 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만듦에 있어 완벽한 단 하나의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다만, 무수한 정답들이 있을 뿐일진대 이 영화는 그 무수한 정답들 중 하나의 완벽한 모범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주요 요소를 모두 포기하면서 또는 모든 것을 집약시켜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를 보여줬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상 길이 남을 또 하나의 명작을 목도했다. 


진실과 진심을 담은 이 영화


진실과 진심을 담은 이 영화 한 편이면 족하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68년은 전 세계적으로 혁명의 물결이 진하게 흘러간 의미있는 해이지만, 멕시코에게는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올림픽 개최로 인한 경제 성장의 해이다. 이듬해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지하철이 개통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는 민주화와 경제 성장 균형 분배 요구, 부정부패 척결 시위가 격렬히 벌어지기도 하였다. 급격한 경제 성장의 필연적인, 필연적이어야 하는 사회적 갈등의 한 모습이다. 그때 정부는 틀라텔롤코 광장에서 시위대를 향해 대학살극을 벌여 수백 명이 희생당하고 수천 명이 다쳤다. 


1971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로마>는 이런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당대 일련의 사회적 갈등을 유추할 수 있는 면면들을, 한 개인과 가족의 사소하다면 사소하달 수 있는 일들과 자연스럽게 병치시킨다. 


요란하지 않고 담담하게, 깊고 따뜻하게, 감당하기 힘들지만 꿋꿋하게 나아가는 클레오가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이 가족의 진정한 일원이 되어 사랑하고 사랑받는 과정을, 견딜 수 없는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복잡다단한 일들이 밀려와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고 꿋꿋하게 일어나는 과정을, 우리는 진실과 진심을 담은 영화 한 편으로 느낄 수 있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가족, 개인, 넷플릭스, 로마, 멕시코, 사회, 시대, 알폰소 쿠아론, 역사, 영화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3D 혁명의 연장선상에서, '힘든' 삶으로의 나아감까지 <그래비티>

오래된 리뷰 2018. 12. 14. 08:00
728x90



[오래된 리뷰]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영화 <그래비티>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009년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로 시작된 3D 혁명, 그 유산은 2012년 이안의 <라이프 오브 파이>와 2013년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3D 혁명의 유산을 목적 아닌 수단으로 이용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삶'의 경이로움을 말하는데, 평생 뇌리에 남을 기적 같은 비쥬얼을 선사한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올해 사이좋게 재개봉을 했다는 공교로움이 함께 한다. 


이중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마>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2013년의 올해 최고에 이어 2018년의 올해 최고로 등극했는데, 필모를 들여다보면 알다시피 굉장히 과작하는 감독이다. 기획과 제작하는 영화에 비해 연출하는 영화는 많지 않다. 


90년대 최고의 음수대 키스신으로 유명한 <위대한 유산>, '해리포터' 시리즈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지만 어두운 톤 때문에 흥행성적은 가장 낮았던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그래비티>의 성공 이후 10년 만에 국내에 개봉되었던 명작 <칠드런 오브 맨> 등이 그의 작품이다. 


이밖에도 그가 연출한 작품들이 5개도 되지 않으니 25년 여 동안 10 작품 정도 내놓은 것이다. 와중에 <그래비티>는 영화 역사상 CG와 3D에 있어서도 '우주 영화'라는 장르에 있어서도 한 기수가 넘어가는 기준이 될 만한 중요 영화이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 개인의 필모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영화일 것이다. 


'편안한' 죽음과 '힘든' 삶 사이에서


'편안한' 죽음인가, '힘든' 삶인가.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우주 왕복선 익스플로러에 탑승해 우주에서의 첫 번째 임무인 허블 만원경 수리를 작업 중인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 그녀와 함께 마지막 임무를 수행 중인 우주 비행사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 임무를 마칠 때까지 아직 한 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인 상황에서, 휴스턴의 우주비행 관제센터에서 경고가 날아온다. 


러시아 측에서 자국의 사용하지 않는 인공위성을 부술 요량으로 미사일을 쏴 거대하고 많은 파편들이 생성되어 빠른 속도로 지구 궤도를 돌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즉시 임무를 중지할 것과 익스플로러에 탑승해 빨리 지구 궤도로 재진입할 것을 명한다. 하지만 이내 파편들이 그들을 덥쳐 뿔뿔이 흩어진다. 


우주미아가 된 스톤,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녀에게 맷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곧 그녀를 구해준다. 익스플로러로 돌아가봤으나 모두 죽고 모두 박살났다. 그들은 비록 산소가 다 떨어져 가지만 멀리 떨어진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 그들은 '함께'지만 과연 언제까지 함께일 수 있을까. 


90분마다 더 거대하고 많은 파편들이 더 빠른 속도로 그들을 덮칠 예정인 와중에 산소는 다 떨어져 간다.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실날 같은 방법을, 즉 기적을 수없이 되풀이해야만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힘든' 삶을 영위할 것인가. 


삶과 죽음의 대치들


영화에 수많은 삶과 죽음의 대치들이 보인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드넓다' 또는 '끝없다'는 표현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지구 궤도 밖 우주 한복판, 삶과 죽음에 어떤 차이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그곳에서, 티끌보다 작고 못한 존재인 한 인간이 있다. 그녀, 라이언 스톤 박사는 지구에서 어린 딸을 허무하게 잃고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주의 고요함이 좋다. 


영화는 광활한 우주와 아름다운 지구가 주배경임과 동시에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와중에, 다름아닌 우주와 지구 사이를 여러 가지 의미들로 대치시켜 놓는다. 기본적으로 이 재난 상황과 스톤 박사의 상황에 비춰볼 때, 우주는 죽음으로 지구는 삶으로 대치할 수 있겠다. 


그리고 티끌 같은 소리 한 점 찾을 수 없는 우주적 고요함을 역시 죽음과 다름 없는 단절 상황에, 시시콜콜 끝없이 얘기를 주고받는 스톤, 맷, 우주비행 관제센터 간의 대화는 우주적 고요의 단절과 대비되는 연결 상황으로 바꿔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드디어 제목 '그래비티'의 의미에 다다른다. 지구로 향하는 끝없는 타의지인 중력은 다름 아닌 '삶' 그 자체이다. 반면, 우주미아가 되어 우주를 유영할 때나 죽어서 우주를 허망하게 떠돌 때나 모두 무중력 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죽음'과 다름 아니다. 영화는 이처럼 모든 것들에 삶과 죽음이 대치되어 있다. 


삶을 받아들이게 하는 영화


결국, '삶'이다. 그래도, '삶'이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이 영화가 CG와 3D의 영화 외적으로 영화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충분히 느끼고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정 '위대'한 점은, 영화 내적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에서 '삶'에의 끝없고 끈기있는 나아감을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이다. 


영화가 계속 죽음을, 그러니까 우주의 고요함과 재난 상황과 제어할 수 없는 무중력과 이어지는 죽음, 단절을 보여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은 죽음에 가장 직면했을 때 비로소 삶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 어차피 혼자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쓴웃음을 유발시키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이 명제를, 영화는 진지하게 그래서 끔찍하다고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삶의 '당연함'이 아닌 그럼에도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단절된 혼자와 연결된 혼자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과 외로움을 동반하는 절대적 큰 차이가 있다. 


결론에 비춰 영화에서 말하는 '삶'을 조금 더 들어가보면, 스톤 박사의 상황은 단순히 죽음에서 삶으로의 방향 선회가 아닌 죽음에 몇 번이고 이르렀다가 다시 사는 부활 또는 재탄생의 의미가 있다. 그녀는 적어도 세 번(우주미아, 산소부족, 연료부족) 이상 사실상의 죽음에 이르렀는데, 다시 살게 된다. 


삶에의 향함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이성적 본능인 것일까, 본능적 이성인 것일까. 스톤 박사가 다시 살게 되는 몇 번의 장면들은 이성 또는 본능 어느 한 면만으로는 완벽한 설명이 부족한 그것이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3D, CG, 그래비티, 삶, 알폰소 쿠아론, 우주, 죽음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칠드런 오브 맨> 전장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울음 소리

오래된 리뷰 2014. 3. 17. 07:05
728x90




[오래된 리뷰] <칠드런 오브 맨>


<칠드런 오브 맨> ⓒUPI


전장에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 소리는 전쟁의 폐해이자 전쟁으로 인한 절망을 상징한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의 전장에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 소리는, 이와는 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희망'.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피 튀기는 전장의 모든 소음이 일순간 멈추는 기적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은 어떤 특정한 서사적 줄거리를 갖추지 않은 채 오직 마지막 남은 '희망'인 아이의 구제를 위한 방향으로 따라가기만 한다.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과 영화의 스토리와 심지어 카메라 워킹까지 그 아이에게 시선을 두는 것이다. 이는 감독의 철저한 연출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감독은 '알폰소 쿠아론'이다. <그래비티>로 2014년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포함해 7관왕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그래비티>에서 보여준 연출은 상당 부분 <칠드런 오브 맨>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암울한 상황 설정, 스토리보다 캐릭터에게 초점을 맞추는 설정, 비록 영화는 전체적으로 정적이지만 순간적으로 굉장한 동적 연출을 시행하는 설정, 그리고 '희망'에 모든 것을 거는 설정까지. 그래서 <칠드런 오브 맨>은 알폰소 쿠아론에게도 터닝포인트이자 하나의 희망이기도 했을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전장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울음 소리. ⓒUPI



특히 감독의 연출력이 빛났던 장면이 있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들이 전투에 말려 들어간 장면이다. 이 씬에서 카메라는 주인공 테오를 따라가면서 '핸드헬드 촬영 기법'(카메라가 기계적 안전 장치에 부착되지 않아 불안정한 상태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음)을 이용해 찍고 있다. 전투의 한 가운데에 있어 두렵지만 반드시 행해야 하는 바가 있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다가 아이가 울자 모든 전투가 멈추고 소음이 멎으며 한 마음으로 아이의 안녕을 바랄 때는 카메라의 워킹이 안정을 찾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집약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감독의 연출력이 빛났던 장면이다. 


영화의 배경은 2027년 영국 런던이다. 이 세계에는 '희망'이 없다. 인류는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아 있던 18세의 소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은 인류를 재앙과 자멸의 시대로 인도했다. 곳곳에서 테러가 발발하고, 무정부주의자들은 폭력으로 국가를 질책하며, 도처에 불법 이민자들이 넘처난다. 사람들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 하기 위해 자살약을 섭취하곤 한다.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곳곳에서 테러가 발발하는 재앙과 자멸의 시대. ⓒUPI



이런 와중에 테오(클라이브 오웬 분)는 관료주의자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찾아온 옛 여인 줄리엔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줄리엔은 과격한 무정부주의자로, 런던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녀가 테오를 찾아온 이유는, 테오의 고위직 사촌의 힘을 이용해 한 소녀의 여행증을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테오는 여행증을 구해주었는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소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테오는 이 사실을 알고 '희망'의 안전한 운반을 위해 목숨을 거는 선택을 한다. 그녀가 흑인이든, 불법이민자든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사항이었다. 과거 자신과 줄리엔의 아이가 죽어갔던 전력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사회운동가 출신이기 때문일까. 둘 다 아닐 것이다. 영화는 테오의 선택이 모든 이들의 바람이자 선택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를 영화화한 존 힐코트 감독의 <더 로드>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야"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남을 것이라 생각되는) 이들은 마지막 남은 '희망'을 운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는 죽고 아들이 살아남아 '희망'의 운반은 성공한다. <칠드런 오브 맨>은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상자를 선물하며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고 말한다. 이에 판도라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열고 만다. 그곳에서 나온 수많은 끔찍한 재앙들. 그녀는 황급히 상자를 닫는다. 그 때문에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희망'이었다. 


혹자는 희망이 있어 절망 속에서도 살아간다고 하고, 혹자는 희망때문에 헛된 기대를 품고 결국 실망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전자에 해당된다. 후자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희망이 나중에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영화는 단지 그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이 지독하게 절망적인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마지막 희망이 가지는 의미가 너무나도 뚜렷하고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아이'.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잉태하다. ⓒUPI



"아이를 지켜. 무슨 일이 있던 남들이 뭐라 하던, 아이를 지켜"


한편, 이 영화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2027년이라는 멀지 않은 미래를 그린 것도 그렇지만, 영화의 세계에서 보여지는 면면들은 지금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테러, 폭력, 불법, 전쟁, 기아, 바이러스 등. 그리고 무엇보다 출산율 저하는 3포 세대(취업, 결혼, 출산 포기)로 일컬어지는 현재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가다보면 2027년쯤 영화 속 세계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아니,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누구나 직감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아마 여러 정답 중 하나는, 공존공생의 길이 아닐까 싶다. 그 방법론까지 논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그 공존공생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그래비티, 더 로드, 아이, 알폰소 쿠아론, 임신, 전쟁, 절망, 칠드런 오브 맨, 테러, 희망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3.17 07:48 신고

    희망...그것..인류에게 없으면 안되는 것같아요...
    영화평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오렌지수박
    2014.03.17 07:57 신고

    기억해두었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 이 글을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강한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 BlogIcon 음
    2014.03.17 19:56

    <그래비티>에서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오는데...우연의 일치는 아니겠죠. 아이의 울음소리는 살아갈 희망을 주는 모멘텀으로 제시되고 있군요.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블로그 이미지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by singenv

공지사항

  • 댓글에 대한 공지
  • [책으로 책하다 도서 목록]
  • <오마이뉴스> 서평/리뷰 송고 방침
  • 모든 이미지는 인용 목적으로 사용⋯

    최근...

  • 포스트
  • 댓글
  • 트랙백
  • '삶'이라는 거대한 벽, 풀리지 않⋯
  •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을 살린 그,⋯
  • 홀로 이편에서 슬픔의 나락과 절망⋯
  •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두 거대 인맥⋯
  • 역사에 길이 남을 연쇄 살인마 '요⋯
  • 더 보기
  • 감사합니다~ 시즌3를 기대하고 있⋯
    singenv ㆍ 2020
  • 재미있게 읽었어요 지금 시즌2 보⋯
    개구리 ㆍ 2020
  • 감사합니다! 맞구독합니다~
    singenv ㆍ 2020
  • 구독과 하트 누르고 갑니다 맞구독⋯
    아마추어 리뷰어 ㆍ 2020
  •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래 전 서평⋯
    singenv ㆍ 2020

태그

  • 역사
  • 청춘
  • 가족
  • 캐릭터
  • 만화
  • 연기
  • 영화
  • 삶
  • 전쟁
  • 사랑
  • 관계
  • 죽음
  • 희망
  • 인간
  • 소설
  • 미국
  • 책
  • 욕망
  • 천재
  • 아포리즘
  • 여성
  • 제2차 세계대전
  • 피해자
  • 책으로 책하다
  • 넷플릭스
  • 중국
  • 현실
  • 재미
  • 성장
  • 일본

글 보관함


  • 2021/01
    (9)

  • 2020/12
    (13)

  • 2020/11
    (11)
«   2021/01   »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링크

카테고리

다양한 시선 (1412)N
신작 열전 (603)N
신작 도서 (303)
신작 영화 (300) N
넷플릭스 오리지널 (132)N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오래된 리뷰 (202)
생각하다 (231)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그대 그리고 나 (17)
서양 음악 사조 (8)
인권 선언 문서 (4)
조선경국전 (5)
중국 영화사 개괄 (5)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카프카의 편지 (6)
팡세 다시읽기 (14)
명상록 다시읽기 (12)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감독과 배우 콤비 (10)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궁극의 리스트 (8)
제9의 예술, 만화 (14)
독립영화의 힘 (4)
생생 스포츠 (10)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첫 문장-아포리즘 (8)

카운터

Total
2,072,013
Today
36
Yesterday
151
방명록 : 관리자 : 글쓰기
singenv's Blog is powered by daumkakao
Skin info material T Mark3 by 뭐하라
favicon

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 태그
  • 링크 추가
  • 방명록

관리자 메뉴

  • 관리자 모드
  • 글쓰기
  • 다양한 시선 (1412) N
    • 신작 열전 (603) N
      • 신작 도서 (303)
      • 신작 영화 (300) N
    • 넷플릭스 오리지널 (132) N
    •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 오래된 리뷰 (202)
    • 생각하다 (231)
      •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 그대 그리고 나 (17)
      • 서양 음악 사조 (8)
      • 인권 선언 문서 (4)
      • 조선경국전 (5)
      • 중국 영화사 개괄 (5)
      •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 카프카의 편지 (6)
      • 팡세 다시읽기 (14)
      • 명상록 다시읽기 (12)
    •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 감독과 배우 콤비 (10)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 궁극의 리스트 (8)
    • 제9의 예술, 만화 (14)
    • 독립영화의 힘 (4)
    • 생생 스포츠 (10)
    •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 첫 문장-아포리즘 (8)

카테고리

PC화면 보기 티스토리 Daum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