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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아카데미'에 해당되는 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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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모든 게 싫은 소녀의 성장, 그 핵심은? <레이디 버드> 2019.04.10
  • 미국이 가장 들추기 싫어할 모습, 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문라이트> 2017.03.01
  • <인 디 에어> 계속되는 단절에 지쳐가는 현대인, 탈출구는? 2014.09.04
  • <와호장룡> 사랑을 택한 영웅과 영웅처럼 살고 싶은 소녀(10) 2013.10.11

자신의 모든 게 싫은 소녀의 성장, 그 핵심은? <레이디 버드>

오래된 리뷰 2019. 4.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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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레이디 버드>


영화 <레이디 버드> 포스터. ⓒUPI코리아



매년 초, 영화계는 '아카데미 특수'로 들썩인다. 2월 말경 미국 LA의 돌비극장에서 개최되는 미국 최대의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 시상식 전후에 맞춰, 후보에 오른 영화들과 상을 탄 영화들에게 많은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 미국을 제외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그때에 맞춰 해당 영화들을 개봉시키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적으로 3대 영화제라고 하면 유럽의 칸(프랑스), 베를린(독일), 베니스(이탈리아) 영화제를 뽑지만, 그 영향력은 다분히 영화계 내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적인 영화가 아닌 예술로서의 영화나 정치적 올바름이 투철한 영화나 좋은 영화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전 세계 영화계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지 오래이다. 


올해는 <그린 북>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정도가 아카데미 특수를 누렸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미 거대한 성공을 누렸고, <로마>는 극장 개봉을 하긴 했지만 넷플릭스에서 내놓은 작품이기에 정확한 집계가 어려웠다. 반면 작년까지 아카데미 특수는 확실했다. 작년만 해도 <셰이프 오브 워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더 포스트> 등이, 재작년만 해도 <컨택트> <문라이트> <히든 피겨스> <라이언> <핵소 고지> 등이 영화 사이즈에 비해 성공을 거두었다. 2018년 아카데미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레이디 버드>도 그중 한 편이다. 


자신의 모든 게 싫은 소녀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 주의 작은 도시 새크라멘토, 카톨릭계 고등학교 졸업반인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시얼샤 로넌 분)은 동부의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따라와주지 못해 엄마와 자주 말다툼을 한다. 보다시피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도 싫어서 스스로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게 싫은 것이다. 


레이디 버드는 친구 줄리와 함께 연극 활동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부유한 카톨릭 집안의 대니를 만나 사귀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결코 좋지 못하게 끝나고 만다. 와중에도 그녀는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피력하는 데 주력하고 가족과의 부딪힘은 나날이 더해간다. 어느 날 우연히 봤던 밴드의 기타리스트 카일에게 빠진 그녀, 곧 그와도 좋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 또한 결코 좋지 못하게 끝난다. 


카일에게 접근하기 위해 절친 줄리와도 멀어져버린 레이디 버드, 마음 둘 곳이 없다. 대니와 카일과도 좋지 못하게 끝나고, 부모님과 오빠와는 계속 부딪히기만 할 뿐이고, 구질구질한 집구석과 동네를 떠나 '좋은 곳'으로 떠나는 것도 요원해 보인다.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녀를 포함 모두에게 좋은 건, 그녀와 모두의 관계가 좋아지고 나서 그녀가 동부의 명문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는 것일 텐데...


큰 공감으로 다가오는 부분들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영화 <레이디 버드>는 <프란시스 하>로 유명한 배우 그레타 거윅의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1000만 달러의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작은 영화'인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75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이룩했고, 국내에서는 10만 명을 넘겼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흥행 성공으로만 논할 순 없다. 그렇다고 주지했던 것처럼 아카데미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걸 포함해 전 세계 영화제에서 100관왕을 이룩했다는 것으로만도 논할 순 없겠다. 이 영화는 외적 정보보다 내적 내용이 훨씬 좋고 깊다. 


감독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인 내용이다, 아니다 설이 분분했지만 직접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만큼, 영화 주인공의 주요 설정을 제외하면 자전적인 내용이 아니라고 한다. 새크라멘토, 간호사 어머니, 가톨릭계 고등학교, 동부 대학 진학 꿈 정도의 주요 설정 말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영화의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이 느끼는 인간 관계와 환경에서 느끼는 감정들과 새크라멘토라는 작은 도시만이 갖는 감수성. 공감은 이렇게 오가는 것이다. 


필자는 레이디 버드처럼 미국인도, 백인도, 여자도 아니지만 '작은 도시'가 갖는 감수성과 '작은 고향 도시'를 향한 애증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새크라멘토는 캘리포니아 주의 주도이지만, 같은 주에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같은 국제 도시가 있어 묻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도 국제 도시 서울에 살았지만 강북구 번동 중에서도 꼭대기 지역이었기에, 살았을 당시는 물론 떠나온 지금도 그곳을 향한 애증이 충만하다. 그렇지만 그곳만의 감수성은 평생 간직할 것이고, 그만큼의 감수성은 다른 어디에서도 평생 못 느낄 것이다. 


그런 한편, 함께 본 아내는 엄마와의 관계가 큰 공감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엄마의 그녀를 향한 마음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감정의 전제 하에 있다. 절대 그 이하일 수가 없고 이하일 때가 없다. 하지만 정작 말과 행동은, 누구나 그렇듯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다. 그 이면의 진짜 마음을 자식(딸)이 제대로 헤아려줄 리가 없다. 딸은 엄마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끼고,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는 딸이 밉기는커녕 미안하기만 하다. 


그녀의 성장, 그 핵심은?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아내가 느낀 또 하나의 공감과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여자'로서의 성장이 맞닿는 부분은 페미니즘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감정과 사건의 절정을 편집 또는 삭제한 것처럼 페미니즘으로까지 가는 것도 피한 듯 보인다. 예를 들면, 헤어지는 장면이나 섹스하는 장면이나 울음을 터뜨린 장면을 스킵하고 바로 이후로 이어져 유추하게끔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네 인생에 '절정'이라는 게 없다는 걸 보여주거나, 또는 있긴 할까 하는 반문을 하는 것 같다. 


각설하고, 주인공이 엄격한 가톨릭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현재 인생의 모든 면에서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한편 그중 한 방법으로 남자 잘 만나 인생 역전하고자 하는 바람이 강하다. 대니나 카일이 다 그런 식이고, 절친 줄리를 뒤로 하고 잘 사는 여식 제나에게 붙는 것도 그런 식이다. 그녀의 성장, 그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건 좋지만, 스스로의 힘이 아닌 누군가의 힘을 빌어 벗어나려는 건 결코 좋지 못하다는 깨달음 말이다. 


모두 그녀의 홀로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 방법과 방향이 어떻든 나아가길 바란다. 하다 보면 별 일이 다 있을 것이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 뭐가 옳은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누군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요원하다. 직접 생각하고 부딪혀야 한다. 누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다시 전하는 건 이런 방법이어야 한다. 이 영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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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레타 거윅, 레이디 버드, 성장, 아카데미, 여자,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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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가장 들추기 싫어할 모습, 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문라이트>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3.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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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89회 아카데미 작품상 <문라이트>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의 쾌거를 올렸다. 더욱이 사상 최초로 남여조연상을 흑인이 휩쓸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문라이트>의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다. ⓒ오드(AUD)



지상 최대 영화 '축제'인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2월 26일 미국 LA에서 열렸다. 언제나처럼 쟁쟁한 후보들을 앞세운 사전 마케팅이 활개를 쳤는데, 이번엔 싱겁게 끝나버린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다름 아닌 <라라랜드> 때문인데, 일찍이 골든글러브 6관왕으로 역대 최다 수상을 하였고 아카데미에도 14개 노미네이트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바 싹쓸이가 예상되었었다. 제목 'la la land'도 아카데미의 성지 LA를 그대로 차용하지 않았는가. 그야말로 아카데미를 위한 영화였으니. 하지만 고작(?) 6관왕에 그치고 말았다. 그것도 메인 상 중 감독상과 여우주연상만 탔다. 


한편 8개 노미네이트 <문라이트>와 <컨택트>가 뒤를 따랐는데, 둘 중에는 <문라이트>가 압승을 거두었다. 수상 개수를 떠나, <문라이트>가 작품상을 탔기 때문이다. 일찍이 전 세계 영화제에서 <라라랜드>를 저멀리 따돌리는 수의 상을 탔는데, 한때 158관왕으로 많은 언론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급기야 아카데미 3관왕으로 175관왕을 넘어섰다고 한다. 사실상 <라라랜드>와 <문라이트>의 각축전이었던 거다. 


여기엔 '흑과 백'이라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라라랜드>가 백인의 꿈을 티끌없이 아름답게 그려냈다면, <문라이트>는 흑인 소수자의 성장을 어둡고 아픈 아름다움으로 그려냈다. 둘 다 치명적이게 아름답다. 다만 그 방식이 완연히 다른 바, 머리는 <라라랜드>를 보고 싶어 하지만 가슴은 <문라이트>를 보고 싶어 한다. 나는 가슴이 시키는 말을 듣고 <문라이트>를 보았다.


짧은 시간에 한 인간의 성장을 담다


평균 이하의 짧은 러닝타임에 한 인간의 성장을 오롯이 담았다. 한 시기의 순간순간을 담았을 뿐인데 오롯이 담았다고 느껴진 이유는, 그 순간에 담긴 모습이 완벽히 그 시기를 담아냈다는 것일 테다. ⓒ오드(AUD)



배경은 미국 마이애미 흑인 지구의 마약 소굴, 미국이 결코 좋아할 만한 내용은 아니다. 영화는 '리틀', '샤이론', '블랙'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샤이론의 유년, 소년, 청년 시절을 상징하는 별명들이다. '호모새끼'라고 놀림을 받는 한 작고 힘 없는 흑인 아이, 리틀. 여전히 놀림 받는 힘 없는 소년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샤이론. 과거를 청산하고 빈민가 출신 흑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블랙. 


우리는 짧은 시간에 한 인간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 물론 모든 면을 볼 순 없다. 그건 영화 사상 성장의 시간을 가장 완벽히 담아 냈던 <보이 후드>도 해낼 수 없었다. 무수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만들고, 깨닫고, 변화하는 장면들만 볼 뿐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이 영화라서 충분하지 않았을까. 


마약쟁이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리틀', 오직 케빈이라는 친구만 있을 뿐이다. 한없이 작고 힘 없는 아이는 호모라고 놀림 받는다. 도망가다가 마약 소굴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우연히 후안이 발견한다. 그는 일대를 주름잡는 마약상. 기댈 곳 없는 리틀은 엄마 대신 후안과 후안의 여자친구 테레사와 급격히 가까워진다. 이후 리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후안. 빈민가 흑인이 지녀야 할 생각과 마음가짐, 행동을 일깨운다.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넌 지금 세상 한 가운데 있어'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나도 엄마가 싫었지. 하지만 지금은 미칠듯이 그리워' 등 주옥같은 명대사를 리틀에게 전하는 후안. 상당히 도식적인 전개와 장면이지만, 꾸밈없이 다가오니 그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어두워야 빛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그들은 한 몸이 아니지 않은가. 어둠을 뚫고 빛이 나오는 게 아닐까. 어둠과 빛은 한 몸인 것이다. 후안도, 리틀도 어둠이자 빛이다.


가장 들추기 싫은 모습, 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답다


희망도, 슬픔도 없는 공허로운 눈의 샤이론. 꿈과 희망의 나라 미국이 가장 덮고 싶어 하는 모습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감독은 이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를 어찌하나. ⓒ오드(AUD)



리틀에게 희망이라는 게 있는 걸까. 그에겐 단순히 '소외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기가 민망하다. 소외라는 단어에 함축된 엄청난 무게를 감안하고라도 말이다. 사회로부터의 단절과 고립과 격리, 스스로에 대한 포기 등이 소외를 뜻하는 거라 한다면, 그는 소외의 모든 걸 지니고 있다 하겠다. 집안은 가난과 폭력이 난무하고, 무력감과 공허함과 혼란과 무의미가 몸을 휘감으며, 모두가 나를 업신여기고 놀리고 못살게 구는 것 같아 어디에도 눈을 둘 수 없다. 허공을 바라볼 뿐이다. 거기엔 슬픔도 없다. 


'희망'과 '꿈'의 나라 미국에서 가장 들추기 싫은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영화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순간이 다가오고, 순간이 영원같을 때가 있다. 리틀이 비로소 샤이론이 되는 순간, 샤이론은 인생의 지침이 된 후안의 '달빛 아래선 흑인도 파랗게 보이는' 체험을 한다. 그저 순간에 자신을 맡기는, 그때만큼은 난 껍데기의 내가 아닌 본질적 내가 된다. 


그러나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다. 샤이론은 본질이 파괴되는 수모를 겪고 또 다른 껍데기를 입을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다. 이제 '샤이론'이라는 샤이론의 본모습은 아주 단단한 껍데기에 몇 겹이고 둘러싸여 절대 밖으로 내보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블랙'으로 살아간다. 그가 아는 가장 단단한 껍데기 후안의 모습을 하고서. 


그렇지만 머지 않아 그의 본질이 다시금 도전을 받을 위기에 직면한다. 그의 본질을 일깨워준 순간과의 조우, 그의 얼굴엔 '블랙'이 아닌 '샤이론'이 비추고 자신감 없고 움츠러든 표정과 말 본새가 드러나며 슬픔조차 찾기 힘든 공허하기 짝이 없는 두 눈이 영화를 지배한다. 그는, 다시금 달빛 아래서 파랗게 보이는 체험을 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영화는 없다


이 '아름다운' 위대한 영화, 또는 아름다운 '위대한' 영화. 나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이런 류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해낼 영화가 있을까? ⓒ오드(AUD)



영화는 상당 부분 헤르만 헤세의 세기의 베스트셀러이자 현대 성장 소설의 시초와도 같은 작품 <데미안>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그보다 더 위대한 성장을 다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한 아이의 성장이 뚫고 가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지독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첩첩산중, 다 말하기도 힘들거니와 늘어놓는다해도 완전히 드러낼 수 없을 거다. 그럼에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 위대함을 말해준다. 


절대 잊히지 않을 한 가지가 있다. 리틀과 샤이론과 블랙의 그 '두 눈'. 얼마나 캐스팅에 공을 들였을지 느껴질 만한 세 사람의 놀라운 싱크로율은 뒤로 하고서라도, 세 사람의 시기에 따른 두 눈의 공허함은 가히 치명적이다. 아무런 감정을 찾을 수 없는 두 눈은 모든 걸 말해준다. 이건 '경지'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런 연기는 처음 본다. 


순간을 이끄는 색감과 OST는 영화의 품격을 한껏 높이는 데 일조했다. 특히 색감은 이 영화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데에 절대적 공헌을 했다. 블랙톤에 가까운 파스텔 톤의 색들이 영화의 중요한 순간 순간을 수놓는다. 블랙을 돋보이게도, 그렇다고 블랙을 묻히게도 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우린 이 영화의 포스터부터 눈길을 떼지 못한다. 일정한 톤의 OST도 역시 중요한 순간을 일깨우는데, 안정감보단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일종의 영화적 장치,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에 색깔을 입혔다. 


<와호장룡>은 '무협영화'에게 갖는 선입관에 철퇴를 내렸었다. 이토록 아름답고 철학적인 무협이 있다니. 무협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부끄럽지만 <문라이트>는 '흑인영화'에게 갖는 선입관에 징벌을 내린 것 같은 충격을 내게 주었다. 누구나 편견 어린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는 데 말이다. 이보다 아름다운 영화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찾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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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문라이트, 성장, 소외, 아름다움, 아카데미, 위대함, 흑인,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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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 계속되는 단절에 지쳐가는 현대인, 탈출구는?

오래된 리뷰 2014. 9. 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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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조지 클루니 주연의 <인 디 에어>


영화 <인 디 에어> ⓒCJ 엔터테인먼트



그 수식어도 참으로 생소하고 낯설고 무시무시한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분). 그는 일 년에 322일 동안 지구에서 달보다 먼 거리(최소 38만km 이상)를 출장다닌다. 미국 전역을 다니며 차마 직원들을 해고하지 못하는 고용주를 대신해 좋은 말로 해고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예상했다시피, 해고된 이들에게 온갖 욕을 다 먹고 다니는 그다. 직업적 특성때문인지는 몰라도, 인간관계에 있어 형편없는 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기 위에서 보내다 보니, 집은 물론이고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없다. 스치듯 지나가는 단편적인 관계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던 그에게 두 여자가 나타난다. 한 명은 그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인 알렉스. 그녀는 그 못지않게 출장을 많이 다니고 항공 마일리지에 광분하고 단편적이고 자유로운 연애를 지향한다. 그녀와의 연애 역시 그저 그렇게 끝나고 말 것인가?


한편, 빙햄이 다니는 해고 전문 회사에 신입사원 나탈리가 혜성같이 등장한다. 그녀는 코넬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로, 사장에게 기막힌 해고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이른바 '온라인 해고 시스템'. 화상 연결을 이용해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 해고를 해버리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해고 전문가의 감정 소비와 출장비 등을 어마어마하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 계속되는 해고는 이 회사에 큰 기회이고, 그 수요를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떠돌이 인생의 속사정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여러 용어 중에 '인스턴트'라는 말이 있다. '즉석에서 간편하게 이루어짐' '지금 한 순간'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고도 성장기에 탄생한 기존의 자본주의와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통칭하는 '소비사회'의 대표적인 아이콘이기도 하다. 소비사회에서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위치를 내보인다. 또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소비를 위해 간편함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간편함은 소비를 넘어 인간 사회 전체에 퍼져가기 시작했다. 결국은 한 인간을 규정하기까지 하게 된다. 


빙햄은 바로 그 인스턴트로 규정할 수 있는 인물이다. 어찌 되었든 결국 혼자다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그. 그런 그가 두 여성과 함께 하는 여행을 통해 차츰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또한 예상할 수 있듯이, '인간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신입사원 나탈리 또한 마찬가지다. 빙햄보다 더욱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빙햄과 함께 하는 '직접 대면 해고 체험'을 통해 피해고자들의 좌절과 눈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빙햄이 인간적으로 바뀌는 결정적 순간은 그의 여동생 결혼식을 통해서이다. 그는 여자친구 알렉스에게 여동생 결혼식에 동행해줄 것을 청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의 모교에 같이 몰래 들어가 옛 추억을 상기하며, 그야말로 굉장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 하루 전 날에 결혼을 망설이는 여동생의 남편에게 다가가 따뜻한 말로 위로해줘 그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한다.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고 있는 듯하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그렇지만 영화가 이렇게 풀려나가면 재미 없지 않을까? 그(빙햄)는 분명 엄청난 업보(해고당한 사람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아우라를 온 몸으로 받는)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녀(나탈리)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이건 그 업보의 제대로 된 맺음이 되지 않는 것 같단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위기가 찾아온다. 


계속되는 단절의 연속 안에서


그 위기란 다름아니라 계속되는 '단절'이다. 그들은 본래 단절 속에서 살아오다가 차츰 '관계'에 눈을 떠가고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나 중국 등은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관계로 안 되는 일도 되게 하고 되는 일도 안 되게 할 수 있다. 반면에 관계를 천시여기는 풍조도 있다. 정당한 실력이나 노력 없이 관계만으로 살아가려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비즈니스에서건 사적에서건 적당한 관계는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영화 <인 디 에어>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먼저 당하게 된 이는 나탈리이다. 그녀는 자신이 제시했던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극을 맛본다. 남자친구가 문자메시지로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것이다. 어처구니 없을 수도 있지만, 인간 세계에서 제일 기본적인 부분에서 맛본 이 단절의 아픔을 통해 그녀의 시각이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빙햄에게는 두 가지 일이 연달아 터진다. 하나는 여자친구 알렉스, 다른 하나는 신입사원 나탈리이다. 주지했다시피 그는 점차 변화하게 되고, 그 변화는 가족에게로 갔다가 알렉스에게로 향한다. 그는 출장 복귀 후 강의 시간 때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알렉스에게로 향한다. 보고 싶다는 일념 하에 어마어마한 거리를 단숨에 달려간다. 하지만 그의 눈 앞에 나타난 건 단란한 가정이 있는 알렉스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단절의 충격을 뒤로 하고 복귀해 보니 나탈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피해고자의 자살 소식을 듣고 바로 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빙햄에게 연속된 단절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빙햄은 이미 변화해 있었다. 나탈리가 다른 직장을 알아보며 면접을 볼 때 빙햄의 추천서가 큰 힘이 되주었다. 또한 그는 가정과 친구, 지인, 동료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작품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영화


이 영화는 작품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영화라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2010년 아카데미에서 6개 부문에 노이네이트되었고, 골든 글로브와 LA 비평가 협회 등을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각색상과 각본상을 휩쓸었다. 그만큼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이다. 환상적인 오프닝부터 시선을 잡아 끌더니 시종일관 지루할 틈 없이 끌고가는 그 힘이 감탄스럽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들추는 시나리오에 예기치 못한 웃음들이 뒤따른다. 개그 코드의 웃음이 아니라 독특함에서 오는 웃음이다. 겉으로는 날카로움을 유지하는지 몰라도 가끔 어리버리하고 여린 모습을 보이는 나탈리. 그런 나탈리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빙햄. 그리고 여러 대화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어이없는 대답과 유머 등. 


마지막으로 하나. 초반과 중반과 종반에 걸쳐 계속 나오는 피해고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피해고자들이 울먹이며 하는 말은 '가족'에 대한 걱정이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이렇게 해고를 당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란 말인가. 그때 빙햄은 진실된 목소리를 답해준다. 


그 가족들을 위해 절대로 주저앉지 말라고. 그리고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릴 테니,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본래 꿈을 향해 정진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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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 사랑을 택한 영웅과 영웅처럼 살고 싶은 소녀

오래된 리뷰 2013. 10. 11.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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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


고등학교 때, 언제나처럼 공부에 매진(?)하던 와중에 시간이 나 TV를 켰다.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 없어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고 어느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버튼 누루기를 멈췄다. 당시는 무엇을 하든 무엇을 보든 무엇을 생각하든 따분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시절이었지만, 이 한 편의 영화가 내 마음에 확 와닿게 된다. 비록 중간부터 보기 시작해서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음에도. 제목은 <와호장룡>.  


<와호장룡> ⓒ소니 픽쳐스 클래식


마침 한창 무예를 겨루고 있던 장면이어서, 머리도 식힐 겸 넋을 놓고 보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끝이 난 영화. 나는 엔딩 크레딧 장면이 끝날때까지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무예의 화려함과 정교함으로 인해 정말 대단한 무협영화라 생각해서?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해서? 스토리가 정말 황홀할 정도라서? 아니었다. 당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슬픔의 '여운' 그 자체였다. 


생각해보니 음악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무협을 기반으로 한 완벽한 동양 영화에 울려퍼지는 구슬픈 '첼로' 소리와 이와 적절히 짝을 맞추는 '북' 소리. 특히나 첼로 소리는 이 영화의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그 여운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사랑 앞에서는 영웅도 어쩔 수 없는 법이란다


사랑 앞에서는 영웅도 어쩔 수 없는 법. ⓒ소니 픽쳐스 클래식


영화는 무당파의 실질적 수장이자 강호의 영웅 이묵백(저우룬파(주윤발) 분)이 득도 수행을 파계하고 돌아와 사숙인 수련(량쯔충(양자경) 분)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묵백은 수련에게 그의 몸과도 같은 절대신검인 '청명검'을 베이징에 있는 사부의 친구인 철 대인에게 맡길 것을 부탁한다. 사실 이묵백이 득도 수행을 파계하고 돌아온 이유는 수련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실을 맺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강호를 떠나려 했고, 그 상징적 의미로 청명검을 떠나보내려 한 것이다. 


수련이 철 대인에게 청명검을 맞긴 당일, 누군가가 청명검을 훔쳐 달아난다. 이를 쫓아가는데 실패한 수련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철 대인의 집에 투숙 중이던 고위 관리 옥 대인의 딸인 소룡(장쯔이(장자이) 분)을 의심한다. 


어느 날 이묵백이 친히 수련을 찾아온다. 수련은 이묵백이 청명검 도난 사건때문에 찾아온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묵백은 수련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사랑을 고백하고 함께 하자고 말하고자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실패하고 만다. 


한편, 이묵백과 수련은 소룡의 정체를 눈치채게 되고 그녀를 교화하려 애쓴다. 알고 보니 그녀는 푸른 여우의 제자였던 것이다. 이묵백에게 푸른 여우는 사부인 강남학을 죽인 원수였다. 이묵백은 푸른 여우를 죽이고 그의 제자인 소룡을 교화시켜 제자로 삼은 뒤 수련에게 고백하려 한다. 그에게 청명검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소룡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돌려받아야만 했다. 


전 소설 속의 영웅처럼 살고 싶어요


소설 속 영웅처럼 살고 싶은 소룡. ⓒ소니 픽쳐스 클래식


소룡은 고급 관리의 딸로, 자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성 밖의 강호를 동경해 왔고 그 삶이 진정한 자신의 삶이자 자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몰래 하녀(푸른 여우)로부터 무예를 배워왔던 그녀. 그녀는 정략 결혼이 뻔한 혼인을 앞에 두고 청명검을 훔치게 되고 만다. 그녀가 해왔던 고민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 속 영웅처럼 살고 싶다는 그녀.  


스승과 함께 도망쳐 강호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 것인가. 그렇지만 소룡은 이미 예전에 스승의 무예 실력을 월등히 앞서고 말았다. 그녀에겐 더 강한 스승이나 멘토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예전 소호(장첸(장진) 분)와의 자유로운 사막 생활로 돌아갈 것인가. 이 또한 자유로운 강호가 아니다. 단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성향이 강하게 반영된 행동이 될 공산이 크다. 현실과 다를 바 없이 자유가 업악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었다. 


이제 그녀의 길은 사실상 이묵백의 의도대로 무당파의 제자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수련의 반대에도 계속되는 이묵백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원했던 것일까? 수련이 말했던 "며칠씩 목욕도 못하고 벼룩과 벗하며 잔다는 등등"의 소설 속 강호인의 모습을?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소룡은 모든 걸 뿌리치고 청명검만을 지닌 채 홀로 강호를 유랑하기로 한다. 이묵백과 수련은 그 뒤를 쫓는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강호의 유명한 고수들이 그녀의 검에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건 그녀가 바랐던 소설 속의 자유, 모험, 영웅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렇게 소룡의 강호 생활은 짧게 끝나고, 그녀는 수련의 표국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소룡은 수련과 이묵백을 차례로 상대하게 된다. 


이후 나타난 푸른 여우가 수련을 납치해가고 죽이려 하고, 이 함정에 걸려든 이묵백은 푸른 여우를 죽이면서 복수를 마치지만 푸른 여우가 쏜 독침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소룡은 이묵백을 도우려 하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만다. 수련의 배려로 무당산으로 가 소호를 만나게 된 소룡. 그러나 소룡은 산에서 뛰어내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소룡, 그녀가 한 선택은? ⓒ소니 픽쳐스 클래식


<와호장룡>이 중국에서 실패한 이유


이묵백의 시선과 소룡의 시선으로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줄거리를 설명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상당히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진행에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꼼꼼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캐릭터들의 인과 관계와 선택 이유 등이 그 사이에 다 설명이 되어 지는 것이다.


그만큼 스토리에 신경을 썼다는 것인데, 이 영화는 1930~40년도에 중국에서 활동했던 왕두루의 청강만리(철기은병)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는 '와호장룡'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감독은 2006년과 2013년에 각각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바 있는 '이안'. 


이 작품 역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타임>에서 2000년도 최고의 영화로 선정하였으며, 2001년에는 아카데미에서 4개(외국어영화상, 촬영상, 음악상, 미술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북미에서 역대 최고의 외국어 영화 흥행 기록을 가지고 있다. 북미에서만 1억 3천 만불에 육박하는 성적으로,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인생은 아름다워>나 <영웅>의 거의 3배에 이르고 있다. 


정말 의외인 사실은, 본토인 중국에서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를 맛보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2000년 당시까지도 중국인이 생각하는 무협이란 <와호장룡> 같은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의 머릿 속 무협은 <동방불패>, <천녀유혼>, <신용문객잔> 등의 스타일이었던 것이 아닐까. 굉장히 '동적'인 무협영화들이다. 반면 <와호장룡>은 무협을 빙자한 '멜로'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거기에 굉장히 '정적'인 면이 부각되어 있다. 


<와호장룡> 같은 작품이 다시금 나올 수 있을까?


자,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와호장룡> 같은 작품이 다시금 나올 수 있나 하는 것이다. <와호장룡>이 나왔던 2000년도와는 비교도 안 되게,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정신 없이 휘몰아치는 액션이 주를 이루는 영화들이 판을 치는 지금 또는 이후에서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 <와호장룡>과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2년에 <영웅>을 필두로, 2004년 <연인>, 2006년 <야연> 등. 모두다 <와호장룡>의 히로인 '장쯔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정적인 무협영화들임과 동시에 멜로를 표방했다. 거기에 음악과 미술에서 그 화려함과 정교함을 더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영웅>까지만 했어야 했다. 나머지는 <와호장룡>의 아류작인 것만 같은 느낌으로, 오히려 그 느낌을 퇴색하게 만들었다. <와호장룡> 같은 영화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아니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나온 <일대종사>가 최소한 왕조위의 위신을 높이는 데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잘 만든 작품이라도, 계속적으로 비슷한 류의 것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와중에 소식이 들려왔다. 내년에 <와호장룡 2>가 개봉할 것이라는 소식. 감독은 <와호장룡>의 무술감독이었던 위안허핑(원화평). 주연은 량쯔츙과 견자단에 장쯔이가 합류했다는 소식이다. 기대가 되는 만큼 걱정이 따라온다. 혹여나 무협이라는 한계를 넘어 '위대한' 영화의 범주에 합류했다고 생각되는 <와호장룡>의 누를 끼치게 되지나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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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강호, 량쯔츙, 무협영화, 아카데미, 양자경, 영웅, 와호장룡, 와호장룡 2, 이안, 자유, 장쯔이, 장첸, 저우런파, 주윤발, 태그를 입력해 주세요.
  • BlogIcon 포장지기
    2013.10.11 10:52 신고

    아마도 열번 이상 봤을겁니다...
    한때는 무협소설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시절도 있었지요..
    2편이 제작된다는소식이 잇군요... 큰 기대는 하지 않을랍니다^^
    잘보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3.10.11 18:15 신고

      저는 한 5번 정도 ㅋㅋ
      아마 2편이 나오면 보겠지만요~
      1편만한 퀄리티를 기대하진 않겠어요ㅎ

  • BlogIcon +요롱이+
    2013.10.11 13:57 신고

    흥미롭게 잘 보구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3.10.11 18:15 신고

      안녕하세요~
      신나는 금요일 보내시길!

  • BlogIcon Hansik's Drink
    2013.10.11 18:20 신고

    재미나게 보고 갑니다 ^^
    알찬 오늘을 보내셔요 ㅎㅎ

    • BlogIcon singenv
      2013.10.11 18:24 신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루 마무리 잘 하시구요~

  • BlogIcon 티코햄
    2013.10.11 22:38

    느닷없이 다리를 넘어 뛰어 내리는 장면이 정말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3.10.11 23:40 신고

      저도 <와호장룡>하면 '여운'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듯 해요.
      정말 끝까지 자리를 못 뜨겠더라구요.

  • 좀비스타일
    2013.11.04 13:16

    중국에서 생활할때 한 중국인 친구가 '게이샤의 추억' DVD를 빌려줬었습니다.
    중국에서 흔한 불법 복제 DVD였는데 빌려주면서 한글 자막이 있다고 했었죠.
    영어가 안되는 관계로 자막에 집중하면서 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자막...
    화면은 게이샤의 추억인데 자막은 와호장룡... -_-;;;; 그 중국인 친구에게
    말해주니 박장대소 하더군요.....

  • 너무 멋진 영화
    2013.11.04 13:32

    볼 떄마다 스크린에 온통 눈이 뺏겨 버리는.. 화려한 액션보다 부드럽고 고요한 느낌이 너무 멋지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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