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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의 정신이상자 아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빛나는 여성'으로 <젤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9. 3.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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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젤다>


<젤다> 표지. ⓒ에이치비프레스



영미 문학사의 빛나는 그 이름 'F. 스콧 피츠제럴드', 읽지는 않았어도 그 이름 들어보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인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미국의 황금기인 1920년 이른바 '재즈시대' 상징이다. 사교적이고 소비 지향적이며 주체적인 여성들, 즉 '플래퍼'를 다룬 소설로 뉴욕의 유명 인사가 된 그, 그에겐 소설 주인공의 대상이 되는 뮤즈가 있었는데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였다. 


잘 나가는 집안의 말괄량이 젤다는 1920년대 황금기를 스콧과 함께 흥청망정 보낸다. 뉴욕은 물론 유럽을 수없이 오가며 진정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비추어볼 때, 스콧은 젤다를 거의 있는 그대로 소설에 옮겨 재즈시대의 상징이 된 것이라 하겠다. 


문제는, 젤다를 말하는 수식어다. 스콧을 재즈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나아가 20세기 영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수식하는 한편, 정작 그가 그런 위치에 설 수 있게 해준 뮤즈인 젤다는 오랫동안 위대한 작가의 재능을 탕진케 한 정신이상자 아내로 불렸다. 하지만, 그녀도 1920년대 당시 글을 썼다. 물론 단독으로도 썼고, 공저가 아닌 스콧 단독으로 표시가 되었을 뿐 스콧과 공저로도 썼다. 


지난 2월 27일 개봉한 영화 <더 와이프>가 겹쳐진다. 명배우 글렌 클로즈가 분한 '조안'은 작가 남편의 성공을 위해 평생을 바쳐 '킹메이커'로서 결국 그로 하여금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한다. 그런데 이후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지는데... 아마도 스콧, 젤다 부부 사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제목이 '조안'이 아닌 '더 와이프'라는 점에서, '젤다'라는 제목이 더 눈에 띈다. 


국내 최초로 '젤다 피츠제럴드' 아닌 '젤다'의 이름으로 '젤다'의 편에서 온전히 소개되는 그녀의 소설과 산문 모음집 <젤다>(에이치비프레스)는, 매우 시의적절하고 아주 필요한 책이라 하겠다. 젤다를 단순히 스콧의 뮤즈이자 재즈시대의 뮤즈에서 재즈시대의 당당한 작가이자 예술가로 나아가 시대의 일원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빛나는 여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대공황 이후 1930년대로 접어들자 스콧의 소설은 저물고 젤다는 정신착락을 일으킨다. 그들은 별거 생활에 들어갔고 스콧은 1940년, 젤다는 1948년 세상을 떠난다. 스콧의 소설은 이후 재평가되어 지금의 위치에 오른 반면, 젤다는 1970년 평전이 발표되어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뒤늦게 재평가되었어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보이듯 여전히 부정적인 모습이 주를 이루었다. 


이는 스콧 피츠제럴드와 함께 활동했던 영미 문학사 최고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회고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그녀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데서 가장 크게 좌지우지되었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그의 그녀에 대한 평가'가 '그녀에 대한 평가'의 전부인 양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젤다는 1922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잡지에 단편소설과 산문들을 기고했다. 그녀는 작가였다. 20년대 후반엔 뒤늦게 시작한 발레임에도 발레단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을 정도의 수준에 올랐고, 30년대 중반엔 회화 작품전을 열기도 했다. 그녀는 예술가였다. 


그런 그녀를 소콧은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여자가 어디 감히'라는 생각이 그의 정신을 지배했을 것이 분명하다. 젤다는 다방면의 재능과 기질을 타고났음에도, 스콧의 압력과 시대의 핍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니, 이길 수 없었다. 뒤늦게 우리를 찾아온 '젤다'라는 이름과 '젤다'의 이름으로 보는 글과 '젤다'라는 이름의 책은, 그래서 너무 반갑다. 


그녀의 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의 글은 여러 모로 편협하고 단편적이며 '멋'이 없다. 특히, 소설에서 두드러지는데 글이 향하는 중심은 있을지언정 정작 글의 중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자체로는 쉽게 잊힐 파편들이다. 


하지만, '멋'이 있다. 그녀만의 스타일이랄까. 앞서 말한 '멋'과는 다른, 애초에 시선을 편협하고 단편적이고 글이 향하는 중심에 둔다면 이만큼 멋있는 글도 없다. 화려한 기교 대신 대상을 향한 정성 어린 묘사가 있고, 풍부한 위트와 함께 날카롭게 번뜩이는 반어와 풍자의 기법이 엿보인다. 저자 본인 그 자체와 본인의 삶, 그리고 본인으로 대변되는 당대 '플래퍼'를 이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힘들 것이다. 


'극장 매니저들에게는 섹시함으로, 안목 있는 관객에게는 육체적 흡인력으로, 공연계의 저속한 방면에 널리 퍼져 있는 적들 사이에서는 재능 부족으로 통하는 특징이었다.'(소설 '재능 있는 여자' 중에서)

'그녀는 추파를 던지는 것이 재미있어서 추파를 던졌고, 몸매가 좋았기에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체면이 필요 없었기에 얼굴을 분과 연지로 덮었고, 본인이 따분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따분해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을 늘 하고 싶었던 일과 의식적으로 일치시켰다.'(산문 '플래퍼 예찬' 중에서)


스콧이 그녀와 공저로 글을 짓고, 그녀의 이야기를 가져오고, 그녀의 모습을 묘사했던 게 전부 그녀의 재능에서 발현되었던 것이고, 그런 그녀의 재능을 스콧은 높이 사 인생뿐만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서 동반자로 함께 한 게 아니라, 분노하고 무시하고 깎아 내릴 뿐이었다. 젤다는 그런 모습을 두고, '피츠제럴드 씨는 표절은 집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나 봐요.'(산문 '친구이자 남편의 최근작' 중에서)라며 날카롭게 번뜩이는 글을 서평을 썼다. 


결코 그녀를 영미 문학사에 빛나는 거장 아니, 재능이라고도 두둔할 이유도 마음도 없다. 이 책을 통해 젤다를 소개하는 엮은이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건 '젤다'라는 사람, 그 자체와 삶이다. 스콧이 스콧이라는 사람과 삶이 아닌 소설로 재평가 받았듯, 젤다는 젤다라는 사람과 삶이 재평가되어야 한다. 


젤다 - 10점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 지음, 이재경 옮김/에이치비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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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 산문, 소설, 스콧 피츠제럴드, 여성, 재즈시대, 젤다, 페미니즘, 플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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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위대하지만, 소설 속 '개츠비'는?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4. 11.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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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수줍게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려본다. 10여 년 전 한창 소설에 빠져있을 때쯤, 나를 괴롭힌 소설 두 편이 있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작품이지만, 나에게는 공통되게 ‘난해함’으로 기억된다.

 

<장미의 이름> 같은 경우엔 프롤로그를 넘기는 데 한 달이 걸렸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당시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해박함이 어찌나 어렵게 다가왔던지. 최근에 나온 그의 작품 <프라하의 묘지>(열린책들)은 비교적 쉽고 재밌게 봤다.

 

반면 <위대한 개츠비>는 다른 종류의 난해함으로 다가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3번이나 도전했다가 결국 읽지 못하고 책은 팔아버렸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번역에서의 문제인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 보니 이처럼 재미있는 소설이 또 있는가 싶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 엄청난 인기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로 칭송받으며 오래전에 이미 고전문학의 반열에 올랐다. 그와 동시에 대중에게 사랑을 받으며 고전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이질성까지 허물어버렸다. 얼마 전에는 영화로 다시 한 번 리메이크 되며 나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불편함 내지 선입관 또한 떨쳐냈다.

 

하지만 소설을 섭렵해도 불편함은 떠나지 않았다. 다만, 이번엔 소설 자체에 대한 불편함이 아닌 소설의 배경과 비극적인 혹은 우스꽝스러운(?) 결말 때문이다. 10년 사이에 많이 변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의 참맛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대공황 전, 미국 상류층을 말하다

 

소설은 화자 닉의 독백으로 시작된다.(그의 독백은 시종일관 계속 될 것이다) 그는 중서부 도시에서는 꽤 알려진 부유한 집안이다. 하지만 중서부는 세계의 중심에서 물러나 초라하기 짝이 없어졌다. 그래서 닉은 동부의 뉴욕으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는 그의 친척 데이지와 그녀의 남편이자 닉의 대학시절 지인인 톰이 있었다.

 

닉은 뉴욕으로부터 20마일쯤 떨어진 웨스트에그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작은 만을 사이에 두고 서쪽엔 이스트에그가 있다. 데이지와 톰은 그곳에 살고 있다. 닉은 그들과의 첫 만남에서 둘 다 외도를 했었다는 것 또는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옆집에 성(城)처럼 으리으리한 건물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개츠비의 집이었다.

 

그곳에서는 매일 밤 알 수 없는 초대형 파티가 열린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그 파티에 참석한다. 닉도 초대를 받게 되고, 그 곳에서 개츠비를 만난다. 조금은 지루했던 초반을 지나 소설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개츠비가 어마어마한 집을 사들이고, 매일 밤 초대형 파티를 여는 이유가 밝혀진다. 그건 바로 5년 전 잠깐 사귀었던 데이지를 잊지 못하고, 그녀로 하여금 파티 소식을 듣게 하려는 수작이었던 것이다.

 

가난했던 개츠비가 상류층 여식인 데이지를 만나 한 눈에 반하게 되고, 자신 또한 상류층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과거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되어 데이지와 같은 상류층에 들고자 했던 과거. ‘진짜’ 상류층인 데이지 없이는 꿈을 이룰 수 없는 현재. 개츠비는 데이지를 얻어야 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위대하다

 

소설은 이처럼 개츠비의, 개츠비에 의한, 개츠비를 위한 커다한 얼개 위에 톰의 외도와 데이지의 외도(개츠비와의), 그들을 비롯한 부(富)촌의 흥청망청한 생활, 너무나도 아스라하고 나른하고 재미없는 나날들의 경치를 보여준다.

 

이는 정확히 세계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인 1920~30년대의 미국을 보여준다. 일명 ‘재즈시대’이다. 1차 세계 대전의 승전 후, 마치 재즈의 경쾌한 선율에 취한 것처럼 향락과 사치가 만연한 시대. <위대한 개츠비>는 이 시대의 단면을 정확히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단연 씁쓸하고 우울하다.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공허하다. 재즈시대의 이면(異面)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위대하다. 그럼에도 소설은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이 가지는 보편성을 훌륭히 다루고 있다. 위대함에 위대함이 얹혀졌다.

 

과연 소설 속 '개츠비'는 위대한가?

 

얼핏 보면 개츠비는 참으로 위대하다. 어찌 5년 동안이나 한 여자를 ‘잊지 않을 수’ 있는가. (개츠비는 데이지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왔기에, ‘잊지 못하고’가 아닌 ‘잊지 않고’가 맞다고 생각한다), 또한 비록 졸부일지라도 보란 듯이 짧은 시간 안에 자수성가를 이루지 않았는가. 하지만 다음의 구절을 보면, 결코 그가 위대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처음 만난 ‘상류층’ 여자였다. 그는 자기 나름의 수단으로 그런 부류의 여자들을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렇게 멋진 집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집이 그토록 숨이 막히도록 강렬했던 것은 바로 데이지가 거기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른 많은 남자들이 데이지에게 목을 매고 있다는 사실도 그를 흥분시켰다. 그의 눈에는 그녀가 점점 더 가치 있는 존재로 보였다.”(본문 속에서)

 

개츠비가 데이지를 사랑하게 된 직접적 이유이다. 사실 데이지는 만인의 여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데이지는 상류층 여자였고, 멋진 집에서 살았던 것이다. 전설처럼 내려오던 갑부 개츠비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그의 신화는 무너진다. 결코 개츠비는 위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데이지는 개츠비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결국 톰에게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이에 대치되어 톰도 외도를 뒤로 하고 데이지에게로 돌아간다. 톰의 외도 상대가 죽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개츠비의 꿈과 희망은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닉은 소설의 첫 장면에서 이런 개츠비를 옹호한다. 조금 길게.

 

“오직 이 책에 이름을 제공한 개츠비, 내가 내놓고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바로 그 인물에게만은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결국 일련의 성공적인 제스처라고 한다면, 그에겐 정말 대단한 것이 있었다. 1만 마일 밖의 흔들림까지 기록하는 지진계처럼 그는 인생에서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그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미명하에 흔히 미화되곤 하는 진부한 감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지금껏 그 누구도 갖기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 아니,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인간들의 설익은 슬픔과 조급한 기고만장에 대해 내가 잠시나마 관심을 잃게 되었던 것은 개츠비를 삼킨 것들, 그리고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부유하는 더러운 먼지들 때문이었다.”(본문 속에서)

 

그렇다. 개츠비는 더럽기 그지없는 소굴에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위대한’ 보다는 그나마 ‘대단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수는 있겠다.

 

개츠비는 일면 어리석기도 하다. 씁쓸한 느낌도 든다. <위대한 개츠비>의 불편함은 여기서 오는 듯하다. 재즈의 경쾌한 선율이 언제부터 서글퍼졌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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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개츠비, 대공황, 미국 소설, 상류층,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장미의 이름, 재즈 시대, 파티
  • BlogIcon 조아하자
    2014.11.13 23:42 신고

    위대한 개츠비가 이런 내용이었군요... 아직 소설을 안 읽어봐서 ^^;

  • BlogIcon singenv
    2014.11.19 22:37 신고

    한 번 쯤 읽을 만한 소설이에요~
    재밌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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