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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범인'에 해당되는 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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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은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세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2020.01.02
  • 세 개의 광고판으로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 장인의 솜씨 <쓰리 빌보드> 2018.03.16
  • 세계 3대 추리소설이 선사하는 위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2018.01.31
  • 너무나도 유명한, 충분한 가치 <오리엔트 특급 살인> 2018.01.08
  • 30년 전 그때, '왜' 범인을 잡을 수 없었을까 <살인의 추억> 2016.11.25

세상은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세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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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포스터. ⓒ넷플릭스



2008년 미국 워싱턴주, 10대 후반의 마리는 가택을 침입한 괴한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다. 다음 날 경찰에 신고해 수사가 진행된다. 하지만, 담당 형사 파커를 비롯해 수사 관계자들의 일관성 태도는 피해자를 향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사에만 초점을 맞췄고 마리는 자신이 당한 일을 계속해서 다시 되새기며 소상히 전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일관성 없다고 느낄 진술이 이어졌다. 


마리의 '피해자답지 않은' 발랄한 행동도 경찰의 눈엔 이상하게 보였다. 경찰은 꼬투리를 잡아 '허위진술' 개념을 들이댔고 마리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가 당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다시 당했다고 번복하려다 만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허위진술로 고발한다. 마리는 친구를 잃고 직장을 잃고 돈도 잃는다. 나락으로 떨어진다. 


2011년 미국 콜로라도주, 듀발 형사가 성폭행 사건을 맡는다. 피해자를 향한 세심한 배려와 추후 관리까지 하며 정확한 수사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쉽지 않다. 가해자가 그 어떤 범행 흔적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끈질긴 수사 끝에 우연히 남편을 통해 다른 관할서 형사 라스뮤센을 만난다. 알고 보니 그녀들이 맡았었고 맡고 있는 성폭행 수사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동일인물로 보였던 것이다. 통상 하지 않는 공조수사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의 실태에 접근한다. 그들은 관할도, 성격도, 원칙도 모두 다르지만 피해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제1의 원칙을 공유한 채 수사를 진행한다. 


더해가는 안타까움과 더해가는 올바름의 두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2008~11년까지 미국 워싱턴주와 콜로라도주를 관통해 일어난 연쇄 강간 사건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2015년 발행한 <프로퍼블리카>의 수석기자 T.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의 기사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를 책으로 옮긴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가 원작이다. 이들은 2016년 퓰리쳐상을 수상했고, 책은 2018년에 출간되었다. 


지난 2017년 말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퍼진 '미투 운동'의 연장선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싶지만, 기사 자체는 그 전에 나왔으니 굳이 끼워맞추려 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니 말이다. 시리즈가 지금 아닌 미투 운동 이전에 나왔어도 충분히 '시의 적절'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시의 적절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이 작품은 2008년 워싱턴주의 '마리'와 2011년 콜로라도주의 '듀발' '라스뮤센'이라는 두 축으로 진행된다. 스토리 상으로도 두 축이 메인이 되지만, 메시지 상으로도 두 축이 메인이 된다. 즉,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와 성폭행 사건의 수사자로 말이다. 한 축의 더해가는 안타까움과 다른 한 축의 더해가는 올바름이 대조를 이루면서 서로를 향한다. 


성폭행 피해자를 향한 무지몽매한 생각과 파렴치한 대응


마리의 이야기는 제목과 정확히 일맥상통한다. 도무지 믿기가 힘들고 믿을 수가 없다. 성폭행 피해자에서 허위진술 가해자로 전락해가는 과정이 처참하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남자' 경찰들의 무지몽매한 생각과 파렴치한 대응이 비극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들은 폭행 피해자 아닌 성폭행 피해자한테만 일어나는 미묘하고 복잡다단한 심리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고 알아채려고도 하지 않았다. 


반면, 콜로라도주의 '여자' 경찰들은 성폭행 사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대응해야 하고 수사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단순히 '앎'의 차원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마리의 경우와 달리 수사를 위해 피해자들을 객관적으로 대하면서도, 수사가 결국 피해자들을 위한 것임을 인지하며 피해자들을 주관적으로, 인간적으로 대했다. 


하여, 작품은 말한다. 경찰이야말로 또 다른 절대적 가해자가 될 수 있거니와 그런 사례가 여기 버젓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수사에 임해 자신과 자신의 주위보다 피해자를 더 생각하는 경찰도 있고 또 있어야만 한다고도 말한다. '남자'와 '여자' 경찰을 굳이 분류해서 주지했지만, 보다 중요한 건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가해자를 잡으려는 마음가짐이라 하겠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피해자를 생각하고 가해자를 잡으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데 남자 경찰이 따로 있고 여자 경찰이 따로 있겠는가. 


성범죄 사건 수사의 모든 것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작품 내외적으로 마음에 와 닿는 스토리와 평생 잊히지 않을 진리를 선물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연약하고 선량하고 어리디 어린 마리가 참혹한 피해를 받고 나서 믿을 수 없는 2차, 3차, 4차... 피해를 받아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나는 그런 피해를 당하지 말아야지가 아닌, 나는 그런 가해를 행하지 말아야지도 아닌, 사람 사는 세상이 왜 이따구지 하는 생각 말이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세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별 것 아닌 쉽고 당연한 진리이지만 그동안 생각해내지 못했던 게 있다. '왜 범죄자들을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켜주고 입혀주고 먹여주는 거지?' 하는 생각, 심지어는 '범죄자들을 사회 속으로 보내어 자연스레 정화되게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두 경찰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놈들은 절대 활개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고 말이다. 실화이니 만큼 잘 알려진 사실이니 밝히는데, 작품 내 사건이자 실제 사건의 범인은 결국 잡혀 워싱턴주에서 68년 6개월 형과 콜로라도주에서 327년 6개월 형을 받아 복역 중이라고 한다. 우중충할 수밖에 없는 작품에서 가장 속시원한 장면이었다. 


그러며 지금 한국의 우리들에게도 무언가를 선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전개된 미투 운동, 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이 2차 이상의 피해를 받았다. 유독 성범죄 사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피해자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한편 성범죄 사건만의 특수성을 면밀히 살피는 객관적 시선도 유지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성범죄 사건 수사의 '올바른' A to Z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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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범인, 수사, 안타까움, 연쇄강간사건, 올바름,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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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광고판으로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 장인의 솜씨 <쓰리 빌보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3.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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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쓰리 빌보드>


영화 <쓰리 빌보드>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미국 중서부 미주리주 에빙 외곽, 사람 발 길이 뜸한 도로 옆에 세워진 허물어져 가는 큰 광고판 세 개가 탈바꿈한다. 딸이 죽어가면서 강간을 당한 후 불에 타 돌아왔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1년이 지난 현재를 사는 엄마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 분)가 책임자 윌러비 서장(우디 해럴슨 분)을 향해 직격타를 날린 것이다. 


푸른 잔디 위에 선명히 대조되는 새빨간 바탕으로 검정색 글씨의 메시지를 세 개의 광고판에 써 놓았다. RAPED WHILE DYING(내 딸이 죽어가면서 강간을 당했는데), AND STILL NO ARREST?(그런데 범인을 아직도 못 잡았다고?), HOW COME, CHIEF WILLOUGHBY?(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 


이에 마을에서 존경받고 명성높은 윌러비 서장뿐 아니라 그를 존경해 마지 않지만 주먹이 앞서는 마마보이 경관 딕슨(샘 록웰 분)이 분개한다. 그뿐이랴? 기억하기 싫은 1년 전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리는 것보다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존경받는 윌러비 서장의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을 염려하는 많은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게 압박을 가한다. 밀드레드는 정녕 홀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데...


내 딸이 죽어가면서 강간을 당했는데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 <쓰리 빌보드>는 블랙코미디로 명성 자자한 마틴 맥도나 감독의 신작 블랙코미디이다. 74회 베니스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고, 75회 골든글로브에서 4관왕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90회 아카데미에서는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받는 저력을 발휘했다. 영화를 이끄는 세 주연 배우의 연기는 그 명성을 훨씬 뛰어넘을 만한 것이기에 굳이 구구절절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다. 한편, 영화의 저력은 세 개의 광고판에 써넣은 세 개의 문구와 맞물려 있다. 


먼저 RAPED WHILE DYING, 밀드레드는 왜 그토록,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딸의 죽음에 분개하고 계속 환기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그녀의 딸이 끔찍하기 짝이 없는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딸이 죽던 날 집에서 그녀와 딸은 심하게 다툰다. 딸은 차를 빌려달라고 하고 엄마는 딸의 행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 빌려주지 않는다. 이에 딸은 화가 나 길에서 강간을 당해 죽어버리겠다고 큰소리치고 나가버린 것이다. 엄마도 그래버리라고 소리친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토록 처참한 비극의 시작, 거기에는 엄마의 딸이라는 개체 혹은 집합체로서의 인간의 불완전성과 불확실성에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는데, 그 모습이 한편으론 비극을 양산하고 한편으론 씁쓸한 웃음을 양산한다. 밀드레드가 세 개의 광고판을 만든 뒤로 그 양상은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진다. 


범인을 아직도 못 잡았다고?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두 번째 광고판의 AND STILL NO ARREST?는 영화의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사회적 맥락과 맞닿게 되는 지점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범인의 발뒤꿈치도 찾지 못했거니와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문제는 단순히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것에만 머무르는 게 아닌, 마을 사람의 무관심 그 이상의 적대시에 있다. 


밀드레드가 경찰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소소하게, 대범하게, 잔인하리만치 응징하는 모습과 그들이 당하는 모습은 생각지도 못한 웃음을 유발한다. 아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연출한다고 하겠다. 여기에서 경찰임에도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마마보이 딕슨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한다. 


세월호 얘기를 안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비록 범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잡혔지만, 그 사건이 그렇게까지 되도록 방치한 당시 통수권자를 향한 비판과 함께 희생당한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계속 되었다. 피해자로서 당연한 권리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유족들에게 되지도 않은 소리들을 참으로 많이도 했다. 


돈 때문에 계속 하느냐, 이젠 지겨우니 그만해라, 좀 조용히 살자 등. 이들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나오는 것도 블랙코미디의 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비극의 한 편에 웃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어떻게 된건가, 윌러비 서장?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HOW COME, CHIEF WILLOUGHBY?에 와서는 블랙코미디의 절정이 보여짐과 동시에 생각해봐야 할 여지가 많아진다. 밀드레드가 보기에 딸을 죽인 범인을 잡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할 최고 책임자는 단연 서장 윌러비. 그런데 하필 왜 그는 자기 일에 열심이고 평소 존경받는 행동을 하며 집에서도 훌륭한 가장인가. 


더욱이 하필 왜 그는 암에 걸려 몇 개월 후면 세상을 떠야 하는 병자인가. 그런데 왜 요양하지 않고 서장직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소소한 의문을 제쳐두고서라도, 이 딜레마가 던지는 비극+비극은 또다른 종류의 허탈한 웃음을 유발하는 능력이 있다. 이를테면, '하, 진짜, 어떻게 그러냐' 하는 느낌이랄까. 


누가 보면, 밀드레드가 조준을 이상한 곳으로 해서 상황이 점점 꼬이게 만들어 진정한 파국으로 이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당연히 충분히 행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속사정이야 어떻든 밀드레드에겐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경찰의 우두머리가 아닌가. 


거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 개의 광고판과 그에 따른 각기 다른 블랙코미디의 양상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은 장인의 솜씨를 감독은 보여주었다. 그 이전에 투철하게 쓴 각본의 힘이 우선되어야 마땅하다. 참고로, 이 영화의 감독과 각본을 마틴 맥도나가 도맡아 했다는 것. <쓰리 빌보드>로 새로운 대가의 출현을 목격했다. 그의 필모를 보니 지난 10년간 3개의 영화에 감독과 각본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더욱 가열찬 활동이 절실하다. 이제 몇 년 뒤에나 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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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블랙코미디, 비극, 세월호, 쓰리 빌보드,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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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추리소설이 선사하는 위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8. 1.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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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표지 ⓒ황금가지



180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추리소설, 그 수많은 작품들 중 단연 가장 유명한 건 무엇일까? 우선, 가장 유명한 소설가는 누구일까?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를 들 수 있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추리소설의 창시자라 불리우는 애드거 앨런 포가 아닐까 싶다. 아니, 그는 '유명'보다 '위대'의 칭호를 붙여야 하겠다. 


셜록 홈즈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추리소설 캐릭터이다.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해, 언젠가부터 그의 손을 떠나, 하나의 상징이자 살아 있는 인간처럼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과 영향력이 더 막강해지니 신기할 노릇이다. 적어도 캐릭터로는 셜록 홈즈를 넘어설 게 절대 없다. 


가장 유명한 작품을 들라고 하면, 그것도 또 골치가 아프다. 정녕 수없이 많은 명작들이 있지 않은가. 앨러리 퀸, 반 다인, 존 딕슨 카 등의 정통 추리소설가 작품도 많고, 레이먼드 챈들러를 빼놓으면 섭하고,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들 몇몇은 반드시 최상위권에 위치시켜야 한다. 


그래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최고의 위치에 놓는 데 아무도 반대하진 않을 거다. 가장 대중적인 선택이고 가장 안정적인 선택이라고 비난 아닌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확실한 믿음을 주는 작품인 건 확실하다. 지극히 일반적인 추리소설 독자로서는, 추리소설이란 이 소설에서 시작해 이 소설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소설은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된다. 직업도 성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다양한 남녀 8명이 각자 다른 이유로 무인도 인디언섬에 초대받는다. 그들 각자의 사정상 그들은 그곳에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녕 치명적인 전략이다. 하지만 정작 인디언섬에 도착한 그들 앞에 초대한 사람은 없었다. 대신 하인 두 명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스피디하게 사람이 죽어나간다. 남은 이들을 더욱 두렵게 하는 건, 식탁 위에 있는 인디언 인형의 개수와 벽에 붙어 있는 인디언 동요의 가사이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양이 인디언 동요 가사와 같고, 한 명이 죽을 때마다 인디언 인형 한 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정작 그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건 다함께 있을 때 어디선가 울려퍼진 그들 각각의 '죄상'들이다. 그들 모두는 누군가를 직간접적으로 죽게 했다는 것이고, 이 섬에 모이게 한 이유는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하겠다는 확신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같이 현실뿐만 아니라 과거의 두려움과도 싸워야 한다. 


문제는 범인, 조그마한 섬을 모조리 뒤져도 범인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으니, 범인은 다름 아닌 이 10명 안에 있다는 사실. 더구나 험악하기 짝이 없는 날씨 때문에 그들은 꼼짝 없이 이 무인도에 갇힌 꼴이 되고 만다. 만화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전일>의 명언 "범인은 이 안에 있다!"의 진정한 시조라고 할까. 


위대한 추리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외형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또다른 걸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유사하다. 한정된 공간에 갇힌 피해자이자 용의자, 그리고 국가의 손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범죄를 개인이 대신 심판하려는 모습까지 닮았다. 특히 이 소설은 애초에 대놓고 그런 모습을 보인다. 죄를 저질렀지만 법의 이름으로 심판할 수는 없었던 사건들의 당사자를 불러내어 확실하게 응징한다. 


물론, 이 추리 '소설'의 위대한 점은 마지막 반전의 도덕적 뒤틀림에 있겠지만 말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보여준 슬프기까지 한 반전과는 완전히 반대의 느낌이랄까. 한편, 이 '추리' 소설이 주는 서스펜스는 극렬하기 짝이 없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상황에서 조금씩 숨통을 조여오는 느낌이랄까. 


심리 추리의 대가 포와로 경을 굳이 불러오지 않아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심리를 자유자재로 다뤄 우리 앞에 풀어놓는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사람이 죽어갈수록 극심해지는 그들의 심리전쟁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건 차라리 하나의 게임이다. 찾을 수 없는 범인을 찾아야 하고, 풀 수 없는 사건을 풀어야 하며, 탈출할 수 없는 섬을 탈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한다. 


터무니 없이 빨리 읽히는 와중에 수없이 많은 장면과 생각과 심리들이 소용돌이 치게 만드는 소설, 그러면서도 애거서 크리스티가 절대로 간과하지 않는 '사회 정의', 추리소설만이 주는 서스펜스와 반전은 차라리 덤이다. 이제야 이 소설을 추천하는 건, 애거서 크리스티를 보라고 하는 건, 염치가 참으로 없는 짓이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 난 소설 같은 거 재미없어서 안 봐, 하는 분이 있다면 무조건 이 소설을 봐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10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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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범인, 서스펜스, 세계 3대 추리소설, 심리, 애거서 크리스티,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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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유명한, 충분한 가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8. 1.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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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 표지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 아서 코난 도일과 영국 추리소설의 양대산맥이라 불리우는 '추리소설의 여왕'이다. 그녀의 소설들은 100여 편에 이르는 2차 콘텐츠(영화, 드라마 등)로 제작되어 소설 독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관객과 시청자들까지 즐기고 환호할 수 있게 했다. 그녀는 80편이 넘는 단·장편 소설을 선보였는데, 과연 그중 어느 작품이 최고로 칠까?


흔히 세계 3대 추리소설이라 하여,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그리고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뽑는다. 이에 따르면 애거서 크리스티 최고의 작품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일 것이고, 그녀의 주요 작품들을 읽어본 필자의 소소한 식견으로도 이견은 없다. 


다만, 다른 건 몰라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이전에 나왔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빼놓으면 섭하다. 두 작품 모두 공교롭게도 크리스티가 창조한 두 명의 명탐정 중 하나인 에르퀼 푸아로가 나오는데, '회색 뇌세포'를 이용한 그만의 추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최적의 안성맞춤이겠다. 


그중에서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누구도 드나들지 못하게 된 폭설로 고립된 열차라는 배경과 함께 어느 정도 정해진 범인의 양상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반전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다. 더불어 거기엔 크리스티가 추구하는 사회적 정의의 다양한 면면들이 포진하고 있어 정녕 '가치'가 있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누구도 예상 못할 범인, 푸아로의 씁쓸하고 슬픈 해결


명탐정으로 이름난 에르퀼 푸아로, 터키 이스탄불에서 급한 전보를 받고 런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급히 오리엔트 특급을 예약해 유럽을 횡당하는 사흘 간의 여행을 한다. 라쳇이라는 큰 부자가 적이 있으니 자신의 안전을 부탁하지만 푸아로는 단번에 거절한다. 그런데 머지 않아 폭설로 오가지 못하게 된 오리엔트 특급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살해당한 이가 라쳇임이 밝혀진다. 


경찰이 올 때까지 사건을 맡게 된 푸아로, 완벽한 밀실이 된 열차에서 국적과 나이가 모두 다른 열두 명의 승객과 차장 한 명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몇몇에게 불리한 증거가 발견되지만, 모두에게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 더군다나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주고 있지 않은가. 푸아로는 '회색 뇌세포'를 이용, 심리 게임을 시작한다. 


한편, 라쳇의 정체가 중요하다. 그는 저 유명한 암스트롱 가 유괴 사건 당시 데이지 암스트롱을 유괴해 돈을 뜯고 무참히 살해해버린 이 '카세티'였던 것이다. 그때문에 임신 중이었던 암스트롱 부인은 아이를 사산했고 자신도 죽고 말았고, 남편은 권총 자살을 했다. 불운한 하녀도 죽었다. 경찰이 그녀를 의심했고 아무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아 자살했던 것이다. 라쳇은 그런 사람, 짐승만도 못한 죽어도 싼 사람이었다. 


소설은 사건 발생-열차 탑승객들, 즉 용의자들의 증언과 푸아로의 탐색-증거와 심리에 따른 푸아로의 수색과 질문-해결 순으로 진행된다. 굉장히 깔끔하고 일목요연한 진행은 푸아로의 체계적인 머릿속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범인의 정체와 그에 따른 푸아로가 제시한 해결책은, 씁쓸한 한편 슬프기까지 하면서 '사회 정의'란 무엇인가 생각하게끔 한다. 반전이 주는 쾌감만을 신성시 하는 여탄 기막힌 '반전' 소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기품마저 인다. 


공권에 의하지 않은 개인의 복수, 심판


크리스티 여사는 이 소설을 단지 '추리 소설'로 생각하고 쓰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우린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기가 막힌 상황을 환상적이고 다채로우며 번뜩이는 추리로 헤쳐나가는 명탐정의 톡톡 튀는 면모를 만끽할 수 없다. 먼 이국 땅에서 폭설에 갇혀 오가지 못하는 열차에서의, 다양한 국적과 나이와 계급의 사람들이 주는 미묘한 긴장이 마음을 졸이게 할 뿐이다. 


한편, 밝혀진 살해당사자 라쳇의 정체는 범인의 정체를 향한 본능적 궁금함과 함께 범인을 향해 발산되는 극렬한 반감이 사라지게 만든다. 라쳇은 죽어마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 크리스티는 이미 거기에서 사회 정의의 맹점을 파고든다. 그녀는 암암리에 묻는다. 죽어마땅한 사람이 죽었는데, 범인을 밝히는 게 무슨 소용이랴? 


그래서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 특히 낮은 계급에 위치한 이들에게 애정어린 관심을 쏟는 데 소설을 상당 부분 할애한다. 암스트롱 사건에서 하녀가 억울하게 의심을 당한 것과는 다르게, 이때 하인과 하녀들은 용의선상에서 상당히 멀어진다. 더불어 소설의 상당 부분을 암스트롱 사건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채운다. 자연스레 '라쳇은 죽어마땅한 사람'이라는 생각과 말이 퍼지고 암암리에 당연시 된다. 


이는 요즘 많은 범죄 영화에서 보이는, '공권에 의하지 않은 개인의 복수 또는 심판'의 선조격이기도 하다. 구도로 보아 라쳇을 죽인 범인은 사적인 복수를 한 게 분명하거니와, 사건을 담당하게 된 푸아로도 공권을 대표하는 이가 아니다. 인간사에는 언제 어디서나 공권이 해줄 수 없는 게 많다. 공권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일개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 누구인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 - 10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영희 옮김/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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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밀실, 범인, 사회정의, 애거서 크리스티, 에르퀼 푸아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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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그때, '왜' 범인을 잡을 수 없었을까 <살인의 추억>

오래된 리뷰 2016. 11.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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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올해로 30년이 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가지고 지난 2003년에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낸 <살인의 추억>. 2000년대 한국 영화가 낳은 최대 최고의 쾌거다. ⓒCJ엔터테인먼트



올해로 30년이 되었다. 한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이자, 최악의 미제 사건. 일명 '화성 연쇄 살인 사건'. 1986년 9월 15일에 시작되어 10명의 여성이 피해를 입었다. 반경 5km 안에서 일어났음에도, 180만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음에도, 결국 살인자를 잡을 수 없었다. 잡히지 않는 범인도 대단하지만,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찰도 대단했다. 잡을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1990년대 중반에 3편의 단편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한동안 연출을 이어나가지 않았던 봉준호 감독은,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장편에 데뷔한다. 비록 흥행엔 실패하지만 평단의 호평과 마니아층의 환호 속에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돌아온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그야말로 대대적인 흥행과 호평을 받으며, 봉준호 감독을 단번에 충무로의 총아로 발돋움시킨다. 


대사과 장면은 물론, 캐릭터까지 완벽한 영화로서, 한국만이 가지는 시대상에 그동안 한국 영화가 가지지 못했던 할리우드식 구도를 훌륭히 접목시켰다. <살인의 추억>으로 한국 영화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지극히 영화 내적이니만큼, 전후 어디서도 찾아 보기 힘든 쾌거다. 


'왜' 그때 범인을 잡을 수 없었을까


영화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다. 도대체 왜 범인을 못 잡는 것인가. 지금이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미제' 사건이니까... ⓒCJ엔터테인먼트



1986년 경기도 시골에서 강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오래지 않아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진다. 두만(송강호 분)과 용구(김뢰하 분)는 토박이 형사로, 뛰어난 '감'과 끈질긴 '족치기'로 쉽게 범인을 잡으려 든다. 뒤늦게 서울에서 자진 합류한 태윤(김상경 분)은 거짓말 하지 않는 '서류'만 믿을 뿐이다. 


아무래도 처음엔 '감'에 의지하게 되는데, 도무지 '서류'에 맞지 않아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태윤을 무시한 채 현장검증을 했다가 범인이 부인해 전국적으로 망신살을 당하고 만다. 결국 반장이 파면당하고 서울에서 새로운 반장이 오기에 이른다. 그는 두만과 태윤의 감과 서류를 모두 이용해 또 다른 유력 용의자를 잡아 들였지만, 그마저도 상식적으로 범인이 아니다. 그렇게 사건은 한없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영화는 한국 최악의 미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만큼 결말이 이미 나와 있는 거나 다름 없다.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면 도대체 '왜' 범인을 잡을 수 없었는가 하는 게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그때가 아닌 지금이라면 범인을 잡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잡을 수 있을 듯하다. 그건 단순히 30년이라는 긴 세월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세월의 차이가 아닌 다른 차이,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의 '무능'


시골 형사, 도시 형사를 막론하고 그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니만큼 그들은 나라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의 '무능'이다. ⓒCJ엔터테인먼트



그건 시골이 가지는 후진성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두만'이라는 한 개인이 가지는 특수성에 기인할지도 모든다. 아니면 둘이 합쳐졌는지도. 그는 감에 의지해 곧잘 범인을 때려잡는다. 그런데 그에겐 좁디좁은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꿰뚫는 여자가 하나 있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하는 얘기를 귀담아들었다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과학에 입각한 수사'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떨어져 있다. 이게 과연 시골에만 해당하는 걸까.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만큼, 두만은 시골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나라를 대표하는 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유연성 없는 서류 수사의 후진성일까. 이 또한 '태윤'이라는 한 개인이 가지는 특수성에 기인 또는 둘이 합쳐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서류에 의지해 범인을 잡으려 한다. 거기에는 사실만 있을 뿐이니까. 시험문제 답은 전부 교과서에 있는 법 아닌가. 그런데 중학생한테 고등학교 시험 문제를 내주면 풀 수 없는 법, 태윤한테는 이 신출귀몰한 범인은 너무 어려운 시험 문제다. 교과서 밖에서 낸 응용문제다. 그는 두만이 잡아들인 용의자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 뿐이다. 두만과는 또 다른 종류의 '무능'.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의 무능은 종류도 다양하다. 


이 판국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별의별 말 같지도 않은 추리를 진지하게 내뱉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 중에 절정은 무당. 두만과 용구는 무당한테 찾아가 범인의 얼굴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알아온다. 무당이 준 화선지에 먹물을 쓱 뿌리고 자연스럽게 내려 말리면 범인의 얼굴이 비춘다는 것. 얼마 전까지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짓이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지금이라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어련하시겠어요. 


영화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태로 천천히 흘러간다. 완벽한 짜임새다. 그들만의 세상 - 이물질 투여 - 대립 - 그들과 이물질의 실행 - 실패 - 결합 - 성공 징후 - 최종 동반대실패. 분명 이들에게도 성공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가 망치고, 운이 따라주지 않았고, 정부가 도와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대가 그들을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미제 사건의 근원, 지금도 활개치고 있다


이 미제 사건의 근원은 당시 '시대'에 있겠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왜 여전히 이 사건은 미제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인가. ⓒCJ엔터테인먼트



때는 1986년, 전두환 시대의 절정이다. 비록 이듬해 민주화 운동의 거침 없고 매서운 불길에 움츠러들 테지만, 바로 그 전이기에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는 정권의 움직임은 매서웠을 것이다. 영화는 그런 모습들을 짧게나마 잡아내는데, 그 순간이 의미심장하다. 연쇄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에게 행하는 발길질을, 데모하는 여학생에게 똑같이 행하는 용구의 모습은 시대의 상징 그 자체이다. 


우린 그 순간의 모습으로 한 가지 사실이자 이 '미제' 사건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이 사건을, 이 여성 강간 살인 사건을 수사할 저의가 없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들의 눈은 강간당해 죽은 여성에게 향해 있지 않았고, 자신을 위협하는 여성에게 있었다. 그들의 발은 자신을 위협하는 여성을 밟는 데 힘을 소진해, 강간당해 죽은 여성의 억울함을 밝히는 데 힘을 쏟을 여지가 없었다.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지금도 그런 시대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그 시대를 마음껏 욕하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무능하고 악랄한 이들을 욕하면서, 그 시대를 향유했던 이들을 욕하면서, 그 시대가 물려준 아픔과 상실과 치욕을 치유하려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 시대는 자칫 역사상 최악의 시대가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위기를 헤쳐나간다고 해도, 분명 이 시대는 '무능의 시대'로 남게 될 거다. 


'살인의 추억'은 여러 모로 잔인했다. 에먼 사람을 잡아 족치는 동안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고, 서로 잘났다 못났다 싸우는 동안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고, 화해한답시고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는 동안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한다. 이보다 잔인한 게 있나. 에먼 사람을 잡아 족치는 것 자체가 희생자를 유발하는 행위이기도 한 것을, 그런 추억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하지만 기억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억하고 되새기고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왜 자꾸만 더 어처구니 없고 황당무계한 일들이 벌어지고 마는 것일까. 어째서 잊지 않으려 하는 데에서 멈추고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일까.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 바뀌지 않는 것일까. 정녕 모든 걸 비우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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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무능, 미제 사건, 범인, 봉준호, 살인의 추억, 시대, 화성 연쇄 살인 사건,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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