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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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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년마다 나타나는 용의자... 누가, 어떻게, 왜? <문 섀도우> 2019.10.08
  •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한 남자의 근원을 찾아 <행복도시> 2019.07.26
  • 멀지 않은 미래, 22세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다 <22세기 세계>(4) 2016.02.08
  • <중국근현대사 5> 중국현대사를 다시 보며 중국의 미래를 말하다(5) 2015.05.14
  • <바람> 돌아가고 싶은 그때 그 학창시절(12) 2015.03.11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물 흘러 가듯 거스를 수 없는 것'에 순응하는 위대함(6) 2015.01.30

9년마다 나타나는 용의자... 누가, 어떻게, 왜? <문 섀도우>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10.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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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문 섀도우>


영화 <문 섀도우> 포스터. ⓒ넷플릭스



공포, 스릴러, SF 장르에 두각을 나타내며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어 이름을 알린 감독 짐 미클, 그는 20대 후반에 비교적 성공적인 장편 데뷔에 성공해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4편 작품 중 3편이나 개봉해 관객들에게 선보였을 정도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비록 개봉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만한 스코어였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최신작은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릭스로 선보였다. 오리지널이면 영화, 드라마를 불문하고 장르에 천착하는 넷플릭스의 성향과 맞아떨어진 것일까 생각해본다. 한편으론, 오히려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과 편집, 심지어 시각효과까지 도맡아 하는 짐 미클의 성향을 최대한 맞춰줄 수 있는 게 넷플릭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짐 미클 감독의 최신작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문 섀도우>가 선보였다. 역시 장르물로 SF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다. 영화 <더 프레데터>의 주인공 보이드 홀브룩이 주연으로 분하고, 두 베테랑 마이클 C. 홀과 보킴 우드바인이 옆을 받치며, 두 신인 여배우가 뒤를 받치는 모양새이다. 연기에 흠잡을 곳은 크게 없었지만, 역시 넷플릭스 장르 영화답게 흥미진진한 초중반과 다른 미지근한 후반부가 불만이겠다. 


9년마다 나타나는 절체불명 용의자


2024년 자연재난 상황은 아닌 듯 내전에 의한 혼란인 듯한 상황이 도시 거리에 펼쳐진다.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1988년 필라델피아, 어느 날 피아니스트와 버스 기사와 주방장이 동시다발적으로 눈과 입과 코와 귀에서 다량의 피를 쏟으며 죽어간다. 경관 로크는 형사 진급을 앞에 두고 열정적으로 수사하는 와중,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뇌수를 뿜으며 죽어갔다는 점과 목 뒤에 세 개의 자상이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누군가에 의해 알 수 없는 물질이 투여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로크는 결코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건이 터지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로크, 누군가에 의해 목 뒤에 세 개의 자상이 생긴 젊은 여성을 만난다. 그녀에게서 후드티를 입은 젊은 흑인 여성이라는 단서를 알아내지만, 그녀는 곧 죽고 만다. 경찰은 단서 하나로 후드티를 입은 젊은 흑인 여성들을 체포하는 한편, 로크는 용의자로 확인되는 자를 쫓는다. 용의자는 로크의 미래를 아는 듯한 얘기를 전하고, 결투 끝에 로크는 용의자를 죽인다. 같은 날 로크의 딸이 태어나고 아내는 죽는다. 


9년이 흐른 1997년, 형사 로크는 여전히 경찰 일을 하며 딸과 함께 살고 있다. 9년 전 용의자가 죽고 딸이 태어나고 아내가 죽은 그날이 다시 왔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9년 전 죽은 용의자가 다시 나타나 동일한 수법으로 사람들이 죽어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수사하는 와중, 어떤 박사가 나타나 이상한 말을 한다. 그의 연구가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달과 관련된 현상인데, 이번 경우엔 9년 간격으로 나타나며 그때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다리가 생긴다는 것. 즉, 미래에서 온 용의자가 특정한 날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처음엔 믿지 않았던 로크는 다시 만난 용의자의 말을 듣고 확신이 생겨 다음 9년 이후의 그날을 준비한다. 


무리 없는 모양새의 용두사미 영화


<문 섀도우>는 흥미로운 소재와 흥미진진한 전개와 거시적 개연성의 합에 이은 맥 빠지는 결말과 미시적 개연성의 불합이 특징인 영화이다. 용두사미라는 말이 딱 들어맞고, 유종의 미와는 하등 거리가 멀다 하겠다. 수많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들이 호평을 받으며 에미상과 골든 글러브에서 수상하고, 역시 많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이 유수 영화제들에 초청되어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대체적인 모양새는 큰 무리 없다. 특히 초중반엔, 일찍이 보지 못했던 연쇄 살인과 특유의 감각으로 뒤를 쫓는 경찰의 모습이 긴장감 조성에 최적화 되어 있는 듯한 배경음악과 함께 나름 긴장감 있게 보여지며 진행된다. 미스터리에 걸맞는 최소한의 복선을 곳곳에 배치하고, 스릴러에 걸맞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슬슬 SF에 걸맞는 스토리를 구성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볼 만한 영화를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9년씩 바뀌어 가는 로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런 류의 장르 특성상 뒷부분을 일정 부분이나마 밝히는 건 완벽한 스포일러가 될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를 즐기는 데 큰 영향을 끼치기에, 내용은 말하지 않고 그저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진 않다는 정도만 말하겠다. 물론 내용 자체보다 로크의 시선에 천착해 완전히 다르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그게 영화의 묘미라면 묘미이다.


무언가를 바뀌기 위해, 현재에서 과거로


현재에서 과거로 가 무언가를 바꾸고자 한다는 설정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가 현재의 위협이 아예 탄생하지 못하게 막는 게 목적이다. 그런가 하면, 만화 <드래곤볼>에서 중반부쯤 미래의 트랭크스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와 미래에 위협이 되는 싹을 아예 없애버리려 한다. 두 작품 모두 1980년대 중반에 나왔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시간만 과거, 현재, 미래로 오가며 과거를 바꾸면 현재와 미래가 바뀔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같은 차원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달라진 과거는 기존의 현재와 미래를 다르게 하지 못한다. 달라진 과거에 맞는 달라진 현재와 미래가 따로 존재한다.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 각각의 차원이 따로 존재한다. 


하여, <문 섀도우>는 더 확장하지 않고 이 정도에서 멈추고 마무리한 게 차라리 나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 싶다. 볼품은 없을지언정 불품 없는 게 오히려 방패막이가 되어 여타 문제점들을 막아준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주요 캐릭터에 천착할 수 있게 보다 판을 잘 깔아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전하면서, 한편으론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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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SF미스터리스릴러, 과거, 넷플릭스 오리지널, 문 섀도우, 미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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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한 남자의 근원을 찾아 <행복도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7.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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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행복도시>


영화 <행복도시> 포스터. ⓒ넷플릭스



대만 미래의 어느 날, 중년의 장둥링은 어딘가로 향한다. 사람들이 둘러싼 가운데 두 중년 남녀가 자못 야하게 춤을 추고 있다. 장은 그중 남자에게 다가가 얼굴에 주먹을 지른다. 상대 여자는 다름 아닌 아내 위팡이다. 장은 쫓겨나 환락가로 향한다. 그곳에서 몰래 권충을 구입한다. 이제 복수의 시간이다. 현재 아내와 붙어 먹은 놈, 과거 아내와 붙어 먹은 놈을 제거하고자 한다. 아내는? 


한편, 장은 딸아이도 만난다. 그녀는 버젓이 좋은 회사를 다니고, 결혼할 남자친구도 있으며, 가망없는 이 나라를 떠나려 한다. 특별할 것 없는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는 그들, 영영 헤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장은 환락가에서 젊은 유럽 여성도 만난다. 그녀가 그의 젊었을 적 아내 아닌 사랑했던 이와 닮았기 때문이다. 장은 그녀에게서 성을 사려는 대신 추억을 사려 하지만, 그녀는 장을 미친놈 취급할 뿐이다. 


영화는 미래에서 현재,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장둥링의 한때로,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20대 형사 장둥링과 고아로 커서 아무것도 없이 좀도둑으로 커가고 있는 10대 소년 장둥링의 이야기이다. 미래, 중년의 장둥링이 왜 극단적인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 근원을 알게 된다. 슬픈 이야기와 슬픈 근원이다. 


복수를 감행한 한 남자의 근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행복도시>는 극단적인 복수를 감행한 한 남자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이다. 현재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니라, 미래에서 시작해 현재를 거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법을 택했다. 이미 실험적인 색채가 살짝 엿보인다. 그것도 모자라 감독은 세 가지 이야기에 다른 색채와 분위기와 장르를 입혔다. 이쯤 되면 매우 실험적이라 할 만하다. 


덕분에 우린 <행복도시>라는 하나의 영화에서 완연히 다른 세 가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이 독립적으로 봐도 이상할 것 없는 세 이야기를 이어주는 얇은 듯 굵은 끈은 장둥링으로, 따로 또 같이 생각하고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게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감이지만 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공을 들였다고 생각되는 건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었을 것이다. 


우린 이 영화 내내 장둥링을 만나고, 장둥링을 만나며, 장둥링을 만난다. 한 개인에게 천착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장둥링이라는 한 개인은 환경에 휘둘리는 가엾은 존재일 뿐이다. 이렇게 휩쓸리고 저렇게 휩쓸리는 우연의 길을 지나, 결국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는 필연 말이다. 운명 앞에서 한낱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꾸역꾸역 살아오게 한 순간의 기억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영화 포스터 중 하나가 눈에 띈다. 지난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라랜드>를 꺾고(?) 작품상을 타는 파란을 일으켰던 <문라이트>가 생각나게 하기 때문인데, 장둥링의 세 시절 얼굴을 삼단으로 나눠 배치했다. 제목처럼 달빛을 형상화시킨 듯 아름다운 <문라이트> 포스터와 대비되어, <행복도시> 포스터는 제목과는 달리 행복과는 거리가 먼 장둥링의 인생을 형상화시킨 듯하다. 


장둥링 인생을 규정짓다시피 한 세 시절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을지 모르지만, 그때그때 만난 세 여자(딸, 여자친구, 엄마)와 보낸 찰나의 순간은 행복했을 것이다. 비록 그들과 장둥링의 관계가 일반적이고 정상적이고 보편적이진 않고 그 관계에 슬프고 아픈 근원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장둥링은 순간의 기억으로 꾸역꾸역 살아왔던 게 아닐까. 


우리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순간의 행복하고 슬프고 아픈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 뿌옇게 채색되어 아련해진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과거를 살아가는 게 아닌가. 현재에서도 과거를, 미래에서도 과거를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한 '기억'일지는 모르나 '행복'한 기억일 수는 없다. 꾸역꾸역 살아왔을지는 모르지만 꾸역꾸역 살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처연하고 신산한 여운


영화를 보면, 장둥링 삶이 불행해지는 과정과 모습 그리고 사회 자체가 불행해지는 것 같은 모습이 양면적으로 공감을 산다. 개인의 삶이 하나의 모습만 띄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장둥링의 면면에서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이지만, 나를 이루고 나와 함께 하는 시공간과 차원은 하나가 아니지 않은가. 


사회는 기술적으로 진보하기에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이 영화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미래의 장둥링은 분명 첨단기술 세상에 살고 있지만, 과거와 현재의 장둥링과는 비교할 바 없이 불행해 보인다.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를 보며 우리는 기술 진보가 더 좋은 세상을 담보하기는커녕 더 나쁜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지 않는가. 


처연하고 신산하기까지 한 영화 <행복도시>, 미래에서 시작해 현재를 거슬러 과거까지 올라가면 가슴 한 편이 저릿저릿하다. 영화의 막이 오르고 나서도 한참 동안 여운에 시달린다. 대다수 여운을 구성하는 아련과는 거리가 먼, 느껴보기 힘든 '맛'이다. 더불어 초반의 불칠전함은 꽤 거부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감당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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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기억,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래, 복수, 여운, 행복도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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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 않은 미래, 22세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다 <22세기 세계>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6. 2.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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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2세기 세계>



<22세기 세계> 표지 ⓒ황소걸음


디스토피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그린 유토피아의 반대말이다. 부정의 극치, 암울하기 그지 없는 세계를 그린다. 그 미래 세계는 현실의 연장선 상에 있기에, 현실의 비판적 투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최악의 부정은 피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게 더 유용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미래를 보다 제대로 들여다보고 논의하기 위해서는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모두가 필요하다. 누구나 디스토피아 세계를 최대한 피해서 유토피아 세계를 원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피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디스토피아만 논의한다면, 최악은 면할지 몰라도 차악은 면하지 못할 상황이 올지 모른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그때 당시의 세계를 기준으로, 지금은 디스토피아인가 유토피아인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 같은 면모를 상당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고, 여성해방을 이룩했다. 지금에 와서 당연한 것들이지만, 세상을 뒤흔든 혁명을 거쳐 이룩한 것들이다. 


멀지 않은 미래, 22세기를 말하다


<22세기 세계>(황소걸음)은 22세기의 멀지 않은 미래 사회를 자유롭게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며 혼란상과 이상향 등을 자유로운 어조와 논조로 상상력과 낙천주의를 발휘해서 쓴 여덟 작품의 모음집이다. 이 작품들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예상해본 미래의 모습을 묘사한 것과 2112년에 쓰인 글이라는 가정 하에 그 시점에서 현재 진행되는 변화를 본 것이다. 전자도 흥미롭지만, 후자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미래에서 본 현재를 현재 사람이 상상력으로 쓴 것인데, 당연히 현실에 다분히 기반을 두고 있을 듯하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연구보다 창작에 가깝기 때문에, 그 기발함과 톡톡 튀는 게 아주 재밌게 다가올 수 있다. 상상력의 깊이가 생각지도 못하게 아주 깊어서, 그저 따라가기만 해도 눈에 떠지는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수도, 눈에 아예 안 들어올 수도 있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현실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생각해보지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면 흥미를 잃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22세기 세계>의 작품들은 절반 정도의 성공을 거둔 것 같다. 너무 멀리 가버린 작품들이 몇몇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 눈을 뜨게 해준 작품이 몇몇 있었는데 소득 격차 상한선, 제비뽑기 선거, 결혼제도 폐지가 실현된 미래를 그린 작품이 그것이다. 일단 소재만 들어도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겠으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찬성을 하느냐 반대를 하느냐 거북함을 느꼈느냐 하는 건 이차적인 문제이고, 먼저 알기 쉬워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현실에 기반한 미래의 이상향들


'소득 격차 상한선이 정해졌을 때'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말한다. 2008~2015년에 불거진 다양한 위기가 정의의 기준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고 말이다. 그로 인해 결국 불평등의 골을 깊게 만드는 주요소이자 지구적 원인이 되어버린 민간 금융 분야가 국유화되어 완전 통제되었다고. 그리고 소득 상한제는 과거에도 존재했다며, 불평등 심화가 극심한 경제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판명 났을 때 소득 격차 상한선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소득 격차 상한선이 정해져 여러 통계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현저히 개선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모습이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그리고 가치가 있는 방법이다. 


'제비뽑기 혁명'이라는 작품은 선거를 제비뽑기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비뽑기 방식은 정치에 몸담은 이들, 정치란 타인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자기들의 영역이라 간주하던 이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다. 또한 그렇게 해서 뽑힌 이들이 이룩한 제도는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했고, 민주적 토론의 질을 높였으며, 정치계의 자기 폐쇄적 구조를 개선할 수 있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 나온 책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에서 저자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는 대의제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제비뽑기 방식을 도입하는 게 대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왜 결혼 제도를 폐지했나'라는 작품은 결혼 제도를 폐지하고 가족을 없앤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이유로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삶의 방식은 본질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결혼 제도가 존속하는 한 두 사람 간의 불평등이라는 숙명을 깨부술 수 없다는 것. 여기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건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분류이다. 이 작품에서 결혼 제도를 폐지한다는 건 곧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분류를 폐지한다는 걸 의미한다. 여기서 그리는 이상향은, 성별이 개인을 정의하는 데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이다. 차후 1세기 안에 실현 가능할까? 아마 여기에서 그려낸 이상향 중에 제일 오랜 뒤에 실현될, 혹은 실현되지 못할 세계가 아닌가 싶다. 


미래를 그리는 일은 필수이며 중요한 작업이다


"이 책은 현재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하여 현재의 확신을 버리고 이를 확실히 깨버리면서 미래를 상상한다." (본문 6쪽)


미래는 멀지만 우리가 가야 할 그 어디, 언제이다. 그래서 멀지 않다. 멀다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순간, 이미 그곳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세계가 바뀌는 건 한순간이지 않은가? 변화하는 시간의 폭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지금이다. 과거 수백 년, 수십 년의 변화가 지금은 수 년, 수십 일로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미래를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건 자유라고 했지만, 이제는 필수다. 


1세기 후의 멀지 않는 미래를 그리는 것, 현실을 바탕으로 최대한의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그리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특히, 어느새 '세상 참 좋아졌어'보다 '참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네'가 더 맹위를 떨치는 비관주의 세계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분명 이 시대는 과거에서 볼 때 이상향적인 측면이 있겠지만, 사실 그 이상향의 모습을 이룩한 건 예전이 아닌가. 현재 우리가 이룩하는 것들은 상당 부분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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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22세기 세계, 결혼제도 폐지, 디스토피아, 미래, 소득격차 상한선, 유토피아, 이상향, 제비뽑기 선거
  • BlogIcon 조아하자
    2016.02.08 15:29 신고

    벌써 22세기라... 까마득하네요 ㅡㅡ;

    • BlogIcon singenv
      2016.02.16 08:09 신고

      먼듯 멀지 않았죠~

  • BlogIcon 空空(공공)
    2016.02.09 10:15 신고

    미래를 생각하는것은 항상 가슴이 설레는 일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6.02.16 08:10 신고

      맞는 말씀이세요^^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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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현대사 5> 중국현대사를 다시 보며 중국의 미래를 말하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5. 5.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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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근현대사 5>



<중국근현대사 5> 표지 ⓒ삼천리



2007년에 발발한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극심한 타격을 받고 침몰하는 사이에 중국식 자본주의가 급부상했다. '팍스 로마나'를 빗댄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팍스 시니카'까지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중국은 세계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인데, 자본주의라니. 


그래서 그들이 택한 게 바로 정치와 경제의 모순이다. 정치로는 과거 마오쩌둥 시대에 보여줬을 만한 강력한 통제 강화를, 경제로는 과거 어느 시대에서도 보여준 적이 없던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시행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이 보여주려는 새 시대를 이끌 중국식 자본주의, 즉 중국 모델이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듯이 정치와 경제의 완벽한 모순이다. 


이 모순이 커져 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에 상응하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줄 지을 것도 자명하다. 한편으로 당분간은 중국이 세계 경제의 키를 주고 있을 것이다. 현 시대에서 경제의 키를 주고 있다는 건 국력의 크기도 자연스레 상승한다는 얘기다. 즉, 중국은 초강대국의 위치에 다다랐고 앞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한편 과거 200여 년 동안 빼앗겼던 세계 초강대국로서의 위치에 대한 피해자 의식이 여전하다. 중국을 의식한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러시아와의 사이를 진전 시키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중국의 꿈'을 외친 시진핑의 취임연설은 특별했다. 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중국의 꿈이라고 했다. 일면 중국의 꿈이 실현되어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중국의 현대사를 살피며 미래를 말하다


이처럼 중국은 그야말로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정치와 경제의 상반된 행보는 둘째 치고, 모든 국가적 행보에서 이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감정적이다.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 행방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역사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중국의 근현대사를 말이다. 1949년 중국의 건설 후 60년이 넘게 일관된 정치 체제를 유지해온 만큼, 그 역사를 살펴보는 게 그 미래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현대사에서 1978년 제11기3중전회를 시대를 나누는 분기점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때를 기점으로 해서 덩샤오핑에 의해 중국에 '개혁개방'이 시작되었고 '개혁개방'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중국 개발주의 시대의 최고 최강의 구호이다. 그런데 <중국근현대사 5>(삼천리)의 저자 다카하라 아키오와 마에다 히로코는 그때가 아닌 1972년을 기점으로 보고 있다. 


1972년이면 아직 마오쩌둥이 집권할 당시로 '문화대혁명'이 한창일 때인데? 어찌 그때가 시대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개혁개방이라는 말 자체가 1980년대 후반에야 정착된 개념이라고 말하며, 1978년 제11기3중전회를 시대를 나누는 분기점이라고 말하는 건 정확한 역사 인식이 결여된 설법이라고 주장한다. 나중에 승리한 자들이 만들어 낸 스토리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1972년인가? 저자는 마오쩌둥도 경제를 중시했다고 말하며, 그의 지시로 1971년에 임금을 인상하고 1972년에는 대규모 플랜트 도입을 실시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플랜트는 생산 설비 혹은 제조 설비 일체를 말하는 것인데, 문화대혁명이 한창인 시절에 이미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외교정책에도 전환이 있었는데, 1971년에 키신저 미국 대통령 보좌관이 중국을 방문했고, 같은 해에 중국은 유엔에서 대표권을 획득했다. 이어 1972년에는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고, 중국은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야말로 경제와 외교에서 전에 없는 '전환'을 선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오쩌둥 이후의 중국현대사


이후 저자들이 말하는 중국현대사는 일반적인 통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한 덩샤오핑을 부활시킨 마오쩌둥, 이어지는 4인방의 저우언라이에 대한 맹렬한 비판, 그리고 4인방에 의해 3번째 실각하는 덩샤오핑, 마오쩌둥의 죽음과 4인방 체포. 그리고 다시 부활한 덩샤오핑. 이렇게 중국현대사의 1세대가 마감한다. 


그리고 열린 덩샤오핑에 의한 중국현대사 2세대 시대. 덩샤오핑은 이후 3세대까지, 즉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덩샤오핑을 말하는 수식어는 상당히 많은 데, 정치적으로는 세 번 실각하고 세 번 부활했다고 하여 '오뚝이'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이다. 그야말로 중국현대사는 그가 열어 젖힌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덩샤오핑을 그렇게만 그리지 않는다. 그가 경제적으로 개혁개방을 어떻게든 견지한 건 맞지만, 정치적으로는 마오쩌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건이 그 유명한 '천안문 사건'이다. 


1989년 4월, 한때 덩샤오핑의 후계자였던 후야오방의 타계를 계기로 학생들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도 활동을 했고 이 움직임이 점차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을 발전했다. 이에 당은 이 활동을 반당·반사회주의 폭동이라고 단정했고 학생들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졌다. 당에서도 온화한 해결과 강경한 탄압의 의견으로 나뉘었는데, 결국 강경론자의 승리로 천안문 광장에 대한 계엄령이 발표된다. 계엄군과 시민·학생들이 충돌한 결과 엄청난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왔다. 이 사건으로 또 다른 덩샤오핑의 후계자인 자오쯔양이 실각한다. 그리고 정치개혁은 정지된다. 


정치개혁이 정지한 상태에서 경제개혁에 더욱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된다. 이 상황에서 덩샤오핑이 택한 수는 그 유명한 '남방담화'. 1992년 초 덩샤오핑은 상하이, 우한 등이 있는 광둥 성 경제특구를 시찰하며 지방 간부들에게 더욱 대담하게 개혁개방을 가속화할 것을 강력히 호소한다. 중앙에서 먹히지 않으니 지방에서 목소리를 키워 중앙으로 가려는 생각이었고, 결과적으로 성공한다. 


그리고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선택된 장쩌민. 그는 큰 탈 없이 적절한 균형을 지키며 국정을 이끈다. 즉, 덩샤오핑의 영향을 그대로 흡수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주룽지 총리 역시 덩샤오핑의 말을 받들어 철저하게 경제개혁을 실시했다. 


완연한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중국, 그리고 미래


완연한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위치에 다가가게 된 2002~2012년 후진타오·원자바오 시대. 이 시대는 분명 후진타오가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그가 완전한 중앙은 아니었다. 장쩌민이 완전히 은퇴하지 않고 일부분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명 장쩌민계가 정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치열한 권력투쟁이 있을 법 했지만 교묘히 적절한 균형을 이루었다. 


이 시대는 이른바 '조화로운 사회'를 천명하며 균형적인 발전에 유념했다. 그럼에도 가속화되는 성장에 따라 소득 불균형 또한 가속화되었다. 이 사회 모순은 중국이 짊어져야 할 숙명처럼 된 인상이다. 정치개혁 없이 성장이 가속화될수록 모순 또한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지나 시진핑 시대가 도래했다. 시진핑 정권은 가속화되는 사회 모순을 완전히 무시하기라도 한 듯, 전에 없는 정치 규제와 경제 완화를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의 세계 초강대국으로의 진입은 기정사실화되었다. 포브스가 발표한 2015년 세계 기업 순위에서 1~4위를 중국의 4개 은행(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농업은행, 중국은행)이 싹쓸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말 무서울 정도이다. 


하지만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언젠가 반드시 내려올 터인데, 지금 상태로 중국이 경제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다면 이후의 상황이 어찌 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인터넷 시대니 만큼, 과거 덩샤오핑처럼 혼자의 힘으로 정국의 방향을 꺾는 시대는 지났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시진핑은 그런 그릇으로 보이진 않는다. 과도기의 인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 시대를 이끌 인물이 필요한 법. 다음 시대에는 어떤 인물이 나올지 궁금하고 한편 걱정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 사정을 보니 이웃 나라일지라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혁명 원로의 자손이라는 후광을 등에 업고 보수주의·국수주의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진핑이라면, 자신의 후계자 역시 비슷한 삶과 생각을 가진 이로 들려고 할 텐데 말이다. 포스트 시진핑 시대에 중국현대사를 결정할 또 다른 큰 분기점이 도래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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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강대국, 개혁개방, 경제, 덩샤오핑, 마오쩌둥, 미래, 시진핑, 역사, 원자바오, 장쩌민, 정치, 중국근현대사, 천안문 사건, 후진타오
  • BlogIcon 조아하자
    2015.05.14 22:16 신고

    사실 주변국이 잘나가는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죠. 아프리카가 가난한 이유 중에 하나로 주변국들도 하나같이 더 못산다는 영향도 있으니까요. 우스갯소리로 일본이 부적절한 일을 벌일 때마다 일본침몰에 대해서 쉽게 말하지만 사실 일본의 상황이 안좋아지면 우리나라에 득보다 손실이 많은것처럼요...

    • BlogIcon singenv
      2015.05.17 15:29 신고

      이웃나라에 대한 생각은 항상 모순적인 것 같아요!

  • BlogIcon 늙은도령
    2015.05.15 16:38 신고

    전 세계 어느 나라도 13억5천만 명을 통치해본 적이 없습니다.
    중국은 또한 빈부격차가 너무 큽니다.
    급속한 발전을 추구했기 때문에 그 후유증이 수백 년에 이를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중국은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시진핑도 이것을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패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개발후유증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내수경제를 강화해 빈부격차를 줄이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헌데 미국이나 중국처럼 큰 나라들이 줄어야 세상은 편해질 것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5.17 15:30 신고

      네, 시진핑이 그걸 잘 알고 있어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만큼 정치적으로는 더욱더 보수화 되어 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요~

  • dssdfds
    2015.06.08 11:49

    다른나라걱정말고 한국이나잘하자 한국역사도 일베로배우는애들이 판치는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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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돌아가고 싶은 그때 그 학창시절

오래된 리뷰 2015. 3.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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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바람>



영화 <바람> ⓒfilm the days



20대 중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에 대한 불만이 겹쳐 우울증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누구의 위로도 그 모든 감정들을 추스를 수는 없었다. 단지 현재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미래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니 과거로 도망치게 되었던 것 같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이 갑갑하고 불편한 현실에서 도망쳐 과거로 천착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지금은 20대 중반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당시에는 어떤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몇몇 시절들을 꼽아본다. 대학교 2학년 군대 가기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학교 3학년 때, 초등학교 6학년 때, 유치원 때. 그리고 우울증을 느꼈던 20대 중반의 그때. 이들 시절에는 어김없이 내 옆에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들 또한 이 당시의 친구들이다.

 

지금 내 옆에는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친구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힘들어 한다. 그 친구 덕분에 지금의 이 어려움들을 견디고 있지만 가끔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지금 또한 미래의 나에겐 돌아가고 싶은 과거라는 걸.

 

돌아가고 싶은 그때 그 시절


영화 <바람>은 한 남자의 돌아가고 싶은 과거인 고등학교 시절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가 원했던 고등학교 시절은 누구보다 폼 나는 시절이었다. 과연 그는 그 ‘바람’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모티브는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 쓰레기 역 ‘정우’의 실제 이야기이다. 자연스레 영화 <바람>의 주인공은 배우 정우가 맡았다.



영화 <바람>의 한 장면. 돌아가고 싶은 그때 그 시절. ⓒfilm the days


 

짱구(정우 분)는 엄한 집안의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폼 나는 학창시절을 보내게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럼 ‘바람’이 통했는지 집안에서 유일하게 명문고가 아닌 골칫덩이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부산 바닥에서 폭력 학교로 유명한 광춘상고에 진학하게 된 짱구는, 불법폭력써클 ‘몬스터’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 무리들과 함께 하게 된다면, 편한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그토록 바라던 폼 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짱구처럼 폼 나는 바람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를 회고해보면 분명히 짱구의 바람과 똑같은 바람이 존재했었다. 주위에 남학생들만이 존재하는 남고에서, 편안한 학교생활을 넘어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싸움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폼 잡으면서 학교를 활보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짱구의 바람은 곧 나의 바람이기도 했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학창시절


하지만 짱구는 신학기 조회 시간에 거행되는 몬스터의 후임 물색 작업에서 ‘간택’되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카리스마를 내뿜으려 해봤지만 타고난 폼이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짱구.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소위 잘 나가고 싸움 잘했던 형이 같은 학교에 있었기에, 학교생활은 편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가 엉겁결에 몬스터와 다른 불법폭력써클 간의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짱구를 비롯한 친구들은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고, 이로 인해 몬스터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학교 ‘일진’이 된 짱구. 아무리 봐도 순박하고 착한 짱구인데, 엄연히 폭력써클의 일원이 되었기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 부적절한 합이 얼마나 웃음을 자아내는지.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이 난다.



영화 <바람>.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학창시절. ⓒfilm the days


 

1997년 데뷔한 ‘젝스키스’의 노래 중에 <폼생폼사>라는 노래가 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사나이라면 사랑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인데, 이는 당시 고등학생 사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사랑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허세’와 ‘폼’을 중요시했던 학창 시절을 대변하는 노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를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이, 당시(1997년 당시가 아닌 모든 이들의 학창시절)에는 허세와 폼이 하나의 문화였고 모든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도 그것만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 <바람>은 그런 바람을 한 치의 ‘오버’나 ‘부족함’없이 보여주기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잘 나가던 짱구. 무서웠던 선배들이 졸업하고 자신이 직접 조회 시간에 후임을 물색하는 위치가 되었다. 세월 참 빠르고 ‘찌질했던’ 옛날이 생각나게 만든다. 그런데 진짜 옛날이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긴급 전화. 당장에 집으로 뛰어간다. 그 뒤를 급하게 뒤쫓는 친구들. 곧 아버지가 간경화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건강에 치명상을 입은 아버지. 시무룩해지고 아버지 눈치를 보느라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짱구. 하지만 아버지가 당장의 급한 상황을 넘기게 되자 짱구는 다시금 돌아가게 된다.

 

나의 진짜 '바람'은 소중한 가족


사람은 정작 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일이 닥쳤을 때의 슬픔과 두려움과 밀려드는 후회를. 짱구도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어릴 때 자신을 ‘짱구 박사’라고 부르곤 했던 아버지의 아빠 미소와 다정한 모습을 잊어먹고 있었다. 그렇게 따랐던 아빠였는데. 지금은 왜 그리도 싫은지. 왜 그리도 불편한지.

 

결국 짱구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만다. 그리고 짱구의 학창시절도 끝나고 만다. 허세와 폼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했던 그 학창시절이 말이다.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씁쓸한 기억 뿐. 단, 소중한 친구들과 소중한 가족들이 남았다.

 

학창시절 짱구의 ‘바람’은 폼 나는 폭력써클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폼은 허세의 다른 말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허세도 폼으로 읽혔지만 말이다. 반면 짱구에게 가족은 폼의 반대말이었다. 엄격한 집안에서 유일하게 공부 못하고 촐싹거리기만 하는 막내아들인 짱구가 폼 날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빨리 독립하고 싶고 여차하면 가출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학교생활에서라도 폼 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짱구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곧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슬픈 매개체였다.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였지만, 또 영화로써도 거의 필수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감독이 원래 짰던 시나리오를 던져버리고 완전히 다시 썼다는 것도 수긍이 간다. 그 정도로 학창시절의 ‘바람’은 그 무엇으로도 쉽게 떨쳐낼 수 없던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짱구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버지에 대한 꿈을 꾸며 꿈속에서 말하는 장면이 생생하다.



영화 <바람>의 한 장면. 나의 진짜 '바람'은 소중한 가족. ⓒfilm the days



“아빠...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못했다. 아빠... 아빠... 사랑한다.”

 

그때 그 시절, 참 힘들었다. 매일같이 하루에 10시간을 넘게 공부에 매진하고, 그러면서도 양육강식의 남자들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발버둥치고, 점점 멀어져 가는 가족들과의 관계에 괴로워하고, 어김없이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고 현재에 대해 불만에 차 있었다. 과연 지금 그때 그 시절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바람’을 갖고서 살아가게 될까. 영화는 그 정답이 ‘가족’이라고 말한다. 반면 나는 대학교 때까지는 ‘공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으로 바뀐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그 바람은 더욱 더 확고해질 것 같다. 가족(지금의 가족, 앞으로의 가족)만큼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아껴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이는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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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가족, 고등학교, 과거, 미래, 바람, 아버지, 응답하라 1994, 정우, 친구, 폭력써클, 학창시절
  • BlogIcon 空空(공공)
    2015.03.11 09:00 신고

    정말 누가 뭐라 해도 가족입니다
    죽을때까지 곁에 있어 주는것은 가족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3.13 08:48 신고

      가족, 아무리 강조해도 중요하고 설령 떨쳐내려 해도 그럴 수 없죠.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구요. 천륜이라고.

  • BlogIcon -_________-0
    2015.03.11 09:52 신고

    친구도 소중하지만... 가족이 더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가족을 더욱 소중히 해야하죠... '바람'이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정우 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된 영화였는데..^^ 다음에 또 놀러올께요..^^

    • BlogIcon singenv
      2015.03.13 08:49 신고

      우연치 않게 접한 영화인데, 이후 몇 번 더 보고 잊히지 않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5.03.12 00:29 신고

    영화평 잘 읽었어요~
    친구는 내가 선택하는 가족이래요.. 자신이 선택한 가족도 많이 만드는 해 되세요!

    • BlogIcon singenv
      2015.03.13 08:50 신고

      개인적으로 친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ㅠ 평생 갈 친구들은 있지만요^^

  • BlogIcon 똔뚜!
    2015.03.12 21:21 신고

    바람 얼마전에 다운받아서 봤는데 정말재밌어요
    응답하라에서 정우에 빠져서 보게됬는데 재밌게봤어요

    • BlogIcon singenv
      2015.03.13 08:51 신고

      응답하라가 나오기 한참 전에 개봉된 영화인데, 역추적으로 조명을 얻은 영화인 것 같아요~

  • BlogIcon 언젠간날고말거야
    2015.03.12 21:30 신고

    정우의 울음 장면에서 참기 참 힘들었어요...

    • BlogIcon singenv
      2015.03.13 08:52 신고

      아,,, 그 장면, 생각납니다. 이 영화 보고 정말 많이 웃었는데, 이 장면 보고 단번에 눈물이 나더군요ㅠ

  • 기워니
    2015.03.17 09:17

    한번도 흥행한 적이 없는데 안 본 사람이 없는 영화 ㅋㅋㅋ
    다들 이 영화를 통해 정우를 좋아하게 되었죠

    • BlogIcon singenv
      2015.03.22 16:43 신고

      그러게요 ㅋㅋ 신기한 영화인듯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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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물 흘러 가듯 거스를 수 없는 것'에 순응하는 위대함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5. 1.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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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포스터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여배우는 어디서든 특별한 존재이다. 특별하게 취급을 받는다. 자신도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들이 그녀를 우러러본다. 젊음과 아름다움의 특권을 가장 완벽하게 소화할 줄 안다. 남자 배우를 '남배우'라고 칭하지 않지만, 여자 배우는 '여배우'라고 칭하지 않는가? 


젊고 예쁜 여배우에게 주연은 당연한 거다. 그녀에게 조연을 맡긴다는 건 한 물 갔다는 증표이다. 한 물 갔다는 건 나이가 들어서 아름다움이 퇴색되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자면, 지금 엄마, 시어머니, 할머니, 옆집 아줌마, 보모 등의 조연급으로 자주 얼굴을 비추는 중년 여배우 대부분이 소싯적에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단지 나이에 밀려서 미모에 밀려서 스포트라이트를 넘긴 것이다. 


사실 수많은 주연 여배우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은퇴의 길에 접어든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고 키우고 살림을 해야 하니 반강제적인 측면이 있다. 이런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기본적 무기로 세상을 쥐락펴락 했던 이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자신에게만 비춰오던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젊고 아름다운 이로 넘어가는 걸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말이다. 


특별한 존재, 여배우에 대한 이야기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특별한 존재인 여배우에 대한 이야기다. 한때 세상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최고의 여배우, 젊음과 아름다움과 연기력까지 두루 갖춘 완벽한 여배우가 자신과의 격렬하고 치열하지만 조용하고 고요한 싸움 끝에 스포트라이트를 넘겨주게 되는 이야기다. 젊음과 늙음, 과거와 미래, 주연과 조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흘러가는 구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물처럼 거스를 수 없는 세계의 법칙에 순응하는 이야기이다. 그 순응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진정 아름답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한 장면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에서 동성의 상사 '헬레나'를 유혹하고 나서 그녀를 이용해 권력을 획득한 다음 무참히 차버림으로써 그녀를 자살로 몰고 가는 '시그리드' 역으로 데뷔해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던 대배우 마리아 엔더스(줄리엣 비노쉬 분)는 비서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 분)과 함께 한 시상식에서 <말로야 스네이크>의 감독의 대리 수상을 하러 간다. 가는 도중 감독의 부고 소식을 받고 만다. 


그런 그녀에게 하필이면 <말로야 스네이크>의 리메이크를 제안해 오는 젊고 유능한 감독이 있다. 그 감독은 과거 '시그리드' 역을 했던 마리아에게 '헬레나' 역을 맡기려 한다. 마리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제안이 아닌가. 아무리 20년이 지나 자신이 나이가 상당히 먹었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비참하거니와 조연급의 역을 맡길 수 있는가? 더욱이 자신은 평생 '시그리드'로 살아 왔다. 


하지만 감독의 '헬레나와 시그리드는 결국 같은 인물이에요.'라는 주장과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준 <말로야 스네이크>의 리메이크작이라는 점 등 때문에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비서 발렌틴이 옆에서 계속 부추기지 않는가? 그렇게 그녀들은 스위스 실스마리아로 가서 대본 연습을 한다. 


대배우 '줄리엣 비노쉬', 영화에 완벽히 녹아들다


마리아 엔더스 역을 맡은 '줄리엣 비노쉬'는 실제로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와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모두 휩쓴 최초의 여배우이다. 거기에 흥행력 있는 작품까지 출연했던,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역사상 가장 완벽한 여배우 중의 한 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영화 <고질라>에 '조연' 급으로 출연하기도 할 정도로 그 명성에 걸맞지 않은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내력이 있는 여배우이니 만큼 이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 완벽히 녹아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좋은 연기를 위해서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관찰과 이해에서 출발해 설명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것이니 그 내공이 얼마나 하겠는가? 그렇지만 당사자야말로 현실과 연기에서 엄청난 혼선을 느꼈을 것이기에 연기 하는 내내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한 장면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영화의 2부는 거의 마리아와 비서 발렌틴의 대본 연습이 주를 이룬다. 집에서도 길을 가다가도 산을 타면서도 대본 연습을 하는 그들. 그런데 마리아는 현실과 연기의 구분이 잘 되지 않는지, 발렌틴에게 그 고통들을 고스란히 내비친다. 일종의 히스테리라고 할까. 그 히스테리의 대부분은 평생을 '시그리드'로 살아온 자신이 '헬레나' 역을 맡게 되는 데에서 오는 괴리감, 상실감, 부러움, 질투심, 우월감 등의 복합적 감정의 발로이다. 


더욱이 리메이크작에서 '시그리드'를 맡게 될 여배우는 조앤(클레이 모레츠 분)이라는 가장 인기 많고 가장 핫하고 가장 문제가 많은 여배우란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이런 질 떨어지는 아이와 한 배를 타야 하다니? 이런 하찮은 아이에게 밀려 늙고 추한 역을 맡아야 하다니? 이렇게 연기도 못하고 얼굴만 앞세우는 아이가 나에게 비추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 갈 거라니? 안 그래도 '헬레나' 역은 너무 힘들고 벅차기만 한데 말이다. 괜히 한다고 했나? 이제라도 무를 순 없을까? 이 연극을 해낼 수 있을까?


한편 비서 발렌틴은 모든 것을 다 이룬 대배우 마리아가 부러운 듯하다. 자신은 열정은 앞서지만 하찮고 가진 것 없고 실력은 모자라는 일개 비서일 뿐이다. 인생은 미완성이고 까칠한 여배우 아래에서 온갖 수발을 다 들어주고 있을 뿐이다. 답답하고 불안하다. 참을 수가 없다. 훨훨 날아가고 싶다. 나만의 길을 찾고 싶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물 흘러 가듯 거스를 수 없는 것'에 순응하는 위대함


영화 제목인 <실스마리아의 구름>은 영화 속 연극 제목인 <말로야 스네이크>와 한 쌍을 이룬다. 뱀 형상의 구름이 실스마리아 호수를 뒤덮는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모든 걸 뒤덮어버리는 구름으로 인해 사라져버리는 산과 호수. 당연한 듯 찾아오는 구름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그 사라져버리는 모든 것을 바라보며 마리아는 무엇을 느꼈을까. 과거는 흘러 미래가 된다. 젊음은 늙음이 된다. 주연의 자리에 있는 이는, 조연의 자리로 옮겨간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추함이 되는가? 


끝없이 젊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여배우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실상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이 자신 인생의 주연인 듯 울음 대신 웃음을, 두려움 대신 자신감 있는 모습을, 쓸쓸함 대신 화려하게 꾸민 모습을 내보이며 자신을 추스리고 있다. 하지만 내면은 울음과 두려움과 쓸쓸함으로 가득하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한 장면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마리아는 영화 말미에서 큰일을 해낸다. 자신에게 들어온 '시간을 초월하는' 젊은 역할을 마다하고 후배 조앤을 추천하는 것이다. 후배 조앤에게 현실적이지만 쓰디쓴 말을 듣고 난 직후였다. 그녀의 모습에서 늦은 나이에도 한 단계 성장하는 삶, 과거를 내려놓고 미래에 바통을 넘기는 '물 흘러 가듯 거스를 수 없는 것'에 순응하는 위대한 생각의 전환이자 회귀가 엿보인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참으로 아름답다. 실제 스위스 실스마리아의 황홀한 풍경을 한 점 한 점 잡아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몽환적 지역이 영화의 주제와 완벽히 맞아 떨어진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고민할 때, 나조차 나를 통제하지 못해 힘들어 할 때, 내려놓지 못해 괴로울 때면 이 영화가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스위스 실스마리아로 가서 힐링의 시간을 갖고 싶어질 것 같다. 그렇지만 깨닫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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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과거, 늙음, 미래, 여배우, 젊음,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현재
  • BlogIcon 늙은도령
    2015.01.30 16:18 신고

    줄리엣 비노쉬를 처음 본 게 아마도 '프라하의 봄'인 것 같습니다.
    그때 참 특별한 매력을 지닌 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가능하면 다 봤지요.
    여러 가지 캐릭터를 소화내며 세계적인 배우로 커가는 것도 지켜봤고요.
    이 영화도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아티스트'와 비교할 수 있었고요.
    요즘은 지는 꽃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지만 참 독특한 대배우입니다.
    왠지 모를 우수를 담은 표정은 압권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2.01 18:43 신고

      저는 이 배우를 제대로 본 게 이 영화가 처음이네요ㅎㅎ;; <퐁네프의 연인들>이나 <잉글리쉬 페이션트>도 오가다 봤을 뿐이라서요~ 한 번 챙겨봐야 할 배우인 것 같습니다.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5.01.31 21:17 신고

    오..12월에 개봉했어요? 흠..근데..나는 몰랐네요..
    영화평 잘 읽고가요~
    앗! 저는 와일드 보고 왔지용..ㅋㅋㅋ

    • BlogIcon singenv
      2015.02.01 18:44 신고

      네 ㅎㅎ 블록버스터가 아닌 이상 조용히 개봉하지요ㅠ <와일드>가 다음주 주말까지 살아있다면 볼 예정이긴 한데... ㅋㅋ 과연 살아 있을지!

  • BlogIcon 토종감자
    2015.02.05 11:35 신고

    오~ 재밌을 것 같네요.
    오래전에 나왔던 실버스타 스탤론 나오는 드리븐이랑 영화가 생각나요.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한때의 대 스타가 조용히 물러나며 젊은 세대에게 주도권을 물려주는 장면이 비슷해요. 뭔가 씁쓸하면서도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다 싶어서 아름답다고 느껴졌었거든요. 물러날 때를 아는 것...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그나저나 요즘 클로이 모레츠가 여기 저기서 눈에 자주 띄네요.
    귀여우면서도 청순하고, 심도있는 느낌 참 좋더라고요.ㅎㅎ

    • BlogIcon singenv
      2015.02.08 18:09 신고

      흠, 그런 영화가 있었군요!
      기회 되면 한 번 보겠습니다^^
      클레이 모레츠는 재능에 비해서 엄청나게 뜨지는 못하는데,
      오히려 그래서 좋기도 하고 오래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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