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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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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인은 징용되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 <조선인 강제연행> 2018.03.19
  • 전쟁의 끔찍함 속 유머, 그보다 더한 원칙과 시스템의 황망함 <어 퍼펙트 데이> 2017.10.03
  • 새로운 세상을 위해... '60년대'를 주목하라 2013.04.19

"조선인은 징용되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 <조선인 강제연행>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3.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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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인 강제연행>


<조선인 강제연행> 표지 ⓒ뿌리와이파리



일본제국은 1868년 1월 메이지유신으로 설립된 메이지정부 이래 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 후 미국에 의한 군정 실시 2년 뒤 1947년 5월까지 계속되었다. 이 79년 동안 일제는 천황을 국가원수로 제국주의 시대를 이어갔는데, 우리나라는 그 절반 이상의 시간 동안 사실상의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았다. 


일본으로선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의 전성기였을 그때, 일제는 단기간에 최고의 위치로 치고 올라가 역시 단기간에 최악의 위치로 곤두박칠 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나치독일과 더불어 수없이 많은 콘텐츠로 재생산되었고 수없이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많은 자료가 있을 그들 스스로 조작하고 차단하고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채 정교하게 재멋대로 재생산과 연구를 해버리는 바람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잘못 알려져 왔다. 그럼에도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려 했는데, 그렇게 그들 스스로를 올바르게 되돌아보는 것만이 진정한 일제의 역사를 아는 것일 테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근대사 전문가 도노무라 마사루 교수가 전격적으로 총체적인 기본 사료를 통해 1939년~45년까지의 총력전체제 하의 전시 노무동원 실체를 파헤친 책 <조선인 강제연행>(뿌리와이파리)도 그 일환이라 하겠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건 결국 일본제국주의(일제)의 본질, 나아가 일제 식민지 통치의 본질이다. 


"조선인은 징용되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


저자는 "조선인은 징용되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라고 주장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 할 만한 이 말은, 사실 심층적이다 못해 굉장히 새로운 해석에 의한 것이다. 극히 일부의 조선인과 대부분의 일본인이 이루는 동원된 사람과 그 가족이 국가의 원조를 보장받는 반면, 조선에서는, 조선인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즉, 일본인 동원과 조선인 동원 사이에 명백한 차별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중심에 두고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우선, 노무동원이 실시될 당시 일본 내지에 비해 조선은 물질적 근대화가 훨씬 더뎠고, 미디어가 발달하지 못했고, 행정기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으며, 사회교화에 한계가 있었다. 대다수 농민들은 몰락했고 생존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제는 군수 경기 하에서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탄광 등 광업 부문이 심각했고, 이에 일제는 조선인의 도일을 억제하는 한편 통제에 의한 조선인 도입을 모색해 일손 부족 문제 해결을 촉진했다. 와중에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제는 이른바 총력전 체제로 진입한다. 그렇게 1939년부터 국가총동원계획이 수립되고 노동력과 관련해 노무동원계획이 수립된다. 이 계획은 일본 내지는 물론 상대적으로 많은 것들이 열악한 조선에서도 실시된다.


이 계획은 일본제국 하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즉, 오히려 일본인이 대다수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동원계획의 조잡함과 강제성과 열악함 등에 있었다. 제대로 된 조사와 준비가 부족한 채, 역시 일손 부족에 허덕이는 조선 남부의 농민들을 중심으로 실정을 무시한 채, 조선인의 반발은 물론 조선총독부와 일본 내지의 피동원인들의 반발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채 진행한 것이다. 


허접하고 무모하다 못해 모순적이기까지 한 일제


저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이 '조선인 강제연행'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로, 최종 결론을 통해 민주주의를 결여한 사회에서 충분한 조사와 준비가 부족한 조직이 무모한 목표를 내걸고 추진하는 행위가 가장 약한 사람들의 희생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는 일제라는 가해자와 조선이라는 피해자라는 이분법 층위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우선 실용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일제의 노무동원은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적재적소에 일손을 배치해 국가의 보다 나은 앞날로 나아가는 것일 텐데, 제대로 된 준비와 관리와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행태는 내부에서의 진지한 목소리도 모두 무시한 채 계속되다가 패망에 직면해 강제적으로 그만두어졌다. 


그런 속 빈 강정 같은 계획 하에서 무모하기 짝이 없는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면 필연적으로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다. 계획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반발이 생길 것이고, 그럼에도 밀어붙인다면 강제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거기엔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폭력이 수반된다. 문제는, 이런 국가폭력이 소위 제국민의 일원이라 할 만한 조선인에게만 행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일제의 명백한 존재와 함께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 등을 비롯한 일제 통치 하의 식민지민 모두를 하나의 제국 하의 국민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저자의 시각이 그렇고, 저자의 철저한 기본사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지표와 결론이 그를 반영한다. 일제는 허접하고 무모하다 못해 모순적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일제의 실체, 일제의 식민지 통치 본질이 그렇다. 그들은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해 군국주의를 앞세워 많은 식민지를 영위하며 그 위세를 만방에 떨쳤지만, 실상 속 빈 강정에 무대포에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고 있었다. '조선인 강제연행'이라는 일제의 수많은 헛짓거리 중 하나일 뿐인 것만으로도 그들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일제에 대한 연구는 더더욱 다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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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동원, 모순, 무모, 식민지 통치, 일제, 조선인 강제연행, 허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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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끔찍함 속 유머, 그보다 더한 원칙과 시스템의 황망함 <어 퍼펙트 데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10.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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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 퍼펙트 데이>


진지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의 유머스럽고 황망한 하루. ⓒ마노엔터테인먼트



1992년부터 시작된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1995년 발칸반도의 어느 곳, 내부인과 외부인 콤비가 차를 이용해 우물에 빠진 시체를 끌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시체의 육중한 무게로 밧줄이 끊어지면서 실패한다. 이내 동료들이 당도하는데, 그들도 밧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밧줄이 없으면 시체를 건지지 못하고, 24시간 안에 시체를 건져 우물을 청소하지 못하면 마을의 유일한 식수가 완전히 오염될 것이었다. 그들은 튼튼한 밧줄이 필요하다. 한편, 더 이상의 오염을 막기 위해 시체를 건져낼 때까지 우물을 막아야 한다. 그건 UN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4명인 그들은 2명씩 짝지어 각각 밧줄을 구하기 위해, UN의 도움을 얻기 위해 길을 나선다. 


사실 하등 어려울 것 없는 일들이다. 튼튼한 밧줄 하나 없을까? 24시간 안에 그런 거 하나 못 구할까? 그런데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 보인다. 시체 때문에 마을 유일의 식수가 오염되었으니 우물을 막아야 한다는 너무나도 합당한 논리로 UN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너무 쉬운 일인 듯 느껴진다. 하지만 이 또한 황당한 원칙주의를 앞세운 UN의 비논리로 허무하게 무너진다. 정말 좋지 않은 의미로 완벽한 날이다. 


유머에서 시작해 유머로 끝난다


영화는 절대 유머를 놓치 않는다. 아니, 유머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출연진들이다. 대가의 반열에 오른 베니치오 델 토로와 팀 로빈스가 각각 팀의 리더와 베테랑 요원으로 분해 극의 중심을 확실히 잡는다. 올가 쿠릴렌코, 멜라니 티에리가 허리를 든든히 받치는 역할을 맡았다. 그중에서도 다름 아닌 팀 로빈스가 가장 눈에 띄는 이유는 '유머'에 있다. 


인류사에 길이남을 '인종청소'로 유명한 보스니아 내전의 비극을 겪은 직후라는 배경에 마을 유일의 식수가 완전히 오염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 겹치는 지극히 일촉측발의 하루를 보여줌에도, 영화는 팀 로빈스가 분한 B를 앞세워 유머를 최우선적으로 내보이려 한다. 


심각한 상황임에 분명함에도 오히려 그 상황을 이용한 유머를 주로 선보이는데, 그럼으로써 전쟁이라는 비극이 촉발한 끔찍한 사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전쟁, 그것도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난 내전의 참모습이겠지만 그럼에도 유머가 계속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유머는 한편 인간성을 포기한 이 내전에 휴머니티, 즉 인간성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이건 비단 B뿐만이 아닌 마을 사람들의 태생이 그러하다고 말하면서 영화 전체로 이어진다. 그리고 종국엔 제목과 지극히 반(反)하는 하루의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한 유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유머에서 시작해 유머로 끝난다. 제목 <어 퍼펙트 데이>가 주는 아이러니함도 그 자체로 유머가 아닌가. 


전쟁의 직설적이고 모순적 끔찍함


주인공들이 놓인 상황은 내전의 막바지다. 즉, 전쟁의 한가운데인 것이다. ⓒ마노엔터테인먼트



밧줄을 찾으러 간 B의 팀에게 리더가 요청한 게 또 하나 있다. 다름 아닌 '공'. 리더의 팀이 UN의 도움을 얻기 위해 가던 길에 한 아이(니콜라)가 또래 불량 소년들에게 공을 빼앗기는 모습을 보았다. 리더는 불량 소년들에게 공을 달라고 했지만, 그들이 총으로 위협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니콜라는 어느새 이 요원들에게 중요하게 인식되지만, 이 영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의 직설적 끔찍함과 모순적 끔찍함을 모두 상징하는 게 니콜라인 것이다. 그 아이는 지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전쟁 때문에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빠, 엄마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다. 


내전으로 니콜라 같은 아이들은 너무 많이 양산되었다. 그들은 사실상 다시 태어난 것이나 다름 없는데, 불과 20여 년 전에 유럽에서 일어난 일이라곤 믿을 수 없는 양상이다. 여기서 더욱 끔찍한 건 '내전'이라는 전쟁이 주는 모순이다. 그 모순의 한복판에 니콜라의 가족이 있었고, 니콜라 가족의 집이 있었다. 


밧줄과 공을 찾으러 급기야 니콜라의 옛집을 찾은 요원들, 그들은 여러 끔찍한 장면들을 목격한다. 집의 어느 곳엔 지붕이 없었는데, 니콜라 가족들이 달아난 사이 이웃사람이 와서 폭발시켜버렸다는 것이었다. 니콜라의 부모님이 서로 내전에서 적과 적으로 있는 계였기 때문이었다. 이웃사람들은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달아날 곳은 없었다. 니콜라의 부모님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원칙을 위한 원칙,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의 황망함


전쟁보다 더한 치명적 상황은, 원칙과 시스템에 목매인 원칙과 시스템이다.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던지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방면은 원칙을 위한 원칙,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의 황망함이다. 그 어느 상황에서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게 사람의 목숨이거늘, 그러하기에 유일한 식수가 오염된 상황에서 처해야 할 행동은 당연히 그 원인을 제거하고 또 제거하기 전까지 임시로라도 막아놓은 것임이 당연한 것임을, UN은 그보다 원칙과 시스템을 따르고자 한다. 


물론 그들이 내세운 이유도 사람의 목숨이다. 시체로 오염된 우물 말고도 근처에 2개의 우물이 더 있는데, 그곳엔 지뢰가 설치되어 있고 아직 제거하지 않은 상태다. UN은 시체로 오염된 우물보다 지뢰 제거가 우선이라는 원칙 하에서 확고히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지뢰 폭발은 당면한 눈에 보이는 최고 최악의 위기다. 무엇보다 빨리 해치워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식수 오염이라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에 광범위하게 지대한 위기를 줄 것이 뻔한 사태보다 시급할까. 그들에게는 '식수 오염'으로 죽는 사람보다 '지뢰'로 죽는 사람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의 목표는, 그들이 하달받은 목숨에, 그들이 지켜야할 사람에, '식수 오염' 관련된 조항은 전혀 없다. 그럼 끝인 것이다. 더 이상 거들떠볼 것도 없다. 


진정 전쟁보다 더 황망한 게 이런 모습들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영위하고 전쟁 덕분에 살아가는 것들도 다름 아닌 이런 모습이다. 정녕 그들의 유연성 없고 고지식하며 완벽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면에서 그리 완벽하고, 모든 순간에 그리 완벽하면, 우리네 사는 인생의 하루하루가 어찌 완벽하지 않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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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목숨, 시스템, 어 퍼펙트 데이, 원칙, 유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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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위해... '60년대'를 주목하라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3. 4. 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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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960년을 묻다>작년 말에 치러졌던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옛날 사람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다. 박근혜 당선인에게는 '박정희'라는 이름이, 문재인 전 후보에게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항상 따라 붙었다. 두 후보가 내세우는 정책 기조에서 어떤 큰 차이를 찾아볼 수 없었던 바, 그들에 뒤에서 도사리고 있었던 '전설' 혹은 '망령'이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아직까지는 '박정희'의 힘이 더 컸던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0년대의 시대정신이었던 경제적 산업화를 상징하는 '박정희' 프레임이 지금에 와서 다시 고개를 든 것인가? 지난 5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패가 개발독재 경제정책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박근혜 당선인이 단순히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이와 같은 추측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이번 대선의 슬로건이 100% 국민대통합이니만큼) 하지만 지지자들의 속내는 다를지 모른다. 많은 지지자들의 가슴속에서는 1960년대의 그 기억들이 있을테니까. 이 시대에 1960년대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전설과 망령이 교차하는 1960년대를 벗어나야

얼마 전 고 장준하 선생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는 기사가 났다. 유신헌법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974년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것에 대한 재심으로, 39년 만에 이뤄졌다고 한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내놓은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조회수 200만을 돌파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고, '유신의 추억'이라는 다큐멘터리도 꽤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자,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부르는, 혹은 불리우는 사람에 따라서 '전설' 혹은 '망령'이라고 할 수 있는 장준하, 박정희, 이승만 등이 이 시대에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박정희'는 우리나라에서 '경제성장'의 환상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어쩌면 영원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우리를 옥죌 것이라 본다. 

ⓒ 천년의 상상

<1960년을 묻다>(천년의상상)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 있고, 이 책의 배경도 여기다. 벗어나고 싶지만, 아니 벗어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1960년대의 모든 것. 이 책의 저자들은 존경은 표하되 1960년대의 모든 산물을 완전히 리메이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시대의 주역들이 주춧돌을 놓았던 민주주의와 '근대성'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서 단지 참조대상일 뿐,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며 저자들은 1960년이 다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왜?

1960년은 4.19가 있었던 해이다. 해방 후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던 시기, 한국 사회를 바꾼 혁명으로 기억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났던 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시기에서 이어져온 비록 전설과 망령이 살아 숨쉬고 있을 지라도, 다시 돌아가 제대로 파헤쳐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들은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4.19 (비록 5.16이 되어버린 비운의 4.19이지만)가 진지한 공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체제의 가능성이 소진되고 있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560쪽)

'밥 대 장미'를 넘어선 시대적 모순들의 향연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산업화 대 민주화'로 대변되는 박정희 시대를 더 적절한 것으로 수정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1960년대는 모순의 연속인데, 단순히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어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만 나눌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바라는 건 '배부른 돼지'도 허기에 찌든 자유인도 아닌, '밥과 장미' 즉 민주주의와 경제를 모두 원하듯이 1960년대도 '산업화 대 민주화' 보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보는 게 정확하다는 것이다. 비록 이 둘 간의 관계가 모순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며 이 1960년대식 변증법을 각 장에서 펼쳐보이고 있다. 

"1960년대식 변증법은 4·19와 5·16의 연속과 불연속, '빵'(평등에의 욕구)과 '자유'(개인주의화의 욕망) 사이의 모순(1장), 박정희와 김일성의 적대적 공생(3·4장)에도 관철된다. 또한 이 책을 읽다보면《사상계》의 모순(7장)이나 4·19세대와 1960년대 지성의 자기모순(2·5·6장)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유와 반공을 동시에 살고, 민족(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열렬히 서구를 추종하였다. 또한 박정희의 광기가 춤을 추며 사회·문화가 전반적으로 '군사화' '남성화'되는데도 대중의 문화적 역능과 여성의 역할이 증대한다든지(10장), 황금만능·경제 제일의 이데올로기가 수많은 속물과 졸부를 곳곳에 등장시켰음에도 저항의식과 인문학적 교양이 함께 커가는 드라마적 변증법이 펼쳐지는 광경도 있다(8·9장)"(10쪽)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본다. 먼저 4·19가 5·16에 의해 폭력적으로 압살됐다는 서사는 사실의 절반에 불과하며, 사실 4·19는 혁명을 주도했던 주체들 자신에 의해 외면되고 배반당한 자취가 역력하다는 것이다. 이는 4·19가 4·19로서 이어지지 못하고, 정반대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는 5·16이 되어버린, 오히려 앞장섰다고도 할 수 있는 비극적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만들어진 1960년대가 모순으로 시작되고 있는 모습이다. 

또 하나의 모순은 박정희 자신에게 있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저자들의 말에 의하면 좌익이라는 죄의 구렁텅이에서 일어나 전능자가 된 박정희는 반공국교의 교주였다. 즉, 박정희 시대의 반공 구호는 단순히 반공주의의 상투어가 아니라 재귀적인 말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라는 것이다. 스스로의 모순적인 삶에서 모순을 없애버리기 위해 획일적인 다짐을 자신을 넘어서 대한민국 전체에게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어서 말할 수 있는 모순은 남북의 특권계급이 서로 적대적으로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남한에는 북에 대한 유치하고 맹목적인 공포와 혐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먹으려는 기득권세력이 여전하고, 북의 세습 체제 또한 분단정치의 주축으로서 공포와 혐오를 먹이로 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체제와 세습 체제는 남과 북에 각각 존재하는 두 가지 악이 아니다. 파시즘적 법과 비밀경찰에 의해서만 유지되며, 세습이 민주적 선출보다 더 중요한 부와 권력의 재생산 도구가 되는 이런 체제는 남과 북 모두 그 양상이 비슷하고 공통적이다. 그것은 한반도 전체를 관통·관류하며, 민중을 지배하는 억압과 불평등의 공통적인 핵이다."(155쪽)

1960년대는 당대의 직접적 기원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이 책에서 저자들은 1960년대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직접적 기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1960년대를 통한 재구조화의 결과이거나 그 잔여물(553쪽)이라는 것이다. 근대 인문학과 지식 시스템 등 지식·학문이 자의식을 갖고 새로운 의식을 온전케 하였고, 이를 넘어 남북의 분단구조 자체가 완성된 시기가 그때의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힘이 이제는 거의 소진되었고, 새로운 세계가 열려도 몇 번이나 열렸다. 세계질서는 새롭게 재편되었고, 냉전 시대 이후의 생존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직도 냉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학문 분과는 재편돼야 하고 제도는 바탕에서 다시 생각돼야 하며, 취업과 복지의 구상도 다시 짜야 한다고.(559쪽)

이제 4·19와 5·16의 1960년대 세대가 만들었던 대한민국은 1987년 체제와 1997년 체제를 지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세상속에서 거의 다 허물어지고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아니, 잃어가야 정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힘은 막강하고 이 시대에 살아 있다. 이 끝없는 모순의 뫼비우스 띠를 잘라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 세대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러려면 먼저 이 시대의 근원인 1960년이 필요하다. 이 책을 보며 그 시대에게 성실히 물어보고 성실한 답변을 들어라. 앞으로의 길을 가르쳐 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새로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오마이뉴스" 2013.1.1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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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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