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클로저>
오랫동안 벼려온 영화 <클로저>. 머리가 커서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었다. ⓒ㈜퍼스트런
10여 년 전, 친구의 추천으로 로맨스 영화 한 편을 봤다. 그냥저냥 흔한 로맨스가 아니라고, '진짜 사랑'이 뭔지 생각하게 해줄 거라고, 했던 것 같다. 당시 영화에 막 빠지기 시작해 주로 대중적인 영화를 많이 봤던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화였다. 당연히 재미는 없었고 결국 기억에 남지 않게 되었다. 다만, 뭔지 모를 찜찜한 여운은 남아 있었다.
10년 전에는 끝까지 보지 못했었는데 몇 년 전에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도 재밌게 보진 못했던 바, 개인적으로 소설 <위대한 개츠비>와 겹친다. 위대한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위대한 개츠비>를 나는, 10년 넘게 3번에 걸쳐 읽어내지 못하고 2~3년 전쯤 일사천리로 읽었다. 머리가 커야 이해하고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인듯, 영화 <클로저>도 나에겐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재개봉 열풍의 끝자락 얼마전 12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클로저>, 삼수 끝에 비로소 이해하며 분석하며 재미있고 의미있게 볼 수 있었다. 30대는 되어야 볼 수 있을 것 같은 사랑 이야기 <클로저>는, 사실 사랑을 포함한 인간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렵기 그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른 각도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
얄팍한 인간 관계를 사랑으로 들여다보다
겉으로 보기엔, 별 내용 없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삼류 로맨스 영화인 것 같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일류다. ⓒ㈜퍼스트런
수많은 사람들이 출근하는 런던 도심의 아침, 댄(주드 로 분)과 앨리스(나탈리 포트만 분)는 첫눈에 반한다. 앨리스가 댄에게 던진 한 마디 '안녕, 낯선 사람'은 이 운명적인 우연 또는 우연적인 운명의 상징이자 시작이다. 댄은 소설가가 꿈인 신문사 부고 기자이고, 앨리스는 뉴욕에서 온 스트립댄서다.
앨리스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로 드디어 데뷔를 한 댄, 책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찾은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 분)에게 강렬하게 대쉬한다. 그런 댄이 싫지만은 않은 듯하지만 앨리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멀리하려 한다. 그러곤 그런 안나를 골탕먹이고자 댄이 음란채팅방에서 안나 행세를 해 오프라인 만남까지 성사한 래리(클라이브 오웬 분)와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낯선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전시회를 연 안나, 댄을 초대한다. 당연히 연인 래리와 댄의 연인 앨리스도 함께 있다. 그럼에도 댄과 안나는 이 전시회를 기점으로 내연 관계로 빠져든다. 이후 안나와 래리는 결혼을 했고 댄과 앨리스는 동거를 시작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결국 이들은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되는데...
지극히 우연히 만나 연인 관계, 결혼 관계로까지 발전한 댄과 앨리스, 안나와 래리. 하지만 그만큼 우연히 만나 내연 관계로 발전한 댄과 안나도 있다. 그렇다고 래리와 앨리스도 완전히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건 아니다. <클로저>는 이처럼 우연과 낯섬으로 점철된 얄팍한 인간 관계를 사랑의 관점으로 들여다보았다. '사랑'은 수단이고 '관계'과 목적이라 하겠다.
현대판 <졸업>, 영화 <클로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졸업>이라는 희대의 명작을 50년 전에 내놓았다. 우린 <클로저>에서 <졸업>을 느낄 수 있다. ⓒ㈜퍼스트런
<클로저>는 2014년에 작고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살아생전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작품이다. 그는 자그마치 50년 전 <졸업>이라는 20세기 최고의 영화를 데뷔 후 불과 두 번째에 찍어냈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청춘의 일탈과 허무를 세련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한 명작으로, 일반적 로맨스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결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졸업>에서 두 남녀 벤자민과 엘레인이 결혼식장에서 도망치는 명장면을 볼 수 있는데, 그 후 버스에서 보이는 두 남녀의 불안과 허무와 걱정과 허탈함이 뒤섞인 표정에서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인간 심리의 정면을 볼 수 있다. 35여 년이 흐른 후 우리는 <클로저>에서 어김없이 순간이 주는 사랑의 허무를 엿볼 수 있다.
<클로저>는 현대판 <졸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진짜 사랑'일 거라 생각하고 순간의 선택으로 그 상대에 자신을 내던지는 벤자민. 댄, 앨리스, 안나, 래리는 벤자민의 후예와 다름 없다. 과연 그게 진짜 사랑일까? 많은 세월이 흘러 사랑도 진보해야 할 것 같지만, 이들의 행태를 들여다보면 사랑은 퇴보한 게 분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인간은 '미지(未知)'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가장 알 수 없는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한편, '미지'에게 끌리는 습성도 있다. 호기심의 발동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낯선 사람'에게 끌리는 인간의 천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그러며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남는 게 뭐지? 계속 낯선 사람에게 옮겨다닐 것인가?
로맨스 영화의 탈을 쓴, 인간 심리와 관계의 명작
이 영화가 명작인 이유는 로맨스와 사랑에 있지 않다. 그걸 수단으로 하는 인간 관계와 심리에 있다. ⓒ㈜퍼스트런
나라고 이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가깝고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며 한없이 머무르고 싶어 하는 습성도, 멀고 낯선 것에 희열을 느끼며 한없이 떠나고 싶어 하는 습성도, 인간은 모두 다 지니고 있다.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고자 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없이 흘러가는 물은 무한정의 좋은 점만 가지고 있는가? <클로저>는 그래서 고인 물을 찬성하고 흘러가는 물을 비난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물이 고일 때 썩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러면 흘러가게 놔둬야 할까. 영화는 그 또한 무자비한 거짓만이 판치는 혼란이 있을 거라 말한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겠다. 영화를 보고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 조금 짜증도 난다. 로맨스 영화의 탈을 쓰고 인간 천성의 낱낱을 적나라하게 까발려 놓고는 그 어느 쪽도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이 지독한 인간 심리와 관계의 명작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알지 못하겠다.
<졸업>을 보고 느낀 찜찜함과 내지른 탄성이 <클로저>를 보고도 느껴지고 내질러진다. 내 안에도 이들의 가벼움이 있겠지만, 이들처럼 가볍게 살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영화만을 볼 때 희대의 명작이라 해도 과찬이 아닐 듯하다. 문제는,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욕을 하지 않고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는 보고 싶은 않은 네 주인공이지만, 주기적으로 다시 보고 싶어질 것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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