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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한국을 떠나야 할까, 한국을 바꿔야 할까 <한국이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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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한국이 싫어서>


소설 <한국이 싫어서> 표지 ⓒ민음사



2010년대 들어 한국을 강타한 신조어 중 하나가 '헬조선'인데, 아무도 지옥에서 살고 싶진 않을 것이다. 희망 따윈 찾을 수 없는 지옥 같은 한국을 탈출하는 여러 방법을 강구한다. 남들처럼만 살기 위한 피나는 노력, 인생 한방 역전을 위한 로또, 이전까지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의 포기, 헬조선 땅을 떠나는 이민. 이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건 무엇일까. 노력은 남들도 다 하고, 로또는 가능성이 희미하다. 반면 포기가 가장 쉬운 것 같다. 이민은? 가능성이 농후한 것 같다. 


10여 년 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었다. 헬조선 탈출의 의미 부여는 전혀 아니었고, 외국에서 살며 일하고 놀고 여행을 떠나는 특별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 였다. 이왕이면 공부도 하면 좋고. 그런데 요즘 워킹홀리데이는 다른 의미인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이민의 교두보인 것이다. 워킹홀리데이가 최장 2년까지 가능한대, 그렇게 돈을 모으고 스스로를 현지화시킨 다음 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으며 영주권 준비를 한다. 


사실 이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국가에 의한 계획적 이민이든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이민이든,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계속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외하벌이를 위한 국가의 계획적 이민이 주를 이뤄왔다고 한다. 그러던 외환위기 이후 양상이 크게 바뀌어 경제불안정과 교육 불안 때문에 중산층의 이민이 주를 이룬다. 그 이후가 경쟁력이 없는(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2010년대 헬조선 탈출이다. 


장강명 작가가 소설 <한국이 싫어서>(민음사)를 통해 보여주는 헬조선 탈출 양상은 사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또는 누구든 생각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모습인데,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고, 내 동생은 실행에 옮겼지만 실패했다. 


한국이 싫어서 떠난 그곳에선 행복할까


'계나'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한 행운아다. 그것도 대기업이라 할 만한 W종합금융에. 그녀는 또한 예의 바르고 허세 부리는 거 없고 목표가 뚜렷한 남자 친구 '지명'도 있다. 그럼에도 3년 동안 회사를 다닌 후 때려 치우고 호주로의 이민을 위해 무작정 호주 시드니로 떠난다. 그녀는 왜 한국을 떠나는가? 그녀의 말을 빌리면,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다. 


N포 세대 당사자들이 보기에 기가 찰 노릇일지 모른다. 취업도 했고 연애도 하고 있는데 더 무얼 바라냐 하고 생각할 거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비전이 없다고도 생각한다.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가난하고, 그렇다고 엄청 예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린 여기서 N포 세대가 가진 엄청난 스펙트럼을 발견한다. 계나처럼 '행운아'조차도 이 세대에 속하는 것이다. 그 스펙트럼만큼 슬퍼지는 바, 급기야 '희망'까지 포기했다는 N포 세대의 비애도 엿보인다. 계나가 포기한 건 희망이고, 계나를 부러워 하는 이들이 포기한 건 여전히 현실적인 조건들이다. 누구도 여기서 벗어나긴 힘들어 보인다.  

그렇게 계나가 정착하게 된 호주는 어떨까. 그곳에서라도 잘 산다면 그녀가 포기한 희망이 갈 곳을 찾는 것이다. 한국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그곳에 가서 되찾을 수 있기에, 국가야 어쨌든 한 개인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소설은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아니, 계나의 삶을 위시한 실제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많은 이들의 삶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계나는 그곳에서도 지옥을 맛본다. 한국에서는 맛보지 못한 새로운 개념의 지옥이다. 기본적인 거주 조건조차 최악인 상황인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영주권을 딴 계나이지만 그녀는 '외부인'이라야만 겪을 곤경을 계속해서 겪는다. 그녀가 찾고자 했던 희망은 눈에 어른거리지도 않는 상황의 연속. 인간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소설이 끝날 때쯤 일이 있어 한국에 왔다가 다시 호주로 가는 계나가 하는 말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는 그래서 허무하게 들린다. 


한국을 떠나지 말고 바꿔 보자


동생이 한국을 떠나 호주로 갔던 건 '한국이 싫어서'가 '한국에서 더 잘 살아보려고' 란다. 계나의 남자친구 지명이 하는 말도 이와 유사하다. 그는 계나에게 시민권을 딴 후에는 한국에 와서 같이 살고 늘그막에 다시 호주로 가서 살자고 한다. 호주 영주권 가치가 한국 돈으로 10억 원쯤 된다면서. 그러나 계나에게 호주 영주권이 수단으로 작용하긴 힘들어 보인다. 그러기엔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싫다. 그녀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나도 한국이 싫다.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은 넘치고 넘칠 것이다. 앞으로 더 많아지면 많아졌지 줄어들진 않을 것 같다. 또한 적어도 한국을 좋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을 쉽게 떠나진 못할 것 같다. 한국을 떠나서 외국으로 가도 큰 틀에서 달라질 게 없다는 것과 오히려 더욱 하찮은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몸소 겪어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계나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안다. 호주가 천사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그녀는 호주가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녀는 왜 호주에서 '지금' 행복하지 못하는지? 왜 '앞으로' 꼭 행복해져야지 하는 다짐을 계속 하는지? 헬조선의 물질적 탈출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최고의 방법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지 않을까. 작가가 그려내며 말하고자 하는 바도 이와 같이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한국에서 희망까지 포기한 삶을 영위하며 그저 현실에 안주하란 말인가. 저성장 시대인 만큼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만 그러는 건 아니니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않다. 다른 방도가 있다. 거칠 게 말해서, 한국을 바꾸는 것. 물론 계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그것을 이유로 한국을 떠난 것이기는 하다. 


방법은 다양하다.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끊임없이 고민하며 강구해야 한다. 사자와 맞짱뜨는 시대는 지났다고 하지만, 사자를 굶어죽게 할 수도 있고 사자를 나돌아 다니지 못하게 할 수도 있으며 하물며 사자를 하이에나로 둔갑시켜 버릴 수도 있는 시대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엔 수많은 논란과 논의가 있을 줄 안다. 논란에서 그치지 말고 논의로 발전되길 바란다. 


한국이 싫어서 - 10점
장강명 지음/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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