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거인>
독립영화란 상업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 본인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를 뜻한다. 개 중에는 의도적으로 상업 자본을 배척한 경우도 있지만, 소재나 주제 때문에 상업 자본으로부터 배척 당한 경우도 있다. 상업 자본이 꺼려 하는 소재나 주제는 무엇일까? 대중이 받아들이기엔 힘든 기상천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주제와 소재를 채택한 영화도 있고, 대중으로 하여금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도 있다.
여기서 대중으로 하여금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메시지는, 여지없이 대중을 불편하게 한다.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들춰내는 이런 영화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엔 힘들고 자연스레 상업 자본으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것이다. 그 사회의 성숙도를 이런 영화들이 대중으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는 가로 측정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기준을 1만 명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2014년 최고의 발견이라 칭할만한 영화 <거인>은 2만 명을 돌파했다. 독립영화임에도 대중으로부터 평균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여지없이 대중을 불편하게 하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의 어떤 점이 대중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 스토리? 메시지? 연기? 미리 말하자면 모든 점이다.
도둑질 하며 신부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아이
영화의 주인공은 18세 영재(최우식 분)이다. 그는 집을 나와 '이삭의 집'이라는 그룹홈 보호시설에서 지내면서 신부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싹싹하고 착하고 말 잘 듣는 그런 아이다. 반면 남몰래 후원물품인 신발을 훔쳐 학교에 파는 비도덕적인 모습도 있다. 그럴 때면 그야말로 장사꾼 기질 아니, 사기꾼 기질이 농후하다. 영재는 과연 누구인가? 그의 본 모습은?
18살이 되는 영재에게는 단 하나의 고민이 있다. 그 고민에서 모든 것들이 파생되는 것이다. 나이가 찼기 때문에 그룹홈 보호시설에서 나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집으로 돌아가기 싫다. 돈은 벌어오지 않고 동생 민재를 떠 넘기려고 하는 아버지,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이모집에 가서 요양을 하고 있는 어머니(어머니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동생 민재를 '이삭의 집'에 떠넘겨 사실상 영재에게 책임을 지게 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 그리고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 민재. 영재는 이런 집에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정말 '미치겠고' '죽겠다'.
그렇지만 '이삭의 집' 원장은 계속해서 영재를 압박한다. 어서 이 집을 나가 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영재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 성당 측에서 말을 잘해 주는 것 뿐이다. 영재가 실업계를 다니고 성적도 그리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신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부각 시켜 주어야 한다. 그래야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신부의 꿈을 키우며 계속 지낼 수 있다. 영재에게 이건 실존과 연결된 문제이다.
'집도 있고 부모님도 있는 아이가 뭐가 부족하다고 집을 나와서 그 고생을 자처해서 하고 있나?'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 영재에게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부모님이 있다. 작지 않은 집도 있다. 그런데 무능력하고 못난 부모님이 있다. 그 부모님은 장남 영재로 하여금 집을 나갈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말 그래도 집에서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차남 민재도 영재에게로 보내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영재와 민재가 '이삭의 집'을 나갈 때 갈 곳이 없어질 것이다. 거리로 내몰리는 아이들, 그 원인에는 어른들의 '무책임'도 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폭발하는 아이, 그 끝은?
영화는 영재로 하여금 '이삭의 집'을 나가 집으로 돌아가게끔 이야기를 치밀하게 펼쳐나간다. 18세가 되었으니 집을 나가라고 하는 원장, 영재가 후원물품을 훔치는 모습을 보고 협박하는 전 룸메이트 범태, 민재를 '이삭의 집'으로 데리고 가 같이 지내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아빠(만약 민재를 데리고 가면 영재의 활동 범위는 굉장히 축소될 것이고, 자리를 보존하기가 더 힘들 것이다.)까지.
어느 날 급기야 영재의 아빠는 민재를 데리고 직접 '이삭의 집'을 방문하기에 이른다. 영재를 통해서 민재를 보내기 힘들다고 판단해 직접 원장에게 말하려고 온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영재는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분출하고 결국 폭발하고 만다. 눈이 뒤집힌 채로 부엌에 가 칼을 가져온 것이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것인가? 어찌 되었든 영재의 거취는 불분명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 시대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영화의 또 다른 키워드는 '연기'이다. 주인공 영재를 연기한 최우식의 연기. 그는 주로 TV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활동하다 영화 연기를 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도 <거인>처럼 단독 주연은 처음인 듯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신부의 꿈을 꾸는 착한 아이와 남몰래 후원물품을 훔쳐 파는 나쁜 아이의 이중 생활 그 이상의 삼중, 사중 연기를 펼친다. 그를 생각해주고 그를 옭매이는 그와 관련된 사람 모두와의 관계에서 각각 다른 표정과 목소리톤,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25살이 보여주는 연기라고 믿을 수 없는 연기의 스펙트럼이 크다.
그렇다는 건 영화 속 영재가 그만큼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오로지 '생존'을 위함이다. 아무도 자신을 책임져주지 않는 다는 걸 알고 그야말로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평소 원장 부부나 신부에게 잘 보여온 영재. 하지만 그는 나이가 꽉 차서 집을 나가야 하는 상태이다. 죽어도 나갈 수 없는 영재는, 신부에게 신부가 꿈이라는 걸 강하게 어필한다. 신부는 영재의 강렬한 부탁을 듣고 공부 잘하는 대학생 누나를 데려와 영재에게 공부를 시킨다. 친자매처럼 지내는 이들, 하지만 영재는 그런 누나조차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싼 장갑을 사서 누나에게 선물하는 영재의 모습이, 순수한 의미의 고마움이나 호의가 아닌 뇌물로 비춰지는 것이다.
어떤 파괴적인 메시지나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온 한숨이 나오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없는 연민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거인이 되고 싶어 되는 게 아닌, 살기 위해 살다 보니 어느 순간 거인이 되어 버린 영재. 그에게서 이 시대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투영해본다. 드러나지 않는 거대한 문제의 단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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