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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황후화> 과도한 화려함으로 감춰진 '막장' 대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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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황후화>


중국은 무협, 역사 영화를 매년 발표해왔다. 1980~90년대에의 무협 영화는 엄연히 ‘홍콩’이 지배해왔고, 홍콩이 반환된 뒤에는 중국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무협 영화들을 탄생시킨다. 홍콩 무협 영화가 스토리와 배우의 액션 위주에 조악한 장치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2000년대 이후의 중국 무협 영화는 역사와 조우하며 ‘대작(大作)’의 면모를 풍겼다. 엄청난 물량 공세 앞에 다른 것이 끼어들 수 없었다.


그 뿌리는 장예모 감독의 2002년 작 <영웅>이라 할 수 있다. 그 전 해인 2001년에 나온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 굉장히 절제되고 섬세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액션 신으로 기존의 무협 영화 스타일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 수준을 월등히 끌어올렸다면, <영웅>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어마어마한 물량 공세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개인적으로 중국 무협 영화의 정통성 면에서나 스토리, 영화적 측면에서조차 <와호장룡>에 더 높은 평가를 주고 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지나 이런 스타일은 거의 사장(死藏)되어버리다시피 하였다. 반면 <영웅>의 스타일은 무협역사 장르로 개발되어 중국 무협 영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장예모 감독은 2004년에 <인연>으로 자신 만의 스타일을 공고히 한다. 이어 2005년에 첸카이거 감독이 <무극>, 2006년에 펑샤오강 감독이 <야연>을 선보이며 물량공세 무협역사 영화의 힘을 과시했다. 그리고 2006년에 장예모 감독은 450억 원의 <황후花>로 찾아온다. 1000억 원은 우습게 여기는 할리우드에 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당시까지 중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액수였다. 물론 여기에는 주윤발, 공리, 주걸륜 등 초호화 배우들의 몸값이 상당 부분 차지할 것이다. 


초호화 배우와 명장의 만남... 역대 중국 영화 최대 제작비까지


영화 <황후花>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황후花>는 돈을 들인 만큼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때는 당나라 후기, 3년간의 국경 수비를 뒤로 하고 황제(주윤발 분)는 둘째 아들 원걸(주걸륜 분)을 데리고 귀환한다. 이에 황후(공리 분)는 황금빛 찬란한 황제 귀환식으로 맞이하려 한다. 하지만 황제는 급작스러운 귀환에도 모자라 급작스러운 귀환식 취소를 단행한다. 뭔지 모를 위화감과 불안감이 팽배하는 황궁.


한편, 황후는 3년 사이에 첫째 아들 원상(루예 분)과 정을 쌓았다. 외로워서일까. 아니면 황제와의 사이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황제가 황실 주치의에게 명해 황후에게 계속 독약을 먹게 해 죽이려는 한다는 사실에서,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점 미쳐가는 황후와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원걸. 사실 원걸 만이 그녀의 진짜 아들이었다. 다른 두 명의 왕자 원상과 원성에게는 죽은 생모가 있었다.


어느 날, 황후는 밀정에게 시켜 독약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밀정의 사정과 정체를 알게 된다. 그 밀정의 정체는 원상과 원성의 생모였다. 그녀는 황제에게 배신당해 일가가 몰살당하고 자신만 겨우 살아났던 것이다. 이를 덮으려고 그녀를 죽이려는 황제와 그녀를 살리려는 황후.


결국 그녀는 죽고 말지만, 죽기 전에 황제 가족이 모여 있는 9월 9일 중양절 전야 황궁에서 모든 사실을 폭로한다. 이 폭로로 원상과 원성 형제는 각각 원성과 황제에게 죽임을 당하고, 원걸은 사전에 준비했던 반란을 시도한다. 금빛 찬란한 갑옷으로 무장한 반란군은 황후가 열성을 다해 장만한 국화꽃 모양의 스카프(?)를 메고 황궁으로 돌진한다.


황제가 보내는 마지막 경고였던 황제의 깃발을 쓰러뜨리는 원걸. 10만 명의 황금빛 갑옷 반란군은 계속 전진한다. 검정빛 갑옷의 황제군은 성(城)과도 같은 엄청난 크기의 방패로 황궁을 막은 후, 빠져나갈 문을 막고 반란군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병사가 활시위를 당긴다. 그 엄청난 기세는 한 순간에 무너진다. 뭔가를 보여줄 것만 같았던 엄청난 대규모 전투신도 속절없이 끝나버리고 만다. 그리고 영화도 곧 끝난다.


<황후花>는 참으로 허무한 영화다. 계속보고 있으면 질릴 정도로 너무나 화려한 배경에 비해, 막장과도 같은 스토리 그리고 너무나 허무한 결말은 실망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장예모 감독은 <영웅>, <연인>으로 이미 색채와 이미지에서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했다. <영웅>에서는 장면마다 달라지는 갖가지 색깔로 인물의 심리를 표현했고, <연인>은 주로 자연을 상징하는 초록색의 이미지로 영화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물량공세'밖에 안 보이네... 여운 아닌 아쉬움만 남는 영화


영화 <황후花>의 한 장면. 금빛과 검정의 선명한 대비. ⓒ CJ 엔터테인먼트


<황후花>는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한편으로 대단했던 당나라의 화려함을 상징하듯이, 모든 걸 황금으로 칠해놓았다. 반면 황제군과 황제의 비밀암살단은 검정 일색이다. 이는 무너져가는 당나라 말기를 상징한다 하겠다. 막장 대서사시의 끝을 장식한 건 황금색이 아니라 검정색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장예모 감독은 이 모든 걸 계획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허무함을 당나라 말기의 국가적 허무함에 치환시키려는 의도인 듯하다. 그 중심엔 황제의 허무함이 있다. 배신을 하여 황제의 자리에 올랐건만 한 시도 편하지 않은 생활. 다시 돌아온 배신의 칼 끝.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아들. 그 어느 것 한 개도 허무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장예모 감독의 패착이다. 허무함을 표현하려고 일부러 화려함의 극치를 선보이려 함은 이해할 수 있으나,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어떤 깨달음을 얻기 전에 막장 스토리에 매몰되어 버렸다. 막장 스토리와 더불어, 음악과 연기 등 어느 한 곳에서도 명작의 면모를 풍기지 못했다.


전작과 차별화를 꾀하려 했다는 의도가 보이나 분명 장예모 감독의 스타일에 맞지 않았다. 그의 스타일에 분명 거대한 신과 물량공세적인 면이 있지만, 세밀한 스토리와 색채로 표현되는 그만의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 특유의 여운이 아닌 아쉬움 가득한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현재 무협역사 장르의 영화는 비슷한 스타일로 계속 나오고 있지만, 장예모 감독은 <황후花>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찍지 않고, 또는 찍지 못하고 있다. 영화 내용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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