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빵 굽는 고양이>
<빵 굽는 고양이> ⓒ애니북스
반복되는 일상, 그 안에는 지루함, 속상함, 기쁨, 슬픔, 좌절, 환희 등 무수한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크게 두 개로 나눠서 달콤하고 쌈싸름하다고 치자. 우리는 이 반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고 계속되는 반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자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색다른 취미도 가져 보고, 평소 잘 못 보는 사람도 만나며, 처음 가는 곳으로 여행도 떠나곤 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게 있다.
바로 '음식'이다. 사실 음식은 우리가 가장 많이 반복하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 이지만, 지루하지도 지치지도 않는 걸 보니 거기엔 어떤 힘이 있는가 보다. 아마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본능'일 것이다. 배고프면 모든 게 맛있어 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전과 다름 없이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솜씨로 똑같은 재료를 써서 똑같은 시간을 들여 만들었음에도, 항상 미묘하게 다른 맛이 드는 것도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또 어떤 이유가 있을까? 아마도 제일 큰 이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음식의 종류일 것이다.
여기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때론 일상의 무료함을 견디고 때론 일상이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달래주며 때론 일상에서 얻는 환희를 나누는 이가 있다. 웹툰 <빵 굽는 고양이>(애니북스)의 주인공 정미이다. 그녀는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한치, 두치, 삼치(꽁치). 그녀에게 음식과 함께 이 세 마리 고양이는 달콤 쌈싸름한 일상을 잘 보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만화는 일상의 아주 소소한 부분들을 정갈하고 꾸밈 없이 보여준다. 만화가 이리 멋을 내지 않아도 되나 싶을 정도이다. 화려하고 예쁘고 귀엽고 멋있는 그림체와 배경을 주로 봐온 눈이 오랜만에 큰 움직임 없이 담담한 눈 굴림으로 호강(?)을 하고 있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보다 보니 알 수 없는 여운이 남는다. 스토리를 훑고 있노라면, 마냥 편하지는 않기 때문일까.
주인공 정미는 20대 여성으로,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실패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고 졸지에 백수 신세에 봉착하고 말았다. 막막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음식과 고양이들과 지인들 덕분에 버텨가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처지에 있는 게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비록 만화에 불과하지만 현실에는 훨씬 더 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차마 말로 옮기기도 싫고 새삼스레 옮기기에는 너무 만연해 있다.
그래도 주인공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니, 사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상황을 절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혼자서도 잘 챙겨 먹고 지인들에게 맛있는 걸 대접해 주고 고양이에게도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그녀가 음식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음식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 점을 포착하고 놓지 않으며 만화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동시에 만화 스토리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작용하게끔 한다.
<빵 굽는 고양이>의 한 장면. ⓒ애니북스
음식이 좋고, 요리(이 만화에서 주인공은 유독 '빵'을 자주 만들어 먹고 또 좋아한다.)하는 게 좋다면, 그리고 실력까지 갖춰져 있다면 그 방면으로 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결국 그녀는 제빵제과를 배우고 언니와 함께 커피숍을 차리기에 이른다. 대박일까? 쪽박일까? 그건 여기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반복되는 일상을 긍정적 에너지로 채워 나가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다. 그 앞에 어떤 것들이 있든, 내 옆에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동반자가 있을 테니까.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슬펐다가 빵을 배우게 되어 기뻤다가 카페를 하게 되어 설렜다가 주변의 멋진 카페들에 기가 눌렸다가... 그렇게 들떴다가 진정되는 날들 속에 카페 BABA 문을 엽니다."
(본문 중에서)
이 만화는 '빵 굽는 고양이'라는 제목에 걸 맞게 빵과 고양이에 대한 상세하고 알찬 정보들로 가득하다. 따로 섹션 페이지를 통해 총 11가지의 빵 만드는 실질적 레시피를 상세히 알려주며 아울러 만화 속에서 주인공의 제빵제과 실력의 당위성까지 확보하고 있다. 또한 중간 중간에 고양이를 키우며 고양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아는 고양이의 행동들을 주인공의 말을 통해 비교적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느슨한 듯 알차고 얇지만 꽉 찬 만화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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