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삼체>
예원재는 문화대혁명으로 저명한 물리학 교수 아버지를 잃고 내몽골 벌목장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사랑을 꽃피우지만 배신당한다. 감옥에 갇혔다가 기밀 프로젝트에 스카우트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성간 통신 기술을 내보이고자 노력한다. 그녀는 태양을 이용해 전파를 훨씬 강력하게 증폭시키는 방법을 발견하지만 또다시 배신당하고 방법이 채택되지도 않는다. 그녀는 인간에 대한 짙은 환멸을 맛본다.
한편 2024년 현재, 전 세계에서 최고의 과학자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30명에 이르는 숫자다. 옥스퍼드 대학의 베라 예 교수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녀의 장례식으로 핵심 제자 5명이 오랜만에 모인다. 그중 고분자 나노섬유 개발 회사를 이끄는 오기의 눈에 갑자기 웬 숫자가 보이더니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어느 날 젊은 여자가 접근하더니 이상한 말을 남긴다. 한편 5인방 중 진과 잭은 베라가 죽기 직전에 했다는 기이한 게임에 접속한다.
과학자들의 죽음을 조사하는 클래런스 형사는 자연스레 옥스퍼드 5인방의 뒤를 쫓는다. 그는 웨이드 밑에서 일하는데 영국 정부뿐만 아니라 전 세계 권력의 비호를 받는 세력인 듯하다. 그들은 예원제, 세계적인 석유 회사를 이끄는 에반스 그리고 옥스퍼드 5인방을 조사하고 엮으면서 점점 '삼체'의 실체로 다가간다. 과연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최고의 SF소설을 원작으로 한 최고의 기대작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SF 소설가 류츠신은 20세기 말에 데뷔해 중국 SF계를 넘어 아시아 SF계의 신기원을 이룩해 나갔다. 단연 압권은 <삼체> 시리즈일 텐데, 위대한 SF 소설가 켄 리우가 직접 번역을 맡아 중국 SF소설 최초로 미국에 정식 출간되었고 아시아 최초로 SF 소설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했다. 그는 중국 현대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중국 미래사를 묘사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체>는 일찍이 2024년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로 손꼽혔는데, 류츠신의 <삼체>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에 그런 면이 크다 하겠다. 인간에 대한 지독한 환멸이 한 천재 과학자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게 하였으니,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다. 나 또한 일정 부분 이상 동의하니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다.
전 세계에 수십 억 명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지만 사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 비슷비슷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세상이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는 뜻일 테다. 그런데 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고 말이다. 극 중에서 예원제의 한 길 사람 속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과연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환멸을 이겨낼 수 있을까?
수많은 한 길 속 생각, 그리고 외계의 존재
<삼체>는 크게 인간에 대한 환멸과 외계 신호 전송 이야기, 닥쳐올 외계의 위협에 대응하는 이야기, 전 은하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로 나뉜 원작을 450여 분의 8부작으로 축약시켜 놓았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즉 옛 중국의 이야기와 현 영국의 이야기를 오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구멍이 보인다거나 하지 않는다. 원작과 큰 틀에서 같을 뿐 디테일은 다르니 말이다.
모든 것의 시작, 예원제가 외계에 신호를 전송하게 된 이유로 문화대혁명을 제시한 건 탁월해 보인다. 중국을 넘어 인류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로 남을 만한 집단 광기 친위 파괴 운동이라 할 만한데 눈앞에서 겪었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 분노, 트라우마로 남았을 테다. 거기에 중요한 순간마다 마주치는 믿기 힘든 배신의 연속... 인간에 환멸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외계의 존재가 중요해진다. 태양 3개가 불규칙하게 움직여 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문명이 주기적으로 리셋되는 곳에 사는 외계 종족 '삼체'는 예원제의 신호를 받고 지구로 이주하고자 한다. 삼체 함대가 지구에 오려면 400년이 남은 상황, '지자'라는 양자 크기의 컴퓨터가 지구의 모든 걸 실시간으로 삼체 함대에 전송하는 가운데 누구도 알 수 없는 '한 길 사람 속'의 생각만으로 삼체 대항 구상을 하는 '면벽자'가 뽑힌다.
옥죄어 오는 외계의 침공에 지금 우리는 준비해야 할까, 나 몰라라 하면 될까, 지구 밖으로 도망쳐야 할까, 현재 가진 기술오 선제 타격해야 할까. 지구상 수십 억 명의 생각은 모두 제각각일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까지 가닿는 심상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고 나중에도 그럴 것인데, '후대를 위해 해야 합니다'라며 환경 이슈를 논한다. 지구라는 터전이 빠르게 아파가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침묵의 봄> 이후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이 시작되어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음에도 후대에 대한 인식은 크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더 빠르게 개발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기술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바꿔 버린다.
이처럼 <삼체>는 화려한 볼거리가 당연히 극의 중심에 놓이는 여느 SF 영상 콘텐츠와 다르게 전지구적으로, 거시적으로 고심하게 만든다. 외계의 침공은 자그마치 400년 이후이니 만큼 애매하게 현실감이 없어서 투철한 사명감 내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아예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막말로 400년 후에도 지구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하여 '스페이스 오페라'의 느낌을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반면 미스터리가 가미된 '과학 지식' 위주의 현실적 SF를 기대했다면 크게 반길 것이다. 개인적으로 스페이스 오페라를 바랐고 과학 지식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잘 봤다. 예원제의 선택이 이해가 가는 이상한 마음, 현재와 먼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봐야 하는지에 관한 고심,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까지 가닿은 심상이 물밀듯 몰려온다.
인간을 파괴할 외계 종족이 실제하고 또 쳐들어 오고 있다는 전제에서 '외계 종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른 무엇이든 대신할 수 있다. 이미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장밋빛 미래의 상이 지워진 지 오래라는 걸. 암울한 미래만 그려진다는 걸. 그럼에도 딱히 뭘 하고 있진 않다는 걸. 그저 지금을 살고 있을 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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