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아메리칸 나이트메어>
2015년 3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 벌레이오 메어섬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른 오후, 자신을 에런 퀸이라고 밝힌 젊은 남성이 경찰에 신고하기를 전날 밤에 여자친구 데니즈 허스킨스가 납치되었다는 것이었다. 일단 경찰이 출동했고 에런이 있는 집으로 향했는데 특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유일한 사건 관계자인 에런을 신문하기로 한다.
'피해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에런, 벌레이오 경찰서의 맷 머스터드 형사가 담당한다. 에런의 주장은 대략 이랬다. 밤중에 잠수복을 입은 괴한들이 들이닥쳐 자신을 포박하고 데니즈를 납치해 갔다. 와중에 자신에게 약을 먹이고 카메라를 설치해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 하지만 정작 납치범들의 얘기를 엿들으니 그들의 목표는 데니즈가 아니라 앤드리아였다는 것이었다. 앤드리아는 에런의 전 약혼자였다. 그들은 에런에게 15,000달러를 요구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아메리칸 나이트메어>는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한적한 동네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난 기상천회한 일들을 다룬다. 집에서 납치를 당한 것도 악몽 같지만 믿어 의심치 않는 경찰당국의 파렴치한 대응이야말로 진정 악몽 같아 보인다. 제목이 눈에 띄면서도 적절하다.
남자친구가 살인자? 여자친구의 자작극?
에런의 얘기는 누가 들어도 의심이 갈 만한 구석이 많았다. 고작(?) 15,000달러를 요구하려고 굳이 집까지 쳐들어가 사람을 납치하다니,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약에 취해 있었고 카메라가 설치되어 행동에 제약이 있었다고 하지만 여자친구가 납치되고 수 시간이 흐른 뒤 다음 날에야 신고를 했다니, 심히 의심쩍다. 또한 전 약혼자에게 미련이 있다는 걸 여자친구에게 들켜 사이가 애매해진 상황이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머스터드 형사는 느닷없이 에런을 살인자로 몰아간다. 데니즈를 살해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처리 방법을 생각한 뒤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에런은 변호사가 필요했다. 한편 납치 신고 이튿날, 범죄 전문 기자를 통해 데니즈의 육성이 담긴 오디오파일이 경찰에 전달된다. 그녀는 굉장히 차분한 어조로 잘 있다고 말했다. 조작일 수 없는 게, 옛일과 납치 당일에 있었던 일을 읊조렸다.
상황은 데니즈의 납치 사건 배후설로 흘러간다. 그렇게 차분한 게 말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신고한 지 불과 3일째 되는 날 데니즈가 650km 떨어진 허팅던비치에 나타난다. 그녀의 고향 집이었다. 납치범이 풀어준 것이었다. 상황은 이제 영화 <나를 찾아줘>의 현실판처럼 보인다. 여자친구에 의해 치밀하게 직조된 무시무시한 자작 치정극 말이다.
수사는 하지 않고 의심만 하는 경찰
이제 데니즈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그녀는 납치된 후 풀려나기까지의 처절하고도 치욕스러운 나날을 상세하게 풀어놓는다. 집에서 납치되어 트렁크에 실린 후 어딘가로 끌려간다. 숲 속의 집이었고 납치범이 대뜸 말한다. 네가 아닌 앤드리아를 납치하려 했었으니 48시간 내에 풀어주겠다고 말이다. 그러며 젠틀한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돌변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믿냐며 성관계 비디오를 찍어야 한다고 말한다. 데니즈로선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서로 합의한 것처럼 해야 한다고 한다. 데니즈로선 역시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진짜로 풀려난다. 이후 그녀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고민 끝에 경찰에 찾아가지만 경찰은 오히려 그녀를 의심한다.
신상에 큰일이 터졌을 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경찰'일 것이다. 나라의 녹봉을 먹고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니 말이다. 그들도 인간인지라 살신성인의 자세까지 바라진 못하겠지만 피해자와 범죄자를 혼용하고 수사다운 수사도 하지 않는 짓을 하면 안 되는 게 아닌가. 그러곤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발뺌하면 안 되는 게 아닌가.
끝나지 않는 아메리칸 나이트메어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에런과 데니즈가 신변의 결정적인 위협에서 벗어났음에도 경찰, 언론, 인터넷 키보드 워리어들에게 신음하고 있을 때 자신이 데니즈 납치범이라고 소상히 밝힌 이의 메일이 언론사에 도착한다. 그가 말하길 계속 에런과 데니즈를 사기꾼으로 몰아가면 곧 또 다른 납치를 저지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났다.
벌레이오에서 65km 떨어진 더블린에서 납치 미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현장 근처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통해 납치범의 신상을 알아냈고 현장을 급습해 체포했다. 매슈 멀러라는 백인 남성이었다. 더블린 경찰서의 미스티 카라우수 형사가 끈질기게 추적했고 결국 그가 에런을 납치했던 납치범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경찰 조직에도 영웅이 있었다.
에런과 데니즈는 드디어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경찰과 언론에게 살인범, 사기꾼, 괴물이라는 확정 어린 폭언을 들었고 인터넷상에선 그 이상이었다. 이 세상에 그들 편은 없어 보였고 영원히 고통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카라우수 형사의 끈질긴, 그러나 한편으론 당연한 수사가 그들을 살렸다.
불과 10년도 안 된 2015년에 세계 최선진국이자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정녕 '아메리칸 나이트메어'다. 경찰이 한 일이라곤 영화 <나를 찾아줘>를 열심히 보고 되지도 않는 소설을 써서 애먼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했다는 정도다. 이런 일은 자세하게 공론화되어야 한다, 계속. 세상에 믿을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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