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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별 것 아닌 걸로 성난 사람들이 펼치는 난장판 <성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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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성난 사람들(비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성난 사람들> 포스터.

 

대니는 마트에 숯불 화로를 반품하려다가 못하고 그냥 나온다. 숯불 화로를 낡은 트럭에 태우고 가려는데 웬 하얀 벤츠 SUV가 가로막는다. 화난 대니가 꿱 소리를 지르니 SUV 주인이 가운뎃손가락을 들고는 내뺀다. 대니는 이내 쫓아간다. 하지만 잡지 못하고 부촌의 정원만 밟아 SNS에 올라간다. 그는 하얀 벤츠 SUV 주인을 기필코 찾아내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고자 한다.

한편 하얀 벤츠 SUV 주인 에이미는 가운데손가락을 들고 도망갔으니 잘한 건 없지만 황당하다. 낡은 트럭 주인의 시비가 도를 지나친 것 같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잡아 죽일 듯이 난폭하게 쫓아오니 정말 운이 나빠도 너무나도 나쁜 날인 것 같다. 안 그래도 그녀는 요즘 우울하다. 악착같이 일하며 가정주부 예술가 남편 조지와 어린 딸을 건사했지만, 남편과 거리가 멀어진 것 같고 시어머니는 사사건건 간섭한다. 언제쯤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대니도 우울하긴 매한가지다. 모텔 일을 꽤 크게 벌이던 부모님은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한국에서 머물고 있고, 같이 사는 동생 폴은 허구헌날 게임하며 코인 같은 소리가 하고 자빠져 있으니 말이다. 대니 자신도 스스로를 도급업자라고 소개하지만 실상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괜찮았던 과거는 가 버리고 지금은 돈이 없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숯불 화로를 켜놓고 죽음을 맞이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성난 사람들의 불평

 

가끔 믿을 수 없을 만큼 분노에 휩싸여 막말과 막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대부분의 경우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지만 오히려 당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 일이 커지지 않는다. 그런데 종종 분노에 휩싸인 사람들끼리 서로를 향해 분노를 난사해 일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종잡을 수 없을뿐더러 어디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분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고 어디까지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성난 사람들(비프)>은 공개 이후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고른 성적을 올리며 승승장구 중이다. 미드 <워킹 데드> 시리즈의 '글렌'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고 우리에게도 영화 <버닝> <미나리> <놉> 등으로 매우 익숙한 배우 '스티븐 연'이 주연을 맡았다. 실로 오랜만의 드라마 출연인데, 그야말로 열연을 했다.

'성난 사람들'이라는 한국어 제목에 앞서 ‘BEEF’라는 원제를 살짝 들여다보자. '성나다'는 '몸시 노엽거나 언짢은 기분이 일다' '거칠고 격한 기운이 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반면, '비프'는 '소고기'라는 익숙한 뜻 말고도 '불평' '불평을 하다' '~와 싸우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성난 사람들'이 기분의 변화라면 '비프'는 직접적인 행동이다. 이 작품은 (비록 한국어와 영어의 이상한 조합이지만) '성난 사람들의 비프'라고 해야 맞겠다.

 

그들은 왜 성이 났을까?

 

대니와 에이미, 에이미와 대니, 그들은 왜 성이 났을까?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공통점만 빼곤 사는 모습이 천지 차이인 그들은 왜 똑같이 성이 났을까? 누구나 성을 낼 수 있으니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왜 성을 이어가고 급기야 자신이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모든 걸 파탄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분노를 폭발시킨 걸까? 들여다보면, 정작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특히 상대방에게.

그러니 그들이 성을 내는 이유의 궁극을 찾아보면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다. 결코 상대방이 아니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을 테다. 대니는 앞이 환하게 켜질 가능성이 없는 것 같고, 에이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게 꼬여서 풀어질 기미가 없는 것 같다. 그때 하필 서로의 앞에 서로가 나타났고, 결국 비슷한 결의 마음이 세차게 부딪히고 만 것이다.

주위를 둘러볼 필요도 없이 나만 해도 아주 작디작은 걸로 티격태격하다가 매우 큰 문제로 번질 때가 꽤 많다. 오히려 큰 문제로는 싸우지 않는다, 협력을 하면 했지. 'BEEF'의 불평이라는 게 뭔가, 소소한 것에 불평불만을 쏟아내지 않는가. 문제는 불평불만의 굴레를 끊어내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더군다나 대니와 에이미처럼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불평불만의 티키타카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말이다.

불평불만은 전염병이다.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주위로 쉽게 옮는다. 그리고 만연해지면 걷잡을 수 없다. 전체가 침울해지면서 활기를 잃는다. 싹을 잘라야 한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개별적 이야기

 

<성난 사람들>의 두 주인공을 제외하고서라도 대부분의 주요 인물이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제작, 연출, 각본을 맡은 이성진 감독 또한 그렇다. 이 작품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삶을 촘촘하게 들여다봤다. 누군가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가난하면서도 돈 들어올 구석이 없는 반면, 누군가는 평생 아무 일을 하지 않고도 떵떵 거리며 살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다. 성공하고자 떠난 이민이든 모국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어 떠난 이민이든.

'특수'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삶에 '보편'적인 성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져 예측하기 힘든 '개별'적인 사건들이 터진다. 하나의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히고설켜 나비효과처럼 퍼져 나간다. 그 시작은 대니의 큰소리일까 에이미의 가운뎃손가락일까,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형성한 성격과 성향 그리고 환경 때문일까. 이 작품은 일련의 시건들이 단순히 현재의 현상이 아니라 과거의 본질에서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누구나 숨기고 싶은 과거와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상당 부분 규정한다. 다행히 규정하지 않으면, 지금의 나를 상당히 괴롭힌다. 극중에서 에이미의 경우가 규정하는 쪽이고 대니의 경우가 괴롭히는 쪽이다. 평생 지니고 갈 수밖에 없으니 (숨긴 과거를) 들여다보고 (말하지 못할 비밀을) 보살펴야 한다. 아니면 에이미와 대니처럼 터뜨리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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