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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전미체조협회 팀닥터에게 선고된 175년 형의 전말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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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 2018년 1월,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중요한 판결이 행해졌다. 정골의학 전문가이자 미시간주립대 교수였던 전 미국 국가대표 체조팀 팀닥터 래리 내서에게 최대 175년 형이 선고된 것이다. 그는 이미 아동포르노 소지죄로 6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지난 30여 년간 치료를 빌미로 160여 명이 넘는 미성년 여성과 성인 여성을 성추생한 혐의가 더해졌다. 실제 피해자는 5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가히 어마어마한 수치들이 나열되어 있는 데에서 판결의 중요성이 느껴지는데, 우리가 이 판결에서 느껴야 하는 건 수치뿐만 아니라 이 판결이 선고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이 판결의 시작점이 된다고 할 수 있는 2016년 9월의 고발, 2017년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퍼진 미투 운동, 그리고 2018년 1월의 판결까지의 맥락도 중요하지만 더 심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권력'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는 2018년 1월의 래리 내서 판결의 전말을 들여다보며 여기에 깊숙히 관여되어 있는 전미체조협회의 사악한 이면과 올림픽과의 관계 그리고 미국 체조의 역사까지 파고든다. 작품의 제목은, 재판 당시 피해를 증언한 '생존자' 카일 스티븐스가 남긴 말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려 돌아온다"에서 가져왔다.


유일하게 위로받을 안식처에서 행해진 악마의 행위


사건의 시작은, 'USA 투데이 네트워크' 산하 <인디애나폴리스 스타>지(이하, <인디 스타>)의 2016년 보도였다. 전미체조협회가 인디애나폴리스 스포츠 센터에 위치해 있었는데, <인디 스타>가 전미체조협회가 협회 내 성 학대 사건을 잘못 대응하는 모습에 대해 보도한 것이다. 그들은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피해자나 그 부모의 서명 혹은 직접 목격자가 없는 한 해당 이야기를 '소문'으로 취급한다고 했다. 성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아닌, 성 학대를 행한 코치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사항이었다.  


해당 기사가 나가고, 바로 레이철 덴홀랜더가 제보를 해 왔다. 그녀는 코치가 아니라 의사에게 성 학대를 당했다고 했다. 이어 2명의 전 체조선수의 연락이어 이어졌다. '래리 낸서'라는 이름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작품 속 생존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래리 낸서는 학대의 다른 말인 고통스러운 훈련으로 힘들고 지친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친절한 어른이었다고 한다. 


물리적 치료를 해 주는 건 물론, 심적으로 위로를 해 주고 몰래 먹을 것도 가져다주었다고. 하지만, 그 인지하고 사심 없고 친절하기까지 한 믿을 만한 어른이라는 탈을 쓴 채 수십 년 동안 악마 같은 짓을 일삼아왔던 것이다. 아이들로서는, 지친 심신을 치료받고 위로받을 유일하면서도 최후의 안식처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행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 


학대와 다름없는 고통스러운 훈련의 양상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학대와 다름없는 고통스러운 훈련의 양상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10점 만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따 전 세계를 놀래킨 루마니아의 체조선수 나디아 코마네치, 벨라와 마르타 카롤리 부부의 작품이었다. 이후 카롤리 부부는 미국으로 망명하여선 미국 체조팀을 맡는다. 그들의 방식은 '잔인함' 그 자체로, 학대와 구분이 되지 않는 가혹한 코치법으로 성공을 일궈낸 것이다. 더불어, 불과 15살의 어리디 어린 나이로 성공한 나디아 코마네치의 사례를 가져와 전 세계 체조선수 평균 나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2010년대 미국 체조팀 수장은 여전히 마르타 카롤리였으며, 어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학대가 마찬가지인 가혹한 코치법으로 미국 체조를 세계 최고로 이끌었다. 그녀 아래 전미체조협회의 스티브 페니 회장이 있었고, 그의 보호 아래 아이들에게 성 학대를 일삼는 코치와 팀닥터 래리 낸서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미국 체조의 '성공'만을 위해,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고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이 작품은 래리 낸서의 30여 년간의 아이들 성 학대의 이면에 이런 추악한 진실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의 주요한 등장인물이 '매기 니콜스'인데, 그녀는 2015년 6월에 부모님을 통해 래리 낸서에 의한 성 학대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전미체조협회는 물론 FBI에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고 한다. 그 사이, 출중한 실력을 자랑하는 매기 니콜스는 5명이 정식 멤버로 뽑히고 3명이 예비로 뽑히는 2016년 리우 올림픽 대표 선발 대회에서 6위를 하고도 뽑히지 못했다. 주지했듯 마르타 카롤리와 스티브 페니가 좌지우지했는데, 전미체조협회의 팀닥터를 고발한 매기 니콜스를 아니꼽게 본 게 아닌가 하는 심증이 있을 뿐이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역사적 판결의 결과


시기상으로, 래리 낸서의 역사적인 판결은 '미투 운동'의 영향권에 있지 않다고 보기 힘들다. 비록 이 판결에서 카일 스티븐스가 남긴 말이 미투 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 문구로 남아 있지만, 애초에 미투 운동이 없었으면 이 판결 자체가 없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미투 운동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이끌었던 운동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DNA에 각인되어 문화로서 자리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국 체조와 전미체조협회와 팀닥터 래리 낸서까지 아우르는 이 거대 스캔들을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었던 건 올바름을 향한 많은 이의 '연대'이다. 엄청난 심신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나선 전 체조선수들, 틀린 걸 바로잡는 것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한 신문사와 기자들, 그리고 변호사와 판사와 부모님들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워한다. 거대한 악의 소굴에서 '래리 낸서'라는 조무래기 하나만 겨우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비록 스티브 페니 회장을 체포하며 소기의 목표를 실현했지만, 비단 전미체조협회뿐이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정녕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조직에서 얼마나 많은 악마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은밀하게 성적으로 학대하며 즐겨왔겠는가. 시간이 지났다 해도 끊임없이 되살려내야 한다. 다시 한 번 이 말을 전하며 끝맺고자 한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려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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