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 <SBS 스페셜-젠야(前夜)>-열도의 위험한 밤
일본은 1990년대 초반 ‘버블 경제’가 붕괴한 후 10여 년 동안 장기불황을 경험한다. 이후 출범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 의해 장기불황에서 탈출하는 듯하였으나,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로 또 다시 큰 타격을 입는다. 일본 경제는 계속해서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거세게 타오르는 경제 악화라는 불길에 기름을 들이붓는 사태가 벌어졌으니,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다. 일본은 단순한 경제 악화 위기에서 총체적 위기에 봉착한다.
세계적 현상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유례없이 높은 실업률을 자랑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젊은이의 어려움을 빗대어 지금 시대를 4포 시대(취업, 연애, 결혼, 출산)라고 하는데 반해, 일본은 니트족(무위도식하며 부모에 의존하는 젊은이), 프리타(자유로운 아르바이트생,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일본의 본성, 그 기원
프리타족 중에 한 젊은이가 인터넷에 자신의 처지와 일본의 처지를 원망하며 글을 쓴다. 이 암울한 상황을 뒤집으려면 전쟁을 해야 한다는 논리의 글이었다. 또 걔 중에는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처럼 피해의식으로 무장해,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 특히 한국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다. 그들 때문에 자신들이 피해를 입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런 피해의식과 더불어 위기의식은 어디서부터 기인하는가? 그 기원을 찾아가 본다.
많은 학자들이 입을 모은다. 지금의 일본은 역사상 최대의 위기이자 유례없는 분열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위기가 피해의식과 맞물려 1930년대 군국주의 시대와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일본의 1930년대 군국주의의 이면에는 이처럼 위기의식과 더불어 피해의식이 도사리고 있었다.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사건이 그 대표적인 발로였다. 당시 일본은 정부, 군대, 자경단까지 총출동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조선인을 학살했다. 항상 한반도라는 ‘칼’이 자신을 겨누고 있기에, 이 관동대지진의 혼란을 틈타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는 망상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자는 논리였다. 이해할 수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일본의 ‘본성’이라는 것이었다. 지가네(地金) 즉, 일본의 우경화 현상은 일본의 변하지 않는 본성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일본의 본성은 메이지유신을 지나, 임진왜란을 지나, 신공황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공황후 전설은 일본의 역사왜곡의 뿌리이자, 일본의 한반도 침공 정당화의 핵심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서기>, <고사기> 등의 일본 고대 문헌에는 신공황후가 지금의 한반도에 해당하는 지역인 삼한(三韓)을 직접 획득하였다고 전해진다. 일명 ‘삼한정벌설’로,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의 주요한 근거로 내세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허구이고 신화적 이야기에 불과하다. 또한 역사 왜곡임이 분명하다는 것은, 신공황후가 신라왕 파사매금(파사이사금)의 항복을 받아 미질기지(미사흔)를 인질로 잡아 왔다고 적혀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파사이사금은 서기 80~111년까지 재위한 신라왕이고, 미사흔이 인질이 된 해는 각각 391년과 402년이다. 신공황후는 269년에 죽었다.
이는 일본의 신라에 대한 두려움이 표출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은 이때부터 이미 한반도를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 ‘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라의 침공에 대비한 성을 쌓기도 한 것이다. 이에 모자라 선공을 하기에 이른다. 바로 663년 지금의 금강인 백촌강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교과서를 통해서 배우기로는,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백제 잔류세력이 일본에 구원을 요청하여 신라・당의 연합군과 맞섰지만 철저히 패배하고 말았다는 것.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또한 있지도 않는 그리고 있지도 않을 신라의 침공에 대비해 지었던 태재부에서 출동한 군사들이었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일본의 본성은 계속 이어진다. 1592년 임진왜란 전야, 일본은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을 떠올리며 전의를 다지는 것이었다. 한반도에 의해서 침공 당할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위기의식으로 발전했고 이는 결국 한반도 침략 정당화로 귀결되기에 이른다. 때마침 전국 통일을 한 후 넘치는 에너지를 방출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한반도 침략 정당화는 메이지유신 시대에 마침내 ‘정한론(征韓論)’으로 귀착된다. 그 이면에는 여전히 ‘한반도=일본 열도를 노리는 칼’이라는 상황논리가 있었다. 러일전쟁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러시아가 한반도라는 칼을 쟁취해 일본 열도를 노리기 전에 먼저 선공을 취해야 한다는 논리.
파국으로 치닫는 일본과 전야
작년 2012년 12월 극우파 대부 아베 신조가 일본 총리가 된다. 일찍이 2006~2007년에 총리에 있었던 그는, 당시에 경제 불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 이번에는 일본 경제 부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일명 ‘아베노믹스’를 천명했다. 과감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경제 성장전략을 주 내용으로 하며, 단적인 예로 엔화를 무작위로 찍으며 엔화를 평가 절화시키고 있다.
덕분에 주가는 급등하고 당장의 경제는 성장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 자국만을 위한 국가 부흥책으로, 주의 국가에는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다. 또한 만약 실패했을 시 세계 경제에 입히는 타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었다.
이런 그가 갑자기 일본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법제국 장관을 집단적자위권 찬성파로 전격 교체하고, 9월 의회에서 자위권 도입을 천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헌법 개정이 시행되든 되지 않든 간에, 현재 일본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일본에 만연한 불안, 불만, 불신 그리고 피해의식과 위기의식이 단순한 갈등과 위기를 넘어 일본의 본성을 부채질하고 있다. 뿌리 깊은 피해의식과 위기의식이 결국에 전쟁을 불러일으키고 말 것이라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명백한 모습들이 말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지금이 전쟁 직후의 ‘전야’일수도 있다. 최소한 프로그램 부제처럼 ‘열도의 위험한 밤’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지금 일본은 역사에서 보여 왔던 진행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던가. 이대로 가면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말한다. 자신으로 하여금 전쟁에 참가하게 하지 말아달라고.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생기는 걸 원치 않는다고. 잘못된 길인지도 모르고, 잘못된 길인 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고 있는 일본. 더 이상 ‘적(敵)’을 찾고 ‘적(敵)’을 만들어 칼을 휘두르는 일은 그만두어야 하겠다. 단지 껍데기에 불과한 민주주의와 평화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오마이뉴스" 2013.8.12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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