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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낯선 곳에서 찾은 소울메이트, 또 다른 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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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소피아 코폴라, 한국 나이로 올해 50세가 된 미국 대표 여성 감독이다. 그녀는 아버지 덕분인지 태어나자마자 영화에 데뷔하는 영광을 얻었는데, <대부>가 그 작품이다. 그렇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헐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불리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이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누구의 딸도 아닌' 소피아 코폴라 말고 '그 아버지에 그 딸' 소피아 코폴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대부> 3부작에 모두 출연한 그녀, 3부에서는 최악의 연기를 펼쳐 영화 자체에 해악을 끼쳤다는 평까지 얻었다. 


그녀의 연기 흑역사는 감독으로 전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1999년 장편 연출 데뷔를 이룩한 그녀, 영화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았다 싶었을 것이다. 이후 그녀의 필모는 누구의 딸도 아닌 '소피아 코폴라' 자신만의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다고 평하기에 충분하다.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각본상을,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칸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는데 공통적으로 극명한 호불호를 동반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영화 외적으로, 스파이스 존즈 감독과의 결혼 경력과 2009년 루이 비통과의 협업으로 직접 디자인한 SC 백을 출시한 것도 유명하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감독으로서 그녀의 이름을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400만 달러 정도의 소규모 자본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대박'을 터트리기도 한 이 작품은, 감독뿐 아니라 두 주연 배우인 빌 머리와 스칼렛 요한슨에게도 수많은 상을 안긴 '비평 대박' 작품이기도 하다. 두루두루 호불호 없는 완벽한 작품인 셈.


낯선 곳에서의 만남, 가까워지는 그들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미국 영화배우 밥 해리스(빌 머리 분)는 산토리 위스키 CF 촬영 차 일본 도쿄에 와 있다. 중년의 그는 멀리서도 아내와 사소한 집안일 결정을 위해 통화하곤 한다. 그런 한편 도쿄는 무료하기 짝이 없다. 해외까지 와서 힘들지 않게 많은 돈을 벌고 많은 사람이 그를 알아보지만 정작 진짜 그 자신은 없는 게 아닌가. 통역도 있고 보디가드도 있지만 의사소통은 없다. 그는 외롭다. 


예일대 철학과를 나온 수재 샬롯(스칼렛 요한슨 분)은 갓 결혼한 사진작가 남편을 따라 일본 도쿄에 와 있다. 어리디 어린 그녀는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학교를 나와 앞날이 창창해 보이지만, 정작 자신은 뭘 할지 몰라 불안한 고민을 이어가는 중이다. 남편은 허구헌 날 외근에 출장을 일삼는다. 그녀를 돌보기는커녕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없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 물론 일본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그녀는 외롭다.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던 그들, 호텔 바에서 우연히 만난다. 유일하다시피 혼자 있는 서양인이어서였을까, 서로에게 끌리기보다 서로를 알아채고 서로를 바란다. 극심한 무료함과 외로움에 그저 의사소통이 되는 상대가 반가웠을 것이다. 하지만, 무료함과 외로움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로를 찾고, 즐거운 만남을 갖는다.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그들, 하지만 빌은 계약에 매인 몸으로 며칠 후에 떠나야 한다. 


실존과 사랑 본질을 짚어내다


영화는 인간의 실존 본질과 사랑 본질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본질로 들어가기에 앞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외'여행'에 설렘과 기대를 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행보다 해외에 방점이 찍히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세계 어딜 가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지만 증폭될 수밖에 없는 어려움들이 도처에 있는 것이다. 필자도 소싯적 여행 아닌 경험과 돈을 위해 호주에서 1년을 산 적이 있는데 도착 이틀만에 집에 가고 싶어 울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어려움은 참고 견딜 수 있는 종류이기에 실존까지 도달해 건드리진 않는다. 하지만, 망망대해 혼자만 있는 것 같은 두려움과 다를 바 없는 외로움이 엄습하면 나라는 심연으로 파고든다. 밖에선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진짜 위기에 닥쳤을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면 그 사람의 진짜를 알 수 있듯, 군중 속의 고독에 닥쳐 보면 진정한 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밥과 샬롯이 힘들어 하는 건 외로움이 아닌 허무함 때문일 수 있겠다. 다른 듯 같은 이유로 둘 다 자신의 '위치'라는 게 보잘 것 없고 쓸모없이 느껴졌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어란 말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기나 한가, 지금까지 한 일은... 우린 실존 본질의 고민을 계속 해왔어야 했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런 시간을 갖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극중 도쿄라는 곳은, 그래서 본격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완벽한 '판'이자 '장'이라 할 수 있다. 즉, 누구든 밥과 샬롯일 수 있는 건 당연하고 누구든 밥과 샬롯이어야 한다. 그들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오직 사랑, 서로가 또 다른 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제목에도 나와 있듯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전혀 사랑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사랑의 외피를 쓴 꿈 또는 일상 도피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라고 보는 게 맞다. 아니, 사랑이라고 보고 싶다. 그건, 사랑이어야 한다. 인간의 본질에, 인간의 실존 본질에 가 닿으면 그곳에 있는 오직 한 가지는 사랑인 것이다. 


밥과 샬롯은 비록 생면부지에 나이 차이도 엄청나고 각자 가정도 있다. 낯선 곳에서 외롭고 따분한 시간을 떼울 말상대일 뿐일 수 있다. 그건,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인식하고 있다면 별 게 아니겠지만, 인식하고 있지 않다면 다시 없을 인연이 아닐까. 자신도 모르는 새에 끌리는 인연이라면 '소울메이트'라는 철 지났지만 명확한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겠다. 내가 아닌 내 안의 본질이 찾아다닌 반쪽. 소울메이트는 단순히 오랜 시간의 육체적, 정신적 교감과 만남만으론 형성되기 힘들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의 또 다른 나인 것이다. 


그들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낯선 곳에서, 나를 돌아보고 진짜 나를 만나, 서로에게서 진짜 나를 발견했을 테다. 그들 간의 사랑은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던, 애써 멀리 했던 진짜 나를 향한 위로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을수록, 서로를 찾을수록, 서로를 사랑할수록 그 시선은 나를 향한다. 고맙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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