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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남자 배구, 언제쯤 비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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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배구가 위기에 처했다. 2012년 올림픽에서 여자 배구팀은 4강의 쾌거를 이룩한 반면 남자 배구팀은 12년 째 예선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재작년에는 스포츠계를 강타한 승부조작으로 많은 유명 배구선수들이 코트를 떠났다. 모 기업의 경영난으로 드림식스 배구단은 해체 위기설이 나돌기도 하였다. 다행히 '러시앤캐시'에게 스폰서쉽을 받아, 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계속되는 난제에서 프로 8년 차를 맞이한 한국 남자 배구는 이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지. 그때가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는 어둠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남자 배구는 1958년 아시안게임 은메달로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최초 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1978년, 2002년, 2006년 아시안게임을 제패했고(1966년부터 2010년까지 금메달 3개, 은메달 6개, 동메달 3개 획득), 1984년부터 2000년 올림픽을 5연속 진출해 아시아 최강팀의 면모를 이어갔다. 임도헌-하종화-박찬종 라인에서 김세진-신진식-후인정까지 최고의 공격수를 보유해 왔다. 특히1995년 월드리그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6위를 마크할 당시, 김세진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 6명 안에 드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 남자 배구의 위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4년 올림픽부터 예선 탈락의 수모를 겪은 이후 올해까지 12년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002년과 2006년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2010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16년 만에 동메달을 따는데 그쳤다. 아시아를 호령하고 세계를 향해 힘찬 비상을 했던 한국 남자 배구는 왜 이렇게 추락하게 되었을까. 



2013 월드리그에서 한국 남자 배구팀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내년 월드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앞날이 불투명하다. ⓒ연합뉴스



세계 배구 흐름 따라잡지 못해...

1990년대 배구는 공격에 많이 치우쳤다. 걸출한 공격수가 많았던 한국 남자 배구는 세계 무대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맞설 수 있었다. 2000년 대에 들어와 세계 배구는 브라질의 쌈바 리듬에 휘둘렸다. '영원한 우승 후보'라는 칭호를 달고 있는 브라질 남자 축구팀의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힘과 스피드 배구. 그것이 2000년대를 호령하고 있다. 

반면, 한국 남자 배구는 아직 90년대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라이트 공격수를 이용한 한방 공격 배구. 그것이 한국 남자 배구의 현실이다. 세계 배구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머물고 있는 것이다. 박철우-김학민-김요한 등의 걸출한 공격수가 있지만 그들을 받쳐줄 스피드있는 조직력이 부족한 상태이다. 공교롭게도 한국 남자 배구의 위기가 시작될 시기와 프로 배구 개막이 거의 일치한다. 거기에는 프로 배구가 시작되면서 한국 배구 코트로 날아온 용병들이 있었다. 

용병 시대의 개막

04-05시즌, 한국 프로 배구가 출범한다. 2년 뒤, 06-07시즌 혜성같이 등장한 용병들 사이에서 삼성화재의 레안드로는 단연 빛났다. 이후 2년 동안 역시 삼성화재의 안젤코, 그 이후 2년 동안 삼성화재의 카빈이 한국 배구의 공격을 주도한다. 5년 연속 득점 1위를 용병이 독점한다. 09-10시즌에는 카빈이 득점 1100을 돌파하며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한다. 

한국 남자 배구의 한방 공격 위주 배구 스타일은 용병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래도 월등한 공격의 용병들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가다 보니 세터들의 기술과 다른 한국 공격수들의 기술 저하가 동반되었다. 세터들은 게임이 안 풀릴 때 무조건 용병들에게 공을 올렸고, 한국 공격수들은 레프트로 자리를 옮겨 보조 공격수로 전락해 버렸다. 국제 무대에 나가게 될 때, 용병 부재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르게 되었다. 

스타 플레이어의 부재와 국제 무대의 부진

국내 리그에서 보조 공격수로 전락해 버린 한국 공격수들은 국제 무대에서 맥을 못 추었다. 계속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년에는 승부조작으로 많은 배구 선수들이 코트를 떠났고, 배구계는 더욱 위축되었다. 

스타 플레이어들은 종적을 감추었다. 문성민-김요한 등이 잘 생긴 외모와 출중한 능력으로 많은 조명을 받았지만, 국제 무대에서의 미미한 존재감과 계속되는 배구계의 악재 속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4년 만에 돌아온 희망인 올림픽은 진출조차 하지 못했다. 예선전에서 3승 4패로 8개국 중 6위를 기록해 세계예선 2위까지 주어지는 올림픽 본선권을 얻지 못했다. 계속되는 국제 대회 부진은 국가대표의 존재 의미까지 흔들었다. 실력이 있어도 국가대표에 뽑히는 것이 탐탁치 않은 것이다. 국내 리그에서도 설자리가 제대로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대표에 뽑혀 부상이라도 당하게 되면 연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배구 꿈나무의 부족도 심각한 상황이다. 안그래도 어려운 운동인 배구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점점 더 부족해지고 있다. 

국제 경제력을 키워야

총체적 난관에 부딪힌 한국 남자 배구의 부활을 위해서는 어떠한 조치가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를 뽑는다. 소통과 투자, 장기적 계획. 배구계를 위한 소통의 기구를 만들고 진정성있는 소통을 해야하고, 배구를 위한 현실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긴 시간에 걸쳐 탄탄히 끌어올릴 수 있는 장기적 계획까지. 

결국은 국제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중을 불러들이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사하고 있는 야구 리그, 전통과 역사가 숨쉬고 있는 축구 리그. 이 두 종목은 각각 2006년·2009년 WBC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2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며 부활하고 비상했다. 배구도 예전의 빛났던 시절의 부활을 위해서는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수많은 배구 꿈나무와 대중들의 폭발적 관심을 받아 일어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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