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벤 애플렉의 <아르고>
영화 <아르고>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500년 동안 이란 땅은 '샤'라는 이름의 왕들이 통치했다. 1950년 이란 국민들은 세속주의 민주주의자인 무함마드 모사테크를 수상으로 선출했다. 그는 영미(英美)의 석유 보유를 국영화하여 국민들에게 이란의 석유를 돌려주었다. 그러나 1953년 영미는 쿠데타를 꾀하여 모사테크를 퇴위시키고 레자 팔레비를 취임시켰다.
팔레비는 부유와 방종으로 유명했다. 반면 국민들은 굶주렸다. 그는 무자비한 국가 치안 정보국 '사바크'를 통해 권력을 유지했다. 고문과 공포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란을 서구화시키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고 국민들은 격분했다. 결국 1979년 이란 국민들은 팔레비를 타도했다.
추방되었던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란을 통치하기 위해 귀환했다. 이란은 보복과 암살, 혼란의 시대로 빠져 들어갔다. 한편, 팔레비는 미국으로의 망명을 허락받았다. 이에 이란 국민들은 미국 대사관으로 몰려가 팔레비가 귀환하여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지길 요구했다.
미국인의 이란 탈출을 위한 가짜 영화 만들기
미국인의 이란 탈출을 위한 가짜 영화 만들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 <아르고>의 2분 여의 프롤로그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영화를 제대로 짚고 이해하기 위해선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이다. 이른바 '이란 혁명', 국민들의 손으로 왕조를 타도하고 공화정을 수립한 후 이어지는 일련의 행동이다. 팔레비를 향한 분노는 미국을 향한 분노로 바뀌었고, 곧 미국 대사관을 향한 분노로 바뀐다.
미국 대사관은 점령 당하고 60명이 넘는 미국 시민들은 인질로 잡히고 만다. 한편 미국 대사관 직원 6명은 극적으로 탈출해 테헤란에 있는 캐나다 대사 집으로 피신한다. 하지만 머지 않아 혁명수비대는 6명이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집집마다 '사냥'을 시작한다. 이에 미국 CIA는 차라리 안전한 인질들보다 캐나다 대사 집에 피신해 있는 직원들을 탈출시키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작전도 최악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탈출 전문가 토니 멘데스(벤 애플렉 분)는 아들과 통화를 하며 영화 <혹성탈출>을 보다가 영감을 얻는다. 가짜로 영화를 찍는다 하고, 그 6명을 캐나다인 로케이션 스카우터로 위장시키고자 한 것이다. 곧 상부의 허락을 받고 본격적인 가짜 영화 만들기에 돌입하는데...
영화는 날카로운 연출력과 유머를 장착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여러 모습과 이란 혁명수비대를 통해 보는 폭력적 민족주의의 모습, 그리고 할리우드 풍자와 드러나지 않는 개인의 위대함 등을 두루두루 살핀다. 이 모든 걸 지나치더라도 가짜 영화 제작과 극적 탈출의 실화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와 가치를 지닌다.
미국을 향한, 이란을 향한 서슴없는 비판과 풍자
미국을 향한, 이란을 향한 서슴없는 비판과 풍자.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미국은 세계 경찰을 자임하며 전 세계를 '정리'하려 한다. 그것이 그 나라와 그 나라 국민들을 위함이고 전 세계를 위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모든 건 미국을 위한 일일 테다.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은 이란의 혁명수비대에 의한 치명적 위험에서 미국 시민을 탈출시키는 게 주요한 사정이지만, 실상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에 의한 치명적 개입과 오판에서 시작된 것이다.
영화는 그런 미국의 이면을 이란 여성의 기자회견 장면을 통해 상당히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미국은 인권을 옹호한다지만, 실상 인권을 옹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인권을 침해합니다.' 그리고 미국 시민 사회는 이란이라는 나라뿐만 아니라 일반 이란인을 향한 분노를 서슴지 않고 표현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것인가. 그 즉시 미국은 그들이 비난하는 이란과 다를 바 없어진다.
한편, 이란의 폭력적 민족주의를 향한 비판은 영화 전반에 퍼져 있다. 그들이 인질로 잡고 있는 수십 명의 미국인들과 그들이 사냥하려 하는 6명의 미국인들 또한 미국의 입장을 조금도 반영하지 못한다. 사실상 그들은 잘못이 없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프레임을 씌워 미국을 협박하는 건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잘못이다.
잠깐이지만 등장하는 이란에서의 'KFC'는 할리우드와 함께 미국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상징이다. 문화적 점령의 첨병이라고 할까. 이란은, 이란인들은 투철한 반미 감정을 지니며 미국을 소비한다. 영화는 그들의 무지에 의한 내부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씁쓸함을 동반하는 위대한 개인의 탄생
씁쓸함을 동반하는 위대한 개인의 탄생.ⓒ워너브라더스코리아
할리우드와 합작해 가짜 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착수한 CIA, 저명한 제작자와 함께 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가짜이지만 진짜 같아 보여야 하기 때문에, 그 어떤 영화를 제작하려 할 때보다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즉,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속여먹여야 한다. 그렇지만, 그건 그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매일같이 하는 일이란 게 사람들 속여먹는 것이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안다. 수많은 영화들이 제작 직전에 엎어지고, 심지어 제작이 되었으면서도 개봉되지 못한다는 걸.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엄청난 돈이 몰려드는 곳이 영화판 할리우드이다. 그러므로 '가짜 영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진짜 영화'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므로 '가짜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다.
결국 작전을 성공시키는 건 다름 아닌 '개인'들이다. 미국이라는 세계 경찰도 아니고 CIA라는 세계 최고의 공작기관도 아니며, 할리우드라는 세계 최고의 영화판의 힘도 아니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토니 멘데스라는 개인의 용단과 그와 함께 한 할리우드 제작자의 믿음과 인내이다. 때로 개인은 사회, 국가, 조직보다 힘이 쎄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이와 같을 것이다. 영화가 비판하는 것들인 미국이나 이란이나 할리우드의 실체는 개개인의 삶의 향상이나 긍정적 도움에 있는 게 아니라 그들 각자도생에 있다는 사실. 더 이상의 정의는 없고, 더 이상의 긍극적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대한 개인의 탄생과 부각은 씁쓸함을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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