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모를 사람이 없을 유명한 사진 잡지 <라이프>가 폐간되었다. '신문 및 광고시장의 침체'가 이유였다. 즉,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의 범람으로 잡지를 구독하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광고 수익도 하락하여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다. 아직 스마트폰이 활성화되지 않은 당시에도, 인터넷 때문에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70년 역사의 <라이프>가 폐간한 것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이 활성화되어 전 세계적으로 보급된 2010년 이후는 어떨까. 





얼마 전, 영국의 유명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전격적으로 종이 신문 폐간을 결정했다고 한다. 온라인으로만 운영을 한다고. 한때 40만 명의 구독자를 자랑했지만, 5만 명으로 떨어졌고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고 한다. 잘 나갔던 만큼 고꾸라지는 건 한순간이고, 그만큼 여력은 더 없을 것이다. 자그만치 30년 역사의 신문이었다. 다른 매체들이라고 다를까. 


우리나라로 머리를 돌려보자. 그 중에서도 출판사로. 지난 4월 22일자 한국일보 기사 '새 도서정가제발 출판 '빅뱅'... 대형 업체가 흔들린다'를 보면, 대형 출판사들의 매출이 그야말로 곤두박질친 것으로 나왔다. 새 도서정가제로 인한 결과라고 하는데, 근 10년 간은 매년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외쳐댈 정도로 출판이 내리막길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거기에 새 도서정가제로 구간을 구입량이 현저히 떨어져, 사실 구간 스테디셀러로 먹고사는 전통적 대형 출판사들의 매출이 급감한 것이다. 


문제는 새 도서정가제때문에 대형 출판사들의 매출이 급감하고 출판업계가 이대로 주저앉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종이 매체가 폐간하고, 종이책으로 주된 수익을 창출하는 출판사의 매출이 급감하는 데에 목을 매고 있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인디펜던트>의 경우 온라인판으로 이미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수요의 방향과 방법이 달라진 것 뿐이다. 반면, 우리나라 출판사의 경우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같은 출판 매체이지만, 종이책으로도 전자책으로도 온라인으로도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이다. 수요의 방향과 방법이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인디펜던트>처럼 종이 대신 인터넷으로 읽는 게 아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것으로 옮겨 갔다는 것.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 범람으로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지만, 반대로 정보 범람으로 인해 제대로되고 믿을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엄선된 정보와 지식 그리고 지혜의 집합체인 책을 접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읽기'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볼 때 책을 읽든 인터넷을 보든 똑같은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읽기' 대신 '보기'로 콘텐츠 소비 방향을 틀었다는 사실이다. 블로그의 시대가 지나고 인스타그램, 유투브의 시대가 온 것이다. 


영상 매체를 접하며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건, 활자 매체를 접하며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제작 기술과 능력이 알맞게 갖춰졌고, 수요는 원래 존재하고 있었으며, 유통까지 실행 가능하게 되었으니, 빅뱅과도 같은 변화가 당연히 일어날 것이었다. 그때가 지금이다. 


이제와서 종이책을 대체할 새로운 사업 모델을 인터넷 기반으로만 찾으면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답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만이 답은 아니다. 중요한 건 영상 매체에 대항할 수 있는 콘텐츠의 개발이다. 사람들이 '읽기'를 멈추지 않게 하는 게 답이고, 그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그걸 모르는 것 같다. 


종이냐 인터넷이냐 하는 분쟁이 나무라면 읽기냐 보기냐, 활자냐 영상이냐 하는 분쟁은 숲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나무도 보되 숲도 보는 안목을 기르면 좋겠다. 아니, 그래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던지고자 한다. '바보야, 문제는 읽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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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틀 브라더>



<리틀 브라더> 표지 ⓒ아작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베이교가 처참하게 폭발했다. 미국은 9.11을 능가하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라고 규정한다. 그러곤 대 테러 단체인 국토안보부로 하여금 용의자를 색출하게 한다. 운 나쁘게도 테러가 있었던 곳에서 가장 가까이에 마커스 얄로우를 비롯한 네 명의 '십 대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국토안보부가 판단하기에 의심스러운 기기가 있었다. 


마커스는 학교 방화벽을 젖은 휴지처럼 뚫어버리고, 보조 인식 소프트웨어를 속이고, 학교가 그를 추적하기 위해 심어 놓은 감시칩을 박살 내기도 한다. 그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천재적인 관심과 능력을 보여준다. 테러가 일어났을 때 그와 친구들은 <하라주쿠 펀 매드니스>라는 대체현실게임을 하는 중이었고, 위에서 말했던 능력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의심스러운' 기기들을 지니고 있었다. 국토안보부는 그 자리에서 그들을 체포한다. 게임을 하던 이 십 대 아이들은 졸지 테러리스트 용의자가 된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이 소설은 <리틀 브라더>라는 제목을 취했다. 어쩔 수 없이 어떤 소설이 생각나게 한다. 다름 아닌 조지 오웰의 <1984>. 그 소설에 나오는 '빅 브라더'. 통칭 '감시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디서 무엇을 하든 빅 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시스템이다. 만약 이 소설이 <1984>와 결을 같이 한다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감이 잡힌다. 빅 브라더가 되려는 국토안보부를 위시한 정부와 자유를 되찾기 위한 십 대 아이들(마커스를 위시한)의 대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 내용이 현실로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연쇄 테러가 발생했다. 6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다. 테러의 배후가 명확하진 않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농후해,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 IS 격퇴'에 대한 미온적 대응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은 지상군 투입 절대 불가를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빅 브라더 시대로의 이행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 무고한 시민들을 위협하는 테러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9.11을 능가하는 테러가 실제로 발생했으니, 감시는 더 철저해 질 것이며 인권 및 기본권 침해를 간단히 무시하는 상위의 법이 만들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그야말로 소설 <리틀 브라더>의 내용이 실제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우연찮게 하루를 시간 차로 우리나라 광화문에서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가 있었다.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어김없이 정부는 물대포와 함께 캡사이신까지 분사했다. 이 모습 또한 <리틀 브라더>에 나오는 모습과 판박이다. 소설 속에서는 뮤직 페스티벌을 열어 '25살 이상은 아무도 믿지마!'라는 구호와 함께 자유를 울부짖었다. 정부는 이를 불법집회라 규정하고 해산을 요구하지만 응하지 않자 캡사이신을 분사하며 수백 명을 체포한다.


테러, 감시, 그리고 자유


한편 마커스는 국토안보부에 의해 개인 안보에 대한 모든 것을 탈탈 털린다. 국토안보부는 그를 용의자로 점찍고 그러하기에 그에 대해 모든 걸 알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반면 마커스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자신만의 개인 자료를 넘겨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모든 걸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그곳에서 영원히 풀려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가까스로 풀려 나온 마커스는 복수를 꿈꾼다. 언제 어디서나 그를 지켜볼 거라는 협박과 만약 잡혀갔던 사실을 발설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라는 협박을 이겨내면서 그는 자신의 장기를 이용해 그들에게 복수할 방법을 강구한다. 그러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들을 향한 복수의 길을. 그는 단지 자유를 되찾고 싶어한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큰 힘이 되어준다.


"이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가 정부를 조직했으므로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통치자의 동의에서 비롯한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인민은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고,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원리를 바탕으로 그런 형태의 권력을 조직해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본문 중에서)


이 소설은 테러로 시작되지만 전체적으로는 테러 이후에 자행 되는 무자비한 대 테러 작전이 주를 이룬다. 작전의 일환으로 감시 체제가 전에 없이 심화되었고 그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피해를 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커스와 그의 친구들인 것이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자유는 마치 공기와 같아서 느껴지지도 않지만, 그 자유가 떨어져 나가버리면 참을 수 없을 때가 온다. 그렇지만 복종은 때로 굉장히 달콤하다. 마커스는 그 달콤한 복종에 대항해 힘겨운 자유로의 싸움을 계속해나간다. 


한편 이 감시 체제를 환영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커스 학교의 교감, 마커스의 아버지, 마커스의 친구 찰스 등이다. 이들에게는 수천 명의 인명을 희생 시킨 테러리스트 체포가 그 어떤 것보다 위에 있다. 본래 이들은 자유보다 복종과 권력을 중요시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들 중 마커스의 아버지는 젊었을 적에 엄청나게 급진적인 활동을 했었지만 '꼰대'가 되면서 지키는 것에만 급급하게 되었다. 


21세기 십 대 혁명 매뉴얼


모르긴 몰라도 마커스와 친구들, 그리고 자유를 추종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국토안보부와 정부에 대항해도 이길 순 없을 것 같다. 그들은 너무 견고하고 거대하다. 설령 가까스로 국토안보부를 파쇄한다고 해도 테러가 계속되는 한 정부는 대책으로 또 다른 무엇을 획책할 것이다. 그건 국토안보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또 다른 보는 눈들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십 대다. 우리네 역사의 큰 분수령이었던 4.19 혁명의 주체가 십 대 였듯이. 그들이 못하면 아무도 못한다. 소설은 십 대만이 할 수 있는 혁명의 방식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며 중간 중간 소설 답지 않은 행태(?)를 보이는데, 도무지 알기 힘들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전문가급 지식들의 향연이 그것이다. 21세기 십 대 혁명 매뉴얼 같다. 


그러하기에 이 소설은 유쾌 통쾌 상쾌하다. 암울한 세상이지만 십 대의 상상력이 뿜어내는 열기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바꾼다. 바뀐 세상은 그들의 것이고, 나는 그 세상을 응원한다. 앞으로도, 꼰대가 되어서도, 그들을 응원하길 바란다. 그들의 세상이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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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소설 읽기] <오후, 가로지르다>



<오후, 가로지르다> 표지 ⓒ아시아


"사람 키 높이의 간이 벽으로 막아서 칸막이 사무실을 만든 것을 큐비클이라고 하는데, 인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미국 첨단 기술 회사들은 큐비클에서 일한다." ('삼성과 인텔', RHK)


어느 책 덕분에 '큐비클'이라는 단어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회사는 일을 하러만 다닌다는 투철한 신념과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오직 나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과학적인 고찰이, 회사에 큐비클을 들여놓게 했나 보다. 


옛날에는 이런 식이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열린 공간 안에서 다 같이 일을 하며, 상급자일수록 뒤에 배치되어 하급자를 감시할 수 있게 하였다. 상명하복 문화의 연장선상이라고 할까. 물론 큐비클 공간에서도 상급자는 뒤쪽에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또는 그만의 다른 공간이 있겠지.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직접적으로 볼 수 없다. 


우리네 직장살이가 꼭 이럴까


"사무실 입구에서 여자의 '큐비클'까지는 꼭 마흔두 걸음이었다."로 시작되는 하성란 소설가의 <오후, 가르지르다>는 회사의 공간 변화를 고스란히 겪어온 이름 없는 여자를 통해 현대 사회의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 자체로 우리네 모습이다. 


여자의 큐비클까지 걸어가다 보면 갖가지 큐비클들이 눈에 띈다. 전시회 포스터를 붙여 놓고, 티셔츠를 걸어두는가 하면, 그림 엽서를 붙여 놓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눈에도 낡고 색이 바랜 큐비클들이 나온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경계선에 진입한 것이다. 그러곤 얼마 가지 않아 여자의 큐비클이 나온다. 그렇다. 여자는 입사한 지 꽤 오래된 고참 사원이다. 그녀는 여전히 이런 공간에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보자. 회사의 큐비클 공간을 넓게 해 놓은 것 같다. 갖가지 아이템으로 자신을 내보이려 한다. 다른 게 있다면, '자신을 내보이려' 한다는 점이다. 큐비클이라는 공간 자체가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일 텐데 말이다. 진일보 했다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은 크게 봐서 큐비클 문화에 대한 반동일 것이다. 즉, 여전히 우리 사회는 큐비클 문화가 지배적이다. 우리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지만, 막상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진 못한다. 큐비클 안에서만 민낯을 드러낸 채 제한된 자유를 누리고, 밖으로 나올 때면 가면을 쓰고는 완전한 자유의 존재를 애써 부정한다. 


이렇게 보면 큐비클의 부정적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큐비클을 양계장에 비유하면서 결정적인 한방을 먹이는데, 일명 '큐브 농장'이다. 여자는 자신이 일하는 그곳을 큐브 농장이라고 표현한다. 닭은 양계장이라는 한정되고 비좁은 공간에서 인간의 목적에 의해 다양하게 사육된다. 알을 위해, 고기를 위해, 궁극적으로 돈을 위해. 하등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인간의 처지와. 


단절과 불통, 자족의 현대인


여자는 말한다. 가장 두려워 하는 건 '한순간에 모든 큐비클들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그러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자신만의 공간을 찾을 것이다. 그러곤 전보다 더욱더 견고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것이고 절대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단절과 불통, 자족의 현대인이라면 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는 뻔하다. 회사라면 돈을 더 벌기 위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한 방편이고,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존재는 단절과 불통, 자족을 오히려 부추긴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대화'는 많아졌다. 문제는 실제가 아닌 가상에서의 대화라는 점이다. 


자신의 실체는 숨긴 채 다른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면에서 1인 방송 등으로 자신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또 그걸 보고 열광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어떤 희망이랄까, 그런 게 보인다. 한편으론 서글프다.


소설은 끝까지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엄마도 돌아가셨고, 전남친도 세상을 떠나고 없는, 여자에게 남아 있던 유일한 관계는 과거 그녀에게 이유 없이 뺨을 때린 이름 모를 상사와 채팅으로 이야기하는 옆 큐티클의 최 뿐이다. 하지만 그 상사 또한 오래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소통을 원하고 관계를 소망하는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죽음이 그녀를 가로질러 간다. 


아시아 출판사에서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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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소셜포비아>



영화 <소셜포비아> 포스터 ⓒCGV 아트하우스




무장으로 탈영한 후 3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군인. 이 사건이 보도되던 날 어김없이 인터넷은 들끓는다. 군인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글과 댓글들, 그리고 그렇고 그런 악플들. 그 와중에 '레나'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가 폭언을 남긴다. 가차 없이 날아오는 폭언에 대한 폭언들. 사건은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 계속되는 레나의 폭언. 군인을 욕하는 걸 참을 수 없는 몇몇 남자 네티즌들은 급기야 한 데로 똘똘 뭉친다.  


레나의 신상을 털고, 레나와의 '현피'를 계획한다. 직접 찾아가서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속셈이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레나의 싸늘한 시신이었다. 현피 과정을 인터넷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던 터라, 모든 게 인터넷으로 적나라하게 퍼지고 외려 이들이 엄청난 지탄을 받는다. 이들은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레나의 타살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한다. 


'회손녀' 사건을 모티브로 하다


영화 <소셜포비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유도의 왕기춘 선수에게 폭언을 일삼은 일명 '회손녀'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왕기춘 선수는 금메달이 유력했는데 아쉽게도 은메달에 그치자 어떤 네티즌이 그의 홈페이지에 폭언을 남겼고, 이를 본 다른 네티즌이 발끈해 설전이 벌어졌다. 이에 회손녀는 자신의 신상을 털어보라고 도발했고 결국 주민등록번호, 사진, 전화번호 등이 털려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회손녀는 이들을 '명예회손' 한다고 맞대응했다. 회손녀는 '명예회손'에서 나왔다. 


7년 전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시의성이 떨어질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당시보다 현재의 '신상 털이'와 '현피'가 훨씬 쉬워진 터라 오히려 시의성이 완벽하다 하겠다. 이 영화가 스릴러 드라마 장르이지만, 공포영화 못지 않은 공포를 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인터넷을 하고 SNS를 하는 누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지 않고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와 닿는 무엇이 있다. 



영화 <소셜포비아>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책 서평이나 영화 리뷰를 주로 하면서, 출판계나 영화계 전체를 위해서는 양질의 콘텐츠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필자이다. 그러다 보니 가차 없이 비판을 가하는 경우도 있고, 어떻게든 콘텐츠의 단점을 찾아내 들춰내는 경우도 있다. 사실 그럴 때마다 이런 비판들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두렵기도 한데, 언제 한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책을 가차 없이 비판한 서평을 올린 후, 책의 저자가 직접 글을 남기고 자신의 블로그로 서평을 퍼갔다. 그러자 저자의 지인들이 그 서평과 필자에 대한 욕 비슷한 걸 남기는 게 아닌가. 결국 필자는 그들을 향해 해명 비슷한 걸 남겼고, 저자의 중재로 마무리 되었다. 다행인 건 저자 분이 쿨하게 모든 비판들을 받아들이시고 중재를 해주셨다는 것. 그렇지 않고 반대로 행동했다면 그야말로 마녀사냥을 당할지 알 수 없었을 일이다. 그럼에도 객관적으로 본다는 미명 하에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타진요' 사건이 생각나게 하는 '마녀사냥단'


영화로 돌아가서, 레나와의 현피를 계획하러 갔다가 시신만 보고 지탄의 대상이 된 이들은 자신들에게 쏠린 이목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레나의 타살을 확신하고 자체 수사를 시작한다. 레나의 본명인 민하영의 이름을 빌려, 카페 '민진사(민하영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을 만들고 사람을 모아 여론도 조작하려 한다. 그리고 일전에 설전에서 레나에게 지고 인터넷 세상에서 완전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이 범인일 거라 확신하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그들 중에는 심지어 기업체 CEO도 있었다. 


레나 '마녀사냥단'은 이제 레나의 죽음을 밝히고자 다른 이를 심판하려 한다. 그들은 여전히 '마녀사냥단'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악랄해진다. 자신들의 앞날이 걸려 있는 만큼. 마지막에 그들의 의혹이 쏠리는 이는 다름 아닌 그들 내부의 어떤 이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그가 레나를 죽인 범인일까? 레나는 자살한 것일까, 타살된 것일까. 이 돌고 도는 마녀사냥의 끝은 언제 일까.


영화에 나오는 '민진사'를 보면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사건. 가수 타블로의 학력을 의심해 마녀사냥 그 이상 가는 집중포화를 날려 대며 타블로와 타블로 가족들을 나락을 떨어뜨린 희대의 사건이다. 당시에는 진짜라는 수많은 증거들과 재판에서의 승소도 소용이 없었다. 영화가 모티브로 삼은 회손녀 사건과 함께 인터넷 그리고 SNS 시대가 줄 수 있는 최악의 기억들일 것이다. 



영화 <소셜포비아>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무법천지 인터넷 세상


더 큰 문제는 이런 대형 사건들 보다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일 것이다. 그로 인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고 인생이 바뀌고 자살까지 생각했을 것이 아닌가. 인터넷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옹호만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인터넷 세상은 무법천지이다. 


영화는 잘 나가는 청춘 배우들은 변요한과 이주승이 이끌어 가는데, 개인적으로 배우 이주승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곱상하고 아담한 체구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서늘한 눈빛. 그는 껄렁하지만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양아치 아닌 건달 연기의 달인이다. 그의 연기를 보면 뒤가 없는 듯하다. 깊숙이 묻어 놓은, 절대 말할 수 없는 아픔 같은 것이 보인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그만큼 특징을 완벽히 살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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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 ⓒ마음산책

호주의 미래학자 로스 도슨은 한국의 종이 신문이 2026년에 사라질 것이라 전망했다. 지금부터 10 여 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데, 사실 지금 이 시점에 종이 신문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여전히 조·중·동의 경우 생각보다 훨씬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기는 하다. 100만을 전후한 숫자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디지털로의 이행을 시행했고, 종편(종합편성채널)도 확보하는 등의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현재의 종이 신문 형태로는 미래가 없다고 본 것일까?


그렇다면 '잡지'는 어떨까? 신문과 형태는 비슷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담고자 하는 바는 훨씬 무궁무진한 잡지. 지금은 잡지 하면 <맥심>, <GQ> 같은 잡지만 생각날 테지만, 사실 우리는 잡지에 굉장히 익숙한 편일 것이다. 적어도 지금 30대를 전후한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잡지를 접해봤음이 분명하다. 


소설을 조금이라도 본다면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문학동네> 등을 들어보았을 것이고, 어린 시절 만화를 조금이라도 보았다면 <보물섬>, <아이큐점프>, <소년챔프> 등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군인 시절에 익히 접했을 <맥심>, <GQ>, <아레나> 등과 미용실에 가면 배치되어 있는 <주부생활>, <우먼센스>, <레이디경향> 등의 라이프스타일매거진. 또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임>, <뉴스위크> 까지. 정말 샐 수 없이 많은 잡지들이 우리들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었고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잡지의 위기를 감지하고 나오다


하지만 잡지는 명백히 존재의 위기를 겪고 있다. 천정환 교수의 역작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마음산책)는 그런 잡지의 위기를 감지하고 나온 듯하다. 1945년 이후 70년의 한국 잡지를 창간사를 기준으로 담아냈는데, 총 123편이라고 한다. 언젠가부터 그 이름 만으로도 책을 집어 들게 하는 천정환 교수의 근현대 문학·문화 읽기의 일환이다. 그는 왜 잡지의 창간사로 시대를 읽으려 했는지? 다음을 읽어보자.  


"잡지의 제호와 창간사에는 그 잡지의 발행인이나 편집위원 또는 동인들이 시대와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또 '왜' 그 잡지를 창간(해야) 하는 지에 대한 생각이 집약된다. (중략) 잡지를 창간하는 일에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퍼뜨리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잡지를 중심으로 앎과 삶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이 관여한다." (본문 중에서)


이 지점이 잡지가 신문과 다른 점일 것이다. 그 시대와 밀접하게 조우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창간사에는 그 시작과 이유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야말로 잡지의 창간사만으로도 시대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잡지의 위기 시대에 굉장히 적절한 기획이라 할 수 있겠다. 궁금했다. 잡지의 역사를.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참여했을 것이 분명한 잡지(의 창간사)를 통해 시대를 들여다보는 건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대변하는 잡지의 창간사들을 실다


책은 1945~1949년,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의 일반적인 사회문화사를 나누는 보통의 시기 구분법에 따라 7장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그리고 당대의 정치·사회·문화·경제를 잡지를 통해 그려내고 뒤에는 시대를 대변하는 잡지의 창간사들을 실었다. 여기에서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잡지가 아무리 유명하고 특별해도 창간사가 그러지 못하면 실지 않았다는 점. 저자는 이 점을 명확히 한다. 이 책의 미덕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또한 저자는 정치·사회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문제의식 있는 그리고 당대를 대변하는 창간사를 실었다. 즉, 문제의식이 있고 당대를 대변하고 있다면 독재 정권의 기관지의 창간사도 실었고 그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기관지의 창간사도 실었다는 말이다. 


창간사는 그 자체로 명문이 많아서 읽는 것 만으로도 눈과 정신이 정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한창기가 쓴 <뿌리깊은 나무>, 함석헌이 쓴 <씨알의 소리> 창간사가 그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 자체로 오래 두고 읽을 만한 시대의 문장이라 생각한다고. 그 중에 <씨알의 소리> 한 문단을 옮겨본다. 


"정부가 강도의 소굴이 되고, 학교, 교회, 극장, 방송국이 다 강도의 앞잡이가 되더라도 신문만 살아 있으면 걱정이 없읍니다. 사실 옛날 예수, 석가, 공자의 섯던 자리에 오늘날은 신문이 서 있읍니다. 나는 정치 강도에 대해 데모를 할 것이 아니라 이젠 신문을 향해 데모를 해야 한다고 했읍니다. 사실 국민이 생각이 있는 국민이면 누가 시키는 것 없이 불매 동맹을 해서 신문이 몇 개 벌써 망했어야 할 것입니다." 

함석헌, <씨알의 소리>(1970) 창간사 중에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잡지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잡지는 무엇이 있을까? 1945년~1949년에는 <개벽>이 있다. <개벽>은 한국 근대 잡지사를 대표하는 1920년대의 종합지였는데, 일제에 의해 폐간되었다가 1946년에 복간되었다. 하지만 미국 당국의 방해는 일제 못지 않아서 오래가지 못했다 한다. 1950년대에는 단연 <사상계>다. 현대 한국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잡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 잡지는 1953년 장준하가 인수하여 '사상계'라는 이름으로 새로 시작되었다. 이 잡지는 1950~6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어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기본 자료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잡지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소설가 황석영이 약관 20세에 '입석부근'으로 <사상계>를 통해 등단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창작과비평>, 1970년대에는 <문학과지성>이 단연 눈에 띈다. 1960~70년대에는 그야말로 문학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백낙청은 창간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50 여 년 동안 <창작과비평>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권위와 활동력은 <창작과비평>의 성격을 규정 짓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는데, 그는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한다. 여하튼 <창작과비평>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치며 지주이자 보루의 역할을 해왔다. 


<문학과지성>의 경우는 동인지의 성격이 강하다. 김현으로 대표 되는 서울대 문리대생들의 동인들이 창간 했는데, 지금까지도 <창작과비평>과 함께 한국 문학의 주류로 거론되며 문단을 주도하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들은 한국 대형 출판사로 성장했는데, 그런 성장은 한국 문학과 인문학의 역량의 소산이라 해도 될 것이지만 자신들이 저항한 세력의 한 방면으로 들어갔다는 비판을 쉽게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1970년대의 <뿌리 깊은 나무>, <씨알의 소리> 등의 잡지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80년대는 잡지가 운동과 저항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말>, <한겨레>, <실천문학> 등은 지극히 80년대적인 잡지로, 당시 군사 정권의 탄압에 맞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이에서 생겨났다. 이 시대에는 수많은 잡지들이 폐간되었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잡지들이 1987년 새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안'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1990년과 2000년대 들어오면서 잡지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다. 시대와 긴밀하게 조우하는 잡지이기 때문이기도 한대, 이 시대에 접어들면서 잡지는 더 이상 전과 같이 시대를 선도할 수 없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민주화를 위해 최전선에서 활동했지만, 어정쩡하게 목적이 달성 된 후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할까. 수많은 잡지가 사람들로부터 급속히 관심을 잃어가고 새로운 성격의 잡지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대중 잡지의 시대가 온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인지하고 있는 '잡지'는 주로 이 시대에 자리 잡은 개념일 것이다.


잡지의 미래는 어떨까?


'일정한 이름을 가지고 호를 거듭하며 정기적으로 간행하는 출판물'이라는 뜻을 가진 잡지. 잡지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니 잡지의 미래가 보일 듯하지만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현재를 살펴보자면, '종이' 잡지보다 '인터넷' 잡지의 창간이 훨씬 쉬워 보인다. 실제로도 인터넷 잡지의 종 수가 종이 잡지를 따라잡고 있는 상황이다. 법 밖에 있던 인터넷 신문·잡지들이 2005년 언론 관계법 개정 이후 언론으로 정식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10 여 년이 지난 지금, 그 팽창 속도는 엄청나다. 


10 여 년이 훌쩍 넘은 블로그는 전성기가 조금 지났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과 파급력, 영향력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SNS와의 조우로 무시 못할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팟캐스트'야말로 현재 미디어의 대세라고 할 수 있는데, 언론과 잡지 기능의 일부에서 상당 부분까지 대체하고 있다. 이들 팟캐스트와 웹 언론이 단행본·잡지·신문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저자는 잡지의 미래를 어떻게 보았을까? 방대한 한국 잡지의 역사를 들여다본 후 잡지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조금 소홀히 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 보이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를 그라고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을까? 저자는 누구나 생각하기 쉬운 그래서 오히려 생각할 수 없는 잡지의 미래를 말하며 책을 끝마친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잡지의 미래이다. 


"첫째, 미래에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가 쓴 글을 나누고 돌려 읽기는 해야 한다. 그래서 '잡지'라는 글 모듬의 형식도 유지될 것이다. (중략) 둘째, 영원한 플랫폼이나 '매개'(미디어)는 없다. 당장의 패자처럼 보이는 네이버나 페이스북, 구글 들도 지금과 같은 형태와 위세를 영원히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미디어 역사, 나아가 문화사의 법칙이다. 그러니 '잡지스러운 것'도 끝없이 모양을 바꾸고 다른 '매개화'를 겪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원문으로, 기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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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갈라파고스

휴대전화 사용이 일반화되어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자 문자서비스는 무료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어 스마트폰이 출시되어 이 역시 일반화되자 이번에는 인터넷이 무료화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신조어와 함께 신인류(?)가 탄생한다. 이른바 '엄지족'이다. 한 개 혹은 두 개의 엄지손가락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대를 총칭하는 이 단어는, 사실상 거의 전 세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현재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인구가 약 3700만 명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2013년 12월 기준, 미래창조과학부)

 

그렇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인구 중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은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일 것이다. 그들은 제대로된 사고를 할 수 있을 때부터 '인터넷'을 수족처럼 여긴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전의 세대들은 인터넷을 따로 배우고 익혀야 했다. 익히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로 인해 변화한 세상에 대한 생각과 행동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전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엄지세대'


프랑스의 노 철학자 미셸 세르가 지은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갈라파고스)는 바로 이런 엄지세대들을 파헤치며 그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에 따르면, 이들 세대를 걱정스럽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은 이전까지와의 세상과 '다를'뿐이지 결코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성 세대는 그들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요컨대 우리의 아이들, 즉 신인류는 가상 세계에서 산다. 인지과학에 따르면 우리가 웹상에서 서핑할 때, 엄지를 사용해서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 위키피디아나 페이스북을 훑어볼 때 자극받는 뉴런과 뇌의 부위는 책, 칠판 또는 공책 같은 것을 사용할 때 자극받는 뉴런과 뇌의 부위와는 다르다고 한다... 이들은 그들의 조상인 우리 기성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인식하지 않을뿐더러, 이들이 정보를 취합하고 종합하는 방식도 우리가 늘 사용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한 마디로 이들의 머리는 우리의 머리와 다르다." (본문 중에서)

 

요즘 곳곳에서 이런 말들이 들려온다. "스마트폰 때문에 애들이 공부를 안 한다" "스마트폰 때문에 건강을 해친다" "스마트폰 중독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등등. 이런 부정적인 시선이 있는가 하면 반대되는 시선도 있다. "스마트폰 덕분에 편리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 "스마트폰을 잘만 사용하면 부정적인 게 한 개도 없다" 등등.

 

이런 긍정과 부정적인 시선은 극단적이라고 하기보다 서로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쪽에서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더욱 효과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려 하고, 또 스마트폰을 이용해 건강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한 도움을 주려 한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적당히 잘 사용하면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당사자의 문제라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저자는 이 엄지세대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정보수집에 뛰어나며, 상상력에 한계가 없고, 열린 사고를 지니고 있다. 또한 굉장히 능동적이며, 민주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만들어 낸 새로운 인류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니, 반대로 신인류가 컴퓨터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만들어 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하겠다. 그들은 굉장히 능동적인 존재들이니까.

 

흔히 작금의 IT혁명을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이은 제3의 혁명이라 칭한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피상적이고 더욱이 아직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진행형 혁명'의 시작에 불과한 단계를 설정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IT혁명보다 지식혁명이 맞는 말이고 이는 지식계에서 문자의 발명 그리고 인쇄의 발명과 버금가는 사건이다. 아니, 그런 혁명들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이제는 지식을 암기하여 머리를 꽉 채울 필요가 없어졌다. 또 다른 종류의 머리를 가지고 다니니까 말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독특한 일화 하나를 들려준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로마제국 시대 때 지금의 파리 지역인 루테니아의 초대 주교 성 드니는 참수형을 받게 된다. 그는 본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참수형을 받게 될 예정이었지만 그에 못미쳐 참수를 당한다. 이에 드니 주교는 잘려나간 머리를 양손으로 집어 들고 언덕 위로 올라가 샘물에서 머리를 씻은 다음 현재 생 드니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곳까지 걸어 올라갔다.

 

"머리가 잘려나간 엄지세대는 가득차기보다 제대로 구조화되었다는 과거의 머리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지식, 그러니까 바로 여기, 눈앞에 놓인 이 상자 속에 결집되어 물체화된 지식은 부팅되기만을 기다린다.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몇 번이고 수정되어 나름대로 정확성을 확보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필요가 없으니 떨어져나간 목이 남긴 빈자리를 슬며시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본문 중에서)


엄청난 속도로 변화는 이 세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저자는 성 드니 주교가 집어 들고 올라간 머리를 두고 지금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PC에 대조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언제든지 그 지식을 수렴할 수 있다. 이는 너무나도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이를 만든 사람도 이를 정말 잘 사용하는 사람도 그 엄청난 무엇을 온전히 알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대는 이를 점점 잘 사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이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변화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이 소용돌이를 주도한 젊은 엄지세대를 서포트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사실 노 철학자가 비슷한 세대의 구성원들에게 전하는 경고이자 부탁의 메시지들로 가득차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기존의 세대론 관련 책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것은, 신인류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조롱없는 이해 그리고 정감어린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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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책의 정신>


<책의 정신> ⓒ알마

인터넷이 점점 우리네 삶을 잠식해 들어갈수록 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중요성을 설파하기 위해 각종 독서운동, 도서관운동 등 책에 관련된 활동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가시적 성과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독서 활동 인구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고, IT 활동 인구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현재의 추세로 보건데, 이 둘 사이의 격차가 점점 벌어질 것은 자명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독서보다 인터넷(인터넷과 관련된)이 더 재미있고 손쉽다. 평균 300쪽이 넘는 책을 읽기 위해선 하루에 40~50쪽을 읽는다손 처도 약 일주일이 걸리고 또 엄청나게 집중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며 읽는 내내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처절한 생존 게임에 처한 현실에서 책이나 보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고 말이다. 


반면 인터넷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터넷 안에는 무궁무진한 정보와 지식들이 들어 있다. 검색만 하면 책에서 보다 훨씬 많은 '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질'의 차이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너무 많은 양에 압도되어 어느 하나에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전자책인데, 여기서는 전자책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다. 개인적으로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상관없다고 본다. 먼저 온전히 '책'에 대해 논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우리는 무슨 책을, 어떻게, 왜 읽어야 할까?


우리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 왜 책을 읽어야 할까? 강창래의 <책의 정신>(알마)은 그 답을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 저자의 말을 빌려 간단히 말해보자면,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면 무슨 책을 읽든 상관 없다. 주어진 책이 아닌 스스로가 선택한 책이라면 말이다. 어릴 때부터 많이 봐왔던 독서권장목록들이 생각난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1~3학년생(저학년)용 독서목록, 4~6학년생(고학년)용 독서목록, 중고등학생용 독서목록, 대학생용 독서목록까지. 심지어 직장인도 년차마다 독서목록이 다르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정해놓은 것일 테지만, 여기서 자신이 진정 읽고 싶은 책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억지로 읽게 되는 책은 아무리 좋아도 좋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 저자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비판적으로 읽기, 다른 하나는 앞의 것과 이어지는 방법으로 비교하며 읽기. 저자는 이 세상 모든 책은 다 하나의 편견이므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통해 어떤 생각을 접했을 때는 그 반대되는 생각도 반드시 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편견은 수많은 편견으로 해소가 되고, 비로소 오롯이 자신의 것이 된다. 그리고 이들의 생각을 끊임없는 건설적 비판으로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토론하는 건 꼭 필요한 행위로, 책 읽기의 노하우 중 필수이다. 


자, 책은 왜 읽어야 할까? 사실 이 질문이야말로 이 책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저자는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작금 100세 시대에서는 책이 아닌 곳에서 올바른 답을 얻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진리이다. 


책 읽기의 즐거움과 충격적 진실


이 책은 저자의 이런 생각들이 올곧이 투영되어 있다. 그가 제일 먼저 생각하고 내세우고 있는 건 '책 읽기의 즐거움'이다. 그건 책의 도발적인 소재와 주제에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책에 관련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명제를 가져와 우리 앞에 던져 놓는다. 그리고 온갖 자료에 근거한 사례와 사실로 파헤친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대혁명은 포르노소설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과학혁명은 아무도 읽지 않는 책에서 시작되었으며, 소크라테스와 공자에 관련된 사실들 중 아주 중요한 부분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책 <책의 정신>을 읽는 즐거움을 얻는 동시에, 책에 대한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사실에 대한 충격적 진실을 얻게 된다. 그 충격적 진실을 파헤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희열과 즐거움을 느낀다. 통쾌하기까지 하다. 이는 책을 읽는 방법을 넘어서, 올바르게 사고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그건 책의 4장에서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본성과 양육'이라는, 과학(뿐만 아니라 육아학, 심리학, 사회학 등에서도)의 양대 축에 대해서 책의 1/3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저자의 책읽기 방법론과도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위에서 말했던 비판적 책읽기와 비교하며 책읽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면서도 오묘히 얽히고 섥혀 있는 본성과 양육의 두 축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과 책들이 팽팽하게 마주보며 대립하고 있다. 저자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둘 중 어느 하나의 편도 들지 않는다. 대신 무수히 많은 이론과 그에 관련된 생각과 책들을 소개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비판적 책읽기를 느끼게 하고 실천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사라진 책의 역사>(동아일보사)와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알마),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넥서스)를 주요 메타북으로, 책의 학살을 깊이 있게 다룬다. 책에 대한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권력자들의 책 학살 이야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책의 매력 또한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책 자체를 사랑하고 아꼈던 책 학살 권력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도서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읽기의 즐거움으로 가득차있다.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최소한 두 가지의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첫 번째는 이 책 <책의 정신>을 읽는 즐거움이 충만했다는 것. 상당 부분 처음 들어본 이야기들이고 또 어려운 단어나 인물들과 이론들과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지루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실 정반대라고 할까. 그건 아마도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강의식 문체 덕분일 것이다. 


두 번째는 통상적 책 읽는 방법을 제시해 책 읽기의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 것에서 나아가 사고하는 방법을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몇몇 사실들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도록 도와주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것으로 저자가 바랐던 바는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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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서 인터넷은 본격적으로 우리들 삶에 깊숙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후 모든 것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고. 울었던 이들 중 대표적인 이가 '신문사'와 '잡지'였다. 온갖 정보와 잡다한 지식의 집합체. 본래 이들은 최신의 정보를 무엇보다 빠르게 전달하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지식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정보의 블랙홀 인터넷이 출현하자 이들은 급격히 쇠퇴하고 인터넷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이들이 기존에 해오던 일들의 파워 또한 급격히 쇠퇴한다. 책 서평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본래 언론 서평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고 한다. 유력 출판사인 사계절 출판사 강맑실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2000년대 초까지 언론 서평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종합 일간지 서평 섹션의 머리기사로 실리면 한 달 만에 2쇄에 들어가는 책이 많았을 정도니까. 그때는 언론 서평 외에는 책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독자도 언론 서평을 통해서 책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욕구가 강했다. 또 언론도 서평에 그만큼 신경을 썼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는 건 "책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라는 사실이다. 당시는 아직 인터넷이 활발해지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이후 인터넷의 막강한 위력 앞에 신문과 잡지는 물론이고, 책까지 그 위력이 급전직하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활자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발빠르게 인터넷언론들이 출현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중 대표적인 두 곳이 '프레시안'과 '오마이뉴스'이다. 각각 2001년과 2000년에 설립된 이 두 인터넷언론은 공교롭게도 진보 성향의 매체이다. 그리고 당시 또한 공교롭게도 진보 정권이었다. 이후 각종 부침과 악재, 성장을 거치며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안타깝게도 '프레시안'의 경우, 믿을만한 콘텐츠가 그리도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경영상의 이유로 올해 2013년에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였다. 


이 두 매체의 공통점은 또 있다. 그리고 이 공통점이 오늘의 주제인 것이다. 바로 '책'에 대한 애정. 정확히는 '책 서평'에 대한 이해와 애정. 이 두 매체는 방법은 다르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대중적 '책 서평'을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프레시안 books


프레시안 books 1호 갈무리 ⓒ프레시안


먼저 프레시안을 살펴보자. 오래전의 프레시안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정확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중적 '책 서평' 중에서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한다는 것. '프레시안 books'는 프레시안의 주요 챕터 7가지(뉴스, books, English, 협동경제사회, 이미지프레시안, 키워드가이드, 조합원커뮤니티) 중 하나로, 사실상 프레시안에서 제일 중요시 여기는 콘텐츠 중 하나이다. 


프레시안 books는 매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되는데, 2010년 7월 말에 시작해 2013년 10월 현재 161회로 만 4년째가 되었다. 현재 레이아웃은 기본적으로 8개의 서평과 2개의 특별 서평 내지 대담, 그리고 연재 4개에 특별 코너 2개이다. 초창기에는 블로거, 편집자들의 글도 소개하였는데 폐지되었다. 


프레시안 books를 믿고 볼 수 있는 건, 누가 뭐래도 최고를 자랑하는 서평가들의 퀄리티이다. 평균적으로 교수급이 배치되며, 단순히 책 소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강의급의 내용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대학신문>에서나 볼 수 있는 퀄리티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보물같이 생각하며 챙겨보는 글들이다. 1년, 2년 퀄리티에서 오는 신뢰가 쌓이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런데 한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도 있다고 한다. 퀄리티에만 신경을 쓰느냐고 대중성을 너무 무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즉, 너무 어렵다는 뜻이다. 또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서평보다 훨씬 길다. 서평이란 것이 독자로 하여금 책을 보게 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일진데 자칫 독자를 쫓아낼 수도 있다니,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그래도 그 퀄리티만은 유지해줬으면 한다. '책 서평'의 최후의 보루와도 같으니까. 


오마이뉴스 책동네


오마이뉴스 책동네 갈무리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책동네'의 경우, '프레시안 books'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프레시안 books는 언론사에서 서평에 적합한 전문가를 직접 뽑는 형태인데 반해, 오마이뉴스 책동네는 오마이뉴스가 지향하는 바와 같이 어느 누구라도 서평 기사를 올릴 수 있다. 물론 오마이뉴스 편집진의 날카로운 눈을 통과해야만 한다. 필자의 경우 작년 2012년 10월부터 주로 서평기사를 올려 1년째가 되었는데, 새어보니 200개의 원고를 보내 170개가 기사로 채택되었다. 


오마이뉴스 책동네야말로 출판계를 살릴 수 있는 많은 대안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을 읽고 손수 서평을 써서 올린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결코 수준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주지했듯이 편집진들의 손이 거쳐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썼다고 자부해도 편집진들이 봐서 '서평 기사'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탈락하고 마는 것이다. 프레시안 books가 내용상에서의 퀄리티를 자랑한다면, 오마이뉴스 책동네는 콘텐츠 자체의 퀄리티를 자랑한다고 할 수 있겠다. '독자'이자 '기자'의 입장으로 쓴 서평이기에.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문가들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용면에서의 퀄리티가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것. 거기에는 부족한 희소성도 있다.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지고, 어떤 사람은 매일 같이 서평을 쓴다. 어찌 책을 하루만에 읽고 매일 서평을 쓸 수 있겠는가? 또한 좋은 책을 소개한다는 의미보다, 이슈가 될만한 책을 소개한다는 느낌도 강하다. 어쩔 수 없다는 면도 이해가 가지만, 사실 책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주지했듯이 '서평'이란 것이 1차적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보게 만드는 다리 역할에 그 목적이 있지 않겠는가. 



'프레시안 books'와 '오마이뉴스 책동네'는 현재 최고의 '책 서평' 코너들이지만,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극화되어 있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그 접점을 찾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이 둘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출판계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최소한 축소되거나 사라지지만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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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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