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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 잡지 위기 시대에 잡지의 역사를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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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 ⓒ마음산책

호주의 미래학자 로스 도슨은 한국의 종이 신문이 2026년에 사라질 것이라 전망했다. 지금부터 10 여 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데, 사실 지금 이 시점에 종이 신문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여전히 조·중·동의 경우 생각보다 훨씬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기는 하다. 100만을 전후한 숫자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디지털로의 이행을 시행했고, 종편(종합편성채널)도 확보하는 등의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현재의 종이 신문 형태로는 미래가 없다고 본 것일까?


그렇다면 '잡지'는 어떨까? 신문과 형태는 비슷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담고자 하는 바는 훨씬 무궁무진한 잡지. 지금은 잡지 하면 <맥심>, <GQ> 같은 잡지만 생각날 테지만, 사실 우리는 잡지에 굉장히 익숙한 편일 것이다. 적어도 지금 30대를 전후한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잡지를 접해봤음이 분명하다. 


소설을 조금이라도 본다면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문학동네> 등을 들어보았을 것이고, 어린 시절 만화를 조금이라도 보았다면 <보물섬>, <아이큐점프>, <소년챔프> 등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군인 시절에 익히 접했을 <맥심>, <GQ>, <아레나> 등과 미용실에 가면 배치되어 있는 <주부생활>, <우먼센스>, <레이디경향> 등의 라이프스타일매거진. 또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임>, <뉴스위크> 까지. 정말 샐 수 없이 많은 잡지들이 우리들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었고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잡지의 위기를 감지하고 나오다


하지만 잡지는 명백히 존재의 위기를 겪고 있다. 천정환 교수의 역작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마음산책)는 그런 잡지의 위기를 감지하고 나온 듯하다. 1945년 이후 70년의 한국 잡지를 창간사를 기준으로 담아냈는데, 총 123편이라고 한다. 언젠가부터 그 이름 만으로도 책을 집어 들게 하는 천정환 교수의 근현대 문학·문화 읽기의 일환이다. 그는 왜 잡지의 창간사로 시대를 읽으려 했는지? 다음을 읽어보자.  


"잡지의 제호와 창간사에는 그 잡지의 발행인이나 편집위원 또는 동인들이 시대와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또 '왜' 그 잡지를 창간(해야) 하는 지에 대한 생각이 집약된다. (중략) 잡지를 창간하는 일에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퍼뜨리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잡지를 중심으로 앎과 삶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이 관여한다." (본문 중에서)


이 지점이 잡지가 신문과 다른 점일 것이다. 그 시대와 밀접하게 조우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창간사에는 그 시작과 이유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야말로 잡지의 창간사만으로도 시대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잡지의 위기 시대에 굉장히 적절한 기획이라 할 수 있겠다. 궁금했다. 잡지의 역사를.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참여했을 것이 분명한 잡지(의 창간사)를 통해 시대를 들여다보는 건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대변하는 잡지의 창간사들을 실다


책은 1945~1949년,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의 일반적인 사회문화사를 나누는 보통의 시기 구분법에 따라 7장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그리고 당대의 정치·사회·문화·경제를 잡지를 통해 그려내고 뒤에는 시대를 대변하는 잡지의 창간사들을 실었다. 여기에서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잡지가 아무리 유명하고 특별해도 창간사가 그러지 못하면 실지 않았다는 점. 저자는 이 점을 명확히 한다. 이 책의 미덕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또한 저자는 정치·사회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문제의식 있는 그리고 당대를 대변하는 창간사를 실었다. 즉, 문제의식이 있고 당대를 대변하고 있다면 독재 정권의 기관지의 창간사도 실었고 그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기관지의 창간사도 실었다는 말이다. 


창간사는 그 자체로 명문이 많아서 읽는 것 만으로도 눈과 정신이 정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한창기가 쓴 <뿌리깊은 나무>, 함석헌이 쓴 <씨알의 소리> 창간사가 그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 자체로 오래 두고 읽을 만한 시대의 문장이라 생각한다고. 그 중에 <씨알의 소리> 한 문단을 옮겨본다. 


"정부가 강도의 소굴이 되고, 학교, 교회, 극장, 방송국이 다 강도의 앞잡이가 되더라도 신문만 살아 있으면 걱정이 없읍니다. 사실 옛날 예수, 석가, 공자의 섯던 자리에 오늘날은 신문이 서 있읍니다. 나는 정치 강도에 대해 데모를 할 것이 아니라 이젠 신문을 향해 데모를 해야 한다고 했읍니다. 사실 국민이 생각이 있는 국민이면 누가 시키는 것 없이 불매 동맹을 해서 신문이 몇 개 벌써 망했어야 할 것입니다." 

함석헌, <씨알의 소리>(1970) 창간사 중에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잡지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잡지는 무엇이 있을까? 1945년~1949년에는 <개벽>이 있다. <개벽>은 한국 근대 잡지사를 대표하는 1920년대의 종합지였는데, 일제에 의해 폐간되었다가 1946년에 복간되었다. 하지만 미국 당국의 방해는 일제 못지 않아서 오래가지 못했다 한다. 1950년대에는 단연 <사상계>다. 현대 한국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잡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 잡지는 1953년 장준하가 인수하여 '사상계'라는 이름으로 새로 시작되었다. 이 잡지는 1950~6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어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기본 자료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잡지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소설가 황석영이 약관 20세에 '입석부근'으로 <사상계>를 통해 등단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창작과비평>, 1970년대에는 <문학과지성>이 단연 눈에 띈다. 1960~70년대에는 그야말로 문학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백낙청은 창간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50 여 년 동안 <창작과비평>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권위와 활동력은 <창작과비평>의 성격을 규정 짓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는데, 그는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한다. 여하튼 <창작과비평>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치며 지주이자 보루의 역할을 해왔다. 


<문학과지성>의 경우는 동인지의 성격이 강하다. 김현으로 대표 되는 서울대 문리대생들의 동인들이 창간 했는데, 지금까지도 <창작과비평>과 함께 한국 문학의 주류로 거론되며 문단을 주도하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들은 한국 대형 출판사로 성장했는데, 그런 성장은 한국 문학과 인문학의 역량의 소산이라 해도 될 것이지만 자신들이 저항한 세력의 한 방면으로 들어갔다는 비판을 쉽게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1970년대의 <뿌리 깊은 나무>, <씨알의 소리> 등의 잡지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80년대는 잡지가 운동과 저항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말>, <한겨레>, <실천문학> 등은 지극히 80년대적인 잡지로, 당시 군사 정권의 탄압에 맞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이에서 생겨났다. 이 시대에는 수많은 잡지들이 폐간되었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잡지들이 1987년 새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안'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1990년과 2000년대 들어오면서 잡지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다. 시대와 긴밀하게 조우하는 잡지이기 때문이기도 한대, 이 시대에 접어들면서 잡지는 더 이상 전과 같이 시대를 선도할 수 없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민주화를 위해 최전선에서 활동했지만, 어정쩡하게 목적이 달성 된 후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할까. 수많은 잡지가 사람들로부터 급속히 관심을 잃어가고 새로운 성격의 잡지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대중 잡지의 시대가 온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인지하고 있는 '잡지'는 주로 이 시대에 자리 잡은 개념일 것이다.


잡지의 미래는 어떨까?


'일정한 이름을 가지고 호를 거듭하며 정기적으로 간행하는 출판물'이라는 뜻을 가진 잡지. 잡지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니 잡지의 미래가 보일 듯하지만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현재를 살펴보자면, '종이' 잡지보다 '인터넷' 잡지의 창간이 훨씬 쉬워 보인다. 실제로도 인터넷 잡지의 종 수가 종이 잡지를 따라잡고 있는 상황이다. 법 밖에 있던 인터넷 신문·잡지들이 2005년 언론 관계법 개정 이후 언론으로 정식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10 여 년이 지난 지금, 그 팽창 속도는 엄청나다. 


10 여 년이 훌쩍 넘은 블로그는 전성기가 조금 지났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과 파급력, 영향력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SNS와의 조우로 무시 못할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팟캐스트'야말로 현재 미디어의 대세라고 할 수 있는데, 언론과 잡지 기능의 일부에서 상당 부분까지 대체하고 있다. 이들 팟캐스트와 웹 언론이 단행본·잡지·신문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저자는 잡지의 미래를 어떻게 보았을까? 방대한 한국 잡지의 역사를 들여다본 후 잡지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조금 소홀히 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 보이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를 그라고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을까? 저자는 누구나 생각하기 쉬운 그래서 오히려 생각할 수 없는 잡지의 미래를 말하며 책을 끝마친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잡지의 미래이다. 


"첫째, 미래에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가 쓴 글을 나누고 돌려 읽기는 해야 한다. 그래서 '잡지'라는 글 모듬의 형식도 유지될 것이다. (중략) 둘째, 영원한 플랫폼이나 '매개'(미디어)는 없다. 당장의 패자처럼 보이는 네이버나 페이스북, 구글 들도 지금과 같은 형태와 위세를 영원히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미디어 역사, 나아가 문화사의 법칙이다. 그러니 '잡지스러운 것'도 끝없이 모양을 바꾸고 다른 '매개화'를 겪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원문으로, 기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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