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타공인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서게 한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에겐 이 작품이 정녕 '백만 불짜리 아기' 같지 않을까. ⓒ㈜노바미디어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다. 연출과 주연은 물론 제작과 음악까지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아카데미가 두 번째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겼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힐러리 스웽크에게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모건 프리먼에게 첫 번째(!) 남우조연상을 안겼다는 것도 굉장한 이야기거리다.

 

이외에도 뜬금없을 수 있는 복싱 소재라는 점이 눈에 띈다. 굉장히 '전형적인' 라인의 '여자' 복싱이라는 점이 보기도 전에 분위기를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또한 영화가 나오기도 전부터 큰 논란을 일으킨 '안락사' 논란, 가족은 더 이상 '천륜'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일면에 대한 논란은 이 영화가 뚫고 나가야 할 큰 난관이었다. 

 

논란거리로 별 거 아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방법은 하나, 제대로 된 이야기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우리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선사한다. 복싱일까? 죽음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선사하는 놀랍도록 진심 어리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복싱 영화, 아니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영화

 

영화는 다분히 복싱 영화의 정석을 따른다. 그렇지만 우린 이 영화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굉장한 영화 기술이다. ⓒ㈜노바미디어



한때 잘 나갔던 지혈사라던 프랭키 던(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딸과 의절한 상태에서 돈도 안 되는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8년째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빅 윌리, 프랭키한테서 모든 것을 배우고는 잘 나가는 매니저에게로 떠난다. 프랭키가 그를 너무 아껴 절대 챔피언전에 내보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가 된 그에게 매기 피츠제랄드(힐러리 스웽크 분)라는 서른 넘은 여자가 매일 같이 찾아와 운동하면서 자기를 키워주라고 조른다. 거들떠도 보지 않는 프랭키, 하지만 그녀의 진심에 두 손 두 발 들고 만다.

 

훈련만 시켜주고 매니저는 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다른 매니저를 소개시켜 주지만, 그의 행태를 보고 직접 매니저로 나선다. 그러곤 그녀에게 '모쿠슈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출중한 실력을 뽐내는 매기, 유럽을 휩쓸고 미국에 돌아와 천하에 이름을 떨친다. 급기야 현 챔피언과 맞붙는 챔피언전을 진행한다. 빅 윌리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매기...

 

복싱 영화는 누구나 생각할 만한 전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복싱 실력만큼 피와 땀으로 이뤄낸 게 없다는 걸 차용해, 수많은 좌절과 절망을 이겨내고 사각 링에 오른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각 링에는 오직 적과 나 뿐이라는 점을 차용해, 사각 링을 인생의 축소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일하게 기댈 사람인 매니저와의 깊은 우정을 보여주며, 복싱 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이 영화는 굳이 말하자면 '매니저와의 깊은 우정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매니저와 선수의 만남이 참으로 극적이고, 선수의 훈련보다 매니저와 선수의 일상이 더 매력적이며, 선수의 파격적인 승전보보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매니저와 선수의 모습이 더 감동적이다. 이쯤 되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더 이상 복싱 영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영화겠다.

 

복싱으로 맺어진 가족, 영화는 똑똑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가족의 부재->복싱으로 맺어진 인연->가족이 된 그들. ⓒ㈜노바미디어


우정일까, 사랑일까, 복잡한 감정일까. 그전에 들여다봐야 할 게 프랭키와 매기의 가족 관계다. 딸과 의절하고 혼자 살아가는 듯한 프랭키. 그에게 남은 건 오직 체육관과 선수들이다. 매기는 어떨까. 그녀는 가장이다. 아버지를 여의고는 그녀가 아픈 엄마, 여동생과 남동생을 먹여 살린다.

 

그런데 그 가족들이 문제인 것 같다. 필사적인 매기의 노력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매기를 더 못 부려먹어서 안달이다. 딸과 의절하고 혼자 살아가는 프랭키와 다를 바 없는, 아니 오히려 그보다 못한 가족 관계를 영위하고 있는 그녀다. 그렇게 프랭키와 매기는 가족에 대한 뼛속 깊은 그리움을 안고 살아 간다.

 

그러면서 프랭키는 선수를 키우고 싶어 하고 매기는 선수가 되고 싶어 하니, 이보다 완벽한 궁합이 어디 있겠는가. 그야말로 잘 차려진 밥상이다. 선수와 매니저가 되기로 한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서 서로는 이미 '가족'이 되어 있다. 영화는 그 과정을 대놓고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결정적 사건을 내보이지도 않는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복싱'의 과정으로 보여줄 뿐이다.

 

참으로 똑똑한 영화 문법이다. 그러면 왜 하필 복싱이냐고 할 수 있다. 그건, 복싱이 가지는 특수성이 작용한다. 선수와 매니저의 그 어떤 스포츠보다 끈끈한 관계도 관계지만, 선수가 느끼는 최고의 희열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한 명의 승리자에게 열광한다. '죽음'까지도 불사하고 올라선 '외로운' 사각 링에서 이긴 승리자에게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물론 또 다른 문법이 있지만.

 

영화가 내보내는 이야기와 메시지, 당신은 어떤 의견인가?

 

영화는 가족의 의미를 천륜이 아닌 인연이라 말한다. 또한 안락사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까지 묻는다. 당신은 어떠한가? ⓒ㈜노바미디어



눈물 콧물을 모조리 쏟아내는 감동을 유발하는 드라마를 신파라고 한다. 신파 자체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신파가 너무나 활개를 치기에 부담감을 넘어 심적으로 멀리하게 된 게 사실이다. 신파는 사람을 무장해제시켜 제대로 된 관람을 방해할 때도 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도 분명 신파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 요소를 극대화 시키면 그 어떤 영화보다 많은 신파적 눈물과 콧물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질질 끌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밖으로 폭발하는 감동 대신 안으로 삭히는 절제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부담스럽지 않아 또 느껴보고 싶은 그런 감동이다. 삭막하지 않은, 슬프지만 행복한 감동이다. 사막, 가뭄을 연상시키는 마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활짝 웃을 때나 한 줄기 눈물을 흘릴 때 느낄 수 있는 충격과 의외의 감동이기도 하다. 

 

언젠가 어머니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가족은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기에 그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져야 한다'고 말이다.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현실에 완벽히 들어맞는다고 할 순 없다. 가족은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아닌 인간이 선택해 만든 인연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그렇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진짜 사랑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게 사랑의 차원을 넘어선 '도덕과 윤리'의 차원일 때일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도 어딘가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도덕과 윤리의 잣대만을 들이대 그대로만 따를 수 있다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절대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정답은 없다. 이 영화가 은근히 또는 파격적으로 드러내며 내보내는 이야기와 메시지들은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계속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이에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가. 생전 처음 보는 이를 '백만 불짜리 아기'라고 말하며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의 한 축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영화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나는 상당한 동의의 표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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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2017년의 시작 <너의 이름은>


일본에서 역사적인 메가히트를 기록한 <너의 이름은>이 한국에 상륙했다. 개인적으로 <시달소> 이후에 최고의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저팬'과 '애니메이션'의 합성어인 '저패니메이션'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힘이 강하다. 더구나 이 단어가 일본 내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가르키는 말이라니, 그 대단함이 새삼 엄청나 보인다. 


저패니메이션은 1900년대 초에 최초로 생겼지만, 그 본격적인 전성기는 1960년대 그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에 의해서이다.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그는 일본 최초의 TV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을 만들었다. 이후 여러 명작들 덕분에 그 대상이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확대된 저패니메이션이다. 1980년대에는 현대까지 저패니메이션에 최고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출현했다. 그는 극장을 점령하며 저패니메이션의 영향력을 그 어떤 문화보다 우위에 서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사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저패니메이션의 주류는 <아키라>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으로 이어지는 사이버 펑크였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심오했다. 그 이후 주류는 2000년대 중반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였을 것이다. 하야오의 압도적인 메시지와 작화와 캐릭터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섬세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작화, 감수성 어린 캐릭터가 주를 이룬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그 중심에 아마도 호소다 마모루와 신카이 마코토가 자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디지몬> 시리즈로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완전히 파악하며 확실한 인지도 위에서 주류를 형성한 호소다 마모루, 빛에 대한 집착과 함께 차근차근 자신만의 감수성 세계를 공고히 하며 명실상부 현재 저패니메이션 NO. 1에 오른 신카이 마코토.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초창기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가장 기억에 남는 반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최신작인 바로 이 작품 <너의 이름은>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두 작품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청춘로맨스에서 판타지까지


꿈 속에서 서로의 모습이 바뀌는 체험을 하는 남과 여, 이들의 청춘로맨스는 판타지로 나아간다.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메가박스㈜플러스엠



두메 산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 있는 거 빼고 다 없는 이 시골을 탈출하고 싶어 한다. '다음 생에는 도쿄의 남자로 태어나길' 바라는 그녀. 그건 다음 생에나 가능한 일이고, 그저 도쿄에 놀러가는 건 가능하겠다. 얼마후 꿈을 꾼다. 다름 아닌 '도쿄의 소년 타키'가 되는 꿈. 자신이 꿈 속에 있다는 걸 인지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다른 성의 몸인 만큼 모든 게 쉽지 않다. 


한편, 도쿄의 소년 타키도 꿈을 꾼다. '두메 산골의 소녀 미츠하'가 되는 꿈 말이다. 미츠하처럼 그도 역시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다른 성의 몸인 만큼 모든 게 서툴다. 더구나 타키는 미츠하가 도쿄를 동경했던 것처럼 두메 산골을 동경하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꿈을 꾸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꿈에서 깨어 보면 전날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꿈이 아닌 서로 몸이 바뀌었던 것. 그 사실을 안 그들은 이 상황의 난감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를 인식하며 서로를 도운다. 


어느 날 더 이상 바뀌지 않게 된 그들. 참지 못할 궁금증이었을까, 운명적인 끌림이었을까,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찾아간다. 이보다 더 엄청난 인연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그 인연을 훨씬 더 뛰어넘는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 청춘로맨스 판타지가 끝나며 시작되는 새로운 판타지에는 감동과 눈물이 있을 것이다. 


무스비에서 기억으로, 방점은 감동과 눈물


영화를 관통하는 두 주제, 무스비(인연 또는 결연)와 기억. 방점은 감동과 눈물에 있다. 초반의 웃음이 자연스럽게 감동과 눈물로 이어지는 것이다. ⓒ메가박스㈜플러스엠



남자와 여자의 몸이 바뀌는 스토리는 사실 획기적이지 못하다. 획기적이기는커녕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는 아이디어다. 단순하게 기억으로만 더듬어 봐도 최소한 20년도 더 전에 나온 스토리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왜 주인공들의 몸을 바꾸었을까. 


아무래도 '판타지'에 방점이 찍히겠지만, 뒤에 맞게 될 감동과 눈물에 그 방점이 찍히는 게 맞을 것이다. 그는 이 트랜스 섹슈얼 판타지를 흥미를 끌 만한 그 자체의 독특함과 더불어 전달하고자 하는 바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겠다. 모르긴 몰라도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의외로 이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너의 이름은>의 감동과 눈물은 미츠하의 할머니가 되뇌는 '무스비'라는 단어에 집약되어 있는 것 같다. '매듭'이 본 뜻인 바 '인연'이나 '결연'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타키와 미츠하가 몸이 바뀌는 신기한 체험을 한 게, 운명이라기보다 인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몸이 바뀐 게 운명이라면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게 된 것도 운명이 아닌가. 그건 그들 사이에 끈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반면 이들 사이엔 무스비가 존재한다. 짧고 약하고 알아보기 힘들지만, 어떻게든 이어질 끈이 있다. 그 끈의 끝에는 그 또는 그녀가 존재한다. 나의 인연이 말이다. 영화는 이제 '기억'으로 넘어간다. 인연임을 알지만 누구인지 모르며, 내 인연일 누군가가 그곳에 있음을 알지만 이름을 알지 못한다. 너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건 나에게서 그(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 없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동일본 대지진'과 '세월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도 의도한 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재로 인한 재앙이니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을 텐데. ⓒ메가박스㈜플러스엠



감동과 눈물을 담당하며 '무스비'와 '기억'라는 추상적 개념을 현실로 옮긴 사건은 1200년 만에 찾아온 아름다운 혜성과 관련 있는데, 감독은 그 모티브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증유의 사건, 하지만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인재(人災)'라는 진짜 재앙. 우리한테는 세월호가 그 자리에 있다. 


자연의 엄청난 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재앙이었다면, 그 안에 인간의 의한 어떤 안타까움이 없었다면, 그저 슬퍼했을 것이다. 그저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힘이 작용했다면, 그래서 더욱 악화되었다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분노는 오래 가지 않는다. 분노하면 할수록 더 빨리 잊혀진다.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은 '기억'하는 것이 그 사건을 대하는 또 다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 기억의 주체는 '사건'이 아닌 '이름'이다. 지극히 동의한다. 활활 타오르다가 금방 사그라지는 그런 불꽃이 아닌, 마그네슘 촛불처럼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사그라지지 않는 그런 불꽃을 들어야겠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 사건을 중심으로 모든 얼개를 맞춘다. 그 사건에,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주인공들이 펼치는 모험에, 안타까움과 가슴졸임과 환희에, 누구도 열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전에 누구도 가슴 한 켠이 시려오는 경험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세월호를 비롯해 수많은 재앙들, 그 중에서도 충분히 빗겨갈 수 있었을 인재(人災)들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 사건들을 다시, 또다시 대할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하고 생각한다. <너의 이름은>은 바로 그 부분을 건드린다. 처음엔 감성적으로, 나중에는 현실적으로, 마지막엔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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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레스트 검프>


내 인생, 최초의 '제대로' 된 영화 <포레스트 검프>. 그전까지 영화가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영상이나 다름 없었던 내게, 이후로 '영화 세계'가 열렸다. ⓒ파라마운트



영화를 몰랐던 10대 시절에 우연히 주옥 같은 영화들을 만났다. 중학교 3학년 음악 시간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아마데우스>,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에서 공부하다가 잠깐 쉬며 TV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한 <와호장룡>. 그들은 아마 영원히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기재로 작동할 것이다. 


'넌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니?'라고 누군가 물어 왔을 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는 따로 있다. 때는 중학교 2학년 어느 주말이었던 것 같다. 큰 이모네가 놀러 왔다. 큰 이모 내외는 우리 부모님과는 다르게 영화나 음악에 일가견이 있었다. 큰 이모부가 나와 동생을 데리고 도서·비디오 대여점에 갔다. "너네 혹시 이 영화 봤니? 안 봤으면 오늘 빌려가서 꼭 봐야해"라며 건네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였다. 


20여 년 전의 장면이지만 아직도 생생한 건 그 이후로 내게 '영화 세계'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전까진 아예 존재하지 않던 세계였다. 큰 이모부의 추천 덕분이었는지, 영화가 너무 좋았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영화라는 건 그저 보기만 하는 거였다. 가타부타 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할 말도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에게 영화는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영상이나 다름 없었다. 


달리기로 달라지는 인생


<포레스트 검프>는 1994년에 개봉했고 22년 만에 재개봉한다. 명장 로버트 저메스키 감독에 명배우 톰 행크스가 열연했다. 대대적인 흥행과 대대적인 호평, 그리고 대대적인 상복이 뒤따랐다. 명실상부한 9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영화로 '영화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으니, 나는 참 복 받은 것 같다. 22년만에 재개봉을 하게 되었는데, 많은 이들에게도 이 영화가 특별했으면 좋겠다. 


선천적으로 걸을 수조차 없었던 포레스트 검프, 제니의 한마디 "달려! 포레스트!"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후 그의 인생이 달라진다. ⓒ파라마운트



IQ 75에 척추가 활처럼 휘어 걷지 못하는 아이 '포레스트 검프', "넌 남들과 다르지 않아, 명심하렴"을 주문처럼 아이에게 말해주는 엄마 덕분에 보통 학교에 들어간다. 등교 첫날, 스쿨 버스에서 아무도 자리를 함께 하려 하지 않을 때 "앉고 싶으면 앉아도 돼"라는 '제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후 포레스트와 제니는 실과 바늘처럼 언제나 함께 다닌다. 


어느 날, 여지 없이 포레스트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나타나 돌멩이를 던진다. 그때 포레스트의 인생을 바꾼 제니의 한마디가 울려퍼진다. "달려! 포레스트, 달려!" 포레스트는 자전거를 타고 쫓아 오는 아이들을 따돌리려 사력을 다한다. 불편한 다리는 어느 순간 불편하지 않게 되고, 자전거를 훨씬 능가하는 속도로 도망간다. 이후 달리기는 포레스트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달리기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인간 기관차'라 불리는 에밀 자토펙은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라고 했다. 인간은 달리도록 태어났다는 거다. 포레스트의 우여곡절 인생역전은 달리기로 점철되어 있다. 더군다나 그는 원래 걸을 수 없었는데 누구보다 빨리 달릴 수 있게 되었으니, 가장 인간답지 못한 삶에서 그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닌가. 그것은 포레스트의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포레스트가 개척한 운명일까. 


정해진 운명과 운명의 개척, 어떤 게 맞을까


포레스트 검프의 삶은 마치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흘러간다. 그러면서도 그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즉 운명을 개척했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이 맞을까? ⓒ파라마운트



포레스트는 평생 엄마의 말씀들을 숙지하고 실행에 옮기며 산다. 그중에서도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단다. 어떤 걸 집어 들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를 특별하게 생각한다.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으니, 어떤 기대나 실망 없이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던진 게 아닐까 싶다. 영화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이 의미하는 바다. 


한편 포레스트의 삶은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흘러간다. 달리기를 너무 잘해 우연히 미식축구를 '하게 되고' 전미미식축구팀에도 뽑혀 스타가 되고 군대에 들어가게 '되고' 베트남전쟁에 출전해 달리기 덕분에 큰 공을 세워 훈장을 받아 영웅이 되고 우연히 탁구를 접해 탁구의 신처럼 '되고' 죽은 동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우배 선장이 '되어' 백만장자가 된다. 


제니와의 만남과 헤어짐은 '운명'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포레스트는 첫만남 이후 그 어느 순간에라도 제니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또한 만날 때마다 변해 있는 제니에게 실망을 한 적도 없다. 첫만남 때의 기억과 느낌과 사랑을 간직하고 전한다. 정해진 운명에 순종하는 삶의 자세도 엿보이는 것이다. 


과연 어떤 게 맞는 걸까. 포레스트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둘 다 맞는 거라고. 정해진 운명과 개척하는 운명이 공존하는 거라고. 나의 생각도 같다. 이 세상을 생각해보면, 자연이 선택한 대로 만들어지고 진화해온 한편 신의 개입 없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포레스트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을 거다. 


확실한 재미와 희열을 보장한다


마치 한 자리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포레스트 검프와 케네디 대통령. 이것이 1990년대 초반의 CG란다. 엄청나다. 영화를 보면 믿을 수 없는 엄청난 CG들이 계속 나온다. 확실한 재미를 보장한다. ⓒ파라마운트



영화는 몇 번을 봐도 확실한 재미와 희열을 보장한다. 그런 부분들이 있다. 포레스트의 인생역전 그 자체. 어쩜 그리 인생이 우연의 연속으로 인해 우여곡절로 점철될 수 있는가.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포레스트, 결코 우연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그의 생각과 행동을 보면,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다. 우리의 삶도 그처럼 '재미' 있을까, 아니면 우리의 삶이 아닌 그의 삶이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일까. 막상 그처럼 살아보면 재밌다고 느낄 수 있을지?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유명인들이 함께 한다. 모두 실존 인물들인데, 엘비스 프레슬리, 케네디를 비롯한 네댓 명의 미대통령들, 존 레논 등 60~80년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그의 인생에 종종 얼굴을 내민다. 하지만 그는 잘 모르는 듯, 그 간극에서 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 삶도 잘 복기해보면 그런 순간들이 종종 눈에 띄지 않을까?


무엇보다 '특수효과의 거장' 로버트 저메스키 감독의 손에 탄생한 CG들이 압권이다. 그저 서사에 압도되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느끼기 힘든 부분들인데, 모든 CG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1994년에 개봉했다고는 믿기 힘든 만큼 완벽한대, 60~70년대 활동했던 실존 인물들과 94년 당시 현재 인물을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듯 효과를 낸 것이다. 차라리 실존 인물들인 것처럼 분장을 했다는 걸 믿고 싶을 만큼 완벽하다. 다만, 그가 <백 투 더 퓨쳐>를 연출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수긍이 간다. 뿐만 아니라 <아바타> 이전에 이미 3D 혁명을 이룬 로버트 저메스키다. 


볼 때마다 감동은 줄어드는 것 같다. 아는 게 많아지니까. 포레스트의 제니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답답하다. 그에 더해 필요할 때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제니의 행동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포레스트의 사랑에서 유발되는 감동이 사라지진 않을 거다. 반면 재미는 더해지는 것 같다. 역시 아는 게 많아지니까. 웃음 포인트들이 눈에 더 많이 띈다. 


적절한 고전 음악 OST들과 여전히 황홀한 풍경들은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절대 지나치지 못할 것이니, 넋 놓고 감상하는 걸 추천한다. 미국 60~80년대 서사와 포레스트라는 한 인간의 서사가 훌륭히 어우러져 생각지 못한 감동을 줄 것이다. 최소한 이 감동은 줄어들지 않는다. <포레스트 검프>, 언젠가 반드시 무조건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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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너는 착한 아이>



영화 <너는 착한 아이> 포스터 ⓒ아크 엔터테인먼트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게 있다. 타인으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다.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거니와 버림받을 수 있다는 믿음의 바탕에서 생성되었다. 부모에 의해 엄격한 집안 교육이 원인이다. 타인의 눈치만 볼 뿐 정작 내면을 살피지 못하기에 우울해지기 쉽다. 


'착한 아이'는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착하다'라는 명제가 맞을 것이다. 아이는 모두 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착한) 아이'이기 때문에 굳이 '착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이들에게는 뭘 하든 착하다는 걸 깨우쳐줘야 한다. 잘못을 하든, 실수를 하든, 울든, 넘어지든, 싸우든 아이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섬세한 감정선으로 심각한 아동문제를 다루다


영화 <너는 착한 아이>는 섬세한 감정선을 바탕으로 심각한 아동문제를 다룬다. 집안의 학대로 인해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오로지 급식만 기다리는 초등학교 4학년생 간다와 간다의 담임으로 전쟁터 같은 초등학교 선생을 겨우겨우 연명하는 오카노, 밖에서는 상냥하고 멋지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어린 딸 아야카에 대한 폭력을 멈추지 못하는 미즈키와 활달하기 그지 없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미즈키의 이웃 오오미야, 그리고 가족이 없는 치매 할머니와 편집증 증세가 있는 히로야와의 가족애 풍겨나는 우정. 



영화 <너는 착한 아이>의 한 장면 ⓒ아크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이렇게 3개의 이야기가 서로 연관성 없이 진행된다. 다만 비슷한 감정선과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이기에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다. 또한 다른 이야기로 화면이 전환될 때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연결 고리를 배치했다. 예를 들면, 전의 화면에서 다른 이야기의 누군가가 웃으면서 끝나면 이어지는 화면에서 다른 이야기의 누군가가 웃으면서 시작한다든지,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는 장면에서 처맛자락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는 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조금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이 영화의 분위기에 알맞았던 것 같다. 


폭력과 무관심, 그리고 관심과 '착한 아이'


오카노는 정녕 전쟁터 같은 교실에서 한 시도 마음 편하지 않다. 초등학생들이 더하면 더해서, 이지매는 물론이고 선생님을 골탕먹이기까지 한다. 그 와중에 매일 같이 집에 가지 않고 있는, 겉으로 보았을 때 더럽고 어딘가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이는 학생 간다를 알아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간다 말로는 자기는 착한 아이가 아니란다. 그래서 아빠, 엄마가 자기를 싫어한단다. 


간다는 오카노에게 어떻게 해야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본다. 오카노는 "간다, 너는 착한 아이야"라며 진심어린 위로를 건넨다. 진심을 건네 받은 간다는 마음을 열고 오카노와 함께 아빠와의 약속을 깨고 5시 이전에 집으로 향하는데, 간다 아빠와의 실랑이 끝에 오카노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오카노는 문 너머로 가정 폭력을 목격한다...



영화 <너는 착한 아이>의 한 장면 ⓒ아크 엔터테인먼트



미즈키는 어린 딸 아야카와 산다. 남편은 멀리 외국으로 출장을 갔다. 그녀는 이웃들과 함께 종종 공원에서 시간을 가지며 아이들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 와중에 활달하기 그지 없는 오오미야와 친해진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챙긴다. 반면 미즈키는 집에 와서는 아야카에게 심한 폭력을 일삼는다. 그녀의 손목에 담뱃불 모양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선 어릴 때 집에서 학대를 받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녀의 아이에게도 되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도 그런 자신이 싫다. 


언젠가 오오미야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같이 간다. 오오미야의 어린 아들 히루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야카, 어린 아이이기에 '당연히' 실수를 저지른다. 문제는 그 대상이 엄마 미즈키였다. 미즈키는 역시 참지 못하고 아야카를 나무란다. 때릴 순 없으니 잘못했다며 울부짖는 아야카를 억지로 일으켜 집으로 가려 한다. 이때 오오미야가 조용히 와서 미즈키를 안는다. "미즈키도 어릴 때 학대당했지?"


히로야는 편집증 증세가 있는 아이이다. 그는 매일 아침 학교를 가며 어느 할머니께 첫인사와 끝인사를 함께 하곤 한다. 그럴 때면 그 할머니 또한 상냥하게 받아준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는데, 히로야만은 잊지 않는 것 같다. 그녀에겐 가족이 없어서 히로야가 손자처럼 생각되는 모양이다. 


언젠가는 히로야가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갈 수 없었을 때가 있었는데, 할머니가 자신의 집으로 오게 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중에 히로야를 찾아온 엄마, 그런데 정작 엄마는 히로야를 잘 모른다. 히로야가 얼마나 착한지, 비록 편집증 증세가 있지만 호기심이 많고 기억력도 좋고 똑똑한지 말이다. 할머니 덕분에 히로야를 다시 알게 된 엄마다.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존감을 지켜라


<너는 착한 아이>는 일본 영화의 특징 중 한 가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심각한 문제나 이슈를 다룸에도 유머와 휴머니즘, 감동과 교훈을 져버리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도 아동 폭력과 무관심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일본 영화 특유의 감정선을 놓치 않는다. 그 감정선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머와 휴머니즘, 감동과 교훈이 있다. 


우리나라 영화였다면, 코미디 같은 유머와 눈물샘을 지극히 자극하는 감동을 다분히 심어놨을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심각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거나 뭔가 더 보여주기 위해 많은 것들을 덕지덕지 붙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 영화의 이런 특징은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영화 <너는 착한 아이>의 한 장면 ⓒ아크 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세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착한 아이'의 위대함은 실제로도 통용될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 내가, 그 다음은 나의 아이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나의 이웃이 '착한 아이'임을 인지해야 한다. 여기서 착한 아이란 건 다름 아닌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외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증오한다면, 다른 누군가를 향해서도 증오의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너는 착한 아이'는 곧 '나는 착한 아이'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잘' 알고 있는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문화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낮춰야 한다. 그건 자칫 나를 인정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으로 변질되기 쉽다. 하지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자만심 이전에 자신감이고, 자신감 이전에 자존감이다. 바로 그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아동 폭력과 무관심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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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심각했다. 여자친구도 지금은 웃으며 그때의 본심을 이야기 하지만, 당시에는 절대 웃을 수 없었다. 그건 명백히 여자친구의 나에 대한 시험이었다. 며칠 밤을 새도 풀리지 않을 시험. 하지만 그 시험은 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아직 우리가 사귀기 전이다. 옥신각신. 일종의 밀당이라고 할까. 우리 사이는 겉으로는 태평해 보였지만, 안에서는 태풍이 불고 있었다.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아마도 나의 사랑을 믿지 못하였나 보다. 그땐 내가 한없이 약했으니까. 역시 약한 지금보다도 훨씬 더. 


그녀는 처음에 장난 비슷하게 시작했다. 가끔씩 자기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면 그래도 자기를 사랑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진지하기 그지 없었으니까. 그 반응이 재미 있었는지, 아니면 그 반응에 실망했는지 점점 장난이 아닌 것 처럼 물어보는 거였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 저 남자예요. 어쩌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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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그녀가 장난을 치는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후이기 때문에, 나는 그 질문에 혼란이 밀려왔다. 참으로 오랜 고민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도 그녀는 줄기차게 물어 왔다.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셨냐고. 정말로 난감했다. 살면서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앞으로 그런 생각을 할 마음도 없는데 말이다. 결국 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녀의 말에 감동을 받았고 큰 도움이 되었다. 


"난 오빠가 뭐든 상관 없어요. 오빠 자체가 중요해요."


그러며 내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다는 게 아닌가. 심지어 내가 인간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였다. 그 말에 감동받지 않을 자 누구인가.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을 고민한 뒤 나도 그녀에게 같은 말을 했다. 


"너가 여자든 남자든 상관 없어. 너 자체가 나에겐 중요해."


당시에는 그 말에 그녀가 크게 감동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에게는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에 고백 아닌 고백을 하는 게 아닌가. 그때 그게 사실 일종의 실험이었다는 걸. 물론 오빠 자체가 중요하다는 건 당시와 지금의 변함 없는 진심이지만. 


덕분에 지금 어느 커플보다 공고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다. 웃지 못할, 그렇지만 웃음이 나오는 추억인데 중요한 걸 남겨 주었다. 그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의 사랑이 흩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그 자체로 이해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으니까. 시간이 흘러도 그녀는 그녀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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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쓰 와이프>



영화 <미쓰 와이프> 포스터 ⓒ메가박스 플러스엠



본래 50만 명을 넘기 힘들었을 터인데, 입소문만으로 기어코 100만 명을 가까이 관객을 동원하며 같이 개봉했던 하반기 최대 기대작 중 하나인 <협녀, 칼의 기억>을 2배 이상 차이로 보내버린 영화가 있습니다. 개봉 주차에는 흥행 실패, 2 주차에는 반등의 조짐, 3 주차에는 역주행의 모습을 보이며 저력을 발휘했죠. 엄정화, 송승헌 주연의 <미쓰 와이프>예요. '판타지+코미디+감동'의 적절한 조화를 보여주었어요. 


그럼에도 관객수에서 아쉬움이 남는데요.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이 130만 명이라고 해요. 손익분기점도 그렇지만, 이 영화가 받은 호평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지 많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1년 중 최성수기인 8월에 개봉했기 때문이겠죠. 배경이 거의 겨울이고 또 온 가족이 함께 보면 좋을 영화라서, 추석 지난 비수기에 개봉했으면 훨씬 많은 관객분들께 가 닿을 수 있었을 텐데요. 아쉽네요. 


그럼에도 손익분기점에 거의 다다른 걸 보니 영화도 보기 전에 입소문, 개봉 시기, 마케팅 등의 영화 외적인 부분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네요. 영화 산업 공학이라고 할까요. 잘 만들고 잘 파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현대 사회의 산업 세계에서는 이 두 가지가 여전히 제일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한편 350만 명이 손익분기점인 <협녀, 칼의 기억>이 1/10 수준인 43만 명만 동원했다는 사실이 무섭게 다가옵니다. 


믿고 보는 엄정화, 최대의 수확 송승헌


각설하고, <미쓰 와이프>는 사실상 엄정화 여주 원 톱에 송승헌, 김상호, 라미란, 서신애 등이 받치는 체제입니다. 언젠가부터 여주 원 톱으로서 훌륭히 제 몫을 하게 된 엄정화는 이 영화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요. 특히 이번에는 카리스마 넘치고 실력 좋지만 권력에 빌붙어 나쁜 짓을 서슴지 않는 변호사 역과 가난하고 억척스럽지만 따뜻하고 배려심 많고 똑똑한 아줌마 역을 해냅니다. 


여기에 생각지도 못한 송승헌의 모습은 이 영화 최대의 수확입니다. 항상 딱딱하기 그지 없는 정극스러운 연기만 보여줬던 그였는데, 이번엔 그런 모습을 훌훌 털어버립니다. 아픔 아닌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유머러스하고 스마트하고 자상하고 사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빠로 열연했죠. 김상호와 라미란은 과연 명불허전의 '씬 스틸러'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해냈습니다. 없으면 안 될 존재들입니다. 



영화 <미쓰 와이프>의 한 장면.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의 내용은 식상하다면 식상하다고 할 수 있고 엉성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잘 나가는 최고의 변호사 이연우(엄정화 분)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게 되는데, 천계에서 실수를 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천계는 원래 살아 있어야 할 그녀에게 제안합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한 달 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다른 사람은 한 달 뒤에 죽을 운명인 애 둘 딸린 가난한 집의 아내이자 엄마였죠.


당연히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한 달은 버텨내야죠. 똑똑하고 씀씀이 큰 본래의 영혼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분수에 맞지 않는 예전과 다른 모습을 계속 보입니다. 그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남편, 큰 아이, 작은 아이, 동네 아줌마 친구들, 악질 부녀회장, 남편 회사 상사 등과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벌어지죠.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변합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 혼자를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그녀였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자신을 사랑해주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다 보니 사랑을 깨달은 거죠. 


여지 없이 한 달의 시간이 다 가고 말았습니다.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속절 없이 떠나야 하는 그녀, 그것도 외로운 원래의 변호사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녀의 선택이 받아들여 질까요. 전반의 코미디와 후반의 감동. 그녀가 선택을 하는 부분이,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부분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동시에 감동이 최고조로 올라가는 부분입니다. 


다소 엉성하지만 괜찮다


영화는 그야말로 웃다가 울게 만듭니다. 그러다가 다시 웃다가 울게 만들죠. 마지막에는 미소 짓게 만듭니다. 아, 처음에는 찡그리게 만들더군요.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변화를 상당히 잘 표현해낸 것 같습니다. 타이밍 적절하게 포인트를 넣었어요.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냥 영화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을 뿐입니다. 



영화 <미쓰 와이프>의 한 장면. ⓒ메가박스 플러스엠



다만, 영화가 크게 바뀌는 부분의 디테일에서 엉성한 부분이 많았어요. 오히려 감정선의 디테일에서는 합격점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즉, 스토리에서는 불합격점을 연기에서는 합격점을 줄 수 있겠네요. 단번에 2000년에 나온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패밀리 맨>를 생각나게 할 만큼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설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설정을 실행에 옮길 때는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억지스럽지 않게 말이에요. 또한 그녀가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 싫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도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이 에피소드들을 총체적으로 묶어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했으면 더욱 극적으로 짜임새 있게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에요. 그랬으면 엉성한 느낌이 훨씬 덜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재밌네'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걸 보니, 최소한 나쁘지 않은 영화인 건 분명해요. 개봉한 지가 조금 지나 아쉽지만, 이번 추석 때 온 가족이 모여 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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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소설 읽기] <젓가락여자>



<젓가락여자> 표지 ⓒ아시아



"예리한 바늘이 정곡을 찔러 육체에 음산하고 정교한 수를 놓으며 살 속에서 맴돌던 언어를 해방시킨다"


소설가 천운영이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바늘>로 당선되었을 당시의 심사평이다. 소설을 읽는 다양한 이유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최고의 가치로 치는 게 두 가지 있는데, 바로 '재미'와 '감동'이다. 이 둘만 있으면 그 소설은 나에게 최고의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이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재미'를 고르겠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수록 시선이 바뀌었는데, '감동'조차도 큰 틀에서 '재미'의 요소 중 하나로 편입되었다. 이 둘은 더 이상 동등한 입장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소설을 보고 흔히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읽자마자 그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따위의 말을 늘어놓는다. 거기엔 스토리, 캐릭터, 사건, 형식, 문체, 분위기 등의 요소가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녀의 소설은 재미있을 것 같다


천운영 작가의 소설은 접한 적이 없었지만 그 명성과 함께 스타일은 익히 알고 있었다. 누구는 스타일리쉬하다고 하고, 누구는 그로테스트하다고 하며, 누구는 날카롭다고 했으며, 누구는 불편하다고 했다. 종합해서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그녀의 소설은 '재미있을 것' 같았다. 흔하지 않고 정형화되지 않았으며 식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젓가락여자>. 제목부터 흥미가 돋지 않는가?


소설은 시종일관 화자의 원맨쇼로 진행된다. 혼자 말하고 혼자 답하는 식이다. 그래서 서술이 일체 없다. 그야말로 한 번 손에 쥐면 물 흐르듯 자연스레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형식도 이러한데, 내용은 더욱 나를 옥죈다. 다음 장을, 아니 끝 장을 보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든다.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소설이 나의 욕망을 부추긴 이유에서 일까?


화자는 조그마한 독서토론회 모임의 회장이다. 그녀는 회원들로부터 서진이라는 유명한 작가를 한 번 초청해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힘 좀 써볼 것을 부탁 받는다. 그녀가 다름 아닌 서진 작가의 학교 후배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반신반의하는 회원들에게 서진 작가와의 첫만남을 이야기해준다. 한 마디 붙인다. 서진 작가가 자신한테 빚진 게 좀 있다고. 


서진 작가의 본명은 양영은이었다. 영은과 그녀는 첫만남부터 뭔가 통하는 게 있어 사 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어울릴 수 있었다. 그녀는 누가 봐도 정말 멋진 사람이었던 영은에게 인간적으로 반했던 것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영은에게는 남의 기운을 자기 쪽으로 끌어모으면서 단번에 잡아 채는 매력이랄지 마력이랄지 아무튼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영은의 별명은 '고물상'이었다. '고민고물상'. 고민을 가지고 가면 들어본 다음에 해결책을 주거나 방향을 제시해주거나 위안을 주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기 그 고물들이 소설의 소재가 된 것이 아닌가? 그 중에서도 그녀와 할머니 사이에서 있었던 '닭 모가지' 이야기를 고스란히 소설로 옮긴 게 아닌가? 그녀는 추억이 소설로 되살아났다고 좋아하면서도 그 경험을 소설로 옮기는 행위를 비꼰다. 


"제 추억을 소설로 쓴 게 미안해서 자꾸 그렇게 생각하시나 본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언니가 그 글을 베껴 쓴 것두 아니구. 나한테 들은 얘기 소설로 쓴 건데. 언니가 진정성 이런 거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까. (중략) 물론 언니가 그거 쓰겠다고 나한테 허락을 받은 건 아니지만. 내 추억을 누구도 쓰면 안 된다고 상표등록 해놓은 것도 아니고. 내가 소유권 주장하겠다고 나설 사람도 아니고." (본문 중에서)


소설을 관통하는 욕망의 충돌


소설의 서사는 별 게 없다. 독서토론회 회장이 학교 선배였던 유명한 작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이다. 거기에 어떤 갈등이나 마찰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녀의 시각으로만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에 잘 살피지 않으면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도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녀의 말투가 지독하리 만치 비꼬아져 있고, 중간 중간 섬뜩한 말 한 마디들이 오고갈 뿐이다. 


그 한 마디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설을 관통하는 욕망의 충돌이 보인다. 독서토론회 회장인 그녀는 사실 익명의 파워 블로거(리뷰어)이기도 하다. 그것도 서진 작가의 안티 행위를 선도하는. 서진 작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 행위들을 모두 다 캡처해 벼르다가 이 만남을 기해 따지려 한 것이다. 이는 그녀 또한 마찬가지이다. 


먼저 어떤 짓을 한 건 서진 작가였다. 대학교를 다닐 당시, 그녀를 학생회도 아닌 운동권도 아닌 철학 공부회 비스무리한 비밀스러운 조직(학생 운동)에 집어 넣고 자신은 아예 졸업을 해 소설가가 되겠다고 전문대에 들어갔던 것이다. 5학년으로 남아서 총여학생회장으로 출마해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어 있던 것도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야말로 '배신'이었다. 


그녀는 이 배신을 잊지 않고 유명 파워 블로거가 되어 서진 작가의 소설 리뷰를 쓴다. 아니 서진 작가의 소설 리뷰를 쓰며 유명해진다. '진정성' 있는 리뷰. 하지만 그 리뷰는 서진 작가에게 만은 '배신'이었다. 자신에게서 체득한 걸로 자신을 공격하는 짓이었던 것이다. 욕망의 충돌은 계속 이어진다. 


그녀는 서진 작가가 타인의 경험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걸 두고 계속해서 비꼬면서 말하고, 서진 작가는 그녀의 블로그 대문에 자신이 대학교 때 해준 이야기를 고스란히 올린 것을 두고 비난한다. 이 둘은 이미 폭발한 게 분명한데, 소설의 형식 상으로 보면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녀의 한 마디에서 유추할 수 있다. 


"언니한테서 깃발을 가져온 건 좀 미안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언니도 내 거 가져가셨잖아요. 

내 닭 모가지." (본문 중에서)


누구라도 한 번 생각해 봤을 것 같은


표절에 대한 욕망인가. 더 크게 보면 글쓰기에 대한 욕망인가. 나만 아는 비밀을 폭로하고 싶은 욕망인가. 이는 소설 쓰기 혹은 작가 되기의 욕망으로 까지 이어지는가. 그녀의 입장에서 더 자세히 보자. 소설가가 되지 못하고 대신 파워 블로거 되어, 다른 방면으로 나마 욕망을 분출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욕망. 


그렇다면 서진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행위는 어떤 욕망인가? 이건 소설가가 소설을 짓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도 평생에 걸쳐 해보지 못할 것이니 남의 이야기 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던 박경리 소설가가 될 수 없었던 서진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 즉, 남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훔치는 '꼼수'로 소설을 지으려는 질 나쁜 욕망의 분출이었나? 


소설을 읽으며 뜨끔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얘기 같고, 아는 사람의 얘기 같고, 누군가의 얘기 같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한 번은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해 봤을 것 같다. 바늘로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이 소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확실한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보장한다. 


아시아 출판사에서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와 함께 앞으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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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결혼식 전날>


<결혼식 전날> ⓒ애니북스

개인적으로 '단편 만화'를 접한 적이 없다. 한 컷이나 4 컷 만화를 단편이라 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일정 정도 이상의 스토리와 서사가 존재한다는 전재 하에, 단편 만화는 일단 제작하기가 너무 힘들 것이다. 


글로만 표현하는 단편 소설과 달리, 단편 만화는 독자들로 하여금 단 한 컷 만으로도 전달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엄청 많다. 단편 소설은 독자가 상상을 해야 하는 바가 많기 때문에, 단편 소설의 묘미인 '반전'을 보여주는 데 적합하다. 그래서 단편 만화보다는 짧은 몇 컷의 만화가 더 인기가 많으며 활발히 만들어지는 것 같다. 


'단편 만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다


사실상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된 '단편 만화' <결혼식 전날>(애니북스)는 이런 고정관념 아닌 고정관념을 완벽히 상세해주고도 남는 작품이다. 단편 만화 모음집이니 작품들이라 해야 맞겠다. 6편이 실린 이 모음집의 제목은 첫 번째 작품인 '결혼식 전날'에서 따왔다. 


표지는 지극히 평범하다. 표사나 띠지에서는 놀라운 반전과 따뜻한 감동의 이중주를 선전한다. 반전과 감동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던 바, 얼마 만큼의 감동과 어느 정도의 반전이 있기에 전면에 내세웠는지 궁금해졌다. 만약 이 둘을 훌륭히 접목 시킬 수 있다면, 기억에 꽤 오래 남아 있을 만화일 터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모든 단편들에서 반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감동까지도. 감동과 반전의 시너지를 발견할 수 있었냐고 물으신다면, 확실한 대답을 해드릴 수 없겠다. 어떤 만화는 그랬고, 어떤 만화는 그렇지 못했다. 표제작 '결혼식 전날'이 감동과 반전을 제일 잘 접목 시켰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 만화의 뒷 이야기('뒷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반전의 스포일러이다.)인 6번째 만화 '그후'도 좋았다.


다른 만화 4편은 그리 와 닿지 않았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제일 좋은 만화로 다가갈 것이 분명한 2번째 만화 '아즈사 2호로 재회'는 개인적으로는 작위적이게 다가왔다. 감동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반전을 억지로 넣은 느낌이다. 그건 5번째 만화도 마찬가지이다. 그 밖의 다른 만화는, 반전을 시도한 것 같은데 어떤 게 반전인지 잘 모르겠고 내용 자체도 그리 감동적이지 않았다. 


감동과 반전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결혼식 전날>의 한 장면. ⓒ애니북스



반면 '결혼식 전날'은 그야말로 잔잔하다 못해 자칫 지루하기까지 할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너무 예쁘게 다가온다. 억지로 쥐어 짜지 않았는데도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건 아마 우리네 실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반전이라는 장치조차 '이게 현실에서는 가능한 일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게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이 만화는 해냈다. 


감동은 스토리와 그림체, 반전은 주인공의 독백이 거든다. 이 중에서 단연 압권은 '그림체'이다. 무심한 얼굴에서 종종 보이는 옅은 미소, 환한 미소에서 보이는 슬픈 얼굴과 갑작스러운 눈물. 이런 모습들을 완벽히 구사해내는 그림체는 잔잔하지만 강렬하다. 


이 모음집에 수록된 만화들의 공통된 소재이자 주제는 '두 사람'이다. 누나와 동생, 아빠와 딸, 형과 동생, 오빠와 동생 등 누구나의 삶에서 당연한 듯 존재하는 '두 사람'이다. 여기서 공통적인 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모두 가족이라는 사실. 그래서 인지 이 만화를 보고 나면, 왠지 모를 애뜻함과 따뜻함이 저 밑에서 올라오는 것 같다. 가을이 가기 전 만화로 가족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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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터미널>


영화 <터미널> ⓒ드림웍스



해외 여행을 해본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국제 미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연고지 하나 없는 곳에서 집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비행기를 놓친 상황에서 수중에 돈은 없고 카드도 없고 핸드폰 배터리까지 나가버린 상황이라면? 결정적으로 어딘지 모를 그곳에서는 우리나라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면? (물론 어떻게 해서든 집과 연락이 되어서 도움을 청하면 지금 시대에서 불가능한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럴 때의 당황스러움, 불안감, 두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게 '공항'은 이런 부정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곳은 언제나 설렘과 기대감, 행복한 긴장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헤어짐과 떠남이 있지만 만남이 있고, 아련함과 애잔함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행복과 환희와 행복한 기다림이 있다. 즉, 그곳에서는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 신기한 곳이다. 


최소한의 재미를 보장하는 공항에서의 흥미로운 설정


영화 <터미널>은 바로 이 공항에서의 흥미로운 설정과 감독(스티븐 스필버그)과 주연(톰 행크스)에 대한 믿음으로 최소한의 재미와 감동을 보장해줄 것 같은 영화이다. 그래서 인지 이 영화는 여러 장르가 조금씩 뒤섞여 있다. 정치, 공포, 코미디, 사회 비판, 드라마, 성장, 우정, 사랑, 상징, 감동까지. 


영화의 초중반까지, 이 영화는 이런 장르를 적절히 섞어 보여주며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선사한다. 공항이란 이런 곳이구나, 공항이 마냥 재밌고 신기한 곳은 아닌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일터일 수도 있구나, 그리고 이곳은 바깥 세상과는 완연히 다른 또 다른 곳이구나.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 분)는 동유럽의 작은 국가 '크로코지아' 사람으로 뉴욕에 가기 위해 JFK 공항에 입국 심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미국으로 오던 도중 '크로코지아'가 반군에 의한 쿠데타로 인해 유령 국가가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이 들려 왔다. 그는 말 그대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마냥 저냥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고국의 형편이 정리되어 다시금 국가로 인정을 받아 미국의 비자 승인이 떨어질 때까지 말이다. 그는 67번 게이트를 집으로 삼고 그곳에서 살아간다. 


영화 <터미널>의 한 장면. ⓒ드림웍스


그런데 항공 관리국 이사 프랭크 딕슨(스탠리 투치 분)은 이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가 동유럽 출신이라는 점과, 그가 이곳에서 '살아가게' 되면서 그를 주시하며 계속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조만간 국장 자리에 임명되게 되는데, 어떠한 문제라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 완벽주의자인 그의 눈에 빅터 나보스키는 불필요한 존재이다. 


한편 빅터 나보스키는 공항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전혀 모르던 영어를 독학하고, 카트를 이용한 돈벌이에 나서며, 공항 내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또한 자신의 특기를 살려 공항 내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는 '인간애'가 있다. 그 인간애로 그는 규정에 묶여 비참한 상황에 빠진 한 러시아인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그는 영웅이 되기에 이른다. 그는 한편 여러 사람들과 돈독한 우정을 쌓고 사랑의 메신저 역할도 하며 직접 어느 승무원과 로맨스를 펼치기도 한다. 


초중반과 정반대인 중반 이후의 삐걱거림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가 영웅이 된 후부터 말이다. 국적 불명의 거지와 다름 없던 그가 믿을 수 없는 기지를 발휘해 단번에 영웅이 되어 명사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빅터 나보스키는 러시아 인과 러시아 말로 대화를 했는데, 영화 초반에 당연히 공항에 있었을 러시아 통역관과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제일 좋은 초중반 부분의 공황 공포, 성장, 우정, 그리고 사랑은 아예 나타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억지로 꿰어 맞춘 스토리가 끝까지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며 달려 가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영화는 중반이 넘어서부터 줄곧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억지로라도 표현하려고 발버둥 친다. 기본적으로 빅터 나보스키의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기다림, 그리고 빅터 나보스키의 또 다른 기다림, 빅터 나보스키의 로맨스 상대인 아멜리아 워렌(캐서린 제타 존스 분)의 불륜 상대에 대한 기다림, 빅터 나보스키의 친구들의 사연들, 공항 관리 이사 프랭크 딕슨의 국장 영전의 기다림까지. 


영화 <터미널>의 한 장면. ⓒ드림웍스


결정적으로 빅터 나보스키가 뉴욕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밝히는 장면에서 영화는 진부함의 끝(혹자는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는 장면이라 할지도 모르겠다.)을 보여준다. 빅터 나보스키의 아버지는 재즈의 광팬이었는데, 57명의 유명 재즈리스트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렇게 56명의 사인은 받았는데, 단 한 명의 사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빅터 나보스키는 그 한 장의 사인을 받기 위해 뉴욕까지 왔고, 전쟁이 끝나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돌아가지 않고 무조건 뉴욕으로 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필 이 상황에서 사랑이 끼어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예 로맨스로 가던지, 아니면 감동 코드로 가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공항 관리자들과의 대결 쪽으로 가서 제대로 된 코미디를 보여주던지. 도대체 몇 개의 영화가 이 한 영화에 모여 있는지 모를 정도이다. 모든 걸 담으려다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담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 뽑을 만 할 정도의 영화라 하겠다. 차라리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 단, 이 재미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영화 전체가 아닌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유추하려 하지 말고 오로지 주인공 빅터 나보스키에 집중해야 한다. 소소한 웃음이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감동도 마찬가지이다. 재미와 같이 부분에 집중한다면 아주 소소한 감동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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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바웃 타임>


영화 <어바웃 타임> ⓒ유니버셜



50세의 나이로 교수 자리에서 은퇴해 소일거리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버지, 무뚝뚝하고 진지하기만 하지만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어머니, 항상 반듯한 정장 차림이지만 뜬금없고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을 수시로 하는 삼촌, 말괄량이다 못해 너무나도 천방지축인 여동생, 그리고 키는 멀대 같이 크고 말랐으며 모태솔로에 지극히 보통인 그런데 어딘지 찌질한 면이 있는 나. 


내가 21살이 되어 성년으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으려 할 때, 아버지가 따로 보자고 하신다. 그리고 친절하게 대해주시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성년이 된 나에게 덕담을 곁들인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 거겠지?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우리 가문 남자들은 성년이 되면서 특별한 능력이 생기는데, 바로 시간 여행 능력이라는 것이 아닌가.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두 주먹을 꼭 쥐고 눈을 감은 뒤 돌아가고자 하는 때를 생각하면 된다. 과거로만 여행이 가능하고, 여행 중의 기억들이 모두 생생할 것이며, 내가 시간 여행을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들까지 리셋이 된다는 것이었다. 시험 삼아 한 번 해봤는데 정말 되는 것이 아닌가? 내 인생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여자친구를 만들 것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두 주먹을 꼭 쥐고 눈을 감은 뒤 돌아가고자 하는 때를 생각하면 시간 여행이 실현된다. ⓒ유니버셜



로맨틱 코미디의 황제가 돌아오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프롤로그 스토리이다. 전형적인 듯한 로맨틱 코미디의 스토리와 이제는 너무나도 식상한 소재가 되어 버린 시간 여행’, 거기에 그리고 유명하지 않은 남자 주인공까지. 할리우드가 아닌 영국 발의 이 영화에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 믿음이 가는 이유는 정확히 10년 전 개봉해 가히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러브 액츄얼리>의 리차드 커티스 감독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리차드 커티스 감독은 일찍이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각본을 맡은 바 있다. 이들 작품 모두 로맨틱 코미디의 한 획을 그은 작품들로, 그를 가히 로맨틱 코미디의 황제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어바웃 타임>도 역시나 연출 뿐만 아니라 각본까지 도맡았다.

 

<러브 액츄얼리>의 경우, 개봉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최근에 재개봉하는 등 여전히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먼저 다른 점들을 재처 두고 크리스마스 시즌만을 노린 점이 잘 먹혔다. , 너무 많은 걸 넣으려 하지 않고 선택과 집중을 했다는 뜻이다. 반면 19명의 주인공(10 커플)을 등장시키는 옴니버스 형식이기 때문에, 캐스팅과 스토리에서는 많은 걸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어떤 관객도 최소한 한 커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신들린 듯한 공감과 웃음, 그리고 재미


<어바웃 타임><러브 액츄얼리>의 채취가 상당히 많이 베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만을 노리지 않았고, 옴니버스 형식을 차용하지도 않았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분위기, 그리고 감독의 시간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게 드러난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영화는 시간 여행이 가능한 팀(돔놀 글리슨 분)의 이야기이다. 그는 시간 여행으로 가장 이루고 싶은 게 여자친구 만들기였다. 그래서 첫 눈에 반한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고군분투를 다한다. 주로 시간 여행에 따른 고군분투인데, 그건 그의 착한지 오지랖이지 생각없음인지 모를 행동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껏 메리에게 호감을 사 좋은 관계로 진행되고 있을 찰나에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메리가 팀을 모르는 상황으로 돌아가게 되곤 했다. 그럼에도 그에겐 시간 여행이란 절대적 무기가 있었기에 결국에는 메리와 사귀고 결혼하고 아기를 낳기까지 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팀은 결국 첫 눈에 반한 메리와의 메리에 성공한다. ⓒ유니버셜


 

, 이 영화의 거의 후반부까지의 스토리는 이처럼 아주 예측가능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지루하거나 재미없거나 심지어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바로 주인공 팀에 있다. 그의 연기가 출중한 건지 대사가 출중한 건지 상황 연출이 출중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너무나도 재미있다. 그것도 공감하면서 웃는 재미. 주로 여성들에게서 그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팀이 순진하면서도 찌질하게 메리를 대하는 모습에서 공감의 웃음이 나오고, 그가 시간 여행을 통해서 과거로 가 그 모습을 억지로 버리고 능숙하게 대하는 모습에 코믹스러움을 대할 때의 웃음이 나온다.

 

감동 코드도 놓치지 않는 센스


반면 감동 코드 또한 놓치지 않는다. 팀은 수많은 시간 여행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혹은 기억에 없는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지만 말이다. 그의 아버지(빌 나이 분)는 잘 알고 있다. 시간 여행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다른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그 결과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는 사실을.

 

대신 그는 시간으로도 살 수 없는 사랑의 참맛을 알게 된다. 깨닫고 난 후 그에게 시간 여행은 그 사랑을 위한 수단이 되었을 뿐이다. 너무 힘들고 지치고 형편없는 것만 같은 하루를 온전히 지내고 난 후, 시간 여행을 통해 다시금 똑같은 하루를 보낼 때는 완연히 다른 모습을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미래를 전부 알고 있는 이의 여유와도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감동 코드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음악이 없었다면 아주 밋밋한 화면과 스토리가 되었을 텐데, 음악 덕분에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음악이 과했다면 남은 것이 음악 밖에 없었을 테지만, 그 또한 잘 캐치해냈다. 음악에 먹히지 않고 음악을 잘 소화해냈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팀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 팀과 함께한 시간을 선택한다. ⓒ유니버셜


 

만약 시간 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 쟁취하고 싶은가? 언제로 돌아가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어디로 돌아가 어떤 행동을 저지하고나 하고자 할 것인가? 영화에서 팀은 여자친구를 만들어 사랑을 쟁취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팀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인 팀과 여유롭게 산책하는 옛날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는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이것 한 가지도 잘 안다. 지금 이 순간은 반드시 과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굳이 과거로 돌아가서 무엇을 바꾸려고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바로 지금,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행동에 옮기면 되지 않겠는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 생각을 인지한 채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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