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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가족을 위해 자행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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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고이 잠드소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고이 잠드소서> 포스터.

 

1994년 아르헨티나, 2대째 공장을 운영하는 세르히오 다얀은 첫째 딸 성인식을 성대하게 치러준다. 하지만 사실 공장 사정이 좋지 않다. 직원 임금 체불과 아이 학비 미지급에 엄청난 사채빚까지 있었다.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수준, 사채업자 브레네르가 가족을 빌미로 협박을 하니 그의 빚부터 먼저 갚아야 한다. 친구에게 별장을 팔아서 급한 불부터 끄기로 한다.

어느 정도 마련한 돈을 들고 브레네르에게 가는 길, 평화로워 보이는 길 한복판 건물이 갑자기 폭발한다. 아수라장이 된 일대, 세르히오의 아내 에스텔라가 남편을 찾아보지만 가방만 발견되고 시체는 흔적조차 없다. 알고 보니 세르히오는 다행히 별일이 없었고 병원에서 간단히 치료를 받고는 파라과이로 밀입국한다. 회사가 잘 나갈 때 들었던 사망보험금으로 가족들이 잘 살아가길 바랐다.

몇 개월 후 에스텔라는 남편의 죽음을 인정하고 사망보험금으로 큰돈을 받아 빚을 다 갚는다. 와중에 그 자신도 폭발 사고로 여동생을 잃은 사채업자 브레네르와 가까워진다. 한편 세르히오는 파라과이에서 가전제품점에 취직해 잘 살아간다. 15년 후 우연히 옛 지인을 만나고 가족이 생각나 페이스북으로 큰딸의 결혼식 소식을 듣는데 세르히오, 그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갈까?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 영화와 아르헨티나 현대사

 

아르헨티나 작가 마틴 베인트럽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르헨티나 영화 <고이 잠드소서>. 아르헨티나 영화는 생소한데, 세계적으로 영화계가 호황이었던 1970~80년대 군부독재로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수도 또 만들어도 개봉할 수 없었던 게 이유라면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하여 1980년대 이후에는 군부독재의 안티테제로서의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를 이룩하자마자 얼마 후 1990년대에 찾아온 경제 위기가 다시 한번 영화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아르헨티나는 21세기 들어서까지 계속해서 경제적 타격을 받았기에 영화는 꽤 뒷전이었을 것 같다.

이 작품 <고이 잠드소서>도 작품 내적으로 아르헨티마 현대사와 관련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경제 위기와 관련해서 말이다. 배경이 1994년이니 만큼 198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의 2차 파도가 막 시작된 참이었다. 거기에 영화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자살 폭탄 테러까지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관하여

 

영화에서 주인공 세르히오 그리고 주변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겪은 'AMIA 자살 폭탄 테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있었던 사건인데, 중남미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 이민자가 거주하고 있던 아르헨티나에 이스라엘-중동 갈등으로 인한 테러가 자행된 것이었다. 하여 별안간 무고한 시민들도 수없이 죽고 다치고 말았다.

세르히오는 그때 '가족'을 위해, 엄청난 빚을 갚을 길이 없기에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엄연히 사망보험금 수령 사기이기 때문에 이후 절대로 가족들 곁으로 돌아갈 수 없을 터였다. 그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는 세르히오 자신과 가족은 물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그 선택밖에 없었는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테러 사건을 당한 이후 한참 시간이 흐른 후의 선택도 포함된다. 지금의 선택은 미래에 영향을 끼치고 과거에서 영향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완전히 다르게 살고 있을 건 자명한 일이다. 그와 관계된 사람들도. 그렇다면 최소한 가족들과는 상의를 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야 하지 않았을까?

 

영화 제목이 '고이 잠드소서'인 이유

 

제목 '고이 잠드소서'가 주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영화는 시종일관 평이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크나큰 전환점이 두 곳 정도 적절하게 포진되어 있어 지루할 새가 없다. 특히 주인공 세르히오의 인생 역전을 따라가다 보면 그에겐 언제쯤 평안이 찾아올까, 그는 결국 '고이 잠들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만큼 기구하고 처절한 이야기다. 세르히오 그리고 가족의 악연이 가족의 인연이 되고, 그 인연이 다시 세르히오 그리고 가족의 악연이 되는 과정은 너무나도 씁쓸하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이런 류, 그러니까 나름 생동감 있는 서사의 영화 제목이 왜 '고이 잠드소서'일까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감정이 서서히 차올라 흘러넘치지 않고 찰랑찰랑한 상태로 계속되는 영화, 재밌다 없다는 둘째치고 이런 감정선을 유지하는 것 자체로 대단하다 할 수 있겠다. 한 번 시청하면 후회가 없을 줄 안다. 그때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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