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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

공동체의 허위와 여성 삶의 본위를 폭로하다, 소설 <네 이웃의 식탁> [서평] 구병모 소설가의 나라에서 젊은 부부 대상으로 마련한 꿈미래실험공동주택, 편의 시설 하나 없는 고즈넉한 산속에 지은 열두 세대 규모의 작은 아파트로 깨끗하고 구조도 좋고 평수도 적당했다. 까다로운 입주 조건에 20여 종의 서류 항목을 갖추어야 했고, 경쟁률은 20:1에 달했다. 서류 항목엔 자필 서약서도 있었는데, 이곳에 들어갈 유자녀 부부는 자녀를 최소 셋 이상 갖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효내가 보기에 공동이라는 이름이 유난히 강조되는 느낌이 큰 반면 실험은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로 아이까지 돌보느라 너무 바빴다. 한편 요진은 홀로 집안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데, 약사인 육촌 언니가 차린 약국에서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교원은 집에서 전업주.. 더보기
조각난 관계들을 포옹으로 형성시켜라, 영화 <오 루시!> [리뷰] 일본 도쿄,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중년 여성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 분)는 조카 미카(쿠츠나 시오리 분)의 부탁으로 영어 회화 교실을 다니게 된다. 일단 무료체험을 하겠다고 나선 길, 수상하기 짝이 없는 학원 내부의 한 교실로 안내된 세츠코는 그곳에서 선생님 존(조쉬 하트넷 분)을 만난다. 그는 미국식 영어를 알려주겠다고 하며 별 거 없는 영어와 함께 과장된 몸짓과 포옹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녀는 루시(lucy)라는 영어이름으로 불린다. 금발머리 가발과 함께. 가발을 돌려주러 갔을 때 다케시(야쿠쇼 코지 분) 즉, 톰을 만난다. 존에게 영어를 배우러 온 그였다. 루시는 그때 존과 깊은 포옹을 하고 남다른 기분을 느낀다. 사랑? 정식으로 등록하러 갔을 때 존은 떠나고 없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 더보기
어른아이에게 덧씌워진 비극과 불행, 영화 <홈> [리뷰] 열네 살 준호는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괴롭힘을 당하고 집에서는 그리 예쁨을 받진 못하는 것 같다. 준호에게는 어린 동생 성호가 있다. 귀엽고 똘망똘망한 동생을 돌볼 때면 이런저런 시름을 잃는다. 아빠는 없는 듯하고 엄마 선미는 있다. 보험일에 치여 집안을 잘 돌보지 못한다. 그런 엄마마저도 준호와 성호의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다. 그녀와 함께 사고를 당한 이는 그녀가 바람핀 유부남 강원재의 부인이다. 원재는 보살펴줄 이 없는 성호를 딸 지영이 있는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성호는 준호와 성호의 엄마와 강원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다. 준호의 아버지는 따로 있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준호다. 선미는 상태가 좋지 않고, 원재는 준호를 보살필 법적 의무는 없다.. 더보기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로 들여다본 좌절의 한국 사회 <당선, 합격, 계급> [서평] 장강명 작가의 장강명 소설가는 자타공인 2010년 이후 문학공모전 최대 수혜자다. 2011년 한겨레문학상, 2014년 수림문학상, 2015년 문학동네작가상과 제주4.3평화문학상까지. 한 소설가가 네 개의 문학공모전 수상을 한 건 그 이전에 없었고 아마도 그 이후에도 없을 것 같다. 그는 문학상을 받을 만한 문학적인 소설을 쓰는 소설가일까? 그는 10년 넘게 사회부 기자로 일했다. '이달의 기자상' '관훈언론상' '대특종상' 등 기자로 일찌감치 이름을 높였다. 기자로 일하던 와중 한겨레문학상을 탄 작품이 이다. 기자 출신다운 건조한 문체로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거기에 어떤 '문학적인' 느낌이 들어서 있지는 않은 듯하다. 장강명은 이후로도 계속 비판적인 어조로 현실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그의 소.. 더보기
프랑스 코미디 영화의 현재 <세라비, 이것이 인생!> [리뷰] 영화의 시작은 프랑스에서였다. 19세기 말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의 대중영화를 상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니 한참 전부터 전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건 단연 미국이다. 마치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이라고 다시금 천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뤼미에르 형제 이전에 미국의 에디슨과 딕슨이 이미 영화용 카메라와 활동사진 감상 기구를 발명하였고 영화 스튜디오와 영화 제작사를 차렸다. 하지만 시네필이라면 미국 아닌 프랑스를 동경한다. 세상이 자본주의로 획일화되어 영화 또한 그에 흡수되기 전에는 프랑스 영화야말로 '진정한' 영화의 기준이자 척도였기 때문이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던 프랑스였다. 프랑스가 그 답을 더 이상 줄 수 없게 된 건 한참 전이다. 프랑스 영.. 더보기
누군가가 지금도 사전을 만들고 있다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서평] 그 어느 때보다 문자에 많이 노출되고 있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책에 대한 수요는 매년 최하한가를 경신하고 있다. 문자를 기본으로 하는 책을 상당한 금액을 주고 물성으로 소유하기까지 해야 하는 게 여러모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한편으론 그럴 이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일 테다. 우린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책은 여전히 전례 없이 많이 출간된다. 이는 책이 가진 여전한 전통적 공신력과 더불어 전에 없이 정보와 문자에 많이 노출된 신인류의 출현 때문이겠다. 넘쳐나는 정보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대상으로 지식인 또는 전문가가 아닌 지식일반인들이 책을 이용해 큐레이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 평준화 와중에 아직까지는 책이 대접을 받고 있다. 와중에.. 더보기
이창동이 말하는 이 시대 청춘의 공허와 무(無), 영화 <버닝> [리뷰] 이창동 감독의 한국이 자랑스럽게 전 세계에 내놓을 몇 안 되는 영화감독 중 하나인 이창동, 그의 영화는 탄탄하다. 90년대 초반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 이미 주목받는 소설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던 바,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이 한껏 발휘된 케이스라고 하겠다. 한국 시인계의 총아였던 유하 감독, 영화계와 소설계를 오가는 천명관 작가가 생각난다. 80년대 초중반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이창동, 그는 영화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주로 해왔던 작업은, 영화로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빈틈 없는 서사와 대표성을 짙게 띠는 캐릭터와 함께. 그의 8년만의 신작 은 그동안의 이창동 영화와 다른 듯하다. 가히 그 대표성 짙게 띠는 캐릭터들이 극을 주도하고 이.. 더보기
응원하게 되는 사랑스럽고 위대한 걸음걸음, 영화 <스탠바이, 웬디> [리뷰]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베이 에리어 장애인 센터, 그곳을 책임지는 스코티(토니 콜렛 분)는 모든 친구들을 알뜰살뜰 챙긴다. 자폐증세가 심한 웬디(다코타 패딩 분)도 그중 한 명인데, 그녀는 정해진 시간마다 요일마다 장소마다 정확히 해야 할 일만 정해놓고 생활한다. 웬디는 언니 오드리의 집으로 들어가 조카 루비를 보는 꿈과 함께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입상하는 꿈을 갖고 있다. 감정조절이 자유롭지 않은 웬디가 과연 아이를 잘 볼 수 있을지, 스코티는 그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오드리는 솔직히 두렵다. 오드리는 세상 누구보다도 웬디를 사랑하고 아끼지만 그녀와 함께 살 순 없는 것이다. 한편 웬디는 스타트렉 광팬으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평한다. 그녀는 진정한 팬들만 한다는 창작활동도 하고 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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