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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포르노잡지 발행인이 극구 외치는 '표현의 자유' <래리 플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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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래리 플린트>


미국의 대표적 포르노 잡지 창간인이자 발행인 '래리 플린트'의 투쟁을 담은 영화 <래리 플린트>. ⓒ소니픽처스



1950년대 지긋지긋한 어린 시절을 보낸 래리 플린트(우디 해럴슨 분)와 지미 플린트 형제, 정직하게 돈을 벌 거라는 그들의 다짐은 20년 후 실현된다. 래리는 스트립바 허슬러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곧잘 되는 것 같지만 손님들이 따분해 하는 게 느껴진다. 


어느 날, 앳된 신참내기가 다른 이들을 훨씬 능가하는 섹시미를 풍기며 래리의 눈에 띈다. 그녀는 엘시아(코트니 러브 분), 래리는 그녀의 나체사진을 이용해 화끈한 홍보물을 만든다. 그의 생각은 적중,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급기야 '플레이보이'를 능가하는 포르노잡지 '허슬러' 월간지를 창간해 전국적 홍보를 시작한다. 


'허슬러'는 그의 기나긴 투쟁, 대박으로 가는 길, 한 시대를 상징하는 삶의 시작이었다. 그는 '음란물 간행 및 배포죄'로 체포되어 수많은 재판을 받고, 단숨에 백만장자 반열에 올라 어릴 적 꿈을 이루었으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최우선에 놓고 외쳐 결국 승리를 따내 시대정신 그 자체가 되었다. 


그의 곁에는, 그의 삶의 지론에 반하는 평생 베필 엘시아와 그가 발행하는 허슬러 잡지는 싫어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에는 모든 걸 걸고 찬성하는 변호사 앨런 아이삭맨(에드워드 노튼 분)이 있었다. 독특하기 짝이 없는 래리 플린트의 삶, 그는 여전한 기행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거장 감독의 지루하지 않은 다큐멘터리


거장 감독 '밀로스 포만'은 기구한 인물의 삶을 조명해왔다. <래리 플린트>도 그 일환, 지루하지 않은 다큐멘터리다. ⓒ소니픽처스



영화 <래리 플린트>는 1996년 작으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했다. 즉, 당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말인데, 이 작품을 연출한 이는 다름 아닌 '밀로스 포만'으로 그 유명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를 만든 거장이다. 그의 명작들은 하나 같이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래리 플린트>는 분명 다분히 다큐멘터리적이다. '허슬러' 창간인 래리 플린트의 한 시대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여전히 재단하기 쉽지 않은 '표현의 자유' 논쟁 한 가운데에 놓는다. 하지만 우린 래리 플린트만 따라가면 되기에, 아니 그가 가진 파워풀한 에너지에 끌려갈 수밖에 없기에 지루함이나 어려움, 부담감은 없다시피하다. 


더불어, 래리 플린트의 삶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맥머피,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처럼 기구하거니와 동정 혹은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그는 분명 많은 이들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부를 쌓은 역겨운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표상과도 같지만, 어느 극렬보수주의자의 총탄에 의해 하반신 불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후에도 굴하지 않고 더더욱 극렬하게, 신념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반보수 깃발을 들고 투쟁에 들어간다. 그의 뒤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막대한 부가 버티고 있었다. 그 다음이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수정헌법 1조와 진보가 있었다. 영화가 극적인 건 바로 그가 가진 부와 그로 대변되는 진보의 알쏭달쏭하고 간당간당한 동침이다. 


지극히 논쟁적인 주제, 표현의 자유


누구도 절대 피해갈 수 없는 논쟁적 주제, 표현의 자유. 이 영화가 정면으로 다루는 주제다. ⓒ소니픽처스



표현의 자유, 지극히 논쟁적인 주제이고 함부로 재단하기 힘든 주제이며 조금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고 깊숙이 생각할수록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주제이다. 그에, 이 영화는, 이 래리 플린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며 그 어떤 권리보다 우선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그 의견이 터무니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말도 안 되는 악의적 모함이라도 가능하다. 심지어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이라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 영화가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 논쟁의 첫 번째 핵심이 거기에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악의적 모함이 죄가 아닌가?


래리 플린트는 첫 번째 재판에서 승리한 후 어느 날 '허슬러'에 신망 받는 원리주의 기독교 목사 제리 포웰이 어린 시절 엄마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내용의 만화 광고를 실어 버린 것이다. 이는 가히 그 선정적임으로 부수를 늘리려는 전략과 함께 대놓고 보수와 한판 붙으려는 심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포장을 정말 잘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이런 짓을 당하고 '허허' 웃으며 지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100% 완벽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지 않는 입장으로, 표현의 정도를 따지고 최소한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와 진보의 제1원칙이라지만, 이 또한 자칫 원칙을 지키기 위한 원칙이라는 보수적 프레임이 아닐까?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래리 플린트


뭐니뭐니해도 래리 플린트라는 캐릭터에 호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소니픽처스



그렇지만, 우리는 래리 플린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앞뒤 없고 경계 없는 트릭스터(trickster) 기질로 말미암은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 생각하기 힘들고 행동하기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일 텐데, 한 단계 더 들어간 논쟁에서의 호불호 또는 가불가를 떠나 그 자체로 '호(好)'임에 분명하다. 


그건 비단 래리 플린트뿐만 아니라 이 사건과 투쟁과 재판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하나의 예능 '쇼'를 지켜보듯 흥미롭게, 그러나 나와 이 사회, 이 나라와 큰 관련이 있는 만큼 응원도 하며 지켜보게 된다. 그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과 신념과는 별개로, 한 인간의 거대 다수를 상대하는 다부진 모습이 아닌가. 


그가 지극히 순수한 전사(戰士)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별이 아닌가 싶다. 그는 모든 걸 남김없이 드러내고 맞붙었지 않나. 반면 '댓글부대'를 운영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조직적으로 허위를 유포하고 사실을 은폐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등 드러내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표현의 자유'를 이용한 건 완벽한 범죄다. 


래리 플린트는 '잘 못'했다. 그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도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의 비상식적이고 막무가내, 안하무인 행동으로 물의를 빚는다. 하지만 그가 '잘못'한 건 아니다. 그는 '표현의 자유'라는 지극히 이치에 맞는 주장만 오로지 했을 뿐이다. 그가 허용한 범위의 표현의 자유는 보장받을 수 있었다. 다만, 자유라는 이름 하에 짓밟힐 수 있는 다양한 권리들의 총합이 한계를 넘었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는 것들에 대해선 또 다른 견해와 사례, 논쟁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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