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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옐로 저널리즘의 폐해를 넘어선 그 폭력의 자화상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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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표지 ⓒ민음사



미국의 신문왕 조셉 퓰리처에겐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언론과 신문의 최고 명예와 같은 '퓰리처상'이 조셉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제정되어 100년 넘게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반면 언론과 신문의 최악 수치와 같은 '옐로저널리즘'이 퓰리처에 의해 처음 시작되어 역시 100년 넘게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옐로저널리즘은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악용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찌라시로 돈을 벌려는 자들을 일컫는데, 자본주의 팽창의 폐해라고 볼 수도 있다. 자본가들의 언론을 이용한 광고 수집에 언론들이 놀아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론들끼리의 경쟁에서 대중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더 자극적인 기사를 보낼 수밖에 없기도 할 것이다. 


옐로저널리즘은 개인을, 사회를, 나라를, 시대를 속절없이 망쳐버리기도 한다. 한 개인을 망치는 건 어렵지 않다. 197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인리히 뵐이 1975년 내놓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옐로저널리즘의 폐해를 넘어 그 폭력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살인을 부른 옐로저널리즘 폭력


카타리나 블룸은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저녁 7시 4분경에 발터 뫼딩 경사의 집 초인종을 누르곤 놀란 뫼딩에게 자수한다. 자신이 12시 15분경에 자기 아파트에서 베르너 퇴트게스 기자를 총으로 살해했다고 말이다. 곧 수사가 시작되었고, 시간을 거슬러 2월 20일 수요일에 당도한다. 


그녀는 가정부로 일하며 성실하고 한편 적막하게 사는 평범한 여성. 2월 20일 저녁 볼터스하임 부인 집에서 열린 작은 파티에 참석한다. 그녀는 오직 루트비히 괴텐이라는 자와 춤을 추었고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간다. 그녀의 집은 철저한 감시 하에 있었다. 괴텐이라는 자가 은행강도이자 살인범으로 수배되고 있던 자였기 때문. 


목요일 오전 경찰은 카타리나 집을 급습한다. 하지만 괴텐은 이미 모습을 감췄다. 곧 카타리나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고 당연한듯 옐로저널리즘에 의해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공표된다. 그것도 전혀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이기 짝이 없는 형태로.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마수는 그녀와 조금이라도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로 뻗는다. 괴텐을 진정 사랑했던 카타리나는, 사랑을 얻고자 명예를 잃는 선택을 한다. 


과연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있었을까. 그녀에게 '명예'라는 게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차이퉁>지와 <존탁스차이퉁>지는 그녀를 사지로 몰아넣는다. 마치 그녀로 하여금 되돌릴 수 없는,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도 한 짓을 저지르게끔 몰아간 것 같다. 카타리나가 퇴트게스 기자를 총으로 쏴죽인 것과 퇴트게스 기자가 카타리나를 옐로저널리즘 기조의 기사로 갈갈이 찢어발긴 것, 어느 것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언어들의 혼합되고 혼란한 집합이 만들어낸 무명, 무지, 무책임의 폭력


카타리나의 '잃어버린 명예'는 '인격'과 다름 아니다. '인격살인'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 체(體)를 살해한 것이다. 비록 육체적 살인은 아닐지 모르지만, 육체 안에 자리잡은 인격의 살인은 사실 인간 자체의 살인과 다르지 않다. <차이퉁>과 <존탁스차이퉁>이 '표현의 자유'와 '무지'를 앞세워 카타리나를 향해 던진 돌은 명백히 살인자의 돌이었다. 


이 책의 부제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는 인간을 자본에 종속된 하수인보다 못한 존재로 보고 고의를 빙자한 무지의 소산인 언어적 폭력이 어떤 식으로 시작되고 어떤 식의 결말에 다다르게 되는가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혹, 책에서 카타리나가 저지른 폭력의 원인과 결과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겠다. 


작가가 저격하는 대상은, 결코 <차이퉁>, <존탁스차이퉁>을 비롯한 옐로저널리즘 따위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말을 비틀고 사실을 날조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기 짝이 없는 기사를 날리려 해도, 최소한의 기본 바탕이 되는 말, 언어가 있어야 한다. 무명으로부터 시작된 소문, 삶 자체를 의심하는 경찰의 수사 및 조사,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한 마디, 이 모든 게 자신들도 모르는 새에 범접할 수 없는 강물을 이룬다. 


이 책은 긍극적으로 그런 언어들의 혼합되고 혼란한 집합이 만들어낸 무명, 무지, 무책임의 폭력에게 화살을 쏘아보내려 하는 것이다. 그 위엔 옐로저널리즘의 탄생에 전적인 책임이 있는 자본주의 체제 따위가 아닌 폐허가 자리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의한 풍요에 가려 절대로 볼 수 없는 정신적 폐허 말이다. 


그래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비단 카타리나뿐 아니라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의 잃어버린 명예이기도 하다. 부지런하고 능력 있고 지극히 비정치적이며 경제적으로 번창하고 있는 한 사람, 카타리나 블룸에게 일어난 사건. 아주 다반사로 일어나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나한테 일어나진 않을 거라 생각하는 사건의 주인공은 당연히 누구라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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