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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사람'이 보이는, 60년 전의 놀라운 파격 로맨스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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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표지 ⓒ민음사



종종 시대를 뛰어넘는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을 목격한다. 이 시대에 이런 생각이 가능한 것인가? 그래서 우린 그런 작품을 보고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라고 평하곤 한다. 가령, 1960년대 만들어진 영화 <졸업>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최소 30년 후에 만들어졌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만했다. 


비쥬얼적 요소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상당한 영화와는 달리 소설은 기시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1960년대가 아닌 16세기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등을 아주 친숙하게 읽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전체에 흐르는 감각이나 생각 등에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나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거리감이나 기시감은커녕 현재를 사는 우리보다 더 감각적이고 생동하는 소설이 있다. 프랑스가 낳은 세기의 문제적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네 번째 작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다. 1959년에 발표했으니 어언 60년이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촌스러움을 발견할 수 없다. 시대상이나 시대정신이 발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소설은 2010년대에도 통용되는 일반적인 사랑의 모습과 감정을 무참할 정도로 혼란에 빠뜨리고 모호하게 만들면서 파괴해버린다. 그나마 어울리는 단어로 '파격'이 있을까. 그런데, 파격 이후엔 그것을 기점으로 정립된 '정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소설, 이 작가의 것을 결코 따라하긴 힘들 것 같으므로, 홀로 그만의 견고한 성을 쌓은 느낌이다. 그야말로 사강은 괴물이 아니고 뭔가, 싶다. 


시대를 초월한 사랑 이야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랑 이야기, 사강이 그려낸 사강만이 그려낼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사랑은 그 시대의 사랑이 아니다. 시대를 초월한 사랑이다. 이 난해하지만 평범하고 혼란스럽지만 전형적이고 모호하지만 정해진 듯한 길로 향하는 사랑의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섬세함을 따라가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 


서른아홉의 커리어우먼 폴은 실내장식가로 일한다. 그녀는 20대 중반에 이미 결혼했었지만 파경에 이르렀고, 이후 만난 연인 로제와 오랫동안 지내고 있다. 오래된 연인은 으레 그런 것인가? 완전한 익숙함에 폴은 로제와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로제는 그녀와 연인 관계를 이어나가면서도 틈만 나면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의 하룻밤을 즐기고 있고 폴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고독과 외로움에 지쳐가는 폴, 어느 날 폴은 반 덴 베시 부인의 아파트 실내 장식을 부탁받고 일을 시작한다. 그 첫날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난 눈부신 미남 시몽, 반 덴 베시 부인의 아들이다. 헐렁한 실내복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호리호리한 몸매와 까무잡잡한 살결, 섬세해 보이는 연한 빛을 띠는 눈동자까지. 


이후 시몽은 폴에게 적극적으로 대쉬한다. 자그마치 14살 차이가 나는 폴과 시몽, 폴은 시몽의 대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밖으로만 돌며 사랑다운 사랑을 주지 않는 로제이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맞는 짝은 로제인 것 같다. 반면 시몽은 치명적인 사랑을 준다. 인생의 다시 없을 황홀한 때, 주인공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시몽은 자신에게 맞는 짝이 절대 될 수 없을 것 같다. 


혼란 속에서도 평범을 꿈꾸는 현대인


이 소설은 '권태'에 빠진 연인의 불륜 또는 바람 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표피를 이룬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 권태에 빠지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소설의 시작과 동시에 이미 폴과 로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느낌이다. 


'사랑'이 보인다. 폴, 로제, 시몽 세 주인공의 사랑 말이다. 이들을 통해 엿보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은 형편없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하다. 이들의 모습을 총합해 보면 사랑의 본질이 나올 것도 같다. 그렇지만 결국 사랑도 사람이 하는 게 아닌가?


우린 이쯤에서 사강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게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거기에 뜻하지 않게 운명적 체념도 엿보인다. 타고난 성격에 의한 운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알면서도 죽음의 불구덩이에 뛰어들 수밖에 부나방처럼 말이다. 


결국 이 모든 게 무언가? 이것도 저것도 진정한 사랑일 수 없다. 사람의 운명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인가? 어떤 슬픔도 환희도 즐거움도 기쁨도 없다. 그저 덧없고 덧없는 무의미와 무미건조만 있을 뿐이다. 


이 소설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삶을 엿본다. 그녀의 사랑을 엿본다. 결국 그녀를 엿본다. 이토록 우울한 사랑을 이토록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그려낸 그녀는 어떤 사람인가. 깨지기 쉽고 매순간 바뀌고 극도의 혼란 속에서 평범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현대인 그 자체가 아닌가. 그런 그녀가 창조해낸 불안한 매력의 이들과 사랑은 통찰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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